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95화 (495/1,021)

#495.

즉, -8%까지 빠진 셈이다.

이때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후에 갑자기 주가가 -2%까지 껑충 뛰었다.

최민혁 실장이 떠나기가 무섭게 KM 전자 주가는 다시 +5%까지 올랐다가 오십만 주 가까운 물량 폭탄에 다시 -2%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매수세가 들어오면서 떨어지는 물량을 죄다 다 쓸어 담았다.

4만 주씩 나오는 물량을 누군가 한 큐에 다 쓸어 담아 버렸다.

그렇게 매수 세력과 매도 세력 간의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거래량이 폭증했다.

평일 거래 물량의 5~6배까지 늘어나면서 주가가 물이 차오르듯 계속 치고 올라갔다.

그런데 주가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10%에 도달해서도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분노로 어금니를 부러지도록 깨물었다.

“씨발 것.”

그리고 이 주가 흐름을 설명하는 아나운서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금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700원을 깨버렸습니다. 지금 외환시장에 나가 있는 조희연 기자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KM 전자 주식을 사들이는 주체가 바로 외국인 세력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표였다.

“…….”

최문경 부회장은 입을 살짝 벌린 채 이 황당한 KM 전자 주가 흐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외환시장을 언급하는 기자의 얼굴에는 놀람이 가득했던 것이다.

* * *

외환시장은 최민혁의 기자회견 이후에 나흘 동안 공황에 빠졌다.

원화 환율의 장중 시세가 700원 이하로 밀렸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750대였던 환율이 이렇게 떨어진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 때문이었다.

그런데 환율 폭락세가 가속화된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 때문이 아니었다.

일단 미국 자본이 그 하나였고, 일본 측 자금 역시 빼놓기 어려웠다.

그런데 유럽이나 중동의 자금 역시 이번 KM 전자 매수세에 끼어들었다.

이 같은 달러 폭락세는 자본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외환시장에서 떨어질 달러 시세보다 더 폭이 가팔랐다.

그러니 외환시장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은 똥오줌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패닉에 빠졌다.

사실 딱히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외국인 장기 투자 세력의 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것이니까.

종합 주가 지수는 크게 오른 셈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오성 전자, HY 중공업 주식 같은 종목을 대량으로 매도하고, 매각한 자금을 가지고 KM 전자 주식을 대량으로 매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KM 전자를 제외한 주가는 대체로 -4 ~ -5% 가까이 내려앉았고, 대신에 KM 전자 주가는 +10%씩 꾸준히 올랐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한때의 상승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대량으로 비가 흘러서 댐 수위가 올라가는 것처럼 KM 전자 주가가 올랐다.

29만 원, 30만 원, 31만 원, 32만 원, 33만 원까지 천천히 올랐다.

물론 최근 단기로 들어온 개미나 기관 투자자는 미친 듯이 주식을 집어 던져서 차익을 실현했다. 33만 원 이상은 오르지 않을 것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33만 원까지 오른 KM 전자 주가는 잠깐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단숨에 35만 원까지 올랐다. 전고점을 돌파하는 순간도 잠시 37만 원 장벽을 금방 넘었고, 결국 40만원에 도달했다.

35만 원대에서 갑자기 주가가 오른 것은 공매도 세력이 어쩔 수 없이 주식을 거꾸로 되사들였기 때문이다.

대략 27만 원에 팔았던 주식을 40만 원에 사들인 셈이었다.

최민혁은 이 주가 흐름에 꽤 만족했다. 아니,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 트레이드가 지금 피똥을 싸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패닉에 빠졌을지 말이다.

지금 KM 전자 주가의 상승세는 단순히 단기 투자 세력으로 인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차 핑계로 삼 일 내내 휴식을 취한 최민혁과 대화를 나누는 오영근 사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KM 전자의 주가 상승폭을 다루는 뉴스 아나운서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최 실장.”

최민혁은 다과를 같이하는 KM 전자 임원진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뒤늦게야 퀄컴 지분 인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사전에 미리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 SEC 쪽 담당자를 만났다고 했으니. 뾰쪽한 수가 없잖아. 자칫하면 미국 정부 기관의 압박을 받을 수 있으니.”

문형섭 부사장 역시 최민혁 실장을 크게 질타하지 않았다.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지. 다만 아쉬운 것은 KM 전자 내에 현금이 넘쳐 나잖아. 차라리 이번 기회에 퀄컴 지분의 일부라도 얻는 것이 좋을 뻔했어.”

최민혁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 부회장님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조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에플 지분 인수도 꽤 부담스러웠습니다.”

KM 전자가 매입한 에플 지분을 말했다. 실상 에플 지분은 KM 전자와 벨린 투자가 힘을 합쳐서 1조 원 넘게 투자했다.

다만 비중은 벨린 투자가 더 많았다.

이것 역시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이 취한 만약을 위한 보험이었다.

오영근 사장도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인식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면 KM 전자 지분을 너무 많이 매각한 것 아닐까?”

“아니, 그 반대입니다. 그 덕분에 시가 총액은 대폭 늘어났고, 벨린 투자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 돈으로 에플과 퀄컴 지분을 사들인 것이니까요.”

“…….”

“…….”

두 사람은 에플이 없다면 미국 내에 KM 전자가 직접 진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게 잘될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콜린스 제품이 좋아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판다고 해서 현금이 바로바로 KM 전자로 흘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아직 미국 유통망이 부실한 KM 전자로서는 무리수였다.

차라리 유럽 시장을 공략한 방법이 오히려 유효했다.

비록 예상 매출은 30~40% 줄었다고 해도 순이익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림 두 사람은 묘한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난 일을 떠올리자 최민혁의 행보가 생각보다는 아슬아슬할 수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콜린스 대박을 믿고 날뛰었다면, 최악엔 자금 압박을 받을 수도 있었어.’

최민혁은 그런 상황을 보수적인 경영으로 잘 피해 갔다.

에플 인수, 퀄컴 인수는 마지막 정상을 위한 질주 구간이었다.

오영근 사장은 그래서인지 최민혁 실장이 한 인터뷰가 그냥 한 말 같지가 않았다.

“최 실장, 정말 ETRI 쪽에 CDMA 기술 자문을 할 생각인가?”

정확히는 CDMA 기술에 대한 대비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면 퀄컴 지분을 인수할 이유가 없습니다.”

“허.”

오영근 사장은 수십 년간의 사회생활 동안 최민혁 실장처럼 움직인 이를 보지 못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최민혁 실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형섭 부사장은 툴툴거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동통신망 사업자는 딱히 이번 일로 우리 KM 전자와 대립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최 실장이 사전에 선을 그은 것은 최상의 수였습니다.”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최민혁은 두 사람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영근 사장은 최민혁 실장이 떠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정말 보통 친구가 아냐.”

문형섭 부사장 역시 최민혁 실장을 좋게 봤다. 그건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에플 쪽과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아이컴에 들어가는 스피커를 이백만 대 가까이 주문했습니다.”

“그렇게 많아?”

“그게 1차 물량입니다. 2차 물량이 더 늘어날 것 같아서 준비해야 합니다. 이 일도 최민혁 실장이 에플 본사를 방문한 후에 받은 주문입니다.”

“허허허.”

오영근 사장은 그저 웃기만 했다. 특별한 영업이 없어도 대량 주문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최민혁 실장 때문에 오디오 사업부 올해 매출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 * *

최민혁은 사장 보고를 마친 후에 자기 사무실을 찾았다.

조성돈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최민혁을 찾아와서 하나씩 보고했다.

주로 콜린스, 오디오 사업부과 관련된 보고였다.

콜린스 사업부는 어차피 아는 내용이라서 주로 오디오 사업부 부분이 많았다.

“…에플 측의 스피커 주문량 때문에 공장을 더 설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오디오 사업부 측과 확인한 후에 그대로 진행하세요.”

다만 최민혁 실장을 찾아온 사람이 있어서 보고는 일단 멈추었다.

다름이 아닌 미국 대사관에서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그는 두툼한 서류가 가득한 서류철을 넘기고는 조용히 떠났다.

최민혁도 영문을 몰랐는데, 그 안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미국 시민권? 아니, 이게 왜 벌써 나와?”

“…이게 무슨 미국 시민권입니까?”

조성돈 팀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은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다.

그도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면 미국 시민권을 얻을 만하긴 하다.

문제는 미국 시민권 자격 조건에 영주권을 받은 지 5년이 지나야 하고,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다 미국 영주권자이거나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런데 최민혁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미국 거주 기록은 최대한 쳐줘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최민혁은 따가운 조성돈 팀장의 시선에 혀를 찼다.

“…애들이 급하기는 급했나 보네요.”

이미 내막을 잘 아는 김명준 과장은 솔직히 최민혁이 부러웠다. 그가 특히 놀란 것은 미국 대사관 직원이 직접 배달을 해줬다는 점이다.

미국 대사관이 택배 배달 업체도 아닌데 말이다.

“전 미국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이런 대접은 받지 못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정신이 나갔나 보죠.”

“제가 보기에는 미국 정부가 미쳤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민권을 따려면 영주권을 받은 지 5년은 지나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차별이라니.”

조성돈 팀장은 눈치가 빨랐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최민혁 실장이 어떻게 퀄컴 인수를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인이 미국에서도 보안이 철저한 퀄컴을 인수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마치 쓰레기 던지듯이 책상 위에 올려 둔 미국 시민권을 살폈다. 그가 아는 미국 시민권이 맞았다.

그는 영문을 몰라서 최민혁 실장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SEC 쪽의 인사를 비밀리에 만났는데, 그쪽에서 몇 가지 제안했습니다. 아무래도 후일 문제가 될 내용 때문입니다. 특히 에플만 해도 원래 주가를 회복하면,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에플 주가가 어느 정도까지 오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단기로 최소 20달러, 장기로는 260달러 정도?”

이 말엔 조성돈 팀장도 입을 딱 벌렸다. 그가 만약 다른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면 ‘미친놈’이라고 했을 테지만 최민혁 실장의 주장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

최민혁은 경악한 조성돈 팀장을 보자 피식 웃고 말았다. 조성돈 팀장은 뜻밖에도 자기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힘들지만 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될 겁니다.”

“…하면 KM 전자 주가도 영향을 받겠군요. 특히 에플 주가에.”

“아마 그럴 겁니다.”

“아쉽습니다. 이번에 KM 전자가 퀄컴 지분을 확보했다면 더 큰 이익을 봤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KM 전자가 퀄컴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벨린 소프트도 비슷하니까요.”

“…벨린 소프트 역시 KM 전자와는 독자적인 노선을 가는 겁니까?”

최민혁이 사실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 역시 IT 기업 선점을 사전에 준비 중이었다. 다만 굳이 그 일을 아직 언급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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