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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96화 (496/1,021)

#496.

“그 부분은 강준석 팀장을 통해서 한번 잘 이야기를 해보세요. 아마 꽤 조사를 진행하고 있을 겁니다.”

조성돈 팀장도 이전이라면 그냥 쉽게 생각했을 테지만 퀄컴 인수 소식을 들은 후에는 생각을 달리했다. 최민혁은 늘 어떤 일이 생기기 전에 떡밥을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번 퀄컴 인수를 통해서 느낀 것이지만 강 팀장에게 따로 기대하시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최민혁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조성돈 팀장의 시선을 의식했다. 사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IT 사업 역시 퀄컴 인수와 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사실 스마트폰이 있어야 진정한 IT 산업이 태동하니까. 다만 그렇다고 굳이 직원이 관심을 두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지.’

“…그건 조성돈 팀장님이 따로 미국 IT 산업에 관해서 조사를 해보세요.

“…IT 산업이라 하시면, 혹시 아후 검색 사이트를 말하는 겁니까?”

실로 뜻밖의 대답.

최민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조성돈 팀장은 능력이 좋아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신기술에는 강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아후에 대해선 연초에 설립된 이후로 국내에서 따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알기 어려운 정보였다.

설마하니 조성돈 팀장의 입에서 그 검색 사이트 이름이 나올지는 몰랐다.

최민혁의 처지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올해 설립된 아후의 성장세가 계속 이어져서 상장 후에도 아후의 주가는 10년간 신고가를 기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떻게 안 겁니까?”

“강 팀장의 보고안 중의 하나가 바로 검색 사이트입니다.”

미국 벨린 소프트에 있는 강준석 팀장은 자신이 하는 일 외에 독자적으로 이런저런 연구를 계속했다.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들은 후에 관련 정보를 꾸준히 조성돈 팀장에게 보낸 것이다.

퀄컴 인수 전만 해도 이를 대충 넘겼던 조성돈 팀장은 그 이후로 강준석 팀장이 보낸 자료가 아무리 하찮다고 느껴져도 꼼꼼하게 살폈다.

그 덕분에 아후에 대해서도 안 것이다.

“그렇습니까?”

최민혁은 흥미로운 눈으로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그가 굳이 강준석 팀장을 따로 빼서 풀어준 이유가 바로 조성돈 팀장 같은 이들이 영향을 받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 역시 미국에 있는 강준석 팀장 때문에 꽤 머리가 아팠는데, 최민혁의 반응을 보면 그게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다만 그 역시 강준석 팀장이 다른 팀원과는 차이가 있다는 부분에서 고민했다.

국내 기업 팀은 기존 한국 기업식 연공서열에 따라서 성장하는데, 강준석 팀장은 미국식 기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번 퀄컴 인수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한편으로 신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렵기만 했다.

최민혁은 굳이 아후와 같은 IT 기업의 미래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조성돈 팀장이 알아서 움직이기를 원했다.

‘잘되면 좋고, 아니어도 기반은 만들겠지.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아후와의 협력으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중요한 안건은 보고를 통해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획 팀은 앞으로 능동적인 자세가 중요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먼저 선제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는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설마 보고를 올리지 않고 일을 진행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최민혁은 그 물음에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상황에 따라서죠. 다만 결과를 묻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그때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가 있다면 따로 독립시켜서 밀어줄 수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사내 벤처 기업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는 굳이 지금처럼 미묘한 시기에 IT 산업에는 손을 댈 생각이 없었다. 당장 KMP-02와 아이컴의 미국 출시가 중요했고, CDMA 기술에도 손을 대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자신이 여력이 안 된다고 굳이 기획 팀이 IT 사업에 손을 대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다.

“IT 사업은 장래가 밝습니다. 굳이 저에게 묻지 말고, 결과부터 만드세요. 자본이 필요하다면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이 오면 한번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네.”

조성돈 팀장은 머릿속을 스치는 뭔가를 느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굳이 최민혁 실장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물어봐도 답을 해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는 안다. 왜 과거 굳이 최민혁 실장이 제대로 어떤 사업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시기적으로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란 말일까?’

* * *

최민혁은 일단 미국 출장을 다녀온 후에 급한 KM 전자의 일을 처리했다. 특히 퀄컴 인수와 관련해서 괜한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도록 KM 전자 실무진을 불러서 다독거렸다.

필요하다면 IT 신사업과 같은 새로운 떡밥을 투척하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든 사람은 강준석 팀장이다.

[자신은 강준석 팀장과 다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이 업무 중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스스로 앞으로 나가보세요. 강준석 팀장, 아니, 대리도 성과를 보였습니다. 여러분이 강준석 대리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기획 팀도 그렇지만 뒤늦게 소식을 들은 KM 전자 임직원들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강준석 팀장의 고속 승진 이야기는 사내에서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과반수의 임직원은 강준석 팀장의 승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불만을 토로해서는 곤란했다.

최민혁 실장이 아예 날뛸 수 있는 돗자리를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KM 전자의 내부 혼란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최민혁은 이슈를 다른 이슈로 덮은 후에 퀄컴 인수를 마무리한 우영민 부장을 한국으로 호출했다.

우영민 부장은 회의실을 찾기가 무섭게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KM 전자 실무진과 가볍게 인사를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최 실장님, 혹시 미국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최민혁은 급한 KM 전자 결재를 검토한 후에 가까스로 CDMA 관련 기술을 살피는 중이었다.

“별일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합니까?”

“아, 그게 퀄컴 인수 때문에 이리저리 미국 정부 관할 기관 담당자를 만나보았는데, 평소와는 태도가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요?”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이보다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팀장급 인사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힐끗 살폈다.

최민혁의 미국 출장 정보에 목마른 KM 전자 실무진은 우영민 부장의 입만 쳐다보았다.

우영민 부장은 먹이를 기대하는 새끼 오리의 눈빛을 보이는 KM 전자 실무진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일전에 팔로알토 네트웍스 본사 빌딩을 사들일 때와는 미국 공무원의 태도가 차원이 달랐습니다.”

벨린 투자는 물론 다국적 기업이다. 이 회사를 설립한 이 중의 하나가 한국계 미국인인 데니스 리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벨린 투자 실소유주는 최민혁이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미국 기업만큼 투자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차별도 많았다.

부동산 관련 미국 공무원이 벨린 투자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인허가와 관련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종차별이 꽤 심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런 태도가 싹 사라졌다.

“전 최민혁 실장님이 미국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로 미국 공무원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힐끗, 조성돈 팀장을 일별한 후에 모른 척했다.

“…그런가요?”

“아휴, 말도 마십시오. 지금까지 구박받은 것을 떠올리면 치가 떨리니까. 에플을 인수할 때 역시 이런저런 조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에플 인수만 해도 그저 에플을 인수하는 걸로 끝이 아니었다. 사전 로비를 비롯해서 이에 따른 후속 처리가 있다. 다르게 말하면 엄청난 서류 작업이다. 때문에 미국 정부 기관이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퀄컴 인수 때는 그러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담당 공무원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우영민 부장을 챙겨주었다.

그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니, 전 최 실장님이 미국 정부 기관에 수천만 달러 로비를 했나 싶었습니다.”

쌓인 것이 많은 우영민 부장은 이런저런 푸념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다.

“제 아들이 이번에 미국 공립학교에 진학했는데, 놀랍게도 등록금이 무료였습니다. 심지어 장학금 지원도 받았습니다. 이 일 때문에 제 아내가 꽤 놀라서 전화했으니까요. 전 미국 시민권자도 아닌데, 이런 대우를 받았습니다.”

미국 시민권의 특혜 중의 하나가 바로 공립학교 등록금이 무료란 것이다. 즉 벨린 투자 직원은 미국인처럼 대우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벨린 투자 내에는 한국인이 대다수다. 이들 대부분이 미국 출장을 가서 미국인 대우를 받은 것은 특이한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미국 공무원이 죄다 태도를 바꾼 셈이다.

우영민 부장은 이 일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는 회의에 참석한 KM 전자 팀장급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앉아 침묵한 최민혁 실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답을 얻을 수가 없자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김명준 과장은 푸념을 털어놓았다.

“미국이 사람을 차별해서일 겁니다.”

“네?”

우영민 부장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민혁은 굳이 우영민 부장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도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만 자신이 미국 정부 기관 내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매듭을 풀어줬다고 추론할 뿐이다.

‘앞날을 위한 뇌물일 수도 있지. 굳이 내가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으니까. 시민권 특혜를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잖아.’

“우 부장님, 상대가 잘해주면, 그냥 받으면 됩니다. 굳이 그런 일 가지고 예민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퀄컴 인수와 관련된 일에 우선 집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우영민 부장은 곧 완료될 퀄컴의 인수와 관련한 그들의 요구 조건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CDMA 관련 기술 지원 요청안도 있었다.

“…정확히는 어원 제이콥 사장이 ARN, 에플, 와컴 쪽에 미팅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습니다. 특히 퀄컴에서 개발 중인 폰에 차세대 ARN IP가 들어가는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 따로 인력을 파견해 달라고 했습니다.”

“ARN 쪽 기술 지원이 별로였던 모양이군요.”

“ARN 파견 엔지니어는 딱 계약한 시간이 끝나면 퇴근해 버립니다.”

“그러면 일이 진행되지 않을 텐데요?”

“그건 계약 밖의 문제란 것이 그들 답변입니다.”

한국 기업은 협력관계가 있는 기업과는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지원을 해준다. 심지어 고객 요청에 따라서 주말에 같이 일해줄 수도 있다.

물론 그 파견 직원이 계약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ARN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그들은 철저하게 계약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ARN IP 관련 계약을 한 후에 옵션 계약에 이 항목이 다 들어간다.

따라서 계약을 벗어난 일은 절대로 도와주지 않는다.

답은 결국 ARN IP를 도입한 퀄컴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영민 부장은 악명이 자자한 이 ARN 서비스에 혀를 찼다.

“ARN 쪽에서는 자사의 보안 문제와 관련이 있는 기술 지원에서는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특히 엔지니어 파견에도 시간당 비용이 비싼데,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안 때문이다.

ARN 내의 기술 보안은 그 어떤 회사보다 지독한 면이 있다.

인생 1회 차에서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은 내용이라서 최민혁은 힐끗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조 팀장님, 들었죠?”

“내부적으로 검토한 후에 강 팀장을 통해서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하면 안 됩니다. 담당자를 직접 확인해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제가 명목상 주인인 만큼 지시에는 따를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실무진은 우영민 부장이 내놓은 서류를 읽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들도 최민혁의 기자회견에서 기술 지원과 관련된 부분을 들었다. 그런데 그 일을 퀄컴에서 직접적으로 요구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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