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21화 (521/1,021)

#521

조성돈 팀장은 힐끗 최민혁의 눈치를 봤다. 최근 최민혁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때문에 KM 전자 본사 역시 빡빡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최민혁은 이미 어느 정도 판을 깔아놓았다고 판단했기에 세세한 것까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인생 1회 차를 산 인물이다. 추측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기대되는군요.”

“최병연 이사님도 스티븐의 리더십에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아마 이번 일을 통해서 최병연 이사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 미국에 간 다른 연구 팀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소프트웨어에 손을 댄다는 것입니다.”

“OS 말입니까?”

“네, 그것도 KMP-02와 같이 연동해서 대폭 수정했는데, 그것 때문에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스티븐은 마치 벨린 소프트 임직원을 에플 계열사 직원인 것처럼 다룹니다.”

최민혁은 자신이 스카우트한 세 사람의 천재 엔지니어를 떠올리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내버려 두세요. 솔직히 벨린 소프트 기술 원주인도 스티븐이니까.”

“네?”

최민혁은 놀라는 조성돈 팀장을 보았다.

“이번 에플, 퀄컴과의 업무 협조를 통해서 KM 전자도 변해야 할 겁니다. 이제는 단순히 국내 시장만을 노리는 내수 기업 직원이 아니라 글로벌시장을 공략해야 할 임직원이 되어야 하니까.”

“…차라리 스티븐 통해서 제대로 배우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군요.”

“그런 셈이죠. 우리 KM 전자는 기본적으로 내수기업입니다. 마케팅이나 영업과 같은 조직 역시 이런 타성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그런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단순히 교육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경력 직원을 채용하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요?”

최민혁은 잠깐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쉽게 가려면 방법은 많았다. 그럼에도 굳이 번거롭게 사내 교육을 강화해서 기존 인력을 써먹는 이유가 있다.

“기존 직원을 부속품처럼 쓰다가 폐품 처리 하게 되면 과연 임직원이 회사를 믿고 다니겠습니까? 언제라도 노선을 갈아탈 겁니다. 필요하다면 회사 기밀을 빼돌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런 경우 꼭 배신한 임직원을 탓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만…….”

조성돈 팀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민혁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지 않은 터라 귀를 기울였다.

최민혁도 굳이 더 자신의 경영 철학을 숨기지 않았다.

“강성 노조의 본질은 아주 간단합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직원끼리 뭉쳐서 쟁의 행위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불안을 없애준다면, 그런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에 치우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상론 맞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해요. 기존 임직원에게 평생직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면 그들의 노동생산성은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사실 효율 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때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래도 말 안 듣고, 정치질을 하는 직원은 퇴출해야 합니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눈치 빠른 조성돈 팀장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따지고 보면 최민혁이 임직원에게 퍼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철저한 계산하에 진행하는 일이고, 혜택을 준 만큼 뽑아먹을 생각이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매우 놀라서 최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도 최민혁에게서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슬쩍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말입니다. 공장에 가 있는 신입 사원들의 분위기는 어때요? 320명 직원 중에 현재 그만둔 직원은 없나요?”

“아, 다행히 그만둔 직원은 없습니다. 지금은 다들 현재 자리에 만족한 상황입니다.”

“그건 신기하네요. 그룹 공채로 뽑은 인력이니, 다들 프로필은 빵빵할 텐데, 아무런 불만도 없이 공장에서 계속 단순 조립만 한다는 말입니까?”

“…네.”

조성돈 팀장도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심한 처사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봐서는 최민혁도 아예 이들을 잊고 있는 눈치였다.

그는 내심 이 부분이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도 좋아서 한 일은 아니다.

그가 자기 사람을 뽑을 때의 기준은 인생 1회 차 기억이다.

그런데 이 기억에 없는 이들이 꽤 많다.

일테면 영화 속에서 한 번 나오고 마는 엑스트라들이다.

결국 최민혁은 이들 중에 믿을 만한 친구를 골라야 했다.

그 방법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단순 무식하게 힘든 시련을 내주고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320명 중에서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다는 것이다.

조성돈 팀장은 그 이유를 잘 알았다.

“에플과 퀄컴 인수 이후에 우리 회사의 인지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에플과 퀄컴 주가가 요동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인재들도 많이 노크하는 중입니다.”

그러니 그룹 공채로 운 좋게 들어온 신입 사원들은 그저 회사에서 퇴출당하기 싫어서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다 한 것이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군요.”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검증된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우리 회사 가치가 좋다고 해도 단순 조립 공정만 하는데, 버티는 친구는 잘 없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죠.”

‘사실 앞으로 벌일 일은 직원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 해. 괜히 정보가 누출될 바에는 차라리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

한창 앞으로의 일 때문에 고민하던 최민혁은 뒤늦게야 최용욱 회장의 호출을 비서에게 들었다.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자신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은 아니니까.

결국 다른 핑계를 만들었다.

“일정 때문에 할아버지에게는 바쁘다고 하세요.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이틀 후에 공장 방문 일정을 한 번 잡아보세요.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 *

강준석 팀장을 제외한 320명의 임직원들 역시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그들은 홍보 팀, 기획 팀을 비롯한 각 전문 부서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안산 공장에 처박혀서 생산직처럼 죽으라고 일만 했다.

더욱이 주문 물량이 얼마나 많은지 생산이 끊이지 않았다.

2교대, 3교대로 돌려도 말이다.

결국 부족한 인원은 임시직으로 때웠다.

320명의 신입 직원은 이들 임시직과 같이 공장에서 굴렀다.

시간이 지나면 좀 바뀔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노동 강도만 올랐다.

KMP-01, 콜린스뿐만 아니라 스피커 사업부 쪽 생산도 지원해야 했다.

김정현이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서서히 불만을 토로하는 동기를 선동하려고 했다.

실제 그의 노력은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때 터진 것이 바로 에플 인수에 이어서 퀄컴 인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조정이다.

황당한 것은 합병 이후에 에플 주가가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CDMA 사업부가 에플 주가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KM 전자는 이전과는 격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김정현의 선동에 놀아난 임직원들의 태도가 바뀐 것은 이때 이후다.

그들도 처음에는 갈팡질팡했지만,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유심히 살피고서야 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결국 주목한 것은 묵묵히 위의 지시에 따라서 소극적인 행보만 하는 권우영이었다.

이미 신입 사원 교육 때 두각을 보이던 강준석 팀장의 팀원이다. 그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 해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김정현은 결국 외톨이가 되었다. 황당한 것은 그도 쉽게 KM 전자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는 권우영이 자신을 따르는 동기들을 데리고 마치 조폭처럼 몰려다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영, 너도 어지간하다.”

“또 시비냐?”

덩치가 큰 권우영이 눈을 위협적으로 부라리는 모습에 김정현도 움찔 몸을 떨었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식판을 쳐다보았다.

다시 눈치껏 권우영 모습을 봤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뭐, 또 수작 부릴 생각이잖아.”

그의 한마디 말이지만 효과가 있었다.

김정현의 선동에 놀아나서 선을 넘을 뻔했던 임직원들은 다들 김정현을 차갑게 쳐다보더니, 밥맛이 없다고 변명하면서 우르르 일어나서 식당을 나가 버렸다.

김정현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자신이 선동할 때 그렇게 시키는 대로 잘 따르던 놈들이 이제는 다른 소리를 하니까.

“…내 제안을 잘 생각해 봐. 이 회사가 겉으로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 한 꺼풀만 벗겨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뉴스를 보기는 보냐. ETRI에서 진행하는 CDMA 연구가 이미 상업화 단계를 넘어섰다는 소리도 있어.”

“그게 다 과장된 뉴스란 말이야.”

하지만 권우영은 생각보다 이곳저곳에서 꽤 많은 정보를 들었다. 그들 중에는 강준석 팀장도 빼놓을 수 없었다.

“네가 불쌍해서 한마디만 해줄게. 이미 내부적으로 CDMA 상업화와 관련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실 내일 당장 시범 서비스를 해도 괜찮을 정도야.”

“설사 그렇다고 해도…….”

“너 진짜 머리가 나쁜 거냐? 아니면 고집이 센 거냐. 아니, 이동통신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그 시장 파이가 얼마나 클 것 같아? 그런 사업의 원천기술 40%의 지분을 쥐고 있는 것이 우리 회사야. 수익성이 얼마나 클 것 같아?”

“…….”

김정현은 결국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이동통신 사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그런데 자신은 아니었다. 더욱이 이곳 안산 공장에서 KMP-01을 죽어라고 양산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 KMP-01은 단순히 MP3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덩치만 키운다면 모바일폰이 되니까.

다만 그러자면 필요한 것이 바로 원천기술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인수한 기업은 알게 모르게 이와 다 연결되어 있었다.

사실 김정현도 안산 공장에서 죽으라고 구르지 않았다면 그 본질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때서야 최민혁 실장이 보통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깨달았는데, 최민혁이 그냥 마구잡이로 한 지시는 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세력을 일구어 뭔가 해보려고 했다. 최문경 부회장의 도움을 얻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려웠다.

안산 공장 임직원들이 모두 자신을 감시하기 때문이었다.

권우영은 이런 김정현의 내심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김정현이 선동질하면서 떠든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제발 밥 먹을 때는 내 근처에 오지 좀 마라.”

그는 기분이 김정현을 차갑게 쳐다본 후에 식판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빌어먹을 새끼.”

권우영은 김정현의 상판을 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요?”

“아, 기분 나쁜 새끼가… 어, 시, 실장님?”

깜짝 놀란 권우영.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조차 최민혁 실장과 수행원을 앞에 두고는 화들짝 놀라서 허리를 숙였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그 어디에서도 억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슬쩍 눈을 들어서 요즘도 핫하게 뉴스에 나오는 최민혁 실장의 모습을 살폈다.

최근 최민혁 실장 명성이 오르면서 각종 관련 뉴스에서도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동 통신 사업과 관련된 과학 기술 뉴스에서는 단골손님으로 빠지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또 나오는 것은 역시 에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의 투자 성과다. 에플 주가가 벌써 4달러를 돌파한 이후에 최민혁 실장을 숭배하는 이들조차 나왔다.

그들도 과거에는 최민혁 실장을 까기에 바빴지만, 지금은 노선을 갈아타서 열렬히 최민혁 실장을 지지했다.

그러니 그들이 최민혁 실장을 마치 우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최민혁 실장은 묘한 분위기를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었는데도 신입 사원의 눈에서 직접 확인하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아, 무, 물론입니다.”

권우영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따가운 동기의 시선을 받으면서 허겁지겁 최민혁의 뒤를 따랐다. 그로서는 갑작스러운 이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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