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62화 (562/1,021)

#562.

단순히 에플 OS만의 성장은 아니다. 심비안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시장의 점유율이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서둘러서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 스마트폰 안에 포함된 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따로 나누어서 추상적으로 기술을 확보하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차라리 스마트폰이라는 주제 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유기적으로 작업하는 게 훨씬 낫다.

더욱이 어느 정도 시장에서 팔 수만 있다면 말이다.

최민혁은 패이스북과 같은 기술도 어느 정도 염두에 뒀다.

‘정 안 되면 IT 쪽 투자를 병행해서 스마트폰 시장을 키울 수도 있으니까.’

근본적으로 제조는 외주를 주는 방식을 써서라도 손을 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세한 부분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깊은 고민에 빠진 최민혁의 눈치를 보던 조성돈 팀장 역시 이런 내막까지 알지는 못했다.

“크흠, 실장님.”

최민혁은 그제야 대답했다.

“좋네요.”

“네?”

“3번째 기획안이 괜찮다고요. 1번째, 2번째 기획안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장 1번안인 차세대 콜린스 개발은 큰 의미가 없으니까.”

“…설마 핸드폰 시장에 정말 뛰어들 생각입니까?”

그는 기획안에서 차세대 아이템 기획안에 추가된 키보드 자판에 두 줄을 쭉쭉 그었다.

“글쎄요. 이 폰을 과연 기존 핸드폰과 동급으로 놓을 수가 있을까요? 기존 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죠. 오성 전자가 요즘 에니콜로 재미를 보고 있잖아요. 그 폰과 이 폰은 크기부터 시작해서 성능 자체가 아예 달라요. 일단 키보드 자체가 없으니까.”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이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하듯이 간단하게 기획안을 수정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네? 숫자 버튼이 없으면, 번호를 어떻게 누릅니까?”

“그거야 터치를 사용하면 되죠.”

그는 다시 기획안 옆 빈 여백에 버튼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보호 필름을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아무리 해도 표면에 기스가 쉽게 나지 않을까요?”

최민혁은 혀를 찼다.

“벨린 글라스를 사용하면 됩니다. 강화유리라 어지간해서는 긁히지 않으니까요. 거기에 지문 방지 효과 기능도 좀 넣고요.”

주섬주섬 추가된 수정안.

“…….”

질문하던 조성돈 팀장은 어느덧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미 몇 달 전에 지시를 받아서 기획 팀이 꾸준하게 초안을 작성해 왔다. 그러다 이번에 머리를 합쳐서 죽어라 정리한 기획안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즉석에서 수정한 결과물은 이런 기획 팀의 것보다 월등히 좋았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바로 이 자리에서 다 메꾸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14년 후에나 나올 스마트폰 개념을 하나씩 설명했다. 그는 자기 핸드폰을 모델링 삼아서 구체적으로 부연하기도 했다.

이 자세한 설명에 조성돈 팀장은 입을 다문 채 멍하니 듣기만 했다. 자신이 비록 기획안을 올리기는 했지만, 최민혁 실장의 의견이 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사전에 이미 검토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는 IP 시티폰에 대한 우려를 깡그리 잊은 채 입을 열었다.

“…서, 설마 이걸 사전에 다 예상하신 겁니까?”

도깨비방망이를 소유한 듯한 모습을 보인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조 팀장님이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지금 올린 기획안을 토대로 의견을 제시한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최민혁은 오랜만에 당황한 조성돈 팀장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럼요. 아니, 이 자리에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기획안을 올린 분은 조 팀장님 아닙니까. 사전에 저한테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요?”

“그건 아니지만…….”

그는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터치했다.

“연상이죠. 우리 기획 팀이 만든 기획안을 보고 괜찮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겁니다.”

말을 하면서도 수정은 계속 실시간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스마트폰 내의 동작에 대한 OS 개요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실제로 최민혁은 자신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모도 보여주었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조성돈 팀장은 마치 진짜 스마트폰 사용자를 보는 것 같았다.

“이게 우리 기획 팀이 이번에는 기획안을 제대로 써서 그런 겁니다. IP 시티폰에 대한 시야는 실망스러웠습니다만 이건 솔직히 좀 감탄했습니다.”

“…….”

최민혁 실장은 귀신에 홀린 것 같은 조성돈 팀장의 얼굴을 보면서 툴툴거렸다.

“제가 무슨 재주로 이렇게 기발한 폰 아이디어를 갑자기 내놓습니까?”

조성돈 팀장은 자신이 기획안을 만들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을 말했다.

“하, 하지만 ARN 기술도, 와컴 기술도, 퀄컴 기술도, 벨린 글라스도 이미 사전에 다 확보했지 않습니까?”

“운이 좋았던 거죠.”

“…운 말입니까?”

그놈의 운.

툭하면 나오는 운.

이제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이번은 또 이전과는 달랐다.

기획 팀이 그 운의 베이스를 제공했으니까.

“ARN, 퀄컴의 원천기술은 어디에 써먹어도 다 써먹을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 기업이 훌륭한 겁니다. 절 너무 높이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후유,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늘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당장 IP 시티폰만 해도 이해집단에 기술이 탈탈 털렸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실장님 스스로 이미 언급한 대로 진행한…….”

최민혁은 농담하듯이 툴툴거렸다.

“제 능력이 좀 더 좋았다면 다른 대안이 있었을 겁니다. IP 시티폰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한 것도 문제인 셈이죠.”

“…….”

기가 막힌 조성돈 팀장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최민혁에 의해서 수정된 기획안을 받아서 지적한 부분을 살폈다. 단순히 기획안 수준에 그친 게 아니라 이대로 곧장 실현이 가능해 보였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보고서에서 당장 문제가 될 만한 모바일 CPU 성능과 같은 부분은 이미 최민혁 실장이 ARN에 조창호 차장을 파견해서 따로 지시를 내렸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ARN의 차세대 모바일 CPU IP였다.

“뭐, 이건 조창호 차장님이 오면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 역시 자세한 부분은 아직 몰랐다.

최민혁은 다시 피식 웃고 말았다.

“IP 시티폰이 대박 날지 예측하기 힘든 것처럼 이 아이템이 잘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더욱이 개발을 완료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겁니다. 당장 차세대 ARN IP 부터가 아직 안정화된 것은 아닙니다.”

“…하긴 그것도 문제입니다.”

조성돈 팀장 역시 이 새로운 폰 개발을 검토해 봤는데, 비록 기술은 다 있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았다.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했다.

“그런 각오면 됩니다. 그러니 이제 IP 시티폰은 잊고, 이 아이템에 집중해 주세요. 다만 회의 후에 나온 결론을 기획 팀에 알리지 마세요.”

“…네?”

“자꾸 정보가 새 나가서 하는 말입니다. 이전 정보는 좀 달라요. 그건 외부에 정보가 새 나가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스마트폰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보안이 극도로 필요해요. 우리 부회장님이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아, 혹시 정영일 사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시는군요.”

조성돈 팀장은 뒤늦게야 간혹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정영일 사원을 떠올렸다.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이 자기 말뜻을 알아듣자 분명하게 말했다.

“기획 팀원들에게 회의 내용을 말할 때, 3안을 뺀 수정안을 말하세요. 즉 3안이 들어가지 않은 것과 3안이 들어간 기획안을 따로 만들고요. 기획 팀에게는 3안은 폐기된 기획안으로 이야기하세요. 당분간은 말이죠. 정영일 씨 문제가 정리될 때까지 그렇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정영일 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최민혁도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정영일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보안이 더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이중 첩자로 잘 써먹었는데, 굳이 더 놔둘 필요는 없죠. 조 팀장님이 알아서 정리하면 좋을 듯합니다. 단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한번 물어보세요. 도대체 왜 그렇게 내부 정부를 빼돌리는지 궁금하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새삼 최민혁 실장의 냉정한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언제부터 정영일 씨가 스파이 노릇 했다는 것을 안 것일까?’

* * *

이번 차세대 프로젝트 회의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최병연 소장을 비롯한 KM 전자의 핵심 인재가 전부 다 자리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돌아온 이들은 물론 IP 시티폰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IP 시티폰 사태는 이해할 수가 없어.]

[평소 실장님 모습과는 달랐으니까.]

[최문경 부회장이 배후에 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걸 알면서도 IP 시티폰 사업을 포기한 것일까?]

[에이, IP 시티폰 매각한다고는 했지만, 매각 대금 이야기는 없었잖아?]

[하긴 IP 시티폰 사업부를 매각하면 그것도 짭짤할 것 같아.]

[내가 듣기로 우리 회사에서 출원한 특허가 없다면 IP 시티폰 사업은 어렵다고 했어. 그렇다면 꽤 자금을 많이 토해내야 할 거야.]

[그러면 딱히 최민혁 실장님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당했다고 보기 어렵잖아?]

[사건 내막이 보기와는 다르니까. 우리가 알 수는 없잖아.]

다만 IP 시티폰 이야기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최민혁은 자리하기가 무섭게 조성돈 팀장에게 회의 시작을 요구헀다.

조성돈 팀장은 이제 진행할 차세대 프로젝트 소개에 앞서서 현재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가볍게 소개했다.

다만, 그의 브리핑이 계속될수록 회의실에 참석한 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이 받은 보고서에는 차세대 프로젝트 후보로 세 가지 안이 예로 올라와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콜린스 다음 버전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민혁이 먼저 손을 들어서 결론을 내려 버렸다.

[콜린스 사업부는 이미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매각할 예정입니다. 아이컴 사업부 역시 에플에 넘길 생각입니다!]

단호한 말에 곧 반론이 이어졌다.

특히 최병연 소장이 아이컴과 관련해서 반박했다.

[실장님, 그건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닐까요?]

[압니다. 여러분의 우려를 말이죠. 하지만 이미 IPS- LCD 시장이 열리면서 대형 LCD 개발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VM-LCD 제품 역시 2~3년 안에 상용화가 될 겁니다. 콜린스가 이들 아이템과 경쟁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미 IPS-LCD 샘플을 본 이들은 아차 싶었다.

아직은 25인치 이상의 LCD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고작 나온 것은 2.7인치 LCD다.

LC 전자와 오성 전자가 죽어라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대형 LCD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생각보다는 상용화하기에 문제가 제법 있었다.

아마 3년이 지나도 수율 문제가 있어서 여전히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전혀 달라질 것이다.

차세대 콜린스 개발이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그때쯤에는 IPS-LCD라는 경쟁자와 대립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승산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최민혁은 두 번째 안 역시 간단하게 폐기했다.

[계속하시죠.]

[아, 네.]

조성돈 팀장은 혀를 찬 채 결국 3안인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다들 표정이 달라졌다.

하지만 역시 문제를 제기한 이가 있었다.

이번 회의에 조성돈 팀장과 같이 참석한 기획 팀 박상기 차장이었다.

[으음, 솔직히 이미 원천기술은 다 확보했으니, 진행에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ARN CPU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 부분에 관한 확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최민혁은 굳이 자신이 대답하기보다는 그제야 조창호 차장을 쳐다보았다.

조창호 차장은 머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시장에서 팔리는 ARN IP로는 무리가 따릅니다. 하지만 차세대 ARN IP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성능이 제법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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