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70화 (570/1,021)

#570.

실제로 중국은 삐삐에서 시티폰을 거치지 않고, PCS로 바로 넘어간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시티폰을 들이민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하물며 시티폰의 단점을 보강한 IP 시티폰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최문경 부회장은 미국이 중국 시장에 꽤 공을 들인다는 것을 익히 들었다. 그렇다면 권재홍 비서실장의 제안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무리수를 둬서는 곤란해. 서두르다가는 또 최민혁 그놈에게 된통 당할 테니, 조심하는 것이 좋아.”

“…알겠습니다.”

“아냐,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어. 뭔가 찜찜해. 일을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DL 그룹 김현탁 본부장에게 연락해서 인수합병을 서두르라고 해!”

“…하지만 그 일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장비 업체를 인수하려면 여러 가지 검토할 것이 있습니다.”

“아니, 내 생각은 달라. 민혁 이놈이 보복하려고 할 테니까. 분명히 인수합병에 끼어들어서 깽판을 칠 수도 있어.”

“후유,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최문경 부회장의 지시를 부인하지 않았다. 지금 봐서는 딱 최민혁 실장도 자기 밥그릇 때문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상황이다.

이런 시기라면 더 쉽게 일을 풀어갈 수가 있었다.

* * *

KD-LCD에 이은 KD 통신 설립은 생각보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KM 그룹이나 DL 그룹이 참여했지만 한부 그룹 최명진 회장이 이 일에 같이 끼어서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시티폰 사업과 관련된 인허가 문제를 다 풀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빼놓기 어렵다.

놀라운 것은 오성 전자 측이었다. 이들 역시 KD 통신 지분 10%를 투자했다.

이들의 자금은 모두 합해 1,000억이 넘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1차 투자다.

상황에 따라서 추가 투자 역시 어느 정도 결정이 되었다.

김현탁 본부장은 본의 아니게 이 KD 통신 초대 사장에 취임했는데, 이유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 때문에 감방까지 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과 협상도 잘 풀어갈 것이고, 또한 사업적인 리스크 역시 무난하게 풀어갈 것이라 기대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최민혁 실장 덕분에 자본금 1,000억 회사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걸 좋아해야 해?’

김현탁 본부장은 자신의 처지가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KD 통신은 이제 막 시작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측근 대부분을 KD 통신 요직에 임명하면서 연구소 관리를 했던 박태정 부장 역시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박태정 비서실장은 자고 일어나니 진급한 상황이라서 얼떨떨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상황에 절대 안도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좀 걱정이 됩니다. 한부, KM 그룹, 심지어 DL 그룹 본사에서도 임원이 파견되었습니다.”

“걔들이 말을 안 들어?”

“그건 아닙니다. 다만 경영진이 각자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 걱정됩니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KD 통신은 사공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숫제 산이 아니라 하늘로 치솟고도 남을 분위기였다.

“한부 그룹 측 인사는 잘하고 있잖아? 정보 통신부 측 인허가 문제도 잘 해결했고, 회사 설립 문제를 쉽게 갈 수 있도록 한 것 같아. 거기에 주거래 은행하고도 잘 해결했잖아.”

“그건 압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사장님 뒤통수를 치고도 남을 자입니다.”

“그런 리스크를 고려하면, 우리 DL 그룹 측에서 파견 나온 인간도 무시 못 하잖아.”

“…….”

박태정 부장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KD 통신은 애초부터 너무 많은 이해집단이 최민혁 실장 타도 명분을 내세워서 하나로 모인 것이기 때문이다.

김현탁 사장은 요지경 같은 회사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왜 일을 이 모양이 되도록 내버려 둔 것인지 모르겠어.”

“김상구 회장님도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 많이 애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외 지분 문제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에 밀리고, 한부 그룹을 앞세운 최문경 부회장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한부 그룹이 가진 힘은 돈이 아니라 권력에 기이한 것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역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힘이었다.

두 세력 다 김상구 회장이 함부로 하기 힘든 세력이었다.

그렇다고 김상구 회장을 믿을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김상구 회장이라면 얼마든지 김현탁 사장을 갈아 치우고도 남았다.

“아, 샐로먼, 한부? 씨발.”

김현탁 사장은 회사 돌아가는 상황에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이게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DL 그룹 혼자 먹으려고 하다가는 회사 성장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영진과는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최문경 부회장이 다른 경영진과 타협을 봐서 전달한 이야기가 문제였다.

“하, 회사 인수합병이 애들 장난인지 압니까? 당장 무조건 인수하라고 하면, 그 일을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다행이라면 한부 그룹에서 박아 넣은 이필영 전무가 인수해야 할 기업 리스트를 내놓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인수합병을 밀어붙이면 될 겁니다. IP 시티폰 열풍 때문에 무리하다가 자금 압박을 받은 장비 업체들이니까. 이미 이들 회사 주거래 은행에는 손을 써놓았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흠.”

김현탁 사장은 힐끗 이필영 전무를 쳐다보았다. 사각턱이 길어서 얼굴이 큰 이필영 전무는 다혈질 성격은 아니었다.

이필영 전무는 경영진답지 않게 무난하고, 호쾌한 타입이었다. 그런데 정치 쪽에도 인맥이 넓고, 기업을 보는 안목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금이 꽤 많이 깨질 겁니다.”

샐로먼 브러더스와 최문경 부회장이 보낸 주광진 상무가 슬쩍 나섰다.

“돈은 걱정하지 말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투자금이 늘어날 테니까.”

다만 그 일도 쉽지는 아니었다. 다른 회사에서 나온 경영진들이 주광진 상무를 압박했다.

“…….”

김현탁 사장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샐로먼 브러더스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웃기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도 한 가지를 확실히 했다.

“만약 무리하게 회사 자금을 소진해서 회사 적자가 누적되면, 결국 저에게 책임을 물을 것 아닙니까?”

주광진 상무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IP 시티폰 통신 개발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따라서 없는 기술이라면 인수를 해서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년 하반기에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테니까. 그게 성공해야, 동남아 쪽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해외 공략도 확정된 겁니까?”

“사실 한국보다는 오히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쪽 시장이 더 큽니다. 거기에 중국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이미 삐삐 시장이 어느 정도 있는 만큼 이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공략 가능합니다!”

그는 헛웃음을 지은 채 박태정 비서실장을 쳐다보면서 툴툴거렸다.

“정말 쉽게 말씀하는데, 저게 가능할까?”

박태정 비서실장은 경영진들의 눈치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계획대로라면 된다면, 꼭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문제가 터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잖아?”

“하지만 이번 일에 합류한 이들은 다들 전문가입니다. 그 정도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민혁표 CDMA 서비스도 그렇게 되었으니까요.”

“최민혁 실장 그 새끼를 칭찬하자는 거야?”

“아니, 제 말은 우리도 최민혁 실장처럼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탁 사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 난 좀 걱정이야. 일을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좀 아니잖아.”

“너무 최민혁 실장을 의식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최민혁 실장 스스로 시티폰 사업에서 손을 뗀다고 했지 않습니까?”

“난 도저히 그놈 말을 못 믿겠어!”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질질 끌 일은 아닙니다.”

박태정 비서실장의 말에 지금 앞에 서 있는 경영진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탁 사장은 이게 아니다 싶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알았어, 뭐 까라면 까야지. 바지 사장이 무슨 힘이 있겠어? 가만, 현우 통신, 삼우 통신, 뭐 이들 회사면 되겠어?”

“맞습니다!”

경영진은 괴악스러운 김현탁 사장의 태도에도 딱히 겉으로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그들로서는 빨리 회사를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들은 이번 일이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 * *

최근 최민혁 실장이 던진 IP 시티폰의 열기는 생각보다는 용암처럼 활활 타올랐다.

이게 좋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한국 통신에 시티폰을 공급하는 장비 업체는 올 하반기에 시티폰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추론했다.

KD 통신 설립이 그 절정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정보 통신부에서 사업자 인허가는 승인되었지만 일이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무리수를 둔 장비 업체는 자금 압박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보통이라면 주거래은행이 추가 대출을 해주는 것이 상식이었다.

정보 통신부가 보증 당사자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주거래은행이 추가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이유는 부채가 너무 많다는 거다.

무려 699억이란 막대한 자본을 퍼부은 삼우 통신 김영호 사장에게 있어선 날벼락과 다름없었다.

김영호 사장은 도저히 그냥 자리에 있을 수만 없어서 여러 은행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들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은행장이 넌지시 한 가지 진실을 말해주었다.

“한부 그룹 측에서 김 사장 쪽에 압력을 넣은 것 같아. 나도 이유는 잘 몰라. 다만 한부 그룹이 이번에 KD 통신에 투자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것 때문인 것 같아.”

“인수합병이라…….”

김영호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아직 IP 시티폰 사업은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한국 통신을 통해서 시범 서비스가 진행되었다고 해도 걸음마 단계다.

그런데 벌써 자신을 노리는 기업이 나올지는 몰랐다.

소식을 듣고 나타난 고대진 연구소장이 소리쳤다.

“현우 통신이 넘어갔습니다.”

김영호 사장은 충격을 받아서 비틀거렸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혀, 현우 통신 최 사장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인물은 아닐 텐데?!”

“상대가 KD 통신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나 봅니다. KM 그룹, DL 그룹, 한부 그룹, 샐로먼 브러더스에 심지어 오성 전자까지 지분을 투자한 회사입니다.”

“하.”

김영호 사장은 내심 이를 갈았다. 그는 지금껏 한국 통신에 시범 서비스 장비를 공급하면서 이제 겨우 길을 닦아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이 쌓은 결과물을 냉큼 집어삼키려고 하는 대기업에 치를 떨었다.

“시발, 왠지 분위기가 너무 달아오른다 했어.”

최근 언론에서 IP 시티폰을 계속 띄웠다.

언론사는 마치 한 몸통이 되어서 IP 시티폰을 계속 빨았다.

IP 시티폰은 최민혁 실장이 나선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뜨거운 주목을 받은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이 IP 시티폰에 대기업 자본도 끼어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정부 통신부가 적당히 작은 중소기업에 파이를 나눠 준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장비 업체를 다 인수해 버리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대진 소장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김영호 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하지만 KD 통신과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나도 알아. 우리 기업이 싸워 이길 상대는 아니니까. 그래도 빅 엿을 먹일 수 있잖아. 이 새끼들도 적이 있을 테니. 차라리 그쪽에 붙어서라도 복수를 할 생각이야!”

“…설마 KM 전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KD 통신에 투자한 애들이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치를 떤다면서? 그럴 거면 최소한 복수는 되잖아.”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KM 전자 측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고대진 소장도 뒤늦게야 피식 웃고 말았다. 김영호 사장의 제안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더욱이 이 방법을 쓰면 KD 통신에 회사를 넘기는 것보다 더 이익을 볼 수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