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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08화 (508/1,021)

#508.

비록 체급 차이는 좀 있지만, 그녀의 스트레이트는 진짜 강력하니까.

그는 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채 피눈물을 흘리는 최문경 부회장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황홀했다.

‘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네.’

다만 그는 최영란과 헤어지기 전에 한 가지를 확인했다.

“참 정략결혼 때문에 사람 만났다고 했는데, 그게 누구야?”

그녀는 굳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우원 건설의 최해진 본부장이야.”

최민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인생 1회 차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인물이다. 별것 아닌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곰곰이 자신이 아는 상식 범위 내에 정보를 떠올렸다.

아니, 혹시나 해서 질문했다.

“우원 건설이라면 얼마 전에 한부 그룹에 넘어갔잖아. 가만, 그러면 최해진이 설마 한부 그룹 재벌 3세를 말하는 거야?”

그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어, 잘 알아?”

최민혁은 물론 최해진 본부장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한부의 그룹 미래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냉정하게 일축했다.

“잘 알지. 걔는 정말 아니니까. 걔는 절대 계속 만날 생각은 마!!”

단호한 최민혁의 대답에 최영란은 내심 발끈하려다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는 최민혁의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 잘 알았다.

“…하지만 그쪽 집안이 제법 힘이 있어. 특히 정치권 쪽에 인맥이…….”

그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이가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도대체 무슨 꼼수를 부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 그 인맥, 오래 못 가니까.”

“……?”

최영란 이사는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최민혁이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최민혁은 인생 1회 차 내용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수룩하게 처신하지도 않았다.

이미 상황은 달리는 말에 올라탄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멈출 수는 없었다.

따라서 최영란 이사도 자기 성품대로 딴 곳으로 눈을 돌리게 할 수는 없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어. 권력은 결코 오래가지 못해. 한부 그룹도 결국 몰락하게 될 거야. 그것도 처참하게 말이야.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정 궁금하면 장승일 실장을 찾아가 봐. 아마 한부 그룹에 대한 자료가 있을 테니까!”

“…….”

최영란 이사는 최민혁의 냉혹한 예언에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최민혁이 주목받으면서 그의 능력 중에 가장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둔 것이 마치 예언에 가까운 믿기 어려운 통찰력이었기 때문이다.

‘정말일까? 하지만 최해진 씨는 그렇게 나쁜 놈처럼 보이지 않았어. 하긴 아버지를 믿을 수는 없지. 하아, 아무래도 한번 확인은 해봐야겠어.’

* * *

최영란 이사도 최민혁의 제안을 듣고는 기대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녀는 최민혁의 판단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까지 최민혁이 한 이야기는 어지간한 예언자 못지않았다.

그녀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결국 KM 그룹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인 장승일 실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장승일 실장이 ‘우원건설’ 이야기를 듣자 눈살부터 찌푸렸다.

평소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얼음 인간이란 별명을 가진 그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겁니까?”

“민혁이에게요.”

“최 실장님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사실 민혁이는 우원건설은 곧 망할 기업이니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어요.”

“아,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장승일 실장은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캐비닛을 뒤적였다. 곧 붉은색으로 검사해 놓은 파일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호치민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여러 가지 관련 서류가 있었다.

장승일 실장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우원건설이 인수되기 전에 몇 가지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뒤늦게 파악한 바로는 자료 대부분이 조작되었습니다. 막대한 부실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한 겁니다. 일종의 사문서 조작인 셈입니다.”

“…….”

서류를 받아서 내용을 읽던 최영란 이사는 입을 딱 벌렸다. 서류상에 드러난 부실이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500억은 넘었다.

아마 다른 부분까지 합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장승일 실장은 한술 더 떴다.

“숨겨둔 부실은 더할 겁니다.”

“이, 이게 사실이에요?”

“호치민 고속도로 사업 때문에 기조실에서 우원건설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료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최문경 부회장님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최영란은 이를 악물었다. 설마 여기서 아버지 이름이 나올지는 몰랐다. 결국, 최문경 부회장은 알면서도 부실한 회사의 재벌 3세에게 자신을 소개한 것이다.

“하, 하지만 이미 한부 그룹이 우원건설을 인수했잖아요?”

장승일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잠깐 망설였다.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해줘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최영란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정략결혼 상대로 소개해 준 사람이 우원건설 본부장 최해진 씨에요. 저는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네? 저, 정말입니까?”

“직접 이 자리에서 통화까지 해볼까요?”

“아, 아닙니다.”

장승일 실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원건설과 한부 그룹을 안다면 최문경 부회장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한부 그룹의 최 회장이 갖춘 능력 한 가지를 고려하면 무조건 이상하게 보기는 힘들다.

‘정부에 로비할 생각인가? 하긴 한부 그룹의 도움을 얻는다면 은행권에 압력을 넣기도 좋아.’

한부 그룹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한부 그룹이 우원건설 인수한 것부터 주변에서는 이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한부는 수사 사건 이후에 그룹 해체 위기까지 놓였으니까.

그런 한부가 도약을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연간 600만 규모의 종합 철강 단지 조성은 아직도 의혹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가 많았다.

장승일 실장이 한부 그룹을 특히 주목하는 것은 X 리포트의 주연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한부 그룹을 더 철저하게 조사했다. 우원건설 자료는 그때 이후로 계속 축적이 되었다.

그가 따로 한부 그룹 자료를 가지고 있는 이유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최영란 이사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최 실장님이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한부 그룹과 연결된 쪽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이 맞습니다. 저도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르지만 한부 그룹이 끌어온 자금 출처가 문제입니다. 그 자금은 결국 문제가 될 겁니다. 우원건설은 자금 세탁을 위한 계열사가 될 겁니다.”

“부회장은 설마 모르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기조실 자료 대부분은 부회장님도 봅니다.”

“황당하네요.”

최영란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최문경 부회장이 자신을 팔아치웠다고 확신했다. 그것도 쓰레기 집안에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은 것은 최해진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나본 최해진 본부장은 멀쩡한 재벌 3세였다.

물론 사람 좋은 것은 괜찮다.

문제는 만약 이중장부와 같은 사태가 터졌을 때다.

그렇게 된다면 그에 관한 책임을 최해진 본부장이 져야 한다.

그 타이밍이 자신과 최해진 본부장이 결혼한 이후라면 어떨까.

그녀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최해진 본부장을 돌봐줘야 할 것이다.

아무리 사랑도 좋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끔찍하네.’

뒤늦게 최민혁이 왜 그렇게 단호한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했다.

그녀는 순간 최민혁을 의심한 자신을 자책했다.

“다 좋아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럼 만약 두 집안이 결혼해서 부회장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는 거예요!”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당장 좋은 조건으로 차입금을 끌어올 수 있고, 반도체 공장 설립을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전과는 또 상황이 다릅니다. 이미 1차 구조조정을 통해서 부실을 많이 털어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신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쉽게 받을 수 있을 겁니다.”

“…AD 설계하고도 관련이 있나요?”

“그 사업이 비메모리 쪽이라면 당연합니다. 적어도 1조 이상의 자금이 당장에 필요할 테니까. 공장 인허가부터 시작하면 패키지 형태로 특혜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기업과는 달리 한부 그룹은 최문경 부회장의 입맛에 맞았을 겁니다. 만약 규모를 더 줄인다면 비메모리 분야에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최영란은 최문경 부회장이 얻을 수 있는 이권을 떠올리자 자신을 팔아치우는 것이 나쁜 거래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스크를 안은 채 비메모리 쪽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99% 확신을 한 채 신사업을 하는 일이다.

최용욱 회장조차 이 계획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것이다.

다만 그녀는 토사구팽당할 것이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녀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장승일 실장에게 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장승일 실장이 최영란 이사를 잡으려다가 탄식하고 말았다.

최근 최민혁의 행보.

특히 퀄컴 인수를 통해서 그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언론은 온통 최민혁어천가를 불렀다.

지금이야 좀 가라앉기는 했지만, 지역방송으로 나오는 이야기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태국으로 쫓겨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가 다시 사람을 보내기는 할 거다.

그런데 새 사람이 오면 상황이 다 달라질 것이다.

위기를 느낀 최문경 부회장은 이전처럼 숨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이 설마 딸을 팔아치우는 것이라니.

‘최 부회장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 * *

공항은 늘 오가는 사람으로 붐볐다.

이 공항에서 특이한 몇 사람이 있었다.

바로 데니스 샐로먼 이사였다. 그는 자신을 마중 나온 데이비드 싱어의 얼굴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그런 눈으로 볼 필요는 없어.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니까. 뭐 조선식으로 한다면 귀향 정도일까?”

“태국은 제주도가 아닙니다.”

“글쎄, 생각하기에 따라서 달라.”

“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끝까지 자신을 지지하는 데이비드 싱어의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사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메인 타깃은 아냐. 보험 성격이 강하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공항 안내 방송을 듣자 멈칫했다. 하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데이비드 싱어를 무시하지 않았다.

“보안 때문에 자세한 것을 말할 수는 없어. 다만 시작은 동남아야. 그러니 굳이 너무 무리할 생각은 하지 마.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낼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새로 오시는 분이 그렇게 생각할까요?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일은 본사 입장에서는 치욕이지 않습니까. 최민혁 실장에게 보복한다면 오히려 본사에서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역시 킬리언 시몬스 이사를 통해서 본사에 최민혁 실장을 얕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그 말을 그대로 듣는 이는 별로 없었다.

물론 최민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만고만한 상대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그런 방심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그 자신은 뼈저리게 경험했다.

데이비드 싱어는 심란한 데니스 샐로먼의 이사 손을 잡았다.

“자, 잠깐만요. 이사님이 그 문제만큼은 분명히 해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마. 태국에 가 있더라도 연락을 할 테니까. 문제는 누가 후임자로 오느냐에 따라서 달라.”

“하.”

데이비드 싱어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최악으로 흘러가지는 않겠지.’

* * *

최민혁도 물론 최문경 부회장의 움직임을 철저히 살폈다.

그는 특히 미국에 갔다 온 이후에 감시 인원을 대폭 늘렸다.

필요하다면 KM 그룹 내의 인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영란의 이야기는 최영란 입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

뒤늦게야 이 일이 가족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뭐 이런 일까지 알기는 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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