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01화 (501/1,021)

#501.

권태성 기획실장은 HY 전자의 이준기 본부장을 만났다.

이준기 본부장은 권태성 기획실장과는 달리 영향력이 별로 없었다.

그는 때문에 꽤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꼰대 기질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최민혁 실장에 대한 악명이 워낙에 대단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최민혁 실장보다는 ETRI의 행보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덕분에 두 사람의 의견은 서로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정확히는 오성 전자와 HY 전자가 그랬다.

이미 윗선에서는 정부를 등에 업은 중견기업의 컨소시엄에 부담을 느꼈다.

차라리 그렇다면 두 그룹이 서로 손을 잡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좋습니다.”

두 그룹이 이번 CDMA 사업과 관련해서만 한시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ETRI 측에 대한 대응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즉각 언론을 통해서 공표되었다.

[오성 전자와 HY 전자는 CDMA 분야에 전략적인 제휴를 합의했다!]

[재계 최상위 순위를 차지하는 두 기업이 이번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과 관련해서 손을 잡았다. 이번 통신 장비 제조업체 사업에 대한 두 그룹의 태도가 얼마나 절실한지 잘 보여준다.

양 사는 아예 별도 법인 설립까지 고려한 상황이다.

다행이라면 이들의 행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통신 시장 개방 이후에 AT&T와 같은 통신 사업자와 경쟁하기에는 다소 불가피한 면이 있다.

다만 이로 인해서 중견기업, 중소기업 컨소시엄은 어려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날벼락 같은 이 소식에 ETRI 김승구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서로 개와 고양이처럼 싸움만 일삼던 두 그룹이 손을 잡은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CDMA 프로젝트가 더 급했다.

‘KM 전자 기획 팀과 소통이 잘되려면 교육 인원을 더 늘려야겠어.’

실상 ETRI CDMA 연구 팀 중에는 오큘러스 프로젝트의 진실을 모르는 이들도 있어서 최민혁 실장의 도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승구 팀장이 오히려 자신들을 이끌고, KM 전자 중앙 연구소를 견학하는 대학생처럼 찾아가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중 김명호 과장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고려대 석사 출신으로 오성 전자에 잠깐 있다가 다시 박사 학위를 밟은 케이스다.

“김 팀장님, 굳이 최민혁 실장을 직접 찾아가서 이렇게 자문을 받아야 합니까?”

“어.”

“하, 정말 답답합니다. 아니,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알아봐야 얼마나 안다고 이러는 겁니까. 제가 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이 석사 학위만 있었도 이러지 않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제 대학교 1학년에 불과합니다!”

“알아.”

김승구 팀장은 김명호 과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고려대 출신인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실무를 경험한 그의 실력은 가볍지가 않았다.

그가 굳이 ETRI 연구 팀에 끼어든 것도 후일 대학 교수를 목표로 한 디딤돌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니 그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실적이 필요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을 왜 이렇게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해.”

“팀장님!”

하지만 아무리 박사 학위가 있다고 해도 ETRI 내에서 잔뼈가 굵은 김승구 팀장 입장에서는 한낱 애송이였다. 그런 그도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최민혁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솔직히 최민혁 실장의 정체가 뭔지 가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배후가 있든, 따로 브레인 팀이 있든, 아니면 외계인을 납치했든 최민혁 실장의 실력은 진짜였다.

CDMA 시스템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최민혁 실장의 도움이 절실했다.

실제로 결과가 그랬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이 최근 강연한 자료를 정리해 놓은 결과물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김 박사가 그렇게 믿지 못하는 최민혁 실장이 만들어 놓은 수정 시스템이야.”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김명호 과장의 안색은 곧 바뀌었다. 그는 보고서를 읽어가면서 포식자를 의식하는 다람쥐처럼 얼굴을 주기적으로 들었다.

이번에 최민혁 실장의 강연에 추가로 들어가는 다른 연구원 역시 자료를 넘겨받더니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이건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KM 전자가 따로 CDMA 시스템 개발을 진행했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분야만큼은 ETRI가 가장 빨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시스템은 ETRI의 시스템과는 격이 달랐다.

이미 어느 정도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동행한 다른 연구원은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그제야 분위기가 바뀌었다.

김명호 박사는 자존심을 버렸다. 그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김승구 팀장의 눈치를 다시 봤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은 어떻게 CDMA 시스템에 대해서 퀄컴보다 더 전문가 같을까요?”

“오큘러스 시스템 개발 단계에서 이미 최민혁 실장 능력에 대해서 들었잖아?”

“그거야 KM 전자 내에 위성 시스템 사업부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때도 다들 비슷했어.”

“근데 CDMA 관련 연구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최민혁 실장 본인 입으로 이쪽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고요?”

“그렇지. 그런데 꼭 그런 질문을 나에게 할 필요는 없잖아. 정 궁금하면 최민혁 실장을 찾아가서 직접 물어 봐.”

“하지만…….”

김명호 박사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도 ETRI 내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그런데 정작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랐다.

동행한 ETRI 연구원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모두 바보만 있지는 않았다.

“어제 퀄컴 쪽과 연락하다가 그 중재를 하는 사람이 이세현 박사라고 들었는데, 혹시 그분이 중요한 부분을 다 한 것 아닐까?”

김승구 팀장 역시 이세현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최민혁 실장을 통해서 들었다.

“MIT 이세현 박사 말하는 거야? 그분은 뇌 공학 쪽이라고 하지 않았어?”

“뇌 공학이나 CDMA나 거기서 거기 아닐까?”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MIT 나오면 다들 괴물인 줄 아나 본데, 정신 줄을 놓고 있는 거야. 우리 ETRI 내에도 MIT 출신이 많아.”

“아니, 제 말은 MIT 출신이니 어느 정도 천재이지 않습니까. 그 정도면 CDMA 시스템에 대해서 사전에 조사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글쎄.”

김승구 팀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충분한 개연성이 있었다. 사실 MIT 출신의 이세현 박사가 세기적인 천재라서 최민혁 실장을 도와주었다는 게 차라리 이야기가 더 그럴듯했다.

“뭐, 우리끼리 그런 말을 하기보다는 최민혁 실장에게 직접 물어봐.”

* * *

KM 전자 중앙 연구소에서 며칠 동안 이어진 강연의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당장 오성 전자와 HY 전자가 손을 잡았고, 컨소시엄은 이 때문에 난리가 났다.

벌써 이 상황을 둘러싸고, 대기업의 일방적인 독점을 경고하는 언론사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최민혁은 자기 딴에는 나름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최선을 다했다.

강연 대상을 따로 나눈 것이다.

1차, 2차, 3차에 따른 강연 대상에 조금씩 변화를 줬다.

1차가 오현종 팀장을 위시한 핵심 실무진이었고, 2차는 바로 그 밑에 CDMA 관련 팀장급 실무진이 그 대상이었다.

3차는 제일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연구원이었다.

굳이 이렇게 강연 대상을 나눈 것은 팀 업무 협조 때문이다.

정확히는 기획 팀이 버벅대는 바람에 차라리 ETRI 연구 팀의 교육을 더 충실하게 진행했다.

필요하다면 ETRI의 담당자가 기획 팀을 잘 이끌어주기를 원한 것이다.

최민혁이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을 택한 것은 CDMA 프로젝트가 당장은 돈이 안 되어서다. 정확히는 CDMA 이슈를 이용해서 계속 KM 전자의 이벤트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CDMA 관련 정보가 ETRI 라인과 KM 전자를 지켜보는 대기업 정보 팀 채널을 통해서 알음알음 새어 나가면서 KM 전자의 주가는 40만 원 돌파 후에도 그 밑으로 잘 내려가지 않았다.

일단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따라서 보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ETRI 측이 궁금해하는 것을 굳이 무시할 이유는 없었다.

질문 중에는 이세현 박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도 마찬가지다.

[아마 이 강연 후에는 제가 앞으로 CDMA 연구 쪽에는 직접 관여하는 일은 드물 겁니다. 그리고 담당자는 바로 MIT 출신의 이세현 박사님입니다. 그분은 비록 뇌 공학을 전공했지만 부전공으로 통신 시스템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제가 설명하는 부분 중에 대다수는 그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대다수는 최민혁의 말에 수긍했다.

최민혁 실장이 이 강연을 혼자 알아서 다 주도했다고 믿는 것보다는 그 배후가 있다는 것이 더 개연성이 높았던 것이다.

[…….]

물론 오큘러스 프로젝트 때문에 최민혁과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오현종 팀장, 김승구 팀장, 김문호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최민혁 실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세현 박사와 이미 통화를 해서 아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아는 바로 이세현 박사는 아직 박사 학위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뜬금없는 통신 시스템 이야기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여기 온 연구원 중에는 MIT 출신도 있었다.

[그랬나?]

[야, 너 MIT 나온 거 맞아?]

[나오기야 했지. 하지만 이런 경우는 난 본 적이 없어.]

최민혁은 결국 지방방송을 묵과할 수가 없어서 결국 일축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세현 박사에게 문의하면 될 겁니다!]

그제야 ETRI 연구원들은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ETRI와의 소통 때문에 같이 계속 강연을 듣는 기획 팀은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도 이제는 그럭저럭 최민혁의 목적이 뭔지는 알았지만 도저히 최민혁 실장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성돈 팀장은 과거 최민혁 실장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불만이 좀 있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강연을 듣고서야 설령 최민혁이 제대로 말해 줬어도 기획 팀은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역량을 벗어난 지식에 다들 오히려 포기하고 싶었다.

그 자신이 그럴 정도였으니, CDMA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나머지 기획 팀은 입을 쿡 다문 채 강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은 강연을 벌써 3차례나 들었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강연 중에 ETRI 담당자와 안면을 텄다는 거다.

덕분에 소통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최민혁은 강연을 하면서도 흐뭇한 시선으로 기획 팀을 쳐다보았다. 그는 굳이 이제 와서 새로운 사람을 뽑아서 키우는 것보다는 자신이 전적으로 믿을 만한 이들을 더 키우는 것에 만족했다.

‘지금처럼 계속 굴리면, 어느 정도 벽을 깨지는 못한다고 해도 뭔가 느낄 수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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