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
이미 샐로먼 브러더스는 그때만 해도 최문경 부회장과 최용욱 회장에게 족쇄를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만약을 위해서 KM 전자의 경영권도 어느 정도 확보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KM 전자 주가가 이때부터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도 샐로먼 브러더스는 좋았다. 그들은 팝콘을 먹으면서 최민혁 실장과 최문경 부회장이 후계자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을 구경했다.
1,500원인 바닥 주가가 계속 올라서 이대로 15,000원을 돌파하나 싶었다.
그런데 KM 전자의 주가는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운 좋게 투자한 KM 전자 주식으로 대박을 친 것이었다.
아니, 초대박이었다.
그리고 그 이익금이 1,000억을 넘기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부랴부랴 KM 그룹 담당자 숫자를 늘렸다.
게다가 미국에서 지켜만 보던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결국 연합 SB 법인 설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한국에 들어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는 잔치 분위기였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서도 영향력을 키울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KM 전자의 성장은 다른 기업과는 달랐다.
KM 전자 주가는 마치 원자력 엔진을 단 항공모함처럼 계속 덩치를 키워 갔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조차 이익이 너무 커지자 크게 당황했다.
이제는 그치겠지.
더 이상은 오르지 않을 거야.
한국 내의 자금 수요를 고려하면 물리적으로 더 오를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다 틀렸다.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 경영진의 예측 역시 완벽하게 틀렸다.
이윽고 이익이 너무 커지자 샐로먼 브러더스도 크게 당황했다.
더욱이 이 상황을 만든 이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는 이미 KM 전자의 오너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KM 전자 주가 주식을 매입한 세력도 문제였다. 자금이 너무 많이 몰린 것이다.
결국 KM 전자 주가가 너무 올라서 샐로먼 브러더스가 만든 계획의 근간을 다 흔들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KM 전자의 주가에 제동을 걸려고 했을 때는 예상과는 달리 일이 어렵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KM 전자 주가를 흔들어서 자기 입맛대로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KM 전자 주가는 30만 원에 도달한 후에 폭락해서 25만 원대에서 유지했다.
조금만 더 흔들면 된다고 확신했다.
시장 수급을 뒤흔들면서 추세가 바뀌어서 자신을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마다 최민혁이 끼어들어서 재를 잔뜩 뿌렸다.
상황은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아직 샐로먼 브러더스도 큰 손실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최민혁 실장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무리를 하고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1차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봤다.
하지만 2차 실패는 1차 실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25만 원에 친 공매도 물량을 무려 40만 원대에 다시 사들였기 때문이다.
KM 전자를 통해서 얻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이번 공매도 때문에 다 날려 먹었다.
아니, 최종 예상으로는 천억에 가까운 적자였다.
사전 준비와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서 쓴 4년이란 세월이 돈과 함께 그냥 훅 날아갔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최근 샐로먼 브러더스 윗선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다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데니스 이사, 정말 괜찮아?]
[…….]
여전히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의연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을 죽이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게 꼭 도박판에서 한 번만 더를 외치다가 판돈을 다 날려 먹은 경우 같았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가 한 자극.
그는 참을 수가 없어서 들고 있던 유리잔을 벽을 향해서 던졌다.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양 주먹으로 책상을 후려쳤다.
주먹이 찢어져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전화 통화를 하는 중이라서 데니스 샐로먼의 이사 상황을 알지 못했다.
[물론 데니스 이사가 회사에 이바지한 바가 있으니, 이번 일을 넘어갈 수는 있어. 하지만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거야.]
[…날 해고하겠다는 소리야?]
[대신 자네가 끝까지 물고 늘어진 덕분에 귀중한 정보를 얻었잖아. 이번에 퀄컴과 에플 주식을 제법 인수했으니까.]
[에플 주식은 3달러를 넘었고, 퀄컴만 해도 벌써 1.5달러에 달한 것으로 아는데?]
[…어쩔 수 없지. 지금도 늦은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주가는 오를 거야. 크리스 이사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퀄컴은 그렇다고 해도 에플 내부의 돌아가는 상황을 몰랐을 거야.]
손실은 손실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 덕분에 최민혁 실장이 꾸미는 일을 사전에 알았다.
물론 샐로먼 브러더스가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그런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변했다.
[한국에 대한 계획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이 문제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샐로먼 브러더스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 KM 전자의 주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최민혁을 철저히 조사했다.
뒤늦게야 이미 최민혁 실장이 흘린 정보가 돌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던 것이다.
최민혁이 유니버설을 통해서 이쪽저쪽에 정보가 잔뜩 새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일을 몰랐다면 샐로먼 브러더스는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앞으로 잘하면 되니까. 문제는 그게 쉬워 보이지만은 않아. 이쪽에서 어원 제이콥 사장의 동선을 살펴보는데,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으니까.]
[…알겠어.]
* * *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의 동향도 지켜보았지만 최근에는 샐로먼 브러더스에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해서 그 정보를 얻었다.
이건 단순히 KM 전자의 직원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외부 단체에도 의뢰를 맡겼다.
심지어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의 동향 정보도 확인했다.
예상대로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도 이번 퀄컴 인수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따라서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는 더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최민혁도 이번에는 계속 지켜만 볼 생각이 없었다.
한 방 맞았으니, 열 대를 때려줄 생각이었다.
‘아니, 차라리 한국 지사를 없애고, 연합 SB도 박살을 내버리는 것이 한 방법이지.’
특히 연합 SB를 그대로 두면, 다시 꼬리를 쳐서 지사를 더 만들 것이다.
두 지점을 이용해서 연합 공격을 취하면 꽤 효과가 있다.
그것이 샐로먼 브러더스의 공격적인 투자 방법의 하나니까.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연합 SB가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 손발을 서서히 끊을 때가 되었지.’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민혁은 금융 기법에는 취약했다.
그래서 그는 우영민 부장을 호출했다.
“헤지펀드와 같은 분야 쪽으로 스카우트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우영민 부장은 난색을 보였다.
“제가 국내 인맥은 좀 알지만 해외 쪽 인맥은 쥐약입니다. 더욱이 아무나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자칫하다가는 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흠.”
최민혁은 혀를 찼다. 그가 굳이 벨린 투자의 규모가 커졌음에도 사람 채용에 소극적인 것은 정보 통제 때문이었다.
‘확실히 KM 전자나 KM 그룹 내의 정보 유출과는 좀 다르지. 투자와 관련된 것이니까.’
실제로 벨린 투자에 돈을 맡기겠다는 이들은 수백 명이 넘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벨린 투자의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지수 아버지, 이영민 숙부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인데, 고민되네.’
이유는 간단했다.
이영민 숙부가 최민혁 자신을 찾아오는 것은 지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이영민이 최민혁이 아는 인생 1회 차와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였다. 자신과 관련된 미래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결국 이 문제만큼은 좀 더 신중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괜찮은 사람을 계속 탐색해 보세요. 그리고 샐로먼 브러더스의 움직임은 여러 각도에서 최대한 정보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우영민 부장이나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지시를 충분히 이해했다.
* * *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는 한동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임직원은 그저 본사의 동향에 귀를 기울인 채 몸을 사려야 했다.
이번 공매도로 말미암은 손실 때문에 한국 지사의 구조조정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시간이 갈수록 한국 지사 내에 도는 소문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그는 킬린스 시몬스 이사가 보낸 자료를 보면서 계속 고민했다.
그 역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았다.
최근 한 달 남짓한 상황을 돌아봤다. 그는 퀄컴의 어원 제이콥 사장을 만나서 압박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막으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제대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뒤늦게야 이성을 되찾았지만 입은 손실은 이미 커도 너무 컸다.
이제까지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서 일약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영향력을 키워갔는데, 그 모든 것을 다 반납하고 말았다.
그게 너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 내내 분해서 사무실 집기를 다 부쉈다.
그 와중에 손에 큰 상처까지 입었다.
데니스 샐로먼의 상처가 난 손을 살피던 데이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가 그의 눈치를 봤다.
“…괜찮겠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데이비드 싱어는 단단히 굳어 있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번 일로 손실이 커도 너무 컸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깊은 번민 끝에 탄식하고 말았다.
“굳이 40만 원에 다시 KM 전자 주식을 사들여야 했을까?”
“KM 전자 수급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KM 전자 주가가 40만 원 이하로 떨어지려면 이벤트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단적인 예로 KMP-02 상황이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특히 유니버설 측과 손을 잡은 것이 문제입니다. 이건 한국 시장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정확히는 KMP-02의 미국 내수 판매 예측과 관련이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매킨지 쪽에 용역을 줘서 시장을 다시 분석했다. 그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는 너무 많이 달랐다.
“KMP-01을 토대로 분석을 해야 하는데, 이 제품에는 한국 음원이 판매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음반사가 KMP-01에는 부정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에플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스티븐은 이미 다른 메이저 음반사와도 계속 협상을 하는 중입니다. 만약 협상이 타결된다면 한국 시장과는 비교하기 힘든 결과가 나올 겁니다.”
최민혁 역시 굳이 한국 음반사와 무리수를 둘 생각이 없었다.
시위와 같은 괜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상황은 좀 달랐다.
냅스트를 둘러싼 소송 때문에 냅스트의 인기는 현재 절정에 도달했다.
지금까지는 PC를 통해서 음원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KMP-02가 출시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심지어 유니버설은 자신의 음원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보수적인 평가를 한다고 해도 이 KMP-02 음원 시장이 열리면, KMP-02의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매킨지 컨설팅 업체가 보낸 보고서를 수십 차례나 읽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정확한 예상 매출은 나왔어?”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4백만 대, 적어도 7~8백만 대는 무난하다는 평입니다. 최악은 천만 대가 넘을 수도 있습니다.”
천만 대라니.
무려 40억 달러가 넘는 매출액이었다. 에플 누적 적자를 단숨에 일소해서 흑자로 돌려놓고도 남을 매출액이었다.
참담한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KMP-02가 다시 퀄컴 단말기하고 연동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