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43화 (543/1,021)

#543.

최민혁 실장은 숨을 죽이고 있는 기업 참석자들을 한 사람씩 쳐다보았다.

그들 중에는 원래 인생 1회 차에서 MP3를 최초로 개발하게 될, 아니, 지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MP3 개발에 성공한 세한정보시스템 당사자도 있었다.

‘저 양반이 이양구 수석 부장인가?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지. 어차피 MP3 플레이어 특허가 조각조각 나는 일까지 용납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특허료를 비현실적으로 책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초도 물량 20만 대 안팎 수량까지는 특허료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건 기업에 따라서 좀 다릅니다.]

MP3 특허풀과 관련된 비용은 생각보다는 복잡하고, 조건이 까다로웠다.

특히 오성 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허료는 액수가 상당했다. 대당 21,000원이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출이 없는 기업을 상대로 가혹한 특허료를 받지는 않았다. 이 경우는 특허료가 거의 0원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와아아!]

환호성을 터뜨린 이들 대다수가 여기에 속하는 중소기업 임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살인적인 특허료를 감수해야 할 거라 각오하고 이 자리에 나왔는데, 전혀 예상도 못 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언론사는 이미 사전에 알고 있던 내용이라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대신 환호하는 업체들의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오성 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 대부분이 여기에 속했다.

하지만 그들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MP3 핵심 특허를 포함해서 수천 건이 넘는 MP3 특허풀 가치를 고려하면 21,000원도 딱히 나쁘지 않았다.

다만 특허료를 거의 내지 않는 기업도 있다는 건 거슬렸다.

‘죽일 놈의 새끼.’

다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직 특허료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기업 상황에 따라서 특허료 할인이 진행된다. 지금 괜히 최민혁 실장에게 찍혀서 불이익을 당하고 싶은 이는 없었다.

얼핏 생각하면 이들의 태도가 이해되기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지금 시점의 MP3 산업을 봐서 그렇다.

만약 2년 후 MP3 시장을 기준으로 둔다면 매출이 어떨까?

그리고 3년 후에는 MP3 시장이 더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5년 후가 아닌 10년 후라면 그땐 천문학적인 규모가 된다.

특허료 1원도 미래 가치를 감안하면 수백억의 가치가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상황에 분노한 김현우 수석 부장은 자신의 계획을 근간부터 부수는 특허료 산정 방식에 치를 떨었다. 그는 설마 최민혁 실장이 아예 작정하고 준비를 해놓았을지는 몰랐다.

‘아니, 저런 계획을 언제부터 세운 거야?’

그런데 기자들의 분위기가 오히려 이런 최민혁 실장의 대응 방식에 손뼉을 치는 쪽이었다. 그들 역시 배포가 큰 최민혁 실장의 선물에 환호한 것이었다.

물론 약간은 선동당한 군중 같은 반응이었지만 말이다.

마치 중동 독재자 같은 얼굴을 한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방긋 웃었다.

[같이 갑시다!]

[짝짝짝!]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다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에 열광했다. 마치 독재국가에서나 볼 법한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물론 대기업 대다수 임직원들은 썩은 얼굴을 한 채 박수를 따라 쳤다.

“…….”

하지만 김현우 수석 부장은 저게 일종의 쇼라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았다.

어차피 매출이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특허료는 얼마 되지도 않는다.

진짜 특허료 수익은 20만 대를 넘어가는 시점, 즉 수출을 통해서 매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점이다. 이 시점에 가면 20만 대 매출도 60~70만 대 매출에 짧은 기간 안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결국 특허료를 내지 않았던 기업도 결국에는 그 이익을 다 뱉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규모가 합쳐진다면 그 이익은 수천억은 가볍게 넘어갈 것이다.

‘야비한 놈!’

하지만 그는 이양구 수석 부장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세한정보시스템도 외형적으로 대기업이다. 그런데 MP3 플레이어 매출만 놓고 본다면 특이 사례에 들어가서 다른 중소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들 최민혁 실장에게 열광하는 장면.

자신이 그렸던 것과는 정반대의 그림이었다.

‘빌어먹을.’

* * *

최민혁 실장의 ‘같이 갑시다!’란 기사에 일반 시민은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KM 산업이 MP3 관련 특허료를 이렇게 현실적으로 책정할지는 몰랐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KM 전자는 이 선심 정책으로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실상 MP3 플레이어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이 늘어갈수록 MP3 시장 자체가 커진다.

이 효과에 대한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KM 전자였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은 이미 에플을 통해서 KMP-02란 모델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국내 업체에 대한 MP3 플레이어 특허료 산정을 끝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만약 뒤늦게 이 문제가 드러난다면 형평성 이슈가 터진다.

그건 최민혁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MP3 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다음은 CT-2에 대해서 손을 대야 할 텐데, 어떻게 시작할까?’

* * *

최민혁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자신이 던진 미끼를 잘 물지 않자 CT-2에 대한 분위기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대안을 고민하다가 CT-2 관련 기업체뿐만 아니라 국회 감사 담당자를 망라해서 이와 관련이 있는 세력에게 자신이 쓴 보고서를 슬쩍 제보했다.

이 일련의 행보는 역시 최문경 부회장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그는 MP3 독과점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MP3 관련 업체가 모여서 KM 전자와 대대적인 소송을 벌어야 할 일이다.

적어도 최민혁의 인생 1회 차에서는 그런 식으로 진행됐던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진 셈이다.

사전에 논쟁의 소지가 있는 특허료 산정을 합리적으로 끝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은 최문경 부회장은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기가 막히네.”

민상수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특허풀 보고서를 해설해 주면서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봤다. 그는 괜히 자신이 폭탄을 뒤집어쓸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최문경 부회장은 폭발하지 않았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슬쩍 나섰다.

“제가 다시 알아본 바로는 이미 KM 전자 기획실에서 사전 검토를 다 해놓았다고 합니다.”

“사전에 준비를 다 했다고?”

“네.”

“하, 그놈은 MP3 독과점 문제를 어떻게 미리 안 것일까?”

솔직히 최문경 부회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래를 아는 게 아니고서야 최민혁의 대응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최민혁조차 인생 1회 차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

그는 기존 자료를 토대로 해서 근사적으로 대처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그 내막을 모르는 최문경 부회장은 이번에는 오히려 감탄만 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덕분에 조카 최민혁이 관심을 보인 CT-2를 심각하게 바라봤다. 그는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다면 KM 전자 문제보다는 이제 CT-2에 대해서 진지하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시작부터 몇 가지 안건이 바뀌어 있었다.

“…상황이 또 바뀐 거야?”

민상수 부장은 최문경 부회장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CT-2 관련 보고서가 외부에 흘러가면서 기업들 사이에 분위기 전환이 있었습니다. 일전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기업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무선 호출 서비스로 재미를 단단히 본 서울이동통신은 최민혁 실장의 CT-2 보고서를 보고 나서는 CT-2와 PCS 사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렸다.

연구소를 설립하고, 무선 호출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늦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막상 끼어들기에는 영 찜찜해.”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는 CT-2에 관한 최민혁 실장의 보고서를 어떻게 서울이동통신에서 얻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소스가 샐 경로는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전 솔직히 KM 전자에서 올라온 보고서가 아니었다면 CT-2 사업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잖아? 이번 국회 통신 과기위 국정감사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거야?”

“후유, 모르겠습니다.”

그도 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CT-2 시범 사업의 성과를 둘러싼 질의가 뜨거웠다.

한국통신이 지금 진행하는 CT-2 사업의 장래성과 사업성에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은 역시 CT-2 시범 장비가 낙찰 가격이 낮아서 그렇다는 싸구려 논란이었다.

결국 오성 전자나 LC 전자와 협상해서 대안을 찾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마냥 좋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CT-2에 관한 최민혁의 보고서였다.

한 의원이 이 보고서를 들고 관련 기관 당사자를 겁박했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 역시 이 방송을 보면서 헛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그는 도대체 저 보고서가 왜 국정감사장에 올라간 건지, 그 경로가 궁금했다.

“…정말 민혁이 그놈 짓이 맞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뭐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안 그래도 김현우 수석 부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오성 전자 측도 CT-2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입니다.”

돼지 이야기가 나오자 눈살부터 찌푸린 최문경 부회장은 김현우 수석 부장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았다. 독과점 문제가 해결된 마당에 더는 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CT-2에 대해서는 투자를 여전히 하잖아?”

“그거야 정부 기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TDMA나 CDMA 쪽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CDMA 쪽 분위기가 아주 달라졌습니다.”

“하.”

최문경 부회장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CDMA 쪽에 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이쪽 바닥에 대한민국 내의 모든 대기업이 다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CT-2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일단 시스템을 깔고 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겁니다. 명색이 한국 통신이 주도하는 사업 아닙니까. 더욱이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때문에 한국 통신도 다급합니다. 우리 손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이번 국정감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CT-2 사업안이었다. 다들 쉬쉬하면서도 이 사업의 미래를 좋게 본 이는 없었다.

그런데 CT-2 관련 최민혁 실장의 보고서가 나오면서 극적인 전환이 있었다. 이 보고서를 보면 CT-2 서비스의 가치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조심스럽게 발을 담가봐. 아버지에게는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아버지, 이번 구조조정은 저도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계열사 매각 대금으로 부채를 낮추는 것도 찬성합니다. 그런데 남은 돈이 제법 될 텐데, 그것을 어디에 쓸 생각입니까?”

“…….”

최용욱 회장은 난에 물을 주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번 계열사 매각 대금이 꽤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는데, 지금은 경기가 최정점을 찍었고, 거기다 KM 그룹 계열사들 대부분이 구조조정을 거친 후라서 우량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계열사를 사려는 이들은 줄을 서서 대기 중인데 팔 계열사 숫자는 딱 정해져 있다.

매각 대금은 시간이 갈수록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결국 장승일 실장은 공개입찰 방식을 검토 중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면 계열사 매각 숫자를 더 늘리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심지어 DL 그룹 김상구 회장은 대출금 이자를 줄여주겠다는 달콤한 제안까지 했다.

결국 KM 그룹 기조실에서 처음 예상한 매각 대금보다 적게는 20%, 많게는 35%까지 더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5천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시기가 아주 좋았어.’

솔직히 최용욱 회장은 자신이 실수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었다. 그는 때문에 손자 최민혁에게 몇 번이나 전화했다.

그런데 최민혁 태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할아버지,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무슨 대답을 할 것 같습니까? 가능한 계열사를 많이 매각하세요. 핵심 계열사만 남겨두면 됩니다. 그리고 KM 산업, 건설에 집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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