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52화 (552/1,021)

#552.

“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본인이 직접 뛰어들어서 말입니다.”

“…….”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이런 기술을 어떻게 확보한 것일까?’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제야 시티폰 서비스와 CDMA 서비스에 대한 분위기를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이건 아니라고 느꼈다.

다만 그가 특히 이번 특허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최민혁 실장의 생각과는 달리 무선랜 때문이다.

무선랜은 일종의 근거리 무선통신 방식이다.

따라서 유선랜이 가지는 문제점을 이 무선랜이 해결할 수 있다.

사무실 내에 무선랜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업무 이동에서도 유리하다.

만약 공중 무선랜이 가능하다면 언제라도 단말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이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무선랜 구현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한데, 이 방식들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았다.

지금 논의되는 기준은 고작 11Mbps를 지원하는 802.11b였다.

그런데 KM 전자에서 내놓은 특허 중에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802.11b 표준 대역을 다루는 것도 있다.

높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서 고속의 데이터 전송이 되도록 한 것이다.

아직 표준이 정해져 있지 않고, 기술이 없는 상태라 누구라도 태클을 걸기 어렵다.

아니, 실상 이 기술이 표준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성능이 너무 차이가 났다.

더욱이 이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이 너무 많았다.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기술들을 잘 보면 여러 가지 방면에서 다양한 대안을 내놓았다.

심지어 시티폰 시스템에 적용 가능한 브릿지 기술도 포함하고 있었다.

각 기술에 들어간 프로토콜 중에는 지금 당장 사용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런 특허를 만들었을 리가 없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로서도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문제는 자신 앞에 놓인 기술이 진짜 시티폰 특허란 점이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추가로 쏟아지기 시작한 시티폰 특허는 벌써 500건이 넘었다.

그냥 프레스에 집어넣고 막 찍어내는 수준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장난으로 이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니, 이전에 최민혁 실장이 늘 써먹던 바로 그 수법이었다.

“…알겠네. 일단 시티폰 사업부 쪽과 한번 연락을 잡아봐.”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좋아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일이 생각보다는 너무 꼬였기 때문이다. 당장 CDMA 서비스부터가 큰 문제였는데, 여기에 시티폰 서비스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니.

그런데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돌아가는 상황은 파악해야 하니까.

‘젠장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권태성 기획실장은 물론 이 정보를 오성 전자 기획 팀에서만 다루기를 원치 않았다.

“임 부장, 최문경 부회장에게 이 정보를 흘리게.”

“…알겠습니다.”

* * *

최문경 부회장은 뜬금없는 시티폰 관련 특허 정보를 얻고 나서는 내부 검토를 하기는 했다. 그런데 단순히 그렇게 해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IP 시티폰은 기존의 시티폰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기술이었다.

더욱이 마냥 입으로만 주장하는 기술도 아니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무선랜 원천기술은 진짜였으니까.

권재홍 비서실장은 바로 외부 자문을 통해서 IT 시티폰 기술을 분석했다.

역시 여러 가지 한계는 존재했다.

“…하지만 만약 무선랜 기술을 시티폰 기술과 하이브리드로 연동할 수만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의 견해입니다.”

“내가 IP 시티폰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그게 가능한 거야?”

“당장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난관은 많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문제가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될 부분은 바로 이동 중에 생기는 송수신 문제였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아예 프로토콜 내에서도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와 관련된 프로토콜 설정이 이미 특허출원이 된 상태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무선랜 자체가 가지는 고질적인 보안 문제 역시 빼놓기 어렵다.

당연히 이 부분과 관련된 특허 역시 새끼를 친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도대체 이런 기술이 어떻게 갑자기 툭 튀어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최문경 부회장은 알아듣지도 못한 특허 문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혀를 찼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보를 흘린 제임스 러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니, 당신네가 아는 인맥이 얼마인데,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사실 무선랜 표준 전문가 쪽에 자문해 놨는데, 그쪽에서도 크게 당황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802.11b 표준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도 소위 말하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모여서 박 터지게 검토 중이었다.

그런 그들의 처지에서 IP 시티폰 특허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그쪽이 말하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은 설마 이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대답을 하는 게 세계적인 전문가 맞아? 아니, 최민혁 실장 그놈은 별것 아니라고 자신만만하던 자네가 할 말은 아니지?]

[전 최민혁 실장을 얕잡아 보지 않았습니다.]

[알아서 하게. 하지만 나도 한 가지는 알아. 시티폰 특허 원천기술 보유권자가 브리티시 텔레콤이라고 하던데, 그쪽 지분도 있지 않아? 이대로 두고만 볼 생각은 없지?]

[…하,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가 그렇게 생각 없는 회사는 아닙니다. 따로 검토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글쎄, 난 정말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야. 지금 하는 것을 봐서는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아!]

[…….]

제임스 러너는 평소 자신감이 넘치던 태도와는 많이 달랐다. 그 역시 뜬금없는 시티폰 특허에 크게 당황한 것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 모습에 왠지 쾌감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이네. 직접 당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몸을 지그시 의자 뒤로 밀면서 피식 웃었다.

그는 자신이 멍청해서 이제까지 조카 최민혁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그게 아니었다.

그 자존심 높던 샐로먼 브러더스조차 뾰쪽한 수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그래도 대안을 찾겠지. 브리티시 텔레콤을 이용한다면 방법이 많아. 거기에 최민혁 실장에 대한 압박 때문에 내 도움도 필요할 테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이제까지 의심만 하던 시티폰에 대한 생각은 관뒀다. IP 시티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제까지 이 사업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사업 진행을 하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손을 떼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김상구 회장에게 연락해서 IP 시티폰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 약속을 잡아.”

“…알겠습니다.”

* * *

최민혁도 처음에는 자신이 흘린 정보를 오성 전자에서 먼저 얻었다는 것을 듣고는 혀를 찼다. 하지만 곧 최문경 부회장이 오성 전자 측에서 정보를 얻고, 김상구 회장을 만났다는 것을 듣고는 실소했다.

‘한부 그룹도 결국 가담할 텐데, 나에게 압력을 넣어서 IP 시티폰 사업을 먹으려고 하겠지. 내가 할 일은 기술을 빼앗긴 사업가 연기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건가. 딱 그림이 좋아.’

물론 이런 내심을 외부에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뒤늦게 특허출원 정보를 얻었다는 것이 고무적이네요.”

임기석 부장에게 이미 보고를 들은 조성돈 팀장은 혀를 찼다.

“KM 그룹은 이미 시티폰 관련 TFT 팀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IP 시티폰 정보를 얻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우리 그룹의 브레인이라는 장승일 실장님 분위기는 어때요?”

“기획 조정실에서도 어쩔 수 없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힘을 보태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회장님이 승인한 것도 문제지만 시티폰 특허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신기하군요.”

조성돈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렴한 가격이 꽤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하긴 통신비를 무시하기 어렵죠.”

“더욱이 시티폰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무선랜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그건 마음에 안 드네요.”

“하지만 KM 그룹이나 오성 전자의 인력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이 무선랜 가치를 모를 수는 없습니다. 이제까지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실장님이 낸 특허를 분석해 보면 무선랜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이 다 있습니다.”

물론 꼭 그렇지는 않았다.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파수 문제에 대한 완벽한 솔루션을 도출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 대안의 실마리는 있었다.

아마 무선랜 전문가가 그 기술을 본다면 조용히 앉아 있기 힘들 정도의 기술이다.

그게 바로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바였다.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에 꽤 만족했다.

권태성 실장이 중간에 끼어든 것은 예상 밖이지만 크게 보면 신경을 쓸 일은 아니었다.

이보다는 이 상황이 좀 더 부드럽게 흘러가도록 손을 쓸 필요가 있었다.

“정보 통신부의 이원한 실장과 약속을 한번 잡아보세요.”

“이원한 실장과 말입니까?”

“시티폰 사업이 요즘 CDMA 서비스 때문에 밀렸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그대로 두면 이 상황이 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시티폰 사업은 어떻게든 진행이 되긴 할 것이다. 다만 가만히 두면 오히려 일정이 CDMA 서비스보다 더 뒤로 미뤄질 수도 있었다.

최민혁은 그런 상황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조성돈 팀장은 조금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정보 통신부의 분위기 봐서는 지금은 CDMA 서비스에 더 집착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제안을 한다고 해서 받을까요?”

최민혁은 방긋 미소 지었다.

“CDMA 서비스가 상용화되려면 여러 이권 단체의 이견 조율을 거쳐야 해요. 지금도 벌써 서로 밥그릇 싸움 때문에 난리인데, 그게 금방 될 리가 있겠습니까?”

당장 정치적으로 특혜 문제도 수면 위로 올랐다.

CDMA 사업권과 관련해서 불법 로비가 있다고 폭로전을 펼친 것이다.

당연히 실제로 있는 일이기도 한데, 그걸 일부러 과장해서 폭로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이 사건으로 허위 과장 기사를 막 찍어냈다.

최민혁은 기가 막혔지만,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 생각은 좀 달랐다. 최민혁표 CDMA 서비스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까.

“하지만 실장님이 나선다면…….”

“전 나설 생각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최근 최민혁 자신도 뒤늦게 발견한 큰 건의 시스템 버그 때문이다. 그도 일을 서두르면서 실수를 한 셈이다.

물론 최민혁은 답을 알았다. 원래는 대안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지금은 침묵하기로 했다. 그걸 고치느라 삽질하는 데만 해도 족히 1년은 소요될 테니 말이다.

그만큼 CDMA 서비스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성돈 팀장이 그런 최민혁 내심까지 알 수는 없었다.

“…IP 시티폰 사업 때문이군요.”

“당연한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지금 우리는 CDMA 서비스가 좀 더 빨리 된다고 해서 딱히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퀄컴 주가는 폭등하지 않습니까?”

“아, 그런 것도 있죠. 그런데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TDMA 진영에서 분탕질할 테니까. 신경 쓰면 괜히 스트레스만 더 받습니다. 게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첫째 큰아버지를 박살을 내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다. 최민혁 실장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이 보기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최민혁 실장의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될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니까.

그 역시 최근에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와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샐로먼 브러더스와는 언제 그렇게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은 것일까? 혹시 벨린 투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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