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33화 (533/1,021)

#533.

하지만 이런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평소와 다르지 않은 임웅 대리와 같이 인천항에 내려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문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임 대리님, 도대체 웬 뜬금없는 워크숍인지 모르겠습니다.”

임웅 대리는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도 잘 몰라.”

“에? 대리님도 워크숍에 대해서 사전에 들은 것이 전혀 없습니까?”

“내가 들은 것은 이번에 난리 난 국세청 뉴스일 뿐이야.”

“아, 그 찌라시 말입니까? 정말 최민혁 실장님이 손을 쓴 것일까요?”

임웅 대리 역시 최근 PC 통신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조사했다. 너무 구체적인 정보라서 최민혁 실장의 연루설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뭐, 일전에도 몇 번 있었잖아.”

“최훈열 전무님 말입니까?”

“그것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최민혁 실장님이 손을 쓴 적은 많으니까.”

“하긴.”

박광민 사원은 이런저런 이전 이야기를 하면서도 혀를 찼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음모론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국세청 압수수색은 결국 그 속에 추가된 사건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박광민 사원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불안감을 다소 떨쳤다.

다만 그는 목표한 도착지에 도착해서는 크게 당황했다.

바다가 코앞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워크숍 장소가 설마 인천항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정성근 대리가 먼저 와 있었다. 그는 늦게 도착한 팀원에게 손짓했다.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가리킨 것이었다.

바다란 말에 휴양지에 어울릴 만한 옷을 걸친 배종대 과장이 작은 배에 오르면서 툴툴거렸다.

“정 대리, 설마 외딴 섬은 아니겠지?”

정성근 대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조성돈 팀장에게 워크숍 일정과 관련된 지시를 받고 사전에 움직였기에 대충 내막을 알았던 것이다.

“섬은 아닙니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조성돈 팀장이 툴툴거렸다.

“배 과장, 정 대리 그만 좀 괴롭혀.”

“그래도 뭘 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영양가 없는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뜬금없이 워크숍이라니. 너무 주먹구구식 아닙니까?”

“아, 좀!”

질척거리는 배종대 과장의 행동에 조성돈 팀장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기획 팀은 어지간해서는 감정 변화를 잘 보이지 않는 조성돈 팀장의 변화에 시선을 다들 돌리고 말았다.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이곳은 확실히 바다가 맞다.

그들은 뜬금없이 이곳을 온 터라 머릿속이 좋을 수가 없다.

‘뜬금없이 워크숍이라니.’

* * *

박광민 사원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크게 실망한 채로 배에 올랐다.

다만 그런 그도 얼마 있지 않아서 눈에 보이는 요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흰색의 빼어난 호화 요트의 모습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멋지다!”

그건 그간 스트레스에 시달린 다른 기획 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 역시 뒤늦게라도 박광민 사원 덕분에 요트를 발견한 것이었다.

배종대 과장은 마음에 들지 않은 얼굴로 툴툴거렸다.

“죽이네.”

임웅 대리 역시 불만을 토로했다.

“저도 저런 요트 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룰 수 없는 환상이죠.”

선글라스로 한껏 자신을 꾸민 이정원 과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순수하게 요트의 모습을 즐기기만 했다.

“임 대리는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마. 최민혁 실장님이 다 이유가 있어서 한 일이겠지. 솔직히 국세청 압수수색만 해도 그렇잖아. 최민혁 실장님에 대한 내사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그런 일을 예상이나 했겠어.”

하지만 기획 팀은 그의 의견에 썩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임웅 대리가 푸념을 털어놓았다.

“…국세청 일도 좋고, 최문경 부회장 일도 좋습니다. 하지만 최 실장님은 너무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기획 팀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

불만이 하나 나오자 연이어서 계속되었다.

조성돈 팀장도 딱히 이 분위기를 건들지 않았다.

다만 박광민 사원은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배가 계속 요트를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 설마 지금 제 생각이 진짜는 아니겠죠?”

“아니, 진짜야.”

배종대 과장은 당황해서 이번 워크숍 일정을 사전에 검토한 정성근 대리를 쳐다보았다.

“야, 정 대리.”

정성근 대리는 어깨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목적지는 바로 저 요트입니다.”

“뭐야? 설마 워크숍 장소가 저 요트였어?!”

“네!”

“……!”

기획 팀은 입을 딱 벌린 채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조성돈 팀장 역시 우아한 자태의 요트 모습에 혀를 찼다.

“나도 말은 들었지만, 자세한 것은 몰라. 다만 최근 최민혁 실장님이 요트를 대여했다는 것만 아니까. 물론 이 요트를 사들일 예정이고, 용도는 회사 임직원 복지라고 했어.”

배종대 과장은 여전히 믿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니, 직원 복지로 초호화 요트를 마련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다만 저 요트가 단순히 임직원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들은 조성돈 팀장은 굳이 그 내막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 * *

KM 요트는 화려했다.

실내 장식을 새로 했기 때문이다. 복합 소재를 사용한 터라 안정성이 비약적으로 강화된 것과는 별도로 디자인 역시 한 단계 나아졌다.

최민혁이 먼저 사용했을 때보다는 인장 강도 역시 대폭 좋아졌다.

배 외형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 내부가 더 많이 바뀌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화려한 내부 디자인은 할리우드 배우라고 해도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배가 단순히 임직원 복지용이라니.

배종대 과장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는 50인승 요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수영, 낚시, 심지어 일광욕까지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 요트의 가장 큰 매력은 최고의 요리였다.

전문 주방장이 마련해 놓은 뷔페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 그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단순히 맛에서 끝나지 않았다.

희귀한 송로버섯 요리는 유럽 3대 진미 중의 하나인데, 이 요리 역시 전시되어 있었다.

거위의 간으로 만든 푸아그라.

배종대 과장은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주, 죽인다!”

프랑스 최고 요리답게 부드럽게 그 향이 일품이었다.

배종대 과장을 본 다른 기획 팀원들도 허겁지겁 맛에 푹 빠졌다.

근엄한 조성돈 팀장 역시 슬그머니 팀 행렬에 끼어들었다.

그는 상어 지느러미 요리인 샥스핀을 맛보고는 한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금사연이라는 바다제비 요리 맛을 보고는 눈을 감고 말았다.

최민혁에 대한 불평불만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최 실장님이셔!”

오히려 최민혁 용비어천가가 다시 기획 팀원들 입에서 나왔다.

그나마 배종대 과장은 결국 입을 쿡 다무는 데서 그쳤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조성돈 팀장은 좀 달랐다. 그는 이곳이 일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손뼉을 쳐서 벌써 음식을 즐기고 있는 임직원들을 환기시켰다.

“자자, 일단 먹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여기 놀러 온 것은 아니니까. 명심하고.”

“…아, 알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음모론을 이야기할까 고민하던 배종대 과장은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다른 기획 팀 임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새삼 최민혁 실장의 배포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고 그들이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을 잊지는 않았다.

‘아무리 봐도 국세청 강상혁 조사국장을 날려 버린 사람은 최민혁 실장님이 맞아.’

* * *

분위기가 좋으면, 막힌 어떤 일도 잘 풀리게 마련이다.

그건 KM 전자 기획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초호화 요트에서 워크숍인지, 휴가인지 모를 이벤트를 즐겼다.

덕분에 MP3 독과점, CT-2와 관련해서 꽤 다양한 의견을 도출했다.

다만 이들은 요트에 너무 푹 빠진 덕분에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CT-2 안건 역시 꽤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CT-2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은 것이다.

최민혁은 그 보고를 받자 꽤 만족했다. 물론 사장할 기획안이지만 내용은 정말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조성돈 팀장에게 추가 지시를 내렸다.

“장 실장에게 기획안을 올려보세요.”

“자, 장승일 실장님 말입니까?”

“그럼요. 이거 새로운 신사업 아닙니까. 계열사인 KM 전자가 신규 사업을 구상하는데, KM 그룹 기획 조정실의 사전 허락을 받아야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최민혁은 씩 웃었다.

“일단 다른 것을 떠나서 기획 조정실에서도 CT-2 사업에 대해서 충분한 검토를 했을 겁니다. 그 정보 역시 필요합니다. 이중 삼중 사전 검토를 거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 KM 전자는 기획 조정실과는 선을 그었지 않습니까?”

“모든 일은 원칙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KM 전자는 이미 KM 그룹과는 완전히 계열 분리가 끝났다. 따라서 과거처럼 KM 그룹 기조실에 자문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대부분 사업은 다 따로 처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KM 그룹에 자문한다니.

조성돈 팀장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최민혁 실장의 음흉한 눈빛을 보자 반박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조 팀장님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일을 진행해 보세요.”

“실장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좀 걱정이 됩니다. 다른 주제도 아니고, 민감한 통신사업입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그냥 있지 않을 텐데요?”

최민혁은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그게 제가 원하는 그림입니다.”

조성돈 팀장은 잠깐 고민했다. 그는 최민혁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알았다. 다만 한 가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한 가지는 확인해야 했다.

“시티폰이 정말 망하겠습니까?”

“200% 망합니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없겠습니까? 솔직히 기획 팀 내에서도 이 부분만 가지고는 말이 많습니다. 아니, 실상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최민혁은 잠깐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따가운 시선에 조성돈 팀장은 슬쩍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사업 타당성 검토를 하는 부서가 기획 팀 아닙니까. 그런 질문을 저에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기획 팀에서 검토해야지.”

“…알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기가 팍 죽은 조성돈 팀장이 사무실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김명준 과장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질문했다.

“도대체 이번 일은 실장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CT-2가 쫄딱 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당장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공기업인 한국 통신이 미는 사업이다. 이게 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이다.

“김 과장님, 내기할까요?”

“…아닙니다.”

“한번 두고 보세요. 세상일을 다 알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저도 자세한 흐름까지는 모릅니다.”

진짜다.

큰 판을 만든 것은 최민혁 실장 자신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이 어떤 식으로든지 이 미끼를 물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를 엮어서 후계자 구도에서 낙마시키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 외에 이왕이면 DL 그룹과, 한부 그룹이 같이 엮여서 다 망하면 가장 이상적이지.’

* * *

최민혁 실장에게 다시 지시를 받은 조성돈 팀장은 이 워크숍이 끝나기가 무섭게 KM 그룹 기획 조정실 장승일 실장에게 이 자료를 정식으로 넘겼다.

장승일 실장 처지에서는 조금 뜬금없는 보고안이었다.

그는 지금도 뉴스만 틀면 나오는 강상혁 조사국장 소식에 머리가 아픈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시국에 조성돈 팀장이 올린 보고서.

‘최 실장님 뜻일 텐데, 영문을 잘 모르겠어.’

결국 기조실 직원을 전부 불러 모았다.

당연히 구길모 차장이 반론을 제시했다.

“CT-2라면 한국 통신에서 미는 통신 사업 아닙니까. 설마 최민혁 실장님이 이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뜻입니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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