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61화 (561/1,021)

#561.

그런데 이미 차세대 프로젝트 미팅 일정까지 잡은 마당에 더 질문할 수는 없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프로젝트를 한다는 말일까?’

최민혁은 원래 조성돈 팀장에게 힌트를 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생각을 좀 바꾸었다. 그는 조성돈 팀장의 태도에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이미 기획 팀에서 검토한 프로젝트 외에 추가로 한 가지를 더 고민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 * *

IP 시티폰과 관련된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이슈가 되었다.

보통 이슈가 일주일이 지나면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것과는 달랐다.

한국 언론사가 주기적으로 IP 시티폰 화로에 장작을 넣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최민혁표 CDMA로 인해 생긴 내부 갈등을 전부 최민혁 실장 탓으로 돌렸다.

마치 최민혁 실장이 CDMA 기술을 독과점으로 하려고 해서 갈등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최민혁은 물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홍보 팀을 통해서 정식으로 IP 시티폰 서비스 포기를 발표한 것이다.

[IP 시티폰 사업부를 매각할 예정입니다!]

딱 이 한마디가 나오자마자 한국 언론사들의 반응은 매우 달라졌다.

[현명한 결정이다!]

갑자기 최민혁 실장을 영웅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사태에 대한 여론은 언론사들에게 그다지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기레기란 욕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최민혁 실장이 원한 바였다.

최근 국세청의 최민혁 실장 내사 자료가 돌면서 최민혁 실장의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러다 보니 이번 일로 인해서 최민혁 실장이 피해자가 된 탓에 일반 대중들은 그를 동정했다.

최민혁 실장이 억울하게 IP 시티폰 기술을 대기업 컨소시엄에 뺏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최민혁 자신이 딱 기다린 반응이었다. 국세청 내사도 따지고 보면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져 가면서 생겨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IP 시티폰 사업부 매각과 더불어서 앞으로 이 사업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겠다!]

공개적인 맹세를 한 것이다.

덕분에 최문경 부회장은 쾌재를 불렀다. 그는 설마 고집불통인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쉽게 IP 시티폰을 포기할지는 몰랐다.

나름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다른 통쾌한 결말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기자회견장에 나온 최민혁 실장이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을 보고 통쾌하게 웃고 말았다.

“민혁, 네놈도 별수 없구나!!”

결국 샐로먼 브러더스, 한부 그룹, DL 그룹, 오성 전자, HY 전자, 최문경 부회장이 한배를 탄 IP 시티폰 사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 * *

갑작스러운 최민혁 실장의 기자회견 이후에 무수히 많은 말이 돌았다.

특히 최민혁 실장이 기자회견장에서 눈시울을 붉힌 장면이 집중 조명 받았다.

피땀 흘려서 만든 IP 시티폰 기술을 빼앗긴 채 토사구팽당한 최민혁 실장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언론사는 최민혁 실장의 이런 모습을 톱기사로 내 보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헐리우드 연기를 했다고 믿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성돈 팀장조차 최민혁 실장이 갑자기 기자회견장에 나서서 눈물을 흘린 장면에 깜짝 놀랐다. 그는 차세대 프로젝트 회의를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로 영문을 몰랐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한 말과 그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차세대 프로젝트란 말에 일단 이 일에 집중했다.

기획 팀을 총동원해서 앞으로 해야 할 신규 사업 모델에 집중했다.

‘IP 시티폰이 아니면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한다는 것일까?’

KMP-02A는 이미 에플에서 출시하는 KMP-02B와의 경쟁 때문에 차세대 아이템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두 모델 다 독특한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KMP-01를 기반으로 한 모델이다.

KM 전자의 미래 캐시카우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KMP-02B가 에플을 통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면, KMP-02A는 결국 국내시장과 동남아 쪽을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차세대 프로젝트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

배종대 과장 역시 IP 시티폰이 차세대 프로젝트가 아니란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지시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KMP-02A는 이미 MP3 특허를 오픈한 마당에 국내 MP3 플레이어 업체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매출 증가에 많은 한계가 있겠죠.”

실제로 세한정보가 발 빠르게 움직였고, 다른 중소기업 역시 이 아이템에 투자를 대폭 늘렸다. 그들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MP3 원천기술을 만약 외국 기업이 가지고 있었다면 그때 가서 내야 할 로열티가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은 박 터지는 싸움터가 되었다.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MP3 플레이어 특허를 너무 빨리 국내 업체에 공개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MP3 특허료 자체를 무시하기는 어렵지만, 내년 중순까지는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이 일이 MP3 시장 자체를 키울 목적이라는 점까지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MP3 시장 파이 자체가 커지면, 특허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들 배종대 과장의 의견과 비슷했다.

그들도 IP 시티폰이 나오면서 이 사업이 차세대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언론 압박 때문에 이 사업을 포기한 것이 안타까웠다.

물론 IP 시티폰 사업 자체 매각 대금이 계속 오른 덕분에 헐값에 매각하지는 않아서 큰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IP 시티폰 몸값이 이번 이슈를 통해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 건 매각과 관련해서 최문경 부회장, 오성 전자를 비롯한 한국에 있는 어지간한 대기업이 다 IP 시티폰 사업부 인수를 타진했기 때문이다.

정성근 대리는 오히려 이 점을 걸고 넘어갔다.

“전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이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IP 시티폰 사업부를 최고가에 매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배종대 과장이 바로 반박했다.

“IP 시티폰 기술을 매각하면 값은 많이 받아. 하지만 우리 회사의 미래 엔진이 될 수도 있는 사업을 매각했다는 것이 문제잖아!”

정성근 대리는 바로 배종대 과장 의견에 반박했다.

“그거야 IP 시티폰이 대박을 쳤을 때 이야기죠. 정말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만약 이 사업이 정말 그렇게 될 거라면 왜 최민혁 실장님이 IP 시티폰 사업을 매각하겠습니까?”

“넌 IP 시티폰 사업이 어렵다고 생각해?”

“제 말은 발신자 전용 IP 시티폰이 과연 PCS와 경쟁해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물론 VOIP와 시티폰을 합친 시스템이라서 강점이 있지만 최종 상용 서비스는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PCS가 강점이 많아. 하지만 저렴한 통신 요금 강점을 무시하기는 어려워. 더욱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기도 쉽지 않아.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차라리 무난한 IP 시티폰 사업을 하는 것이 훨씬 낫잖아?”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당장 KMP-02 모델만 봐도 알 수가 있으니까. 이게 MP3 플레이어이기는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용도로 쓸 수가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MP3 핸드폰이라도 생각하는 거야? 그건 지금 모바일 CPU로는 불가능해!”

“MP3 IP와 모바일 CPU를 결합해도 안 될까요?”

“에이, 지금 시장에 나온 ARN IP 성능으로는 무리다.”

이 부분은 배종대 과장의 주장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였다.

현재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ARN7 IP는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MP3 휴대폰’이란 말에 기획 팀 분위기는 완벽히 달라졌다.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타박을 들은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KM 전자가 인수한 기업과 그들이 가진 원천기술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심지어 차세대 프로젝트 호출 때문에 부른 엔지니어들의 이력을 하나씩 검토했다.

놀랍게도 딱 정성근 대리가 지적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만, 꼭 MP3 핸드폰일 필요는 없잖아. MP3 기능에 다른 기능을 포함한 핸드폰이라면 어떨까?’

멀티미디어 폰은 지금 모바일 CPU로는 무리수가 많이 따랐다.

최근 KM 전자 계열사들의 기술을 검토 중인 박상기 차장이 조성돈 팀장에게 말했다.

“정 대리 지적이 나쁘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조성돈 팀장은 다급하게 최근 최민혁 실장이 했던 말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해외 기업들을 인수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와컴 인수는 생뚱맞은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게 MP3 핸드폰을 위해서였다면?

‘게다가 사이즈를 좀 더 키우면 와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잖아.’

심지어 LCD, IPS LCD 사이즈를 좀 더 키워 3인치로 만들면 얼마든지 다른 기술도 적용할 수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에플에서 말아먹은 뉴튼과 아주 비슷했다.

그런데 명확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일단 컬러 LCD와 터치를 일체화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모바일 CPU 성능의 한계는 ARN 차세대 IP를 이용하면 된다.

근거리 통신용 칩은 K투스와 무선랜를 적용하면 간단히 된다.

K투스는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고, 무선랜 기술 역시 IP 시티폰 개발 테스트를 통해서 이미 확인까지 끝난 사안이다.

조성돈 팀장은 설마설마하면서도 이 기술이 하나로 결합된 물건을 떠올리면서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그는 다급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팀원에게 보여주었다.

다만 명확한 디자인은 나오지 않았다. 개요만을 합쳤을 뿐이다.

하지만 정성근 대리가 바로 그 가치를 알아봤다.

“바로 이거예요.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님이 인수한 기업들의 기술을 전부 다 적용했습니다. 아, 벨린 소프트가 KMP-01에 적용한 OS까지 포함하면 딱 완벽하네요!”

벨린 소프트가 고안한 OS 이야기마저 나오자 다들 그제야 감탄하고 말았다.

이 새로운 제품 개발에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기술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충격을 받은 배종대 과장을 힐끗 쳐다본 후에 팀원 각자에게 검토해야 할 안건을 정했다.

“차세대 아이템 중의 하나를 정한 것 같아. 일단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보고해.”

“…네.”

IP 시티폰 때문에 우울하던 기획 팀원은 뒤늦게야 조성돈 팀장의 아이디어 스케치 복사본 파일을 확인한 후에 감탄하고 말았다.

에플이 말아먹은 뉴튼의 문제점을 완벽하게 극복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KMP-02A 기획을 해봤기에 더 이 제품의 성공을 확신했다.

‘이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잖아. 설마 최민혁 실장님이 이걸 다 예상하고, 지금까지 일을 진행해 온 거야? 가만, 그러면 IP 시티폰은 이 프로젝트를 감추기 위한 건가?’

설마 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일을 몇 번이나 경험했기에 그저 추정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이 했던 실적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 * *

최민혁은 차세대 프로젝트 미팅 지시를 내려놓고는 기획 팀의 사전 보고를 기다렸다. 다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굳이 자신이 구체적으로 아이템을 정하는 것보다는 기획 팀 자율에 맡겨 두었다.

그들이 과연 스스로 뭔가 결과를 만들어 낼지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 많이 굴렀잖아.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거야.’

물론 조성돈 팀장의 불안한 모습에 다소 실망했지만, 기획 팀의 능력이 결코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KMP-02 기획까지 한 마당에 이를 기반으로 삼을 것이라 봤다.

최민혁 실장은 IP 시티폰 사태로 시작된 기사를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뭐, IP 시티폰 때문에 기획 팀 내에서 무엇을 하든 관심을 두는 이들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조성돈 팀장이 가져온 보고서의 내용은 꽤 놀라운 수준이었다.

몇 가지 안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이었기 때문이다.

“호.”

그로서는 꽤 놀라운 일이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지금 한국 이동통신 시장을 지배하는 곳은 모토롤라와 오성 전자이다.

작년에 63%까지 치솟았던 모토롤라의 점유율이 비록 45%까지 떨어지면서 오성 전자 점유율이 40%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 갑자기 PDA 폰을 내놓기는 쉽지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누구보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을 잘 알았다.

‘13년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실상 에플이 출시한 스마트폰의 출발은 그렇게 좋지 않았지. 오히려 그다음 해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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