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
샐로먼 브러더스 태국 지사 부장 라이언 레비는 격앙된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반응에 몸을 움찔 떨었다. 그는 한국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 때문에 한국 여론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가 내놓은 것은 지난주 한국 신문이었다. 모두 10건이 넘었다. 그런데 그 기사 대다수는 IP 시티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게다가 주로 최민혁 실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기사가 다였다.
논지는 아주 간단했다.
IP 시티폰은 일개인이나 한 기업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라이언 레비 부장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우리 한국 지사에서 이번 일에 투자를 대폭 늘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그는 황당해서 제임스 러너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항의했다.
[제임스 이사, 이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시티폰에 갑자기 투자를 늘린다니?!]
[…데니스 이사, 당신이 신경 쓸 일은 아냐!]
[아니, 내가 왜 이 일에 무관심해야 돼. 지금 태국 진행 상황을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올해를 시작으로 태국에서 자금을 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샐로먼 브러더스가 태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에서 자금을 빼기로 한 것은 하루아침에 결정 난 일이 아니다. 물론 이들 단독으로 진행하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제임스 러너 이사가 이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이전과는 좀 달랐다. 최민혁표 CDMA 서비스 때문에 퀄컴의 행보가 달라지면서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투자 자체가 원점에서 검토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티폰 투자 역시 다른 각도에서 다시 살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최민혁표 시티폰 서비스 기술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가 몇 년 전에 검토한 결과와는 많이 달랐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나도 알겠어. 최민혁 실장 때문에 태국으로 쫓겨나서 화가 난 것도 알아. 그런데 데니스 이사 당신은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감정 때문에 상황을 잘못 알고 있어.]
다소 이죽대는 말투에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당하기 전만 해도 제임스 러너 이사와 태도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최민혁 실장 문제가 아냐.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자금을 빼기로 한 것은 이미 진행되는 일이잖아. 그런데 동남아에서 무슨 시티폰 서비스를 검토해?!!]
[정말 답답한 친구군. 상황이 바뀌면 계획은 언제라도 바뀔 수가 있어. 지금 한국 무선호출 가입자 수만 1,300만 명을 넘었어. 이들 중에는 무려 56%가 저렴한 무선호출 서비스를 쓰겠다고 했어!]
데니스 샐로먼 이사 역시 제임스 러너 이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수신전용 무선호출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 계층이 학생, 회사원, 영업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 당장 20%만 가입해도 시장 잠재력은 폭발적이었다.
이건 시티폰을 검토할 때 이미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IP 시티폰은 발신전용이라는 시티폰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저렴한 통신료를 제공한다.
모르기는 몰라도 최소 30~40% 이상의 가입자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임스 러너는 태국 사장의 예를 들었다.
[태국의 1인당 소득을 잘 생각해 봐. 이들은 대한민국 무선호출 가입자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한국에서 시티폰2가 대박 난다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시장을 단숨에 장악할 수가 있어!]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제임스 러너 이사의 설명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다 좋아, 그렇다고 하자. 아니, 그렇게 대단한 서비스인데, 왜 최민혁 실장 그 인간이 정보를 흘려서 사태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쯧, 자네는 그게 문제야. 도대체 무슨 소설을 그렇게 쓰는 거야? 최민혁 실장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어떻게 예측한다는 말이야? 지금 한국 언론이 난리가 난 것은 다 내가 작업한 거야!]
[…병신 새끼.]
[뭐? 이 새끼가 말 정말 함부로 하네. 지가 판단력이 떨어져서 한국에서 좌천된 것은 생각도 안 하고, 남 탓만 하는 거야?!!]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분노한 제임스 러너 이사의 감정을 일단 추스르게 하려고 한 걸음 물러나 봤다. 하지만 그는 욕설만 듣자 그냥 전화를 끊고 말았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킬리언 시몬스 이사였다.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시티폰 시장에 대한 동아시아 시장 조사다. 필요하다면 동아시아 각국 통신 회사 사장을 만나서 공격적으로 나가라는 지시안이었다.
물론 정식 공문은 다음 주에 내려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굳이 킬리언 시몬스 이사가 직접 전화한 것은 혹시라도 데니스 샐로먼 이사 자신이 과민 반응 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너무 답답해서 그냥 전화를 끊고 말았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그가 믿어줄 것 같지가 않았다.
라이언 레비 부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민혁 실장이 시티폰 서비스를 이용해서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제가 본사 지인을 통해서 듣기로 지금 한국 언론 사태 배후에는 제임스 러너 이사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라이언 레비 부장도 이 안건과 관련해서 자세한 사실을 듣지는 못했다. 다만 그냥 카더라 이야기만 들은 정도였다.
그래서 굳이 시티폰 사태와 관련된 정보를 따로 모았던 것이다.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된통 당한 바가 있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이봐, 라이언 부장, 자네도 잘 생각을 해봐. 여기 나와 있는 기사 중에는 시티폰 관련 기술 특허출원도 있어. 만약 최민혁 실장이 이 서비스가 정말 중요했다면 굳이 이 정보가 새 나가도록 그냥 뒀을 것 같아?”
“시티폰 특허 말입니까? 그거야 특허청을 통해서 정보가 새지 않았을까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압니다만.”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입을 쿡 다물었다. 그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아예 믿지 않았다.
‘하긴 나도 다를 바가 없었지.’
그는 너무 답답해서 사무실 창문을 연 채 담배를 물었다.
그나마 좀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라이언 레비 부장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자극하지 않게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물론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최민혁 실장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시티폰 사업이 CDMA나 TDMA 서비스와 비교하면 한 수 아래라고 해도 무시할 만한 사업은 아닙니다.”
실제로 한국 호출기 가입자를 기반으로 저가 단말기, 가정용 기지국 확대, 다양한 요금 서비스, 지역 사업자의 로밍 허용과 같은 다양한 수단을 취한다면 시티폰의 성공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
생각 외로 많은 무선호출 가입자 설문 조사 결과가 그 증거였다.
이를 기반으로 IP 시티폰 마케팅이 성공한다면 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공략을 본격화할 수가 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시도가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결국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이보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최민혁 실장을 생각하니 소름마저 끼칠 정도였다.
‘무슨 말을 해도 안 믿네. 하, 최민혁 실장 이 인간, 능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최문경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결국 다른 지인에게 전화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아예 먹히지도 않았다.
양손으로 머리를 잡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절망하고 말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기존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 봐서는 IP 시티폰의 동아시아 투자는 대폭 늘어날 것 같았다.
그러면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아니, 어쩌면 자금 회수 계획도 바뀔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일이 잘못될 경우 그 책임을 자신이 다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아.’
***
최민혁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최문경 부회장이 IP 시티폰에 끼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샐로먼 브러더스가 IP 시티폰이란 늪에 빠지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의 계획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그는 물론 태국에 가 있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이쪽저쪽에 연락했다는 것도 보고 들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 때문에 태국에서 좌천된 인물이라서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좀 놀랍네요.”
장승일 실장 통해서 얻은 정보 때문에 흥분한 조성돈 팀장은 다소 걱정스러웠다.
“최문경 부회장은 아예 비서실 쪽에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게 모두 IP 시티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연락을 최문경 부회장이 거절한 것은 역시나 비서실 측이다. 다만 이 정보는 입이 가벼운 비서실 직원을 통해서 장승일 실장의 귀에도 흘러들어 갔다.
그 정보를 조성돈 팀장이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안 것이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어딜 가나 입이 가벼운 사람은 있군요.”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푸념을 늘어놓는 최민혁 실장에게 말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시티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최민혁 실장님을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이미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에게 IP 시티폰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지만, 분위기가 바뀌자 IP 시티폰 사업에 대해서 우려한 것이다.
사실 최민혁도 시티폰의 미래가 어떤지 모르지는 않았다. 2년 후에 시작되는 시티폰 서비스의 전국 가입자 숫자가 불과 3개월 남짓한 시간 안에 20만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시티폰 서비스가 늦게 진행됐을 때의 결과였다.
만약 기간을 2년 이상 당겨서 진행한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특히 CDMA를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 치열한 이 시점에서는 말이다.
최민혁은 너무 흥분해서 이성을 잃은 조성돈 팀장을 째려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아, 그게…….”
그는 당황한 조성돈 팀장의 모습에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이번 일이 확실히 성공한 것 같네요. 이미 설명을 다 들은 조 팀장님이 이 정도 반응이라니.”
“하지만 IP 시티폰은 시티폰과는 전혀 다릅니다. 더욱이 VOIP 기술을 응용해서…….”
“그게 쉽지 않을 겁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만약 이동통신 서비스가 상용화된다면 통신사에서 IP 시티폰을 내버려 둘 것 같습니까?”
“그거야…….”
“시티폰 서비스를 죽여야 자신들의 이익이 최대화될 겁니다. 그래서 통신료 인하 마케팅을 마구잡이로 퍼붓는 방식을 쓸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시선에 몸을 움찔 떨고 말았다. 통신사와의 대립 부분은 간과하고 있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최민혁표 CDMA 서비스 가지고도 피 터지게 싸울 정도이니 말이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짧은 기간 동안 있으면서 일어난 일을 뒤늦게 떠올렸다.
그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늘 최민혁 실장이 하는 일을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과가 나오면 그때야 감탄에 감탄만 했다.
최민혁도 조성돈 팀장을 탓하지는 않았다. 그는 IP 시티폰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안건을 주제로 삼았다.
“최병연 소장을 비롯해서 제가 호출한 인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최병연 소장님은 시차 때문에 내일 출근하는 것으로 연락받았습니다. 조창호 차장님은 감기 때문에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할 예정입니다.”
“스콧 포스탈, 크레이그 행크스, 베트랑드 실브, 그 친구들은 어때요?”
“세 사람은 이미 한국에 도착했는데, 피로 때문에 역시 월요일에 출근하기로 확인했습니다.”
최민혁은 이들 외에도 나머지 엔지니어들의 출근 일자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다시 한번 전화해서 다음 주 화요일 미팅에 문제가 없도록 하세요. 그날 차세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할 테니까.”
“네? 차세대 프로젝트라니요? IP 시티폰 사업이 차세대 플랜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그날 가서 이야기할 테니, IP 시티폰에 대해서는 이제 잊으세요.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IP 시티폰과 관련해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보기 좋도록 만들어서 사업부를 매각하는 일입니다.”
“…네.”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이번 IP 시티폰 사태에 대해서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의 눈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