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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13화 (513/1,021)

#513.

덕분에 회선 데이터와 패킷 데이터는 더 복잡해졌다.

이 영역을 전부 할당하면서 시스템 구조가 달라진 것이다.

권태성 기획실장조차 이 부분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데이터 패킷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군요. 당장 음성 처리도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ETRI 측에서 왜 굳이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든 겁니까?]

원명섭 실장은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김현우 수석 부장을 힐끗 쳐다본 후에 입을 열었다.

[ETRI 측에서는 음성 못지않게 데이터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문자 메시지 이상을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흠.]

음성 서비스가 걸음마 단계인 CDMA 서비스에서 데이터 서비스를 같이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아직 CDMA 서비스조차 개발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런 문제를 타박하지 않았다.

그는 원명섭 실장에게 CDMA 서비스 관련해서 최민혁 실장을 만나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출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인가?’

아니, 물론 이것은 소소한 한 가지 문제일 뿐이다.

뒤를 이어서 나오는 CDMA 시스템 강연은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CDMA 회선 데이터 서비스망 구성에서 각각의 프로토콜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ETRI 측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서 각 영역을 정했습니다.]

20ms라는 한계를 넘지 않기 위해서 망을 최적으로 구성했다.

그 덕분에 구조가 생각보다는 복잡해졌다.

놀라운 것은 ETRI 측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법까지 내놓았다.

다만 그 구조가 생각보다는 너무 복잡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기획실 직원은 다들 질린 얼굴이었다.

그들은 권태성 기획실장이 왜 이 자리를 만들었는지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수긍할 수 없었다.

권태성 기획실장도 회의실 분위기를 알면서도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기획실 직원이 한 가지 사실을 꼭 알도록 하고 싶었다.

[하면 원 실장님은 이번 일을 주도적으로 지휘한 이가 ETRI 오현종 박사가 아니라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까?]

[오현종 박사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제야 분위기가 바뀌었다.

[저게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ETRI 측에서 내놓은 자료가 모두 최민혁 실장 손을 거쳤다는 소리야?]

[아니, 그게 가능해? 난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지방방송은 끝없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의혹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나름 난다 긴다 하는 오성 전자 기획실에 있는 유능한 임직원조차 알아듣지 못한 외계어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라니.

그들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저기 원 실장님, 아무리 그래도 최민혁 실장이 이 시스템 전체를 설계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최 실장님을 직접 만나볼 생각이니까.]

그는 이런 자리를 만들어서 굳이 간단한 일을 이렇게 만든 권태성 기획실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을 팔짱을 한 채 따가운 기획실 임직원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언론에서 늘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많아. 하지만 우리 기획실 직원까지 그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는 곤란해. 그래서 원명섭 실장님을 초청해서 이 강연을 한 것이니까. 이 점을 명심하고 업무에 임해!]

그때 뒤에서 몰래 기회를 노리던 김현우 수석 부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KM 전자의 STB 사업부나 위성 사업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STB 사업부는 제가 책임자였으니, 누구보다 잘 압니다. 가치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우리 오성 전자가 사업부를 인수할 정도로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그게 모두 최민혁 실장이 손을 댄 이후에 생긴 일입니다!]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갑자기 난입한 김현우 수석 부장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딱 한마디로 최민혁 실장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했다.

그런데 그의 말을 심각하게 여기는 이들이 좀 있었다.

특히 오성 전자의 위성 사업부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큘러스 프로젝트 때문에 안재운 황태자가 그룹에서 제대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권태성 기획실장이 손을 들어서 일단 강연을 끝내 버렸다.

다들 나가면서도 김현우 수석 부장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오성 전자 내에서도 늘 말이 나오는 왕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현우 수석 부장은 당당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 역시 김현우 수석 부장과 말 한마디 섞기가 부담스러웠다. 괜한 말을 했다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을 것 같았다.

그는 김현우 수석 부장이 아직도 오성 전자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것에 새삼 최민혁 실장이 한 짓을 떠올리면서 혀를 내둘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민혁 실장은 막대한 수익도 올리고, 초대형 폭탄을 오성 전자 내에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여러모로 참 대단한 사람이다.’

“무슨 일입니까?”

부드러운 말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높이는 어투도 포함되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이 그만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현우 수석 부장은 권태성 기획실장 태도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 KM 전자와의 미팅에 저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

“김 수석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야.”

“아닙니다.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하자면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이번 일이 그냥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 일은 모두 최민혁 실장이 깔아놓은 판입니다. 오성 전자가 먼저 나서게 만든 겁니다. 그래야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네 사정은 내가 아는데, 내가 자네 말을 믿어야 하나?”

“전 최민혁 실장과 맞붙어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비록 오성 전자로 떠밀려 오기는 했지만, 누구보다 최민혁 실장을 잘 압니다. 제가 옆에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준비한 꼼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흠.”

권태성 기획실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로는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김현우 수석 부장의 지적이 마냥 틀린 건 아니었다. 그게 그가 지금까지 오성 전자에 여전히 잘 붙어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최민혁 실장의 리스크가 커질수록 최민혁 전문가가 필요했다.

오성 전자 내에서도 최고의 전문가는 다름 아닌 김현우 수석 부장이었다.

그는 순간 많이 고민했다.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당장 나가라고 말하지 못한 것도 감 때문이다.

그때 떠올린 것은 전략 기획실이 한 짓이다.

그 자신을 토사구팽 하려고 한 것 말이다.

그 일 역시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없던 일이 되었으니까.

그 당시에 방패막이가 있었다면, 상황을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나라고 못 할 건 없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총대를 멜 사람.

일반 임직원은 어렵지만, 김현우 수석 부장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그를 자른다고 해서 다른 임직원이 동요하기는커녕 되레 손뼉을 칠 일이니까.

그는 힐끗, 영문을 몰라서 눈만 끔뻑이는 원명섭 실장을 쳐다보았다.

“몇 사람이 더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상관없습니다. 가만 권 실장님도 동행할 생각입니까?”

“CDMA 사업은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빠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에게 인사도 할 겸 해서 가볼 생각입니다.”

“아, 최 실장을 잘 아십니까?”

“글쎄요. 잘 안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 몇 가지가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MP3 특허권이니까.”

“아, MP3 개발도 할 생각이군요.”

“이미 개발에 착수한 지는 오래입니다. 다만 특허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들이밀면 최민혁 실장이…….”

김현우 수석 부장이 냉큼 끼어들었다.

“최민혁 실장은 우리에게 MP3 특허료로 무지막지하게 뜯어낼 겁니다.”

“흠.”

권태성 기획실장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예상한 바다. MP3 특허료 협상 때문에 최민혁 실장을 떠올릴 때는 반드시 갈등했다.

아니, 솔직히 최민혁이 무서웠다.

얼마나 오성 전자에게서 돈을 뜯어낼지 말이다.

원명섭 실장 역시 눈치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는 굳이 기획실 업무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CDMA 사업부 하나만으로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다만 권태성 실장도 최민혁 실장을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힐끗 김현우 수석 부장을 쳐다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우리 기획실은 시간을 두고, 늦게 회의실에 들어갈 겁니다. 사전에 적당히 같이 방문한 일행이 있다고 말을 좀 해 두면 좋을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쾌재를 부르는 김현우 수석 부장의 모습을 봤지만, 딱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제발 자신의 선택이 맞기만을 바랐다.

‘어쩌면 괜찮은 대안일 수도 있어. 김현우 수석 부장이 최민혁 실장을 흔들어놓는다면 파고들 틈은 많아질 테니까.’

* * *

원명섭 실장도 권태성 기획실장의 반응을 보자 생각을 달리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았다.

언론을 통해서 나온 최민혁 실장 이야기는 황당한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특이한 점은 역시 어린 나이다.

올해가 지나면 이제 21살인 최민혁이다.

대학교 2학년이다.

아니, 연초에 휴학계를 냈으니, 아직도 대학교 1학년이었다.

“…….”

KM 그룹 본사에서 만난 최민혁에 대한 첫인상은 딱 한 가지다.

‘정말 어리구나.’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매사 일을 할 때는 까칠한 조영준 실장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사람 다 대기업 연구실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 내에서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였다. 그런 그들이 자기 아들보다 어린 최민혁을 보자 말을 잃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나타난 오영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은 그 모습에 환대하면서도 최민혁 눈치를 계속 보고 말았다.

최민혁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이번 일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오큘러스 프로젝트 때와는 또 달랐다.

오성 전자 중앙 연구소 CDMA 사업부를 책임진 원명섭 실장은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권태성 실장이 한 이야기는 실장님 모습의 일 할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뭐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도 이번 일 때문에 기획 팀과 계속 미팅을 하는 중에 최 실장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최민혁은 머쓱해서 웃고 말았다. 권태성 기획실장과는 사이가 좋다고 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뒷담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문형섭 부사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두 분도 아마 최 실장의 능력에 대해서 놀랐을 겁니다. 이제까지 KM 전자가 한 모든 일은 최 실장 손을 거쳤으니까.”

원명섭 실장은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면 에플 인수도 최용욱 회장님이 손을 쓴 것이 아니라…….”

“네, 최 실장이 알아서 다 한 겁니다. 최용욱 회장님은 이제까지 KM 전자 내에 간섭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KM 전자 오너가 최 실장님입니다. 최용욱 회장님이 간섭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오영근 사장은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원명섭 실장은 믿을 수가 없는 눈으로 최민혁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자신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현종 박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차피 이번 CDMA 시스템 발표는 최민혁 실장님이 할 겁니다. 그 강연을 들어 보면, 이 일을 최민혁 실장님이 주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최민혁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는 굳이 강연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오현종 박사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어차피 이번 CDMA 연구를 총감독한 분이 오현종 박사님이니까.”

오현종 박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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