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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77화 (578/1,021)

#577.

예상을 초월한 최민혁의 말에 다들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배종구 사장은 자신이 사기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이야기는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최민혁이 내놓은 것은 감람석 구조를 가진 인산철리튬을 이용한 독특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

배터리에 문외한인 이들은 다들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오현종 박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배터리는 그 자신의 영역이 아니었다. 더욱이 복잡한 화학 반응식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좀 달랐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양극 물질 논문은 제법 나와 있는 상태다.

다만 아직 상업화할 정도로 효율이 높은 물질을 찾지는 못했다.

“가만, 그러면 감람석 결정 구조인 인산철리튬이 효과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론적으로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황당했다.

“아니, 그걸 이론적으로 어떻게 안다는 말이죠?”

최민혁은 물론 어깨를 으쓱했다.

“감람석의 특성 때문입니다.”

감람석은 마그네슘-철의 규산염 광물이다. 하지만 그 구조로만 놓고 봐서는 도저히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한 채 내놓은 것은 역시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특허였다.

어떤 근거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리튬 이온의 특성을 가지고,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다.

다만 이 전지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과충전 시에 온도가 상승해서 연소나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정성 문제는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감람석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리튬 이온의 안정성이 더 심각합니다.”

“그건 가연성 유기 전해액을 대체하는 전해액을 이용하면 됩니다.”

대응되는 방식은 제법, 물성에 변화는 주는 방식이었다.

“…….”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가자미눈을 한 채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가 심하게 반발하지 않은 것은 자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원하는 효율이 나오지 않아서 이런저런 물질을 사용해 봤다.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대다수의 초기 연구는 도박의 성격에 가까웠다.

이것저것 실험하다가 성과가 좋으면 그제야 연구에 들어가니 말이다.

실제로 그런 노력 중에 효과가 있는 것도 있었다.

그 결과를 보고 배종구 사장이 자금 지원을 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건 명백히 따지면 사고에 불과했다.

또다시 실험했을 때는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액체 전해질과 고체 전해질에 대한 자료를 내놓았다.

일방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액체 전해질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전고체 전지도 한 대안입니다. 뭐, 저보다는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러니 액체 전해질부터 시작해서 고체 전해질까지 광범위한 연구를 할 겁니다. 이건 이미 출원한 특허이지만 추가적인 검토도 필요합니다.”

최민혁 실장이 이미 제출해 놓은 특허는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손을 봐야 할 곳이 많았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그제야 왜 최민혁이 자신을 굳이 끌어들이려 하는지 깨달았다.

“조금 황당합니다. 고체 전해질이라니요. 솔직히 액체 전해질도 아직 문제가 많습니다!”

최민혁은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제조 방법에 관한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온도, 압력과 같은 조건이 문제니까. 함량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제어 방식 역시 이 방식을 따르면 됩니다.”

최민혁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김종수 선임 연구원의 입은 딱 벌어졌다. 실제로 그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운 좋게 나온 결과가 바로 고체 전해질을 이용한 방식이었다.

다만 다시 검증하는 과정에서 재현이 되질 않아서 액체 전해질로 돌아갔다.

두 가지 방식을 교대로 다시 실험하면서 자신이 놓친 방식을 재현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그런데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은 지금 최민혁이 제시한 방식에 자신이 원하던 대답이 있다는 점이다.

‘온도와 압력, 맞아, 환경 자체가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어!’

물론 나름 철저히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았다. 실험 장비나 세팅에 오류는 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때문에 최민혁이 내놓은 체계적인 방식의 가치를 잘 알아보았다.

그리고 최민혁이 뭘 원하는지도 말이다.

최민혁은 김종구 선임 연구원의 표정 변화를 확인했다.

“일단 해보고 나서 결과를 보는 것이 어떨까요?”

“하지만…….”

“제가 설마 단순히 도박하는 심정으로 50억을 투자해서 미래 기술 지분을 인수했겠습니까? 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필요하다면 김 선임 연구원이 미래 기술에 입사해서 도와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어지간한 대기업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왜 누군가 미래 기술을 압박해서 이 연구를 막으려고 하겠습니까? 김 선임 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가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일테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최민혁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책임은 제가 다 집니다. 뭣하면 전자 부품 연구원에 자금 지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지금 하죠. 현금 20억이면 되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건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부랴부랴 연락받고 들어온 자신의 팀장이 할 일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한 말은 무슨 뜻일까? 설마 내 연구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말일까?’

* * *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최민혁 실장의 방문 소식을 들은 허종진 팀장은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장 김종구 선임 연구원을 비롯한 연구 팀을 호출해서 진행 사안을 확인했다.

그는 특히 김종구 선임 연구원을 질책했다.

“도대체 미래 기술 이야기는 어떻게 된 거야?!”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래 기술 배종구 사장이 일방적으로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어떻게 그 자리에서 자기 회사 지분을 팔아치워?! 자네가 뭔가 수작을 부려서 그렇게 된 것 아냐?!!”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억울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둘 사이를 중재해 준 것이 다였다. 더욱이 자기 연구 성과는 좋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허종진 팀장은 이상할 정도로 김종구 선임 연구원을 몰아붙였다.

“김 선임이 이번 일을 멋대로 한 거잖아. 그러니 모든 일을 책임지고 원래대로 돌려놔. 그렇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

“…….”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황당해서 다른 팀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시선을 외면한 지 오래였다.

미래 기술과 관련된 연구는 그다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차라리 다른 기업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제야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 * *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허종진 팀장에게 지시를 받고는 일단 움직이기는 움직였다.

그런데 상황이 그가 해결할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일단 미래 기술 지분을 넘긴 것 자체부터 그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신 배종구 사장을 만나서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질문했다.

배종구 사장 역시 그걸 알았다.

“그런데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자칫해서 회사가 파산할 경우에 우리 회사에 투자한 이들의 지분은 종이 쪼가리가 됩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

그게 배종구 사장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은밀하게 연락해 온 업체와 손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민혁 실장은 그에게 있어 마지막 희망이었다.

비록 지분의 20% 가치만 남았다고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기술 가치는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최민혁 실장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그가 이번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허종진 팀장은 뒤늦게 김종구 선임 연구원의 상황을 확인하자 고민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 차에 그를 호출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약속 장소는 다름 아닌 전자부품 연구소에서 꽤 떨어진 한 식당이었다.

“여기도 먹을 만합니다.”

오리고기가 주특기인 식당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오리고기에 냄새가 많이 났다.

최민혁 실장은 밥을 먹고 왔다는 황당한 소리를 한 채 더 먹지 않았다.

허종진 팀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최민혁 눈치를 보았다.

“가, 갑자기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한 겁니까?”

“전 당신이 김종구 선임 연구원에게 한 짓을 아니까요.”

“네?”

최민혁이 내놓은 것은 뜻밖에도 사진이었다. 다름 아닌 허종진 팀장이 온도, 압력을 조정하는 수치를 바꾸는 모습이었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실험에 별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허종진 팀장이 손을 대서 제대로 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 이게 뭡니까?”

“오리발 내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세요. 이 사진을 찍은 증인도 있으니까.”

정확히는 김종구 선임 연구원의 동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허종진 팀장이 이상한 짓을 하는 장면을 핸드폰 사진으로 찍었다.

그는 원래 이 사진을 김종구 선임 연구원에게 주려고 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이번 일 때문에 김종구 선임 연구원이 그만둔 자리를 그 자신이 이었기 때문이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뒤늦게야 배종구 사장에게 이 진실을 밝히게 된다.

최민혁 실장은 물론 술자리에서 배종구 사장이 한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아주 훗날의 이야기였다.

최민혁은 굳이 자세한 내막을 폭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어요. 당신네 팀에서 한 성과물을 모두 우리에게 넘겼으면 좋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진을 검찰에게 넘기기라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네. 바로 그럴 생각입니다. 이번 일은 LC 화학과도 관련이 있어서 중앙지검이 아주 좋아할 소재죠. 대기업, 공공기관 연구소, 거기에 중소기업이 엮여 있습니다. 딱 그림이 좋지 않습니까?”

물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허종진 팀장은 감방에 가야 한다. 아니, 그 정도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직도 어려우니, 그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다.

“…협박하시는 겁니까?”

최민혁은 냉수를 들이켠 후에 어금니를 살짝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신을 그냥 검찰에 고발해서 감방에 보내고 싶어요. 하지만 인생이 꼭 그렇게 극단적일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은 적당한 값에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남은 죄를 탕감하는 겁니다. 대신 김종구 선임 연구원과 미래 기술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겁니다. 서로 윈윈 아닙니까.”

“…….”

허종진 팀장은 한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그런 허종진 팀장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서로 좋게좋게 갑시다.”

“…알겠습니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두세요. 그게 서로에게 좋으니까. 김종구 선임 연구원이 굳이 이 사실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네.”

허종진 팀장은 내심 분노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단 한마디도 최민혁에게 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억울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었기 때문이다.

‘LC 화학은 바로 손을 떼겠지. 하,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네.’

* * *

허종진 팀장의 예상대로 LC 화학은 이번 일에서 바로 손을 뗐다.

그들은 이 일에 최민혁 실장이 엮여 있다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검찰을 더 걱정했다.

이번 사태가 외부로 알려지면 LC 화학의 윗선 역시 책임을 벗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최민혁이 중간에 김명준 과장을 통해서 슬쩍 손을 써서 협박한 것도 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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