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49화 (549/1,021)

#549.

임기석 부장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생각보다 더 유능했다. 더욱이 최민혁이 시티폰 관련해서 출원해야 할 특허 지침을 잡아놓은 상태다.

그는 때문에 특허 팀을 압박해서 필요한 결과만 도출하면 됐다.

물론 일방적인 작업 지시에 특허 팀은 불만이 많았다.

“실장님의 구두 지시니까. 무조건 해.”

“하지만 굳이 이런 특허를 출원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 쓸데없는 소리는 마.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질 테니까. 중요한 것은 한 사람당 출원해야 할 특허 숫자를 맞추는 거야.”

“…….”

원래는 STB 사업부 소속이었다가 특허 관리를 맡은 공채덕 과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김홍준 과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일단 지시받은 대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런 불만과는 달리 이들의 업무 성과는 꽤 좋은 편이다.

특히 CDMA, MP3를 비롯한 다양한 특허 수천 건을 관리한 덕분에 짜깁기는 어렵지 않았다.

기존 특허를 이용해서 시티폰 관련 특허를 메꾸는 식이다.

물론 그 기준은 최민혁 실장이 잡아놓은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이 특허는 생각보다는 그럴듯했다.

아니, 진짜 시티폰 시스템에 잘 맞는 특허였다.

임기석 부장은 자신이 한 일이지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아, 이게 뭘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공채덕 과장도 최민혁 실장 밑에 있으면서 내공을 제법 쌓았다.

“부장님, 다 좋은데, 시티폰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많지 않습니다. 수신이 안 된다는 점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고요. 단순히 삐삐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 시티폰으로 시선을 끌려면 명확한 보완 기술이 당장은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는 곰곰이 고민을 해보았다. 그런데 특허 팀원들의 대다수는 공채덕 과장의 주장에 공감했다.

“알겠어. 그건 내가 실장님과 한번 상의를 해보도록 하지.”

“네!”

* * *

“수신 기능이라…….”

최민혁 실장은 임기석 부장의 말을 그냥 대수롭게 듣지 않았다. 이번 시티폰은 미끼다. 그렇다면 최소한 남이 보기에 그럴듯해야 했다.

이번 일 때문에 호출받은 조성돈 팀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티폰의 가치를 키우려면 문제점을 커버할 대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대안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VOIP였다.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은 인터넷을 이용한 음성 통화 방식이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는데, 인터넷 속성 때문에 실시간으로 통화가 된다고 보장하지는 못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진 후에야 가능한 일이니까.’

지금처럼 인터넷 환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통화 품질이 문제가 된다.

더 큰 문제를 이 바탕이 될 무선랜이다.

무선랜 표준 자체는 몇 년 전에 나왔다.

다만 이를 기반으로 한 제품 자체는 그렇게 흔한 편이 아니었다.

최민혁은 무선랜 칩까지 개발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이게 꼭 나쁜 것만으로 아니었다.

“조창호 차장은 아직 미국에 있죠?”

조성돈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ARN, 퀄컴 쪽을 오가면서 차세대 IP 관련해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압니다.”

“지금 한번 확인해 보세요.”

다행히 조창호 차장과 바로 연락이 되었다. 시차 차이가 있었지만, 그는 이 시간에도 일하는 중이었다.

[혹시 무선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선랜 전용 칩을 개발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네?]

[방법은 이전과 비슷합니다. 하드웨어 칩이나 펌웨어가 어느 정도 완성도가 높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원칙적으로 3~4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하지만 답을 다 안다면… 3~4개월 안에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유선랜과 관련된 상품은 제법 나와 있다. 그런데 무선랜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아직 제대로 활성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민혁의 인생 1회 차 기억 기준으로도 한국에서는 무선랜 관련 제품이 6~7년이 지나야 쏟아진다.

[…알겠습니다. 미국 내의 일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주기 바랍니다. 아, 지금 검토 중인 차세대 IP를 활용한 폰 칩 기술 확보도 끝을 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전화를 끊고 난 후에 자신의 입을 멍하니 쳐다보는 두 사람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틀 후, 아니, 사흘 후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아, 네.”

두 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최민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들도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으면서 다양한 차세대 기술을 들었다. 인터넷도 그 하나이고, 무선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최민혁 태도를 봐서는 무선랜 관련 칩 설계를 당장 찍어 내려 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차마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이라고 해서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일은 이전과는 좀 달랐다. 무선랜 칩 완성도가 꼭 좋아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시티폰과 무선랜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시티폰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VOIP가 미래에 문제가 된 것은 통신사업자가 IP를 차단하는 것과 같은 편법을 동원해서 막았기 때문이었어.’

* * *

인터넷 폰 통화 음질은 통신사의 음성 품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동 중에 전화가 끊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 방식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저렴한 요금이다.

다만 지금처럼 CDMA 상업화가 일상화되지 않은 시기라면 이 사업에 끼어들기는 어렵다.

게다가 한국은 인터넷 상태가 아직 걸음마 수준이어서 문제의 소지도 많다.

그런데 제3자가 보기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인터넷이야 어차피 점점 발전을 거듭할 것이고, 시티폰과 VOIP가 결합된 IP 시티폰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요금 강점은 바뀌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니, 더 저렴한가?’

다만 아주 큰 장벽이 있었다.

무선랜 기술이 아직 완성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신호 간섭이나 보안 문제가 그 첫째고, 음성 데이터 전송에 필요한 QoS가 그 둘째다. 업체별 장비 로밍도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무선랜 기술에 전 세계적인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계가 명확한 802.11b는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했다.

최민혁은 당연히 뜨거운 감자였던 무선랜 관련된 기술에 대해 제법 많이 알았다.

심지어 칩 설계도를 달달 외울 정도였다.

덕분에 그 부분을 우선 정리해서 필요한 자료를 하나씩 만들었다.

그리고 검증을 위해 당장 미국에 있는 조창호 차장 대신에 이주옥 과장을 호출했다.

“…일단 제가 검토한 바로는 당장 구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주옥 과장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최민혁이 내놓은 무선랜 칩 설계도를 살폈다. 여러 가지 무선랜에는 단말기를 비롯한 다양한 설비에 들어갈 것까지 다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갑툭튀로 떨어진 이 기술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을 느꼈다.

중간 과정도 없이 결과만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지금 바빴다. 과거처럼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다. 더욱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미 최민혁 자신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바로 세기의 천재로 말이다.

“테스트 플랫폼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겠어요?”

“네? 그게 잘…….”

그도 장담하지 못했다. 단순히 칩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무선랜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장비를 동시에 만들어야 하는 문제다.

사실 현실적으로 말해서 최소 기간으로 10년을 잡아야 했다.

최민혁 실장은 곧 사무실에 호출받고 나타난 임기석 부장과 조성돈 팀장이 이주옥 과장의 설명을 듣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두 사람의 표정 역시 이주옥 과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론을 제시한 지 불과 사흘.

그 사흘 동안 개발한 게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처음 최민혁이 제시한 기간은 이틀이었으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틀 안에 이런 설계도를 내놓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민혁은 그 짧은 기간 안에 이미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최민혁도 물론 한마디 정도는 했다.

“이번 무선랜 기술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 문제가 제법 있을 겁니다. 그래도 개발 기간을 대폭 줄일 수는 있습니다. 일단 동작만 하면 되니까.”

즉 언론을 통해서 보여 주기용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주옥 과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게 개발 단계에서 거의 반이나 해당합니다. 쉽게 될 일이 아닙니다.”

“이게 있는데요?”

“…물론 개발 기준이 있으니, 개발 기간이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런저런 다양한 문제가 생기면 일정 지연은 불가피합니다. 아무리 인력과 자본이 넉넉하다고 해도 3~4년은 족히 잡아야 합니다.”

“2달.”

“네?”

세 사람은 다들 황당해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IP 시티폰을 최대한 기간을 줄여서 진행해야 했다. 그래야 이 일에 관심을 둔 이들이 급증할 테니까.

‘우리 첫째 큰아버지뿐만 아니라 후환이 될 샐로먼 브러더스와 영국 브리티시 텔레콤을 반드시 끌어들여야 해.’

“다시 말하지만, 기존의 MP3나 CDMA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건 막말로 그럴듯하게 결과만 나오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주옥 과장은 답답했지만 반박하지는 못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일단 한번 설계를 진행해 보세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죠.”

“…알겠습니다.”

* * *

이주옥 과장은 침통한 얼굴을 한 채 기획실장실을 나섰다.

그의 뒤를 따른 조성돈 팀장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이번 일은 정말 어려운 겁니까?”

“무선랜 개발 난이도는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가 아날로그 설계 쪽에 경험이 많다고 해도 그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뭘 해야 할지 설계도가 다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 설계도가 문제란 겁니다. 도대체 이 주파수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설명도 없지 않습니까. 그냥 설계 기준만 잡아놓고, 그냥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제대로 동작할 리가 있습니까? 당장 이 기준을 잡는 데 들어가는 시간만 해도 보통 4~5년은 족히 걸립니다. 그것도 수백 면의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가 모여서 말입니다.”

다행히 조성돈 팀장은 이미 이런 일을 제법 경험했다.

“일단 해보시죠. 그러고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임기석 부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설계도를 받고 나서 이 아이템으로 내야 할 원천기술 확보와 새로운 특허출원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뭔가를 내놓았을 때는 반드시 그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제 경험으로 최 실장님이 이렇게 일을 지시할 때는 분명 근거가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 *

이주옥 과장은 푸념을 털어놓은 채 곧바로 연구실에 틀어박혔다. 일단 최민혁 실장 말대로 가능한지 확인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그도 설계를 하나씩 해보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힘이 없어.’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설계안은 놀랍게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세부적인 항목에서 자잘한 문제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이주옥 과장이 어느 정도 손을 쓸 수 있었다.

자신의 대학원 후배인, 박사과정 2년 차로 소개를 받아서 KM 전자에 입사한 석문원 대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정말 이틀 만에 만든 결과물 맞습니까? 아무리 살펴봐도 논리적인 문제가 없는데요?”

“사흘이라고 했어.”

“선배도 참, 이틀이나 사흘이나 그게 무슨 차이입니까?”

“…….”

이주옥 과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그런 의문을 느꼈다.

결국 두 사람은 말없이 일단 기본적인 기능에 문제가 없는지만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단 하나의 논리적인 문제도 나오지 않았다.

설계도 내의 의미까지는 잘 몰랐지만 말이다.

KM 전자가 익숙지 않은 석문원 대리는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그는 화가 났다. 박사과정을 2년 차로 수료하고 나온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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