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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48화 (548/1,021)

#548.

물론 이미 출원된 특허도 죄다 긁어모았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AAC 차세대 특허도 있었다.

AAC 특허는 원래 차세대 업계 표준 오디오 포맷이다.

원래라면 브라운 호퍼 연구소, 돌비 연구소, 소니 노키아 등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특허다.

실제로 국제 표준이 된다.

AAC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MPEG-2/4 Audio였다.

최민혁은 혀를 내둘렀다. 임기석 부장이 한 삽질 수준에 놀랐다.

‘내가 알기로 2년 후에 등장하고, VIA 측에서 라이센싱하는 건데 벌써 튀어나온 건가?’

최민혁은 의아했다.

“이 AAC 특허는 뭡니까?”

임기석 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브라운 호퍼 연구소의 칼하인츠 브란데버그 박사님이 따로 제안을 해왔습니다. 기존 MP3와 비교하면 여러 가지 강점이 있다고 해서…….”

역시 문제가 된 것은 비용이다.

아직 아이디어 수준이라서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런데 임기석 부장은 최민혁 지시대로 음악 관련 압축 기술을 다 모으면서 차세대 코덱에 대해서도 고민한 것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딱히 돈이 얼마 들지도 않았다.

임기석 부장 전권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다.

최민혁은 가능하면 밑에 임직원들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하긴 했지만, 그 결과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네? 죄, 죄송합니다.”

“아, 그런 뜻이 아니에요.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니까.”

“아, 네.”

최민혁은 뒤늦게야 자기 지시에 따라서 임기석 부장이 일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임기석 부장은 이미 최민혁 실장 뒤를 따라다니면서 당시 얻은 MP3 특허를 토대로 계속 일해왔던 것이다.

최민혁은 이천 건이 넘는 특허를 확인하다가 질린 얼굴을 한 채 일단 관련 자료를 한쪽으로 다 치웠다.

“…이거, 임 부장님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꼭 중요한 일만 보고를 하면 됩니다.”

“이게 다 중요한 자료입니다.”

“아, 됐습니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하세요. 정 문제가 될 것 같으면, 퀄컴이나 에플 쪽에 자문해 보세요. 아니면 법무 팀에 요청해도 되고요. 그래도 부족하면 시즈벨 측에 자문해도 됩니다.”

“하지만…….”

“아뇨,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최민혁이 내놓은 자료는 시티폰 기지국 설계, 시스템 내부 프로토콜, PSTN 접속 프로토콜, 망 관리 시스템 설계, 단말기 세부 기능을 망라한 것이었다.

시티폰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임기석 부장조차 이를 보고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게 다 뭡니까?”

“보면 몰라요? 시티폰 관련 원천 특허죠. 정확히는 출원해야 할 기술입니다.”

“시, 시티폰요? 하, 하면 정말 시티폰 사업도 하는 겁니까?”

“아, 이런.”

최민혁은 이마를 잡았다. 그는 어떤 식으로 임기석 부장을 이해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괜한 이야기가 나돌아서는 곤란했다.

그렇다고 내막을 전혀 몰라도 문제가 된다.

“혹시 CDMA 서비스와 시티폰 서비스가 같이 경쟁한다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네? 그건…….”

임기석 부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시티폰에 대한 미래 평가 역시 나쁘지 않았다. 아직 CDMA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실제로 최민혁표 CDMA 서비스가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가장 큰 것은 역시 밥그릇 싸움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송파 도시 시범 서비스가 성공하자 각 기업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들은 다들 욕망에 미쳐서 서로 뜯어먹기 바빴다.

이제까지 이 사업에 투자했던 많은 기업들이 각자 자기 지분을 원한 것이다.

이 진흙탕 싸움의 주자는 오성 전자, LC 전자, HY 전자를 비롯한 한국 내의 기라성 같은 기업이다.

그러니 제대로 해결이 될 리가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정부에 무지막지한 로비를 시작했다.

정보 통신부는 이 예상치 못한 난관에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이 중재만으로 골치가 아팠다.

최민혁 실장도 일선에 서면서 그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최민혁 실장은 이상할 정도로 이들 밥그릇 싸움을 그냥 구경꾼처럼 쳐다보기만 했다.

결국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버그가 급증했다. 문제는 CDMA 사업에 참여했던 기업들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 시범 서비스가 끝났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 있는데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미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측한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임 부장님 본인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흠, 그래요? 그러면 내일 다시 이야기하죠. 한번 검토를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임기석 부장은 특허 팀을 불러 모았다.

공채덕 과장은 갑작스러운 회의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는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낀 것만으로도 상황을 눈치챘다.

“시티폰 서비스를 시작하긴 할 것 같은데, 이전과는 많이 다르네요. 최 실장님이 이렇게 숨김없이 그대로 정보를 드러낸 적은 없지 않습니까?”

“응? 그런가?”

임기석 부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행동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MP3 때만 해도 그렇게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특허 하나하나에 일일이 다 간섭했다.

그런데 지금은 특허가 어떤지 전혀 살피지 않았다.

그냥 던져놓고 지켜만 보는 상태였다.

특허 팀원들의 이야기는 다들 비슷했다.

다들 최민혁 실장의 밑에 있으면서 이제 제법 안목을 갖춘 셈이다.

임기석 부장은 다음 날 최민혁 실장을 찾아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확실히 CDMA 서비스는 통화료가 비싸다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반면 시티폰은 CDMA 통화료에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시티폰은 거리 제약이 큽니다. 아마 CDMA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문제가 될 겁니다. 더욱이 시티폰은 발신만 가능하다는 태생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CDMA가 일반화되는 몇 년 후라면 모르는 일이다.

임기석 부장도 지금처럼 삐삐가 일상화된 시점에서는 아직 CDMA의 가치를 잘 몰랐다.

“그런데 전 삐삐와 시티폰을 같이 사용하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민혁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시티폰이 광고를 통해서 일상에 파고든다면 무조건 시티폰을 사용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네.”

임기석 부장이 굳이 시티폰을 사용하려는 것은 통화료가 원인이다. 시티폰의 분당 요금이 저렴해도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임기석 부장님은 기획을 절대로 하면 안 될 것 같네요.”

“네?”

그는 순진한 임기석 부장이 알아듣게 차근차근 하나씩 설명했다.

“아닙니다. 흠, 제가 보기에 시티폰은 별로 경쟁력이 없어요. 이런 사업을 만약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한다면 손실이 클 거라고 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저에게는 대박입니다!”

임기석 부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진정한 의도를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시티폰이 망한다면 말이죠?”

“그렇죠!”

그는 그제야 최민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역시 CDMA 서비스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씀은 마치 최문경 부회장이 이 시티폰 사업에 관심을 두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까? 아니, 이 과정에서 큰 손실을 보게 하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무릎을 쳤다.

“바로 그겁니다!”

“…….”

임기석 부장은 그제야 최민혁이 내놓은 자료를 힐끗 살폈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기술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긴 한다.

그런데 이 기술이 가볍게 볼 만한 내용이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당장 임기석 부장조차 최민혁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 눈앞에 놓인 기술에 혹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한 시스템에 따른 비용 절감이 컸다.

실용화 시에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하는 건 역시 비용 문제다.

최근 나오는 이야기로 시티폰은 이용 요금이 3분 기준으로 45원에 불과했다.

셀룰라 폰이 10초에 25원인 것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건 PCS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실제 서비스 이후에는 금액이 달라지겠지만, 기준은 그랬다.

“…….”

따라서 그는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기술 자료를 진지하게 살폈다.

“…약간 손을 봐야 하겠지만 특허를 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임기석 부장은 특허 전문가다.

“…더욱이 이 특허를 활용한다면 다양한 아이디어 특허를 추가로 낼 수 있습니다. 아마 시티폰을 아는 이가 이 특허를 본다면 관심을 두고도 남습니다.”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CDMA 특허나 MP3 특허처럼 무리해서 일을 진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밑에서 일을 진행하는 이가 그걸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요령껏 고가에 팔아치울 수 있는 특허를 만들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미 MP3 특허를 튀겨도 보고, 삶아도 보고, 구이까지 해본 이가 임기석 부장이다. 그는 특히 MP3 방어 특허에 열을 올렸다.

임기석 부장 팀은 이미 세계적인 특허 전문가였다.

“좋네요. 최고입니다. 제가 딱 원하는 겁니다!”

임기석 부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의도를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티폰 사업을 진짜로 할 것처럼 연기하란 말씀이군요. 그리고 시티폰 특허를 계속 출원해서 실장님이 제대로 이 사업을 할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결국에는 시티폰 사업을 매각할 겁니다.”

“…위성 사업부처럼 말이군요. 사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했다.

“빙고. 다만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아, 인력이 필요하면 공장에 투입된 인원 중에 필요한 인원을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세요. 교육에 딱 안성맞춤이니까.”

“…알겠습니다.”

임기석 부장도 대답하기는 했지만 바로 실장실을 나서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시티폰 사업이 무조건 망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정말 시티폰 사업이 망할 거로 생각합니까?”

“네!”

최민혁은 간단히 대답한 후에 CDMA 서비스 성과를 떠올려 보았다. 겉으로는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아직 손을 댈 곳은 꽤 많았다.

“그리고 잘 아셔야 할 일인데, CDMA 사업은 무려 20곳이 넘는 기업과 천 명이 넘는 엔지니어가 같이 일했습니다.”

“하긴 안 그래도 말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프로젝트가 멀쩡하게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최민혁은 당연히 이를 중재할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제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시티폰 사업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뛰어든 시티폰 사업을 아주 산산조각 낼 필요가 있었다.

인생 1회 차에서는 시티폰 사업 준비 기간이 너무 길었다. 만약 올해나 내년에만 서비스를 시작했다면 그렇게 왕창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번엔 좀 다르다. 시티폰 사업을 좀 더 일찍 시작하면 시작하는 만큼 그 타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딱 좋지.’

물론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최문경 부회장이나 샐로먼 브러더스가 다른 한국 기업이 끼어드는 것을 순순히 용납할까?

‘영국 브리티시 텔레콤이 한 발자국 걸치면 더 좋고. 아니, 그렇게 되게 하여야지. 그 작자들에게 시티폰 특허를 매각하면 되니까.’

최민혁은 다시 한번 임기석 부장에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시티폰이 사업적으로 어렵다고만 알아두세요. 전 절대로 이 사업을 할 생각이 없으니까. 다만, 우리 첫째 큰아버지에게는 꽤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아니, 실상 KM 그룹이 기존에 추구하던 방향과 맞는 사업이 시티폰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사무실을 나서는 임기석 부장에게 한마디 더 해주었다.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도 우리 특허 팀이 시티폰에 대해서 작업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중요해요. 필요하다면 브리티시 텔레콤 측에도 미팅을 요청해보세요.”

“…네.”

최민혁도 브리티시 텔레콤까지 끌어들여서 판을 너무 키우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기회는 정말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선택은 본인들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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