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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72화 (572/1,021)

#572.

“우리 이익이 많이 날수록 보상이 커질 겁니다. 그러니 이번 일을 최대한 도와주세요.”

삼우 통신 사장은 문득 ‘이거 사기 아닙니까’란 질문이 턱밑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숨김없이 그대로 질문하지는 못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사기 아닙니다. 여러분이 좀 더 도와준다면 완성도는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시제품은 상업 제품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KM 전자가 고안한 IP 시티폰은 얼마 안 된 개발 기간, 딱 그 수준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IP 시티폰 업체들에게는 딱 그 수준이면 되죠. 제품화를 하게 되면 어차피 수정해야 할 테니까.”

“…그건 그렇지만.”

최민혁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가진 IP 시티폰 기술은 진짜입니다. 설마 그걸 부인하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삼우 통신 사장이나 경영진은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바를 알게 되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들은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삼우 통신을 포함한 KM 전자의 IP 시티폰 사업을 아주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그걸 비싼 값에 사려고 할까? 아, 하긴 IP 시티폰 기술이 없으면, IP 시티폰 서비스를 할 수가 없지. 하, 이럴 수도 있구나.’

그들은 소회의실에 나서면서도 최민혁 실장의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하긴 IP 시티폰 원천기술이 있으니까. 사는 처지에서는 어쩔 수가 없지.’

그리고 자신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인수되는 업체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구조조정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차라리 인센티브를 받아서 한몫 챙겨야 했다.

‘그 새끼들은 당해도 싸!’

* * *

최민혁이 부산하게 움직이자 KM 그룹에서도 이 일을 눈치챘다.

최문경 부회장은 연일 회의를 열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뒤늦게야 이 일을 알자 최민혁을 집적 찾아갔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일 아냐.”

“꼭 그렇지는 않던데, 우리 부회장님이 아주 독이 잔뜩 올랐어.”

“그래?”

최영란 본부장은 장승일 실장에게 들은 이야기도 해주었다.

“왜, KM 전자의 정영일 씨라고 있잖아? 그 친구가 KM 그룹 비서실 팀에 들어갔어. 그거 괜찮은 거야? 내부 정보를 빼돌린 것으로 보이던데?”

최민혁은 정영일 소식을 최영란 본부장에게 듣고는 웃고 말았다.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보다 요즘 잘나간다면서?”

최영란 본부장은 다리를 꼰 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앉았다.

다른 어떤 일보다 ATI 투자는 큰 의미가 있었다.

매출 실적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최용욱 회장이 해외 자금의 일부를 이용해서 그녀를 밀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경영 후계자가 되지 않는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뭐 힘이 있어? 할아버지가 알아서 밀어주는 것을 싫다고 할 수는 없잖아?”

최민혁은 자신만만한 최영란의 모습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가 아는 인생 1회 차 때도 최영란은 늘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이제 경영자 뾰대가 좀 나오네.’

당시 AD 설계를 훌륭하게 키워 나간 사람이 최영란 본부장이다. 그녀가 KM 산업을 키운다면 그 결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된다면 최문경 부회장은 점점 구석으로 몰릴 것이다.

‘지금 우리 첫째 큰아버지 행보가 그 증거지.’

IP 시티폰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실로 위험한 행위였다.

최민혁은 그래서 최영란 본부장이 좀 더 분발하기를 바랐다.

“최해진 씨와의 연애 사업은 잘되어가?”

“별로.”

“헤어졌다는 소리가 있던데, 정말이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KM 그룹 이야기는 나에게 계속 들어와.”

“장승일 실장님이구나.”

최민혁은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영란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감정에 쉽게 얽히지 않다는 것을 예상했지만, 최해진을 차버렸을지는 몰랐다.

“두 사람은 서로 맞지 않았어.”

“…난 모르겠어.”

“깔끔하게 정리는 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했는데, 계속 연락이 오네.”

“그거 질질 끌다가 엉뚱한 문제가 생긴다. 한부 그룹이 끼어들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어. 차라리 확실하게 정리해.”

“…알았어.”

최영란 본부장은 최민혁의 타박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녀도 자신이 잘하나 싶었는데, 최민혁의 말을 듣고서야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환경적인 요인이 문제였다.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면, 그 사이에 최문경 부회장이 끼어들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최민혁은 심란한 최영란 본부장에게 더 연애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IP 시티폰 사업 관련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고 있으니까. 오히려 누나는 자기 일에 집중해. 아직 상황이 녹록한 것은 아니니까.”

최영란 본부장은 최민혁 말을 그냥 듣지 않았다.

“안 그래도 X 리포트 때문에 걱정이야. 나도 그걸 믿지는 않는데, 만약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지금 비메모리 투자는 악수잖아?”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거야 판매처가 없을 때 이야기지. 팔 곳만 많다면 상황이 달라져.”

“…결국 도와줄 거란 이야기지?”

“어. 단, 지금부터라도 비메모리 설비를 꼼꼼하게 살펴서 보수적으로 운영해. 방만하게 경영해서 생기는 문제까지는 못 도와주니까.”

“고마워.”

“천만에. 나도 얻는 것이 있으니까.”

“…그래.”

그녀는 눈을 찡그리고 말았다. 최민혁이 최문경 부회장을 죽이려고 저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두 사람의 갈등에 한숨만 내쉬었다. 그녀 자신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DL 그룹, 한부 그룹을 포함해서 웬만한 이들은 다 얽혀 있던데, 정말 걱정이다.’

* * *

김현탁 사장은 시티폰 장비 업체 인수합병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DL 그룹, 샐로먼 브러더스, 오성 전자가 힘을 합치는데, 고작 중소기업 하나를 수탈하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박태정 비서실장이 굳은 얼굴을 한 채 사장실에 나타났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지 사장이 무슨 힘이 있어. 일단 경영진에게 한 번 이야기해 봐.”

“그들이 단순하게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설마 그 치들이 해결 못 하는 문제야? 아니,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삼우 통신을 최민혁 실장이 인수했습니다.”

“……!”

김현탁 사장은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가 받은 인수 리스트의 장비 업체 중에 가장 건실한 업체가 삼우 통신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삼우 통신도 자금 사정이 안 좋아서 인수하는 데 어려울 것이 없다고 했잖아. 설마 그 틈을 최민혁 실장 그 인간이 끼어든 거야?!”

“…네, 딱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하루만 시간이 있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한 짓 때문에 김영호 사장이 자신들에게 반감을 품었다는 것까지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사실 다른 장비 업체도 후보에 있기는 했지만 삼우 통신만큼은 아니었다.

이 장비 업체는 시티폰 장비뿐만 아니라 인터넷 장비에도 경험이 많았다.

미국 장비 업체에서 외주를 받아서 커왔기 때문에 노하우 역시 무시하기 어려웠다.

김현탁 사장은 크게 당황했다. 아직 최민혁 실장과 만날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대한 피해 왔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이대로 버틴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설마 최 실장 그 새끼가 우리 의도를 안 거야?”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미 KD 통신이 설립된 것까지는 알 테니, 사전에 먼저 손을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삼우 통신을 인수했으니, 인수 대금을 더 불러야 할 겁니다.”

“쯧.”

* * *

김현탁 사장은 결국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자기 혼자 결단 내리기보다는 KD 통신 임원진들을 불러 모아서 회의했다.

하지만 임원 회의라고 해서 뾰쪽한 대안이 나오지는 않았다.

[잠깐만, 아니, 사장님이 이제까지 그걸 지켜만 봤다는 말입니까?]

[당신네가 압력을 넣고 난 후에 삼우 통신이 바로 KM 전자 쪽에 연락했다고 하니, 그걸 제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합니다.]

[그거야 일방적으로 삼우 통신을 협박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적당히 당근도 줘서 잘 타일러야 했지 않습니까?]

[협박하라고 한 분은 경영진 여러분입니다. 설마 그 일도 제 탓으로 돌릴 겁니까?!]

사장과 경영진의 갈등은 생각보다 심했다.

다만 경영진들이 죄다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은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 의도를 알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주광진 상무가 한 가지를 우려했다.

“혹시 최민혁 실장이 우리 KD 통신에게 보복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IP 시티폰 장비를 만들어서 동남아 쪽에 수출할 수 있습니다. 당장 중국 쪽도 장비를 납품할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습니다.”

“……!!”

다들 생각도 못 한 지적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번에 IP 시티폰 때문에 단단히 당한 최민혁 실장이 보복할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다.

그렇게 보면 이번 일도 심상치 않았다.

IP 시티폰이 파고들 시장 중의 하나가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김현탁 본부장은 회의가 산으로 가자 결국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제가 한번 최민혁 실장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반론은 없었다.

어차피 최민혁 실장과의 만남은 이미 이루어져야 했다.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 * *

KM 전자의 IP 시티폰 작업은 뜻밖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애초에 상업적인 장비를 만들 생각이 아니라 일단 그럴듯하게 돌아갈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VOIP와 시티폰이 결합한 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상업적인 가치는 많이 떨어졌지만 의외로 성능이 나쁘지 않았다.

그 덕분에 IP 시티폰 특허출원 역시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베이스가 있으니, 특허출원 수가 폭증했다.

거기에 최민혁 실장이 핵심 특허에 해당하는 부분을 잘라서 던져주었다.

이 특허를 냉큼 먹은 KM 전자 법무 팀은 소화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결국 삼우 통신 엔지니어들 역시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들이 이제까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사가 넘어간 후에 불안하기보다는 오히려 KM 전자의 행동에 흥미를 느꼈다.

KM 전자 특허 팀이 보여준 IP 시티폰 특허를 기반으로 나름 꽤 적지 않은 특허를 출원했다.

이 특허는 꽤 그럴듯했다.

그저 일상적인 특허와는 차이가 있었다.

특히 하이브리드 특허는 의외로 그럴듯했다.

최민혁조차 특허 팀이 만든 최종 보고를 받고서는 깜짝 놀랐으니까.

‘오, 이거 괜찮잖아. 단순히 시티폰에만 적용하기는 그래. 네트워크에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잖아.’

다만 딱 거기까지.

지금은 그 외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일을 더 키울 수는 없었다.

김현탁 사장이 찾아온 것은 딱 이 결과를 보고 있을 때였다.

최민혁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김현탁 사장의 모습에 소리쳤다.

“호, 이제 사장님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입니다.”

김현탁 사장은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보자 가슴 한구석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참았다.

최민혁은 물론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른 김현탁 사장 얼굴을 보면서 혀를 찼다.

‘나에게 감정이 많은가 보네.’

다 지난 일.

자신의 머릿속에는 별로 앙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김현탁 사장의 얼굴을 보자 자연스럽게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김현탁 본부장이 감방에 갔던 것도 다 자기 때문이었다.

언론을 통해서 마약쟁이로 알려진 것 역시 빼놓기 어려웠다.

‘원한을 가질 만한 일이잖아?’

최민혁은 일단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이전 일은 제가 의도한 바가 아닙니다. 전 그저 원칙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고작 원칙이라니.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인터뷰를 통해서 마약 거래를 폭로한 자리에 김현탁 본부장을 내세웠다. 그게 단순히 말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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