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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45화 (545/1,021)

#545.

하지만 그의 의견보다 더 중요한 반응이 있었다.

초기 시범타운 서비스 성공에 환호한 엔지니어들이다.

그들은 서로 포옹한 채 이 놀라운 성공을 즐겼다.

단 한 번의 시도에서 완벽한 결과를 도출해 냈기 때문이다.

[맙소사, 진짜 성공이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게 말이 돼?!]

[이거 혹시 사기 아냐?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적어도 3~4년은 걸릴 거라고 했잖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했다.

다들 내부 밥그릇 싸움 때문에 프로젝트는 내년 하반기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3~4년 후의 시범 서비스는 그저 단순한 서비스에 불과할 뿐이다. 그걸 바로 상용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성과는 내일 당장 상용화해도 충분할 정도의 품질을 자랑했다.

그러니 눈이 뒤집힌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이번 시범타운 서비스에 참여한 한국 대기업과 중견기업이다. 이들은 정신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바빴다.

[네, 회장님, 믿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이 시스템으로 당장 서비스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습니다. 네, 당장 오셔서 한번 보셔야 할 듯합니다!]

그들도 이렇게 빠르게 성과물을 도출할지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상기된 얼굴을 한 정보통신정책실 이원한 실장이 박성환 팀장을 비롯한 이번 일을 담당한 이들을 대동한 채 자신 앞으로 오는 것을 봤다.

“어떻습니까?”

“최고입니다. 솔직히 아직도 꿈을 꾸는 심정입니다. 우리 정보통신부가 파악한 바로는 아무리 빨라도 4년은 족히 걸린다고 봤는데, 이게 벌써 진행되다니. 기존에 수립한 모든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판입니다.”

일정이 달라지면, 이동통신 서비스에 할당된 예산 역시 다시 새로 세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금액을 모두 합치면 조 단위가 넘어간다.

정부로서는 막대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원한 실장은 최민혁 손을 잡은 채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가, 감사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뭐, 공짜로 해준 것은 아니니까요.”

최민혁은 슬그머니 자기 손을 뺀 후에 뜨거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의 분위기 역시 단단히 바뀌었다.

최민혁이 ETRI에 CDMA 관련 조언을 해준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았다.

다만 그 일이 당장 어떤 성과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완벽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최민혁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한 전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슬쩍 뒤로 물러났다.

“전 다른 일이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이번 시범도시 서비스의 주인공인 최 실장님이 빠지시면…….”

“괜히 CDMA 사업과 엮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처지를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민혁은 바로 작별 인사를 고하고는 몸을 돌리고 말았다.

그가 사라지자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인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대기업 사장급 인사를 비롯한 정치 쪽의 인물도 하나둘씩 이 자리에 나타났다.

그들은 얼마나 다급하게 도착했는지, 땀을 줄줄이 흘리는 중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오늘은 첫날이라서 별다른 테스트가 없다고 하지 않았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테니, 상황 봐가면서 오라고 했잖아!!”

이번 서비스를 준비하던 담당자는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 CDMA 시범 서비스는 그만큼 상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번 일을 주도한 최민혁 실장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

그건 이원한 실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보통신부에서도 고위직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보다 직급이 높은 이들이었다.

이원한 실장은 꼰대들의 합창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 실장님이 이게 싫어서 내뺐구나.’

* * *

[세계 최초로 CDMA 시범 서비스에 성공하다.]

[PCS 시범타운 설치에 관한 이야기는 올 연초부터 꾸준히 나왔다. 예정은 내년 상반기부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내년 중반이 되어야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서비스 자체는 불필요한 투자 낭비를 줄여서 순수 국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을 당겨서 이번 서울 송파에서 설치한 서비스는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보다 격이 다른 성능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단 한 번의 노이즈 간섭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CDMA 서비스를 진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이번 서비스가 갑자기 빨라진 것은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이 이 일에 도와주면서부터라는 것이 실무 담당자의 답변이다.]

CDMA 시범타운 서비스의 성공은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연일 외신들도 이 일에 관심을 뒀다.

아니, 단순한 관심에서 끝나지 않았다.

CDMA 시범타운 서비스로 돌파구를 마련한 퀄컴 주가는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퀄컴 주가가 2.5달러에서 무서운 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단숨에 3달러를 돌파해서 4달러에 도달한 것이었다.

아니,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달러에서 차익 매물 때문에 멈칫하나 싶었는데, 5달러 지지선을 가볍게 돌파했다.

이런 퀄컴 주가는 퀄컴 오너인 최민혁 실장이 연관된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3.5달러 선에서 조정을 거친 에플 주가 역시 5달러를 돌파했다.

심지어 ARN을 비롯한 최민혁 실장이 지분을 가진 기업 대다수의 주가가 껑충 뛰어올랐다.

이 일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에서 주식을 담당하는 제임스 러너 이사였다.

그는 원래 골드만 삭스에서 꽤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이곳 샐로먼 브러더스에 스카우트를 받아 왔다. 실제로 이제까지 막대한 이익을 회사에 벌어다 줬다.

그런데 에플 때문에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말았다.

하지만 제임스 러너 이사는 자신이 이제까지 회사에 이바지한 바를 믿었다. 이번 일로 큰 불이익을 받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크리스 스페이더 부사장이 이번 일을 명분으로 그를 호출한 것이다.

“내가 이번 일을 전적으로 제임스 이사 당신에게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하지만 기회손실을 놓친 것은 무시하기 힘들어.”

에플호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면 꽤 큰 이익을 봤을 것이다.

실제로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는 이번 일로 이익을 본 이가 있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절친한 친구인 킬리언 시몬스 이사였다.

“킬리언 이사는 이 주가 차액으로만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어.”

“…3억 달러 말입니까?”

“그 친구가 관리하는 영역은 다르니까. 여유가 되는 자금이 얼마 되지 않아서 3억 달러에 그친 것뿐이야. 그런데 미국 주식을 담당하는 자네는 뭔가?”

“…….”

제임스 러너 이사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배짱을 튀긴 것이다. 어디 할 테면 해보라는 의도였다. 크리스 스페이더 부사장이 이전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크리스 스페이더 부사장 태도가 냉랭했다.

“솔직히 자네에게 나쁜 감정은 없어.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한 우려가 커. 당장 에플을 우습게 보는 분위기가 문제야.”

“하지만 에플은 이미 망해가던 회사였습니다. 그 분위기가 스티븐이 나서서 여론 몰이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니,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어. 다들 에플에 대해서 우려를 하고 있어. 이제는 에플을 다른 관점에서 지켜봐야 해. 이런 식이면 계속 자네처럼 사고 치는 사람이 나올 테니까.”

“……?”

제임스 러너 이사는 의아한 눈으로 크리스 스페이더 부사장을 쳐다보았다. 비록 한국 내에서의 일이 있다고 해도 샐로먼 브러더스 전체 입장에서는 푼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크리스 스페이더 부사장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자네가 직접 가서 한번 살펴봐. 이대로 뒀다가는 정말 큰일 나서 그래. 필요하다면 본사 가용 인력을 동원해도 좋아.”

“네?”

뜬금없는 지시에 제임스 러너 이사는 화들짝 놀랐다.

“뭘 놀라고 그래. 지금 에플 주가가 6달러를 넘었어. 이달만 해도 손실이 계속 늘어나는 판국에 믿을 수가 없잖아.”

이건 크리스 스페이더 부사장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실상 에플은 소문만 무성하지 실제로 아직 성과물로 내놓은 것이 없었다.

MP3 플레이어 관련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데, 과연 그게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였다.

아니, 설사 이 제품이 잘 팔린다고 해도 판매 수량은 뻔하니까.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는 에플의 미래를 보수적으로 산정했다.

물론 에플의 미래를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을 그냥 둘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자네도 지난주에 한국에서 CDMA 시범도시 서비스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글쎄요.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미 TDMA가 대세입니다.”

그 역시 TDMA의 미국을 향한 공격이 매섭다는 것을 잘 알았다. 솔직히 CDMA 표준이 나오기는 했지만, TDMA와의 진영 싸움에서 이길지는 부정적이었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분위기가 일부 바뀐 것은 사실이야. 그러니 이번에 한국으로 가봐. 지금 공석이 된 한국 지사장 자리에서 한국 분위기도 살펴봐.”

“정말 이럴 겁니까?”

“어쩔 수 없어. KM 그룹의 최문경 부회장 요청도 있어서 그래.”

“최문경 부회장 말입니까?”

“어, 자네도 만나봤잖아.”

“흠.”

제임스 러너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최문경 부회장 요청이라면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내 분위기도 분위기다. 자신을 노리는 이들 때문에 골치도 아팠다.

그는 문득 스티븐의 배후에 있는 최민혁 실장이란 인물을 떠올렸다. 이번 실패도 따지고 보면, 최민혁 실장이 원인이었다.

“좋습니다. 가죠.”

H77

“잠깐 장기 휴가 간다고 생각해. 한국이 살기에 그렇게 나쁜 나라는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 * *

제임스 러너 이사는 곧바로 짐을 챙겼다. 다행히 자신의 한국 지사장행 소문이 나서인지 이번 투자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지 않았다.

그는 짐 정리를 빠르게 끝낸 후에 이번 실패를 잊기 위해서라도 빨리 한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일단 공항 모습에서부터 깜짝 놀랐다.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던 한국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마중 나온 데이비드 싱어의 안내를 받아서 회사에서 마련해 준 오피스텔에 투숙했다. 45평이 넘는 오피스텔 시설은 자신의 미국 집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상 밖이었다.

데이비드 싱어는 최근 바뀐 지사 분위기에 대해서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정확히는 새로 부임한 상급자의 눈치를 봤다.

“이제 한국 시장을 마냥 가볍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사에서도 조금은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의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그는 지시를 기다리는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를 통해서 최문경 부회장과 약속을 잡았다.

“최 부회장 말입니까?”

“그래. 가능한 한 빨리 좀 만나고 싶은데…….”

“하지만 당장 KM 그룹 일이 급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대한 투자 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KM 그룹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아니, 최문경 부회장과 약속을 잡아.”

“네?”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는 다소 긴장했다. 새로 부임한 상급자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여념이 없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데니스 샐로먼 이사와는 성격이 다른 사람이 제임스 러너 이사였다.

그는 밑의 직원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

“아니, 원래 우리 회사가 주도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한국 채권…….”

“자꾸 두말하게 할 건가?”

“…아, 알겠습니다.”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는 내심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최근 CDMA 시범도시 사업 이후에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 분위기가 바뀐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슈가 될 만한 건은 될 수 있으면 나중에 봤으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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