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78화 (577/1,021)

#578.

김종구 선임 연구원으로서는 자기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알 리가 없었다. 다만 허종진 팀장이 갑자기 최민혁 실장을 지지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지?’

“미안하다.”

“아니, 좀 뜬금없습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었어. 아무래도 감정이 좀 격해서 자네에게 무리하게 이야기한 것 같아.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로 생각해.”

“아, 네.”

“이번 일로 문제를 더 키우고 싶지 않아. 그러니 김 선임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고, 더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해.”

“…잘 알겠습니다.”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미친놈처럼 날뛰던 허종진 팀장이 갑자기 침묵했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허종진 팀장이 갑자기 세뇌를 당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데 그의 태도에 더욱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이번 연구 성과는 KM 전자 측에 다 넘길 예정이야. 자네도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해두게. 윗선에서는 이미 구두로 승인이 났어.”

“네? 그,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 쪽에서 출원한 특허 중에는…….”

“알아. 그래서 민간기업에 넘기는 거야. 작은 기업이 그걸 감당하지는 못하잖아. 미래 기술이 만약 이 특허를 얻는다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나 다름없어.”

“의미는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닐까요? 이 기술을 다른 업체에 넘길 수 있으…….”

“아니, 난 최민혁 실장이 미래 기술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결정했어. 최민혁 실장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해.”

“아니, 그걸 어떻게 이 짧은 기간에 확신한다는 말입니까?”

답답한 김종구 선임 연구원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허종진 팀장 표정이 달라졌다.

“김 선임, 그냥 그런가 하고 넘어가자, 응?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

“아, 알겠습니다.”

자신이 만나본 최민혁 실장은 누군가를 협박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설마 누구에게 협박이라도 받은 건가.’

* * *

허종진 팀장이 갑자기 제안한 일이다.

전자부품 연구소 윗선에서는 반대할 일이 아니었다.

그것 더 윗선인 정보 통신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원한 실장은 오히려 손뼉을 쳤다.

사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을 돕고 싶어도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특혜 의혹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실무진 선에서 먼저 최민혁 실장에게 관련 특허를 매각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게 어떻게 나온 결론인지까지는 이원한 실장이 알 길이 없었다.

분위기가 이러니 김종구 선임 연구원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최민혁 실장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 실장과 전자부품 연구소 간에 특허 매각 협상이 바로 진행되었다.

최민혁 실장은 뭐가 그리 급한지 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잔금을 다 지급했다.

금액은 고작 1억.

‘너무 금액이 적은 거 아닌가?’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불만을 곧 털어버린 채 최민혁 실장이 낸 특허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게 정말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실험 결과는 그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안정성과 성능이 돋보였다.

‘……?!’

더 놀라운 것은 작동 성능이었다.

다른 양극 물질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정도로 놀라운 면을 보여주었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

게다가 최민혁 실장이 등록한 특허에 사용된 도핑 물질을 겸하면 성능이 더 좋아졌다.

구조적인 안정성이 확보되면서 에너지 밀도가 높아진 것이었다.

다만 고전압과 고압에서 빠르게 성능이 감소하는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모바일 폰 배터리용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기존에 사용된 배터리보다는 안정성과 효율성이 더 높았다.

지금 하는 실험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니, 좀 더 시간을 두고 튜닝을 한다면 효율은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마, 맙소사!”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상상도 못 한 일에 크게 당황했다.

뒤늦게야 전자부품 연구소에서 넘긴 특허 가치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상까지 딱 한 발자국 남겨둔 수준이었으니까.

다만 그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미 최민혁 실장이 자신이 하는 일에 특허를 출원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니, 최민혁 실장이 그냥 호구처럼 퍼준 것만은 아니었구나.’

김종구 선임 연구원은 한쪽에 쓰인 답안을 보고 시험지를 메꾸는 것 같아서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로만 듣던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실제로 경험한 것 같아서 놀랍기만 했다.

‘…이게 말로만 무성하던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이구나.’

가끔 언론에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우상화 교육을 한다고 비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니, 그 이상이었다.

‘…차라리 미래 기술에 입사나 할까. 지분 80%라면 최민혁 실장의 계열사나 마찬가지잖아.’

그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만 갔다.

전자부품 연구원도 나쁜 직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요즘 뜨겁게 떠오르는 KM 전자와 비견될 정도는 또 아니었다.

* * *

최민혁의 갑작스러운 행보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래 기술 지분 인수는 벨린 투자를 통해서 진행한 일이라서 외부에서 알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이 투자 역시 너무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었다.

당시 전자부품 연구소에 있었던 이들 외에는 눈치채는 것도 어려웠다.

배종구 사장조차 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 기술 윤종수 전무는 당연히 이 일을 알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지분의 80%를 벨린 투자에 넘겼다니?!”

길길이 날뛰는 윤종수 전무는 굵은 안경과 통통한 체구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순둥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가 났을 경우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어지간한 조폭보다 더 험상궂었다.

“…어쩔 수 없었어.”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그럴 거면 왜 이제까지 버틴 겁니까? LC 화학도 있는데, 차라리 그쪽에 넘기는 것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싫었어.”

“아니, 이게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배종구 사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윤 전무도 집까지 담보 잡아서 회사에 투자했잖아. 자칫하다가는 회사가 은행에 넘어가. 정말 가족과 같이 길바닥에 나앉을 셈이야?!”

“아니, 그건 제가 상관이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글쎄, 과연 그게 우리 뜻대로 될까. LC 화학이 배후에 있다는 소리가 파다해.”

“그건 확인이 안 된 사실이지 않습니까?”

배종구 사장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아니, 난 그놈들 짓이라는 것을 확신해. LC 화학 측에서 원한 것은 회사지, 임직원은 아니었어. 겉으로야 직원들까지 인수인계한다고 하지만 그럴 마음은 없을 거야.”

정확히는 다 어림짐작이다. LC 화학이 갑자기 인수 제안을 해왔다. 당연히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상한 일이 계속 생겨났다.

은행 압박부터 시작해서 거래 업체가 갑자기 주문을 취소했다.

배종구 사장은 거래 업체들을 믿었기에 위약금에 관한 조항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는 뼈아픈 결과로 돌아왔다.

‘사실 좀 이상하지. LC 화학이 우리 회사를 노릴 이유는 없으니까. 있다고 한다면 김종구 선임 연구원과의 공동 연구 결과인데, 그건 결과가 안 나왔잖아.’

배종구 사장은 그제야 뭔가 더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 만난 김종구 선임 연구원도 딱히 자세한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잘되던 연구 결과가 좋지 않다고 했다.

이걸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솔직히 나도 지금은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최민혁 실장에 대한 것은 윤 전무 자네가 말한 거잖아. KM 전자는 정말 믿을 만한 회사라고?”

“아니, 그거와 이거는 다르지 않습니까. 술자리에서 그냥 한 이야기입니다. 미래 기술은 형님과 제가 지금까지 죽어라 일해서 일궈낸 결과물입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혼자 결정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미안해. 하지만 이대로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어. 일단 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가 않잖아. 그리고 이걸 보고 말해!”

그가 던진 것은 최민혁 실장이 그나마 간략하게 정리한 특허 문건이었다.

액체 전해질로 시작해서 고체 전해질과 관련된 광범위한 특허였다.

윤종수 전무도 배터리 기술에 대해서는 제법 알기에 내용을 보고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 이게 다 뭡니까? 가만, 여기 김종구 선임 연구원이 연구하던 결과물도 있는데, 설마 이것도 포함된 겁니까?!”

“어. 나도 처음에는 우리 연구물을 도둑질한 것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옆에 붙은 특허는 듣도 보도 못 한 것이니까.”

윤종수 전무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기술 문건을 세세하게 살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거의 미래 기술이 20년은 더 연구해야 실현 가능한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면 이걸 보고 회사 지분 매각을 그 자리에서 결정한 겁니까?”

“어, 뭔가 싸하다 싶었어. LC 화학이 그냥 우리 회사를 노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 다만 최민혁 실장도 LC 화학과 같은 무리인가 싶었는데, 그 특허를 보고 나서는 아니다 싶었어.”

“…이건 좀 이상하군요.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이왕이면 김종구 선임 연구원 주변도 한번 살펴봐.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은 김종구 선임 연구원에게 자세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힌트만 줬다. 그가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막을 잘 모르는 미래 기술은 도대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건지 확인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윤종수 전무는 뒤늦게야 뭔가 있다는 것까지 알았지만, 자세한 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김종구 선임 연구원이 허종진 팀장에게 당했다는 것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최민혁은 덕분에 크게 힘을 쓰지 않고도 이 일을 마무리했다.

이 내막을 아는 사람은 결국 허종진 팀장뿐이었으니.

뒤탈이 걱정스러운 허종진 팀장이 입을 열 리가 없었다.

결국 이번 일은 그저 흔한 전자부품 연구소의 기술 이전 사건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최민혁이 원한 그림이었다. 그는 괜히 문제가 터져서 전자부품 연구소 윗선에서 이 일에 관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유는 이전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만약 전자부품 연구소의 윗선에서부터 자신들의 성과를 최민혁 실장이 노린다는 것을 알면, 돈을 더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최문경 부회장, 오성 전자, DL 그룹은 이런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 IP 시티폰 사업 인수 협상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노력은 제법 통했는지 매각 대금을 2,800억까지 낮추었다.

하지만 장승일 기조실 실장은 조금 달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최 실장님이 미래 기술을 인수했다니? 도대체 뭐 하는 회사야?”

조사를 진행했던 구길모 차장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가볍게 생각했지만, 장승일 실장의 지시에 따라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주로 안테나를 공급하는 업체입니다.”

“핸드폰 안테나를 말하는 건가?”

“LC 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도 주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영세한 업체입니다.”

“아니, 그러면 더 이상하잖아. 최민혁 실장님은 핸드폰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아, 핸드폰 외에 최근 따로 투자하는 사업이 있는데, 그게 배터리입니다.”

“배터리라면, KMP-01 때문이란 소리잖아? 그게 그럴 가치가 있어?”

“최 실장님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바로 이 배터리 사업입니다. 직접 공동연구를 하는 전자부품 연구소까지 찾아갔다고 합니다. 특허 매입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구길모 차장은 최민혁 실장의 갑작스러운 행보를 파악하고는 나름의 조사를 해봤다. 그런데 자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허종진 팀장은 구길모 차장이 자신을 찾아오자 불안해서 갑자기 휴가를 내고는 잠적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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