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오현종 박사도 이 부분에서는 의아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그런 의문을 가져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최민혁 실장님은 세기의 천재입니다. 우리와는 격이 다른 천재입니다.”
“…….”
“…….”
두 사람은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다. 그들이 아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 최민혁 실장이 세기의 천재라고 하자.
하지만 그런 천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지금 진행하는 CDMA 시스템은 한 사람의 천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복잡한 무선 시스템을 사전에 경험도 하지 않은 채 답을 내놓은 거.
그건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당장 이 일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연구원이 모두 천 명이 넘었다. 결국, 그들 능력이 최민혁 실장 한 사람만 못하다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고민을 한 끝에 결국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최 실장님을 한번 만나 보고 싶습니다.”
“제가 바로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오현종 박사도 두 사람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한 번은 만나야 했다.
CDMA 시스템 마무리 과정에서 최민혁의 도움이 필요했다. 특히 이번 일에 끼어든 연구원이 최민혁 실장의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면 꽤 놀라겠지.’
그건 원명섭 실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 일과 관련해서는 권태성 기획실장에게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이라니.’
* * *
퀄컴의 어원 제이콥 사장은 퀄컴 지분을 매각한 후에 주변에서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그들 중에는 KM 전자를 여전히 얕잡아 본 이들이 제법 있었다.
크리스 아몬 박사도 여전히 이쪽 라인에 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났다.
바로 퀄컴 주가.
1.3달러를 맴돌던 이 주가가 갑자기 1.5달러를 돌파해 버렸다.
아니, 상승세를 멈추지 않은 채 2달러를 결국 넘어서 버렸다.
상장 이후에 1달러 위로 올라가지 않던 주가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크리스 아몬 박사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나도 몰라.”
“아니, 사장이 그딴 소리를 해도 되는 거야?”
“개소리 마.”
어원 제이콥 사장은 크리스 아몬 박사에게 잔소리나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역시 최근 퀄컴의 주가 변동은 이상했다.
퀄컴과 관련해서 사장이 모르는 일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한 가지 보고를 받고는 혀를 찼다.
‘벌써 다음 단계로 넘어갔어?’
CDMA의 고질적인 문제라면 역시 보안 이슈였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새롭게 적용한 보안 방식은 놀랍게도 이 문제를 가볍게 극복했다.
음성 전송을 위한 20ms 속도를 가볍게 극복한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여기에 따른 이론적 바탕.
최민혁이 추가해 놓은 이론에서 별다른 문제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즉 지금 만들어놓은 시스템 뼈대는 더 손댈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MIT 퀄컴 연구소에서 만든 단말기 역시 훌륭하게 작동했다.
이것 역시 퀄컴 시스템의 안정성이 보장되었기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퀄컴 연구소는 이전보다 더 정신없이 돌아갔다.
이제는 일정을 맞추어야 했다.
단순히 미국 내의 일정뿐만 아니라 ETRI 측과도 긴밀하게 협의를 해야 했다.
퀄컴 주가는 이런 퀄컴 내부 사정을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위로 올라갔다.
결국 2달러마저 돌파한 주가는 2.3달러에서 멈칫하나 싶었지만 2.5달러에 도달했다.
이제 3달러가 눈앞이었다.
단기에 무려 300% 가까이 상승을 이룬 덕분에 퀄컴 이사회의 반응도 달라졌다.
그들은 어원 제이콥 사장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원 제이콥 사장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기는 한데, 정말 놀랍구나. 최민혁 실장의 능력이 정도일지는 상상도 못 했어.’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천재적인 능력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CDMA 시스템은 이야기가 달랐다. 특히 ETRI, 오성 전자, HY 전자 연구원이 복잡하게 엮여 있기에 알력 싸움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ETRI나 오성 전자 연구원만 해도 자존심이 강해서 대화가 쉽지 않아. 거기에 회사 간의 이해관계 문제도 있어. 남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도 있잖아. 괜한 문제 없이 이대로만 가면 좋을 텐데…….’
* * *
천선구 과장은 김현우 상무, 아니, 지금은 수석 부장과 4촌이라는 혈연관계를 이용해서 KM 전자에 입사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다.
비록 KM 전자가 몰락에 몰락을 거듭해도 그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은 많았다.
다만 조심했다.
덕분에 최훈열 전무 라인이 쓸려 나가는 상황에서도 잘 살아남았다.
심지어 김현우 상무를 따라서 오성 전자로 이직한 것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전화위복.
실제로 지난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많은 질시를 받았다.
오성 전자과장이라는 직책은 그만큼 외부적으로 괜찮은 평판이니까.
그런데 꼭 좋은 이야기만 오가지는 않았다.
KM 전자의 퀄컴 인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야, 너희 들었냐? 퀄컴 주가가 무려 2.5달러를 돌파했어!]
[난 영문을 모르겠더라. 퀄컴 주가가 오를 이유가 전혀 없잖아?]
[ETRI 쪽에서 CDMA 관련 연구 성과가 나왔다고 난리가 났어!]
최민혁 실장과 ETRI 간의 공동연구 관계는 이미 기사화되었다. 다만 둘 사이의 성과가 어떤 건지는 자세하게 발표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퀄컴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특이한 이야기도 나왔다.
바로 KM 전자의 전 직원이 인센티브 폭탄을 맞았다는 이야기다.
[내 아는 친구는 무려 1억 넘게 받았다고 하더라.]
천선구 과장은 내심 부아가 치밀었지만 일단 모른 척했다.
기승전 KM 전자 이야기는 그의 속을 계속 뒤집어 놓았다.
동기란 놈들은 마치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모임을 한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 그의 마음은 회사 생활 때문에 편치 않았다.
오성 전자가 아예 작정해서 그가 속한 팀을 한쪽 구석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천선구 과장은 오성 전자에 출근할 때면 왕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그는 자신이 계속 오성 전자에 다녀야 하나 고민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외부로 계속 빙빙 도는 덕분에 여유가 생겨서 오성 전자 CDMA 교환기 설계 팀에 기웃거릴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눈치챈 건 그들이 고개를 갸웃한 부분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 이 CDMA 교환기 수정안을 작업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단순한 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천선구 과장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잽싸게 김현우 수석 부장을 찾아가서 출처 미상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래?”
김현우 수석 부장도 처음에는 천선구 과장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지금 그의 처지가 마냥 좋지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서 아직 오성 전자에 잘 붙어 있었는데, 최근 벽을 느꼈다.
그는 보험 삼아서 아버지 최두진의 주식을 작은아버지 최주민과 손을 잡고 한탕 크게 해먹으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앞뒤가 콱 막힌 상황이었다.
천선구 과장은 침울한 김현우 수석 부장의 눈치를 봤다.
“물론 확실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CDMA 사업실 연구원이 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CDMA 사업실은 오성 전자 역시 보안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곳이다. 이동통신 사업 자체의 파급 효과 때문이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CDMA 사업실을 책임진 원명섭 실장을 떠올렸다. 지난번 사업부 회의 때 본 적이 있었다.
자신만만한 인간이었다.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로 오성 전자 내에서 악명이 자자했다.
이보다 다시 떠올린 이는 바로 최민혁 실장.
그는 최민혁 실장의 성정을 잘 안다. 지금 오성 전자 내에서 떠돌아다니는 최민혁 실장 이야기는 대부분이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마 맞는 이야기일 거야.”
“네?”
천선구 과장은 움찔했다. 그 역시 본능적으로 이 이야기의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몸으로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놀라. 최 실장이 미국까지 가서 퀄컴 지분 인수할 때는 노림수가 있어야지. 이런 일이 후속으로 생기는 것이 당연한 거야. 별반 놀랍지 않아.”
“하긴 STB 사업부 일을 생각하면…….”
김현우 수석 부장은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분노했다.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도움되겠습니까?”
김현우 수석 부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도 이제 오성 전자에서 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달리 마음먹었다.
“그래, 입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기보다는 기회를 만들어 봐야지.”
“…네.”
천선구 과장은 괜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났겠지.’
실제로 그가 속한 사업실은 다른 오성 전자 연구 팀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 팀에 속한 이들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심지어 게임을 하는 이도 있었고, 아예 자리에 없는 이들이 더 많았다.
나갈 사람은 나갔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는 친구들은 버틴 것이다.
그는 자기 조언에 다시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김현우 수석 부장의 놀라운 근성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김 수석님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
* * *
김현우 수석 부장도 사람인데,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 역시 회사 출근과 동시에 살인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KM 전자에서 한 시행착오를 다시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발바닥이라도 핥을 자세로 매사에 임했다.
따라서 어렵지 않게 CDMA 연구실 정보를 얻어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오성 전자 기획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과정에서 원명섭 실장이 최민혁 실장을 직접 찾아간다는 정보를 얻었다.
‘원명섭 실장도 최민혁 실장 능력이 궁금하기는 한가보구나. 하긴 일반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니까.’
김현우 수석 부장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한때 분노와 증오에 눈이 멀어서 최민혁 실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인생 막장에 도달하자 생각을 달리했다.
원점에서 다시 최민혁 실장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오성 전자로 이직한 것 자체가 고도의 음모란 점이다.
‘소름 돋는 인간이야.’
그다음은 쉬웠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자신에게 직간접적으로 한 일을 하나씩 검사하고서야 지금 자신이 처한 사정을 깨달았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자신이 이제 더 버티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든 일이 다 최민혁 실장이 꾸민 짓이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최민혁 덕분에 오성 전자 기획실은 시끄러웠다.
그는 덕분에 아직도 오성 전자에서 잘 살아남았던 것이다.
특히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조차 최민혁 실장이 부담스러워서 소극적이란 점이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사실이야. 아이러니한 점은 최민혁 실장 때문에 내가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거야. 아니, 어쩌면 최민혁 실장의 악명을 최대한 이용하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그는 기획실 회의 시간과 정보를 얻어냈고, 시간에 맞추어서 회의 시간에 참석했다.
한창 회의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서 뒷문으로 들어온 그를 견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데이터는 음성과 근본적으로 많이 다릅니다. 시스템에서 처리 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연이 발생하면 전달되지 않는 음성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데이터와 음성을 분리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20ms라는 제약이 있는 음성 때문이다.
따라서 각 교환기와 단말기 사이에는 이 시간을 비켜나서는 곤란했다.
문제는 보안이다.
[첫 시작은 역시 음성 위주였습니다. 데이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오현종 박사가 내놓은 수정안은 음성과 데이터 영역을 철저히 분배해서 사용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