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24화 (524/1,021)

#524.

“최해진 본부장의 부친 최상현 비서실장이 이번 증여로 받은 주식이 한부 철강 150만 주에, 상명제약 2만 주였습니다. 결코, 작은 지분이 아닙니다. 아마 그는 아직 한부 그룹을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최문경 첫째 큰아버지를 정략결혼으로 엮은 것이니까. 어쩌면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그런 점을 잘 파고든 거죠.”

“…설마 한부 그룹이 우리 KM 그룹을 이용해서 유리한 고지를 찾으려 한다는 소리야?”

“정확히는 KM 그룹이 아니라 KM 전자일 겁니다. 우리 회사 브랜드가치가 많이 바뀌었는데, 아마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겠죠.”

‘최문경 부회장이 실제로 그랬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최용욱 회장은 고심에 잠겼다. 최민혁 말대로 상대가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면 자신도 이용하면 될 뿐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X 리포트의 진실도 한번 살펴보고 싶었다. 정말 X 리포트의 예언대로 돌아가는지 말이다.

그것만 확인하면 X 리포트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알겠다. 그리고 조언 고맙구나.”

“할아버지 호출이라면 언제라도 와야지요. 그리고 AD 설계를 인수하는 것은 잘한 판단입니다. 영란 누나에게 한번 일을 맡겨보세요. 푼수 같은 성격이 나빠 보이면서도 사람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으로는 나쁘지 않으니까.”

“…그래. 알겠다.”

최용욱 회장은 조용히 필요한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 버린 최민혁 실장의 뒷모습을 보다가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저 녀석이 확실히 많이 달라졌어. 이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구나.’

“장 실장 생각은 어때?”

“한부 그룹 말입니까?”

“아니, 민혁이 저놈 말이다.”

“최 실장님 능력은 굳이 제가 평가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최 실장님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인맥만 봐도 최 실장님 그릇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최용욱 회장은 쓰게 웃고 말았다. 그가 올해 들어서 한 가장 최고의 선택은 최민혁을 KM 전자 기획실장에 앉힌 것이다.

그가 그렇다고 아들 내외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참 문경이 그놈은 요즘 뭐 해?”

“한부 그룹 최명진 회장을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만 정부도 딱히 최민혁 실장님을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란 겁니다.”

“민혁이는 깨끗하지 않아?”

“그렇긴 합니다. 마약이나 여자는 전혀 손에 대지 않으니까요. 다만 이전과는 생활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굳이 말하면 돈이 많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아, 에플, 퀄컴 주식이군.”

“네, 잘 아시겠지만 당장 에플 주식 가치만 해도 상식을 벗어난 수준입니다. 지금까지는 회장님이 손을 써서 어떻게 잘 넘어갔지만, 이제는 감추기 어렵습니다. 욕심 많은 정부 관료가 그냥 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과 다르게 최문경 부회장은 자기 아들이기는 하지만 좋아할 구석이 없는 자식이었다.

“…민혁이가 잘 처리할까?”

장승일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지금 당장은 최민혁 실장님을 건드리기 어려울 겁니다. 아마 사찰은 열심히 할 테지만 그래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겁니다.”

“하긴.”

최용욱 회장도 새삼 최민혁이 자본금을 모은 과정을 떠올리면서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 * *

최민혁의 자산 축적 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나왔다.

언론 역시 최민혁 실장을 계속 띄우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최민혁 실장의 어두운 구석을 계속 파고들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는 바로 상속세에 관한 것이다.

수조의 자산가가 된 최민혁 실장이 낸 상속세는 믿을 수 없게도 고작 25억에 불과했다.

최문경 부회장조차 이 부분은 최민혁의 능력을 인정하기는 했다. 그는 안 그래도 KM 그룹 내에서 들려오는 최용욱 회장의 움직임 때문에 잔뜩 긴장했다.

“최 회장님, 일이 잘될지가 걱정입니다.”

최명진 회장은 요즘 들어서 똥 마른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최문경 부회장의 행동에 혀를 찼다.

“모든 일을 서둘러서 할 수는 없는 법이네. 자네가 한 부탁은 잘 진행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 다만 괜찮겠어? 만약 자네 조카 최민혁 실장이 진실을 안다면 반발이 있을 텐데?”

“지금 당장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명진 회장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최민혁 실장을 정말 부담스러워하는군.’

그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한창 뜨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 큰일을 최민혁 실장 혼자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이 뒤에서 밀어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일 거야. 다만 그것 역시 KM 전자 내의 뛰어난 인재의 조언을 받아서 이룩한 성과이겠지. 하긴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하지.’

최명진 회장은 잠깐 고민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주었다.

“국세청의 특별조사실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거네. 이 일은 한때 진행되고 마는 일이 아니야. 원래부터 최민혁 실장을 지켜봤으니까.”

“…역시 상속세 때문입니까?”

“그렇지. 솔직히 25억은 너무했잖아. 그 친구가 들고 있는 KM 전자 주식 가치만 해도 조 단위는 가볍게 넘어가. 이게 말이 돼?”

“…….”

최문경 부회장은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탁을 쉽게 들어주는 척하는 최명진 회장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혁이의 자산을 노리는 것 같은데, 후유, 어쩔 수 없지. 이 인간이라면 최소한 민혁이 그놈을 녹아웃 시킬 수는 있을 테니까.’

그는 물론 자기 내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시 자세를 낮추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부는 덤이다.

최명진 회장은 최문경 부회장의 그 태도가 마음에 무척 들었다. 그 역시 KM 전자가 욕심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다만 이제까지 그가 KM 전자에 끼어들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최문경 부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 그 친구가 보통이 아니더라도 특별 세무 조사를 한번 받아보면,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 알게 될 거야.’

* * *

한부 그룹의 최명진 회장은 생각보다 정부 쪽에 아는 라인이 많았다.

국세청 역시 빼놓기는 어렵다.

그가 최민혁과 관련해서 부탁한 부서가 바로 이동빈 자산과세 국장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국세청에서도 크게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들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이 자산을 불려가는 속도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때 이후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자료를 꾸준히 모았다.

그런데 당시 뭔가 하려고 했을 때는 다시 한번 덩치를 키웠고, 이거 보통이 아닌데라고 생각할 때는 이미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그 이후로도 급격하게 덩치를 키우는 바람에 이제는 그냥 멍하니 최민혁 실장 행보를 쳐다보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빈 국장은 최명진 회장의 제안을 받아서 정부의 다른 부서에도 도움을 청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게 딱히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막상 최민혁 실장이 자산을 불려간 과정이 너무 투명했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것은 고작 10억에 불과한 종잣돈으로 시작해서 조 단위의 재산을 만들었다는 거다.

그 현황 차트를 보자 이동빈 국장은 눈만 끔뻑거렸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내사와 관련해서 모인 국세청 직원들을 쳐다보았다.

“…야, 저거 진짜야?”

평소에 감정 표현을 드러내지 않는 임종건 감사관조차 탄식했다.

“…지금 봐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도대체 10억으로 어떻게 채 1년이 안 되어서 수조가 넘는 자산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나마 최민혁 실장에게 반감을 품은 윤종신 소비세과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자료를 조사한 특별조사실 임직원들을 쳐다보았다.

10명의 특별조사실 실무진은 다들 크게 당황했다. 그들 역시 조사를 하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상식적으로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주가 조작도 고려해서 남부지검 전문가도 이 자리에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다들 입을 쿡 다문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내사가 있다는 것은 이곳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최민혁 실장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확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국세청의 윗선에서 암묵적인 허락도 있었고 말이다.

이동빈 국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직접 관련 서류를 살폈다. 노트북에 정리된 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설마 서류를 조작한 거야?”

특별조사실을 대신해서 윤종신 소비세과장이 대답했다.

“조사 결과는 수차례 확인을 거쳤습니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작업한 자료라서 이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윤 과장,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아니, 어떻게 10억으로 2조, 아니, 6조나 되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가 있어?!”

정확히는 6조가 아니었다. 사실 KM 전자 계열사 지분을 다 합치면, 현실성이 없는 숫자가 나온다.

“…….”

윤종신 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에 최민혁 실장을 잡아야 한다는 의욕을 가졌던 특별조사실 직원들은 다들 자라처럼 입을 쿡 다문 채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다행히 이들을 구해줄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정보통신정책실 이원한 실장이었다. 그도 윗선의 지시를 받고 이 자리에 왔지만, 회의 내용이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신이 나갔군. 아, 나에게 자문하는 것을 봐서는 그건 또 아니겠어.’

이원한 실장은 회의실 참석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이동빈 국장 맞은편에 앉았다.

“뭘 알고 싶은 거야?”

“정보통신부는 최민혁 실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잖아. 그래서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해. 너도 알다시피 최민혁 실장의 자산 형성 과정은…….”

“천재야. 아니, 천재 그 이상의 존재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원한 실장은 오큘러스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CDMA 연구 과제까지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면밀하게 지켜봐서 누구보다 최민혁 실장을 잘 알았다.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최 실장은 불법으로 주가 조작을 한다든지 해서 돈을 벌 이유가 없는 사람이야. 자기 머리를 굴리면 돈은 마음대로 벌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게 무슨…….”

“그래 이해하기 힘들겠지. 저 자료를 보고도 믿지 않고 있으니까.”

바로 최민혁 실장의 재산 차트다. 차트만 보면 실로 황당한 결과만 나왔다.

돈이 그냥 풍선처럼 쭉쭉 덩치를 키워서 이제는 산처럼 커졌기 때문이다.

이원한 실장은 좀 답답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회의 참석자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세청 직원들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이거, 직권남용인 거 알아?”

“그게 무슨 소리야.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고 나왔어. 우린 그 정보를 토대로…….”

“아, 그러니까. 그게 근거가 있는 사실도 아니잖아. 만약 내사한 사실을 최민혁 실장이 알면 어쩌려고 그런 거야?”

“…….”

이동빈 국장은 그제야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늘 국세청에서 갑 행세를 하다 보니,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간과해 버린 것이다.

“이 친구야, 조심해. 최민혁 실장이 가진 돈 일부만 뿌려도 수십 명의 전관 변호사를 고용해서 국세청을 상대할 수 있어. 실제로 그렇게 소송전을 벌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설마 그렇겠어?”

이원한 실장은 힐끗, 회의 참석자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쳐다보았다.

“이 친구들 입이 다 무거워? 정말 저 친구들이 5억씩 제안을 받거나, 아니면 KM 전자 법무 팀에 스카우트되면 비밀을 지킬까?”

회의실 분위기는 북극한파처럼 싸늘하게 변했다.

막상 최민혁 실장을 잡으려는 의욕이 앞서서 정작 기본적인 것을 망각한 것이다.

이원한 실장은 오큘러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최민혁 실장이 보였던 믿기 어려운 몇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최민혁 실장은 도대체 무궁화 위성 문제는 어떻게 찾은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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