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54화 (554/1,021)

#554.

“…거기에 이왕이면 KM 그룹 계열사 매각에도 힘을 실어주세요.”

오영근 사장도 계열사 매각에는 큰 부담을 느꼈다.

“그런 부분은 자네도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서 직접 하는 것이 어떤가?”

“우리 부회장님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아, 부회장님…….”

그도 혀를 찼다. 최민혁 실장이 직접 얼굴을 맞댄다면 온갖 욕설이 오갈 것이다. 반대하지 않을 것도 반대할 테니 말이다.

결국 사장단 회의는 파국으로 갈 확률이 높다.

최민혁은 그 상황보다는 다른 문제를 더 걱정했다.

“그 자리에서 IP 시티폰 문제를 걸고넘어질 텐데, 대답하기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 첫째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의 갈등 때문에 예기치 않게 감정이 폭발하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도 사람인 만큼 분노하면, 사고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겠네.”

오영근 사장은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를 곰곰이 다시 생각하면서 혀를 찼다. 그 역시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 간의 문제가 가능하면 빨리 종결되었으면 싶은데, 회장님 생각은 또 다르니. 후유, 정말 골치야.’

* * *

KM 그룹 분위기는 이미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최민혁표 CDMA가 명성을 떨친 후에 최민혁의 능력이 꽤 알려졌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KM 그룹 사장단 회의도 KM 그룹 계열사 매각과 관련된 갈등이 주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오영근 사장이 나서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이번 마스시타와 손을 잡고, 일본 내에 콜린스 중형, 소형 모델을 추가한 것 덕분에 매출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최민혁의 인생 1회 차 때는 마스시타가 KM 전자와 손을 잡고 국내 가전 시장에 본격 진출했었다.

KM 그룹이 이런 행보를 가져갔던 이유는 리스크가 큰 직접 투자보다 직수입을 통해서 판로 자체를 키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결국에는 마스시타의 전략에 KM 그룹이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 덕분에 일이 거꾸로 진행되었다.

콜린스 대형뿐만 아니라, 중형, 소형을 같이 일본에 출시한 결과다.

특히 마스시타 대리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일본 내수 시장을 공략했다.

[마스시타의 세탁기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과 같이 팔아치울 수 있게 되면서 콜린스의 매출도 가파르게 올라가는 중입니다.]

지금까지의 콜린스 판매와는 다른 전략이다. 일본 시장을 전략적으로 공격한 것이니까. 덕분에 콜린스 판매 수량이 2~3만 대 안팎을 넘나들던 때와는 달리 무려 30만 대가 넘게 팔려 나갔다.

콜린스 판매 물량이 무려 총 100만 대를 넘어선 것이다.

단순히 콜린스만이 아니다. 오디오 시스템 역시 덩달아서 판매가 대폭 늘어났다.

오영근 사장은 전부 다 최민혁 실장의 기획에 따라서 한 일이었지만 마치 자신이 한 일인 양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마스시타가 가지는 고급 이미지와 콜린스의 혁신적인 기술이 결합한 덕분에 일본 내수시장 내에 초대형 돌풍을 일으킨 것입니다!]

마스시타 유통망 덕분에 유통 마진 수익도 제법 되었다.

여기에 KM 전자 독자 상표를 적용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번 일본 시장 성공을 토대로 해서 동남아 시장 쪽에도 마케팅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KM 전자 브랜드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 역시 마스시타의 동아시아 판로를 이용한 것이다.

KM 전자로서는 굳이 손해를 볼 일이 아니다.

마스시타가 재미를 보기는 하겠지만, KM 전자는 순수한 이익 폭을 더 늘릴 수가 있었다.

오영근 사장의 KM 전자 광고에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라면 KM 그룹의 구조조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이들도 입을 쿡 다물었다.

평소 회의에서는 칭찬 한마디 하지 않던 최용욱 회장이 밝게 웃었다.

[오 사장, 고생했네.]

[아닙니다. KM 전자 직원들이 모두 일치단결해서 이룬 결과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한 사장의 역량이지. 밑에 뛰어난 인재가 있다고 해도 그를 품을 수 있는 것은 사장의 능력이야!]

부드러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최용욱 회장도 최문경 부회장의 얼굴을 보자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따가운 최용욱 회장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그 어떤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미치겠네.’

불과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최용욱 회장의 압박은 이미 선을 넘었다.

아마 그 자신이 보험으로 미리 마련해 둔 일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쉽게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자신은 KM 그룹에 대한 미련을 포기했다.

자신이 우긴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니까.

이미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심지어 이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말이다.

‘민혁이 이놈의 새끼 때문에 아주 미치겠어.’

서슬이 퍼런 눈으로 최문경 부회장에게 압력을 넣은 최용욱 회장이 이번에는 사장단을 쳐다보았다.

KM 그룹 사장단은 그제야 얼굴을 숙이고 말았다.

KM 전자 매출과 비교하면 정말 자신들은 일을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최용욱 회장 탓을 하기도 힘들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인상을 쓴 채 그저 듣기만 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오 사장, 앞으로 이렇게만 해. 거기에 따른 보상을 할 테니까.]

사장에 대한 보상은 역시 KM 그룹 본사로 승진하는 일이다.

하지만 오영근 사장은 굳이 그런 보상을 원치 않았다.

[아닙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최민혁 실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민혁이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최용욱 회장으로서도 이제 손자 최민혁의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KM 그룹 사장단 표정을 보면 자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니까.

결국 다른 계열사 사장으로 차례가 옮겨 갔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의 얼굴은 점점 굳어만 갔다.

발표하는 KM 전공 사장은 그 모습에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다행히 최영란 본부장 차례가 되자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최 본부장, IP 시티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도 무슨 관련이 있어?]

[IP 시티폰 관련 개발에 대해서는 아직 어렴풋한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두 사람 입에서 IP 시티폰 이야기가 나오자 최문경 부회장 귀가 쫑긋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더 나오지 않았다.

아직 IP 시티폰 기술 이야기와는 달리 마땅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과 관련해서 칩 생산 역시 KM 산업에서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영란 본부장은 이 시장이 꽤 클 것이라는 점을 넌지시 지적했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로는 국내 시장에서 일단 결과가 나오면, 일본이나 동남아 전역으로 영업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것까지 다 고려하면 수요가 최소한 200~300만 개가 넘을 것이라고 봅니다.]

300만 개 공급 계약 이야기가 나오자 최문경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이게 마냥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새로운 사업이 아니다.

이 IP 시티폰 칩 생산 덕분에 최영란 본부장의 위세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게 진짜 문제점이었다.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도 최영란 본부장은 그 위세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제 분노도 나지 않았다. 사장단의 시선이 달라졌다. 최영란 본부장은 자신의 장녀가 아니었다.

지금 봐서는 마치 KM 그룹 후계 순위에 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것도 이젠 마냥 과장이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이 이 점을 걸고 넘어갔다.

[최영란 본부장이 내 손녀라서 하는 말이 아냐. 분명히 앞으로 우리 KM 그룹이 나아가야 할 바를 말하고 있어. 도대체 다른 계열사 사장들은 왜 영란이처럼 못 해?!]

실상 최영란이 올린 성과의 대부분은 최민혁 실장 덕분에 생긴 일이다.

그러니 KM 그룹 사장단도 불만이 많았다.

그들도 최민혁 실장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면 얼마든지 챙길 수 있는 결실이니까.

문제는 이것도 결과는 결과란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동영 상무는 입을 꼭 다문 채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KM 산업 사장이 나서는 것을 뒤에서 지켜만 볼 뿐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최영란의 행보와 최동영 상무의 소극적인 태도에 혀를 찼다. 둘 다 교묘한 정도로 최용욱 회장의 시선을 잘 피해 갔다.

최영란 본부장은 아직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았다.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

최용욱 회장은 계속해서 장녀 최영란 본부장을 띄워 주었다.

[…에플 쪽하고는 이야기가 잘되어간다고 했지?]

사장단 회의 한쪽에 참석한 최영란 본부장은 힐끗 최문경 부회장을 쳐다보았다. 최문경 부회장의 표정은 이미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그 모습이 통쾌하기만 했다.

[에플 측과는 이미 칩 공급 계약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보다는 ARN의 차세대 IP를 이용한 모바일 칩에 집중 중입니다.]

그녀가 내놓은 건 뜻밖에도 자신이 기존에 제작하던 전원칩 에 ARN 차세대 IP를 사용하는 것과 모바일 칩 생산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퀄컴 측과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부분인데, 퀄컴에 적용되는 차세대 모바일 칩 생산 계약을 진행 중입니다.]

최용욱 회장도 이 대목에선 깜짝 놀랐다.

[설마 모바일 폰에 들어가는 칩 생산까지 우리 쪽에서 담당하는 거냐?]

[네, 다만 우리 측 생산 능력 문제가 있어서 그 부분은 따로 일정 조율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그 일정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서 좀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가만,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지금 검토 중인 칩이 아니라, 또 다른 모바일 칩을 말하는 건가?]

[그건 최민혁 실장에게 따로 확인을 해야 할 내용입니다.]

[흠.]

최용욱 회장은 힐끗,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장승일 실장은 오히려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세 사람이 자신을 따돌리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자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단의 분위기부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중간에 훼방을 놓을까 했지만, 최용욱 회장의 차가운 눈빛을 접하자 깔끔하게 포기하고 말았다.

내심 치가 떨렸지만, 최영란 본부장의 틈을 파고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현실적인 팩트만 가지고, 조금씩 자기 실적을 키워가는 최영란 본부장의 모습은 자신이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올 뿐이었다.

그로서는 IP 시티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맞을. 어쩔 수가 없어. 지금은 IP 시티폰에 집중할 수밖에. 일단 정보 통신부 분위기부터 확인해야겠어.’

* * *

최영란 본부장은 사장단 회의가 끝나고 난 후에 최용욱 회장에게 칭찬을 들었다. 그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놀라운 것은 장승일 기조실 실장 역시 그녀에게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최 본부장님, 축하합니다.”

“고마워요.”

“그냥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대로만 쭉 간다면 KM 산업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건 회장님이 꿈꾸던 일입니다.”

아직 KM 산업 비메모리 쪽은 그렇게 잘나가지 않았다.

기존에 투자한 설비와 최근 최영란 본부장이 손을 쓴 덕분에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전원 칩 자체는 이 비메모리 사업의 시작점인 셈이다.

그런데 최민혁이 손을 쓴 덕분에 처음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장승일 실장이 지적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부분은 KM 그룹 기조실뿐만 아니라 KM 그룹 임직원들도 다른 눈으로 보았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 반응이다.

이번 계열사 매각에서 비켜난 KM 그룹 사장단은 전부 최영란 본부장에게 줄을 서서 잘 보이려고 했던 것이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이런 분위기가 처음이라서 크게 당황했다.

그녀는 때문에 빨리 자료를 정리한 후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KM 그룹 지하 주차장 통로에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어? 민혁아?”

최민혁은 수행원 몇 사람과 같이 팔짱을 한 채 기다리다가 최영란 본부장에게 다가갔다.

“오늘 회의 좋았다면서?”

“그럭저럭. 그런데 벌써 소식 들었어?”

“우리 장 실장님이 알아서 자세한 분위기를 말해주더라.”

“아, 장 실장님이 그랬어?”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장승일 실장이 최문경 부회장보다는 자신을 더 선호하고, 차선책이 바로 최영란 본부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리 부회장님은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잖아.”

“그건 그렇지만…….”

“설마 벌써 마음이 바뀐 거야?”

최민혁은 최영란 본부장과 나란히 복도를 걸으면서 툴툴거렸다.

“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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