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71화 (571/1,021)

#571.

최문경 부회장은 장비 회사 인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삼우 통신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제야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야 상황이 좀 풀리네.’

그로서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좀 여유가 생기자 최영란 본부장을 떠올렸다. 이대로 둬서는 곤란했다. 뭔가 한마디 정도는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수행원을 데리고 최영란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최영란 본부장은 마침 개인적인 전화를 받는 중이었다. 그녀의 비서는 다들 10m 정도 물러나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호기심 때문에 최영란 본부장 옆으로 가서 통화 내용을 들었다.

[해진 씨 마음 모르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두 집안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요. 저도 해진 씨가 좋지만, 도저히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지 마세요. 자꾸 그러면 해진 씨에 대해서 너무 불편해질 것 같아요.]

[하, 해진 씨에게 좋은 인연이 따를 거예요. 이제 전화도 자제해 주세요. 끊을게요.]

냉랭한 최영란 본부장 목소리에는 그 어떤 애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최문경 부회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장녀를 쳐다보았다.

전화를 끊은 최영란 본부장은 그제야 최문경 시선을 알아챘다.

“우리 부회장님은 남의 사생활 전화까지 몰래 듣나요?!!!”

최문경 부회장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해진 그 친구와 헤어질 생각이냐?”

“서로 성격이 안 맞아요.”

“그렇게 좋다고 할 때는 또 언제고, 이제 와서 끝내자는 거냐?”

최영란 본부장은 냉랭하게 말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알아가면서 성격 차이를 크게 찾았어요. 그것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고, 결혼 상대는 아닌 것 같아요!”

“네가 본부장이 되어서는 아니고? 이번 ATI 투자 때문에 아주 인기가 장난 아니더라.”

실제로 최영란 본부장하고 떨어진 부근에 모여 있는 실무진 십여 명은 ATI와의 협상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오히려 최문경 부회장을 타박했다.

“그 거래는 회장님이 주선해 준 겁니다. 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하지만 그 실적을 네가 가진다는 것은 명확하지.”

“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너무 회장님을 믿지 말라는 거다.”

“웃기시네요. 차라리 우리 부회장님보다는 회장님이 훨씬 나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질투 나서 그런다고 왜 말 못 하세요?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라면 더 듣지 않겠어요!”

휙 돌아서는 최영란 본부장의 모습은 도저히 자신의 장녀 같지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어금니가 부러지도록 이를 갈았지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일이 진짜로 제대로 꼬여가네.’

* * *

최민혁은 정영일 사원이 KM 그룹 본사에 다시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묵묵히 기다렸다.

정영일을 통해서 기획안을 본 최문경 부회장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기획안의 의미는 모른다고 해도 입질은 오겠지. 그럼 IP 시티폰을 마무리해야겠어.’

황당한 것은 그 와중에 들은 소식이다.

ATI가 KM 산업에 투자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민혁 역시 1회 차 지식을 통해서 아는 내용이었다.

‘가만, 생각보다 6년이나 빠르잖아. 그리고 할아버지가 ATI 대주주였다고? 설마 이전엔 할아버지가 ATI 지분까지 첫째 큰아버지에게 넘겼던 것인가.’

그로서는 예상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된 셈이다.

자신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작업하지 않았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니까.

최민혁은 ATI 이슈를 조사하면서 묵묵히 침묵했다.

그런데 KM 그룹은 최민혁 자신에게 적극적인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저 IP 시티폰 사업부 관련해서 이런저런 자잘한 질문만 했다.

‘입질인가?’

최민혁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기분이 나빴다.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최병연 소장에게 IP 시티폰 사업부를 부풀려서 팔 수 있을 계획을 말했다.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건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바로 검토해 주세요.”

* * *

최병연 소장은 역시 이쪽저쪽에 제법 아는 지인들이 있었다.

그는 우선 시티폰 장비를 납품하는 업체를 조사했는데, 뒤늦게야 시티폰 관련 업체를 KD 통신이 인수합병한 것을 발견했다.

사실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면 알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 일이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삼우 통신 고대진 소장이 직접 연락해 온 것을 뒤늦게 알았다.

고대진 소장은 자기 회사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최병연 소장은 곧장 최민혁 실장을 찾아가서 이 소식을 전했다.

최민혁은 설마 최문경 부회장이 뒷구멍으로 장난질하고 있을지는 몰랐다.

“하, 기가 막히네요.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을 저지르다니.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분이라니까요.”

“회사 설립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미 필요한 작업을 진행한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 통신에 장비를 납품한 업체를 중심으로 말입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끼어 있으니, 돈 액수 따위는 신경도 안 쓴 것 같군요. 거기에 한부 그룹의 권력은 덤일 테고.”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삼우 통신은 어때요?”

“한국 통신에 자기 장비 납품 숫자를 크게 늘려서 선점하려고 하다가 탈이 났지만 회사 자체는 건실한 회사입니다.”

실제로 삼우 통신 장비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한국 통신이 진행하는 시티폰 시범 서비스가 잘 진행된 것도 삼우 통신 덕분이었다.

특히 고대진 소장이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영호 사장에 대해서는 말이 좀 많기는 하지만 영업력만큼은 무시할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지금 자금 압박만 해결해도 잘 성장할 회사란 말이군요.”

“네. 제가 조사한 바로는 시티폰 장비 말고는 인터넷망 장비에 대해서 투자를 꽤 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 덕분에 자금 압박을 심한 것 받았습니다.”

“한국 통신이 알아서 자금을 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랐나 보군요.”

“아뇨. 그 일에 KD 통신이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한부 그룹이 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쯧.”

삼우 통신은 KD 통신의 방해가 없었다면 탈이 날 회사는 아니었다.

특히 주거래은행조차 삼우 통신에 추가 대출을 해주려고 했으니까.

최민혁은 삼우 통신의 매출, 적자, 기술 등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기업이군요.”

“최근 IP 시티폰 인기가 폭발하면서 연구 개발에 너무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덕분에 자금 압박을 겪고 있는데, 기술력은 탄탄합니다.”

그는 그 일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쓰게 웃고 말았다.

“인수를 추진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최병연 소장은 이미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바를 알기 때문에 굳이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일단 빨리 IP 시티폰 사업을 정리해야 스마트폰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 * *

삼우 통신의 인수는 생각보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삼우 통신이 이미 KM 전자의 명성을 잘 아는 것도 있고, KD 통신과는 앙숙 관계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삼우 통신도 시티폰 장비 덕분에 몸값이 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KD 통신에는 자기 기업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실상 굳이 만나지 않아도 헐값에 자신을 노린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최병연 소장은 정식 인수합병이 이루어지기가 무섭게 IP 시티폰 장비와 인력을 데리고 삼우 통신 연구소를 찾아가서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최민혁은 아직 인수합병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진행된 일이라서 혀를 내둘렀다.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급해?’

하지만 이미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 IP 시티폰 상황을 파악한 최병연 소장은 최민혁이 딱 원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오히려 삼우 통신 김영호 사장이 당황했다.

“…이제 인수합병 계약서에 서명되었는데, 이렇게 급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최민혁도 쓰게 웃었다.

“매각 대금은 받았죠?”

김영호 사장은 떨떠름했다. 설마 KM 전자에서 바로 계약금을 일시금으로 쏠 줄은 몰랐다.

‘돈이 썩어 넘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수백억 단위 돈을 그냥 쏘다니.’

보통 인수합병이 성사되어도 매각 대금을 한 번에 주는 것은 아니다. 돈을 일정 주기로 나누어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아, 네.”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네.”

다만 삼우 통신 연구소 경영진은 최민혁 실장을 보자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에 김영호 사장에게서 회사를 매각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뒤로 불과 채 며칠이 되기 전에 회사가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최민혁 실장은 IP 시티폰 사업은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자신들은 IP 시티폰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였다.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물론 일방적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차피 제가 IP 시티폰 사업은 정리한다고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가 가진 기술은 특허 쪽에 치중되어 있고, 장비 쪽은 아니에요.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

삼우 통신 김영호 사장과 경영진은 최민혁 실장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은 시티폰 관련 장비를 한국 통신에 납품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말은 자신들의 장비에 VOIP 기능을 섞겠다는 이야기였다.

이게 사실, 문제였다.

“…하지만 기존 시티폰 장비에 VOIP를 합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굳이 제대로 동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측에서 이미 기능 구현을 했으니까. 그 기능과 당신들의 장비를 결합만 되면 됩니다.”

“하지만 제대로 동작하도록 하려면 시간이 못해도 1년은 족히 필요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적당히 동작만 할 수 있으면 되니까. 어차피 우리 회사는 IP 시티폰 사업을 매각할 겁니다.”

적당히란 말은 제대로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 주먹구구식 설계를 넣어서 동작하도록만 하겠다는 의미였다.

“…아.”

삼우 통신 경영진은 힐끗, 김영호 사장을 쳐다보았다. 불과 며칠 전에 KD 통신이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하려 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KD 통신을 상대로 엿을 먹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최민혁은 방긋 웃었다.

“그런데 그 작업은 결국 이 IP 시티폰 사업부를 인수한 업체에서 여러분이 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

삼우 통신 경영진은 처음에 최민혁 실장의 말뜻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아직 제대로 된 IP 시티폰 장비가 없는 거야?’

그 답은 굳이 최민혁에게 물을 필요가 없었다.

최병연 소장이 KM 전자 엔지니어를 데리고 와서 주섬주섬하는 일을 보면 답이 나왔다.

그들이 가지고 온 장비는 자신들보다는 발전된 기술과 특허가 맞다.

하지만 그게 또 팔 수 있는 장비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대충 납땜해서 얼기설기 엮여 있는 장비는 고장이 난 전자 장비나 다를 바가 없었다.

동작하는 게 더 이상했다.

[최 소장님, 이거 동작하지 않는데요?]

아니었다.

동작을 제대로 하는 게 더 이상하다.

그들은 엔지니어답게 지금 상태가 어떤지 모를 수가 없었다.

결국 TV에서 나왔던 장면은 문제가 많다고 할 수가 있었다.

‘가만, 우리 회사 장비와 저 장비를 합쳐서 연동시키면 모양은 그럴듯해지잖아?’

* * *

최민혁은 최병연 소장에게 작업 지시를 내려놓고는 삼우 통신 경영진을 소회의실로 데리고 가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어차피 여러분이 저 일을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죠? 사업 매각 대금이 클수록 결국 저나 여러분이 같이 챙기는 것이 생긴다는 것 말입니다.”

“…이, 인센티브 말입니까?”

말하는 삼우 통신 사장이나 경영진의 눈에 떠오르는 것은 탐욕이었다.

최민혁은 오히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욕망에 물든 이들은 결코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뭐,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를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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