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44화 (544/1,021)

#544.

그런 차에 나타난 장남 최문경 부회장의 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은 묵묵히 자신을 지켜보는 최문경 부회장 행동에 혀를 찼다.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CT-2 관련 보고서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러면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일도 들었을 것 아닙니까.”

국정감사 이후로 CT-2에 대한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특히 CT-2 관련 최민혁 실장 보고서에 대한 말이 무성하게 나왔다.

보고서 내에 최민혁 실장의 서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KM 그룹 내에 도는 보고서라고 이미 입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다만 이것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CT-2 사업이 그렇게 대단했다면 왜 이 보고서가 나도느냐 하는 점이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CT-2에까지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 오너가 CT-2까지 먹는다면, 이동통신 사업 독점이라는 문제가 터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국정감사 자리에서 최민혁의 이름이 줄기차게 나왔다.

최용욱 회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자기 손자 이름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국정감사, 나도 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물으마. 그 보고서를 국회에 흘린 사람이 너냐?”

“아닙니다. 전 장승일 실장이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히는 장승일 실장 배후에 있는 아버지가 아니냐는 질문이다.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등을 돌리면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는 설마 손자 최민혁이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너는 근거도 없이 남을 의심하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아니, 그럼 정말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난 아니다.”

“그럼 누가 그 보고서를 흘렸다는 말입니까?”

“글쎄다. 그룹 내에 입 싼 놈들이 많은데, 그중에 한 놈이겠지.”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의심했다.

의심은 꽤 오래갔다.

애초에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불신이었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이 먼저 지쳐서 손을 들었다.

“그만하자꾸나. 네놈이 그랬다면 의도가 있었겠지.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 그 증거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내심 욕설이 치밀었지만 차마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죠. 하면 아버지는 CT-2 사업에 반대하는 겁니까. 이미 연초만 해도 늘 입만 열면 이동통신 사업 이야기를 한 분이 아닙니까?”

“난 반대한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이번 일이 잘못되면 회사 손실이 너무 커. 단순한 자본손실이 아니라 기회손실을 무시하기 어렵다. 난 솔직히 이 돈으로 퀄컴 주식을 사들이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퀄컴 주식을 사들이기에는 주가가 너무 폭등했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사실 이미 에플 주식에 이어서 퀄컴 주식까지 비자금으로 꽤 사들인 최용욱 회장은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으음, 좋다. 이렇게 된 마당에 어쩔 수가 없겠지. 다만 이거 하나만 명심해라. 만약 CT-2 사업에 실패하면 넌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거다. 아니, 이건 내 의견이 아니야. 다른 대주주도 네 능력을 의심할 테니까. 그걸 명심하는 것이 좋을 거다.”

“…알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주먹을 콱 쥔 채 최용욱 회장을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 역시 이번 일이 잘못되면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한번 최민혁이 만든 CT-2 관련 보고서 내용을 떠올렸다.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이 도저히 실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실패하지는 않겠지.’

* * *

“좋네요.”

최민혁은 드디어 엉덩이가 무거운 최문경 부회장이 움직였다는 소식을 듣자 쾌재를 불렀다. 그는 양손으로 파이팅 포즈까지 취했다.

김명준 과장은 그게 의아했다. 그가 아는 바로 최민혁 실장은 이제 최문경 부회장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샐로먼 브러더스가 진짜 적이니까.’

다만 굳이 샐로먼 브러더스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국내 지사가 조용하기 때문이다.

데니스 샐로먼이 태국으로 쫓겨난 이후 아직 샐로먼 브러더스 국내 지사장 자리는 공석이었다. 이유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미국 내의 일로 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굳이 최문경 부회장을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까?”

김명준 과장의 질문에 최민혁은 쓰게 웃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민첩 스탯이 높아요. 그래서 위기 대처 능력이 장난 아닙니다. 국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외국으로 튈 분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비자금.”

“네?”

최민혁은 굳이 비자금 관련 부분을 숨기지 않았다.

“KM 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에게서 꽤 많은 자금을 챙긴 사람이 우리 첫째 큰아버지죠.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세요?”

“서, 설마 그 돈을 다 해외로 빼돌렸다는 말입니까?”

“빙고. 특히 KM 전자를 비롯해 외국 시장 개척이나 투자를 명분으로 꽤 많은 자금을 오랫동안 빼돌렸습니다. 저도 정확한 규모는 잘 몰라요.”

다만 인생 1회 차를 통해 최문경 부회장이 IMF 이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일군 사업이 뭔지는 잘 안다. 그 사업이 얼마나 잘나갔으면, 포보스지 순위에도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최민혁이라고 해도 그 자산 내역을 다 알 수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거래한 업체를 전부 다 없앴기 때문이다.

거래 업체가 파산했으니, 그 자금 출처를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그 비자금 관리를 맡겼을지도 모르지.’

“…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최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KM 전자가 왜 망해갔겠습니까. 다 그런 식으로 자금을 빼돌렸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둘째 큰아버지도 비자금은 어떤 식으로 투자되었는지 잘 모를 겁니다. 그냥 공모만 했을 테니까.”

“하면 왜 지난 수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겁니까?”

“국내에서는 답을 찾기 어려워요. 적어도 미국 SEC나 FBI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조차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만약 국내 사정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우리 부회장님은 해외로 튈 겁니다. 결국 그렇게 되면, 미국까지 쫓아가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하는 최민혁 자신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솔직히 그도 뾰쪽한 대안이 없었다. KD-LCD를 이용해서 최대한 비자금을 드러나게 하려 했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은 그 미끼를 물지 않았다.

지금 겉으로 드러난 자금은 최민혁 자신이 추측하는 비자금 규모와는 차이가 심했다.

“으음.”

김명준 과장은 큰 충격을 받아서 도저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이 왜 이렇게까지 최문경 부회장을 의식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았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저에게 늘 당하니,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우습게 보이죠? 다른 사람에게는 다를 겁니다. 우리 부회장님을 무시하지 마세요. 만만한 분은 아니니까.”

“…제가 따로 해외 비자금을 조사해 봐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애매한 대답이었다.

이제까지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최민혁 태도와는 달랐다.

사실 이 부분은 최민혁도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저 인생 1회 차 지식과 지금 안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추론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인생 1회 차 돌아가는 상황이 아주 잘 맞아 들어갔다.

최민혁은 굳이 그 부분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세세한 부분에서 틀린 것이 있을 수는 있어도 큰 줄기는 맞는다고 판단했다.

“상관은 없지만 들켜서는 곤란합니다. 괜히 첫째 큰아버지가 우리 행보를 알면, 조처를 할 겁니다. 그러면 추적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의 행보를 보자 그를 좀 더 자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괜찮은 아이템이 있었다.

그는 오현종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CDMA 개발 진척 상황을 확인했다.

[가만, 그러면 시범 서비스를 좀 더 당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긴 한데 차라리 완성도를 더 높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뇨.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이 사업에 목을 맨 이들을 좀 더 자극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시범 서비스 일정을 좀 당기세요. 아, 가만, 다음 주에도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가능은 합니다만 아직 제법 자잘한 문제가 많습니다. 일정도 충분한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뇨, 그럴 수는 없어요. 이게 돈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를 더 빨리 진행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내부적으로 한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민혁은 순순히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오현종 박사가 고맙기만 했다. 이번 시범 서비스는 연구 개발 단계를 이미 뛰어넘어서 단순한 보여주기 쇼가 아니라 상업적인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홍보 팀 이용식 부장을 호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 *

한국이동통신이 국내 통신 장비 업체와 공동으로 개발 진행한 발표회를 한 것은 불과 몇 달이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대기업 6곳, 중소기업 14곳을 포함한 모두 20개 기업이 참여한 공동 연구였다.

교환기, 기지국, 제어기, 단말기를 비롯한 장비 개발 역시 포함된다.

다만 각각의 연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진행되었다.

그저 이번 발표회를 통해서 불필요한 투자 낭비를 줄이고,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 기술을 확보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최민혁이 끼어들면서 이 개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100대에 불과한 단말기 숫자도 무려 20,000대까지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비용을 처음에는 퀄컴을 비롯한 소수 기업에서 일방적으로 자금을 댔다.

이윽고 20개 기업이 눈치 빠르게 단말기 개발에 같이 끼어들었다.

20,000대 단말기 생산은 결국 국내 20개 기업을 포함한 외국 기업이 각자 역할 분담을 해서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CDMA 개발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라졌다.

특히 기지국, 제어기, 교환기 전체 시스템을 총괄한 최민혁 덕분에 CDMA 서비스 완성도는 무서울 정도로 올라갔다.

여기에 최민혁 실장이 공을 들인 특허가 그만한 가치를 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 개발에 참여한 1,000명의 엔지니어는 최민혁 실장의 역량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다들 최민혁 실장의 혜안에 경악하고 말았다.

오현종 박사가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따르는 이유였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천재성을 이번에 확신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물론 충격적이었다.

원래 예정한 시범 서비스를 당겨서 시범타운 형식으로 서울 송파 쪽에서 진행된 PCS 시범타운 서비스는 그 완성도가 놀라웠다.

[잘 들립니까?]

[감도 최고입니다.]

전화를 하는 사람은 송파역 근처였고, 전화를 받는 사람은 송파역에서 대략 10㎞ 떨어진 하남 근처였다. 거리를 조금 더 넓혀서 광주시, 성남시에 위치한 이와의 통신 역시 단 하나의 잡음도 끼지 않았다.

동시 사용자 숫자를 늘려서 100명, 1,000명, 3,000명으로 해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최고 20,000대를 동시에 사용해도 단 하나의 잡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시뮬레이션이 아닌 직접 휴대폰을 들고 하는 서비스였다.

이 실험 결과를 접한 책임자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말았다.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기존 휴대폰하고는 비교조차 하기 힘듭니다.]

우려한 통화 블록킹 현상과 같은 다양한 현상은 아예 생기지 않았다.

일정 수준으로 잡음 레벨을 인위적으로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CDMA 셀 시스템에서 불균등하게 분포된 위치에서도 완벽한 성능을 발휘했다.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기지국의 트래픽 시스템이 제대로 적용된 것 때문이다.

최민혁은 시범타운 서비스를 총괄하는 기지 내에서 초기 시범 서비스 결과를 보면서 만족했다.

오현종 박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최민혁 앞에 나타나서는 환호했다.

“서,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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