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
[물론입니다. KM 전자는 퀄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반박하는 기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최민혁 실장님이 보유한 KM 전자 지분이 50%가 넘는 것으로 압니다. 게다가 최민혁 실장님은 벨린 투자 실소유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벨린 투자가 퀄컴 지분을 인수했으니, 결국 최민혁 실장님이 퀄컴을 인수한 것 아닙니까.]
이야기를 하는 기자 얼굴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옆에 있는 다른 기자는 최민혁 실장을 보면서 씩씩거렸다.
최민혁은 분노한 300명의 기자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으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벨린 투자에 제 개인 자산이 좀 있습니다. 퀄컴은 그 자금으로 인수한 겁니다. 이번 퀄컴 인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투자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면 KM 전자는 퀄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말입니까?]
[지금 당장은 그렇습니다.]
[…혹시 그 말씀은 KM 전자가 앞으로 한국 이동통신 서비스 경쟁 쪽에는 절대로 끼어들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 KM 전자가 이동통신 서비스에 끼어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질문하는 기자도 놀랐고, 옆에서 듣던 기자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말을 하면서 묘한 여지를 남겼다. 이번 사태를 잘만 이용하면 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KM 전자 주가에 말이다.
‘벨린 투자 지분을 살 수는 없으니까. 결국, 대안은 KM 전자 주식일 수밖에 없지. 이미 알음알음 입을 통해서 KMP-02와 퀄컴에 대한 소식이 퍼졌을 터, 아마 곧 반응을 보일 거야.’
[다시 말하지만, KM 전자는 이동통신 서비스에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다만…….]
[다만 무엇입니까?]
모여 있는 기자들 얼굴에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최민혁은 그런 기자들을 쓱 쳐다보았다. 심지어 생방송으로 나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딱히 원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 얼굴을 비추는데, 굳이 얼굴을 돌릴 이유는 없었다.
[다만 필요에 따라서 이동통신 기술에 자문해 줄 수는 있습니다. 아, 제가 퀄컴 대주주가 되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혹시 ETRI에서 지금 진행 중인 CDMA 관련 기술에 참여한다는 말입니까?]
그제야 기자회견장의 사람들이 잠시 멈칫했다. ETRI 관련 부분은 아는 기자도 있었고,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실상 ETRI가 퀄컴과 CDMA 공동 개발 계약서에 서명한 것은 무려 몇 년 전이다. 이 부분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개발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체 선정이나 상용화 일정은 부수적인 문제다. 정작 교환 방식을 비롯한 근본적으로 문제 때문에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았다.
첫 통화 성공은 작년에 겨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모델은 경제성을 고려해서 만든 모델이라서 상용 서비스와는 맞지 않았다.
심지어 상용 시범 서비스는 올해 시연회가 열렸지만 실상 많은 문제가 있었다. 원래 일정보다 무려 2년을 당긴 결과였다.
결국 이 서비스는 그저 외견상 성공했다 뿐이지, 서비스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참작하면 상업적으로 큰 의미는 없었다.
퀄컴이 최근 ETRI와의 계약서를 수정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을 고려한 것이다.
어원 제이콥 사장이 굳이 최민혁에게 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 부분이다.
다만 여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 외에 다른 문제로는 특히 상공부가 TDMA 방식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민혁은 양손을 펼친 채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기자 여러분이 해야 할 질문은 바로 그것입니다. TDMA 방식 기술 개발은 원래 일정이 내년까지라서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왔으니까요.]
[그 부분은…….]
기자들은 서로 속삭였지만 실상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최민혁은 당연히 이런 분위기를 예측했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방식은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요. 유럽에서 이미 GSM 상용 서비스를 앞둔 시점이라서 기술 종속의 우려도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CDMA 상용 서비스의 완성도가 높아야 합니다. 네, 제가 그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ETRI 쪽과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
최민혁의 말에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TDMA와 CDMA 논쟁은 전자를 미는 상공부와 후자를 미는 체신부 사이의 갈등이 아직도 첨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쟁에 최민혁이 끼어든 셈이다.
[제가 최민혁 실장님 능력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 정도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최민혁은 자기가 원했던 분위기를 만들어지자 불쑥 한 가지 진실을 말해주었다.
[이번 무궁화 위성 발사와 더블어서 시작된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겁니다. 요즘 뉴스에서 TV만 틀면 여전히 나오니까요.]
[오큘러스 프로젝트가 이번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네, 그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이 정도라면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치지 않겠습니까?]
[……!!!]
기자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말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간간이 최민혁 실장이 위성 개발에 참여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긴 했다.
그런데 그걸 실제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설사 있다고 해도 당시 KM 전자 내의 위성 사업부 실무진이 주도했다고 믿었다.
특히 최근 오성 그룹에서 안재운 황태자의 영향력 확대 목적으로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주도한 게 안재운이라고 홍보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이 말을 끝으로 기자회견을 끝내고 말았다.
물론 폭탄을 맞은 기자들은 여전히 최민혁 실장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사이 충원된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 * *
구길모 차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최민혁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는 기자들과는 달리 오큘러스 프로젝트 관련 진실을 알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저 말이 큰 의미가 있을까요?”
팔짱을 한 장승일 실장은 피식 웃었다.
“저렇게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KM 전자가 앞으로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잖아. 아니,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소문을 부풀려서 그렇게 만들겠지. 그럼 당장 오성 전자와 HY 전자 태도가 달라질 거야. 그건 막고 싶은 거지.”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그 두 회사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은 조심하는 게 좋지. 지금까지 오성 전자나 LC 전자가 굳이 최민혁 실장님과 크게 대립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들 영역을 최민혁 실장님이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이잖아. 그런데 이동통신 사업은 이야기가 좀 달라. 이리저리 엮여 있는 세력이 과연 최민혁 실장을 그냥 내버려 둘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아.”
구길모 차장뿐만 아니라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기획실 직원은 감탄했다. 그들도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한 행보는 새로운 기술을 통한 시장의 창조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존에 있던 대기업들의 시장에 끼어들어서 경쟁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퀄컴 인수는 설사 이동통신 서비스와 관련이 없어도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당장 CDMA를 사용하려는 망 사업자는 마음이 편치 않겠지. CDMA 특허료가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렇군요. 가만,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은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CDMA 쪽도 잘 아는 걸까요?”
“그건 모르지.”
장승일 실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민혁 실장의 홍길동 같은 움직임은 옆에서 아무리 지켜봐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CDMA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해도 ETRI 연구진 수백 명이 매달려서 몇 년을 끌어 가까스로 시범 서비스에 성공했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사용자 숫자가 팽창하는 시점을 감안하면 더 복잡해진다.
퀄컴 내부에서도 삽질을 계속하는 중인데, 거기에 과연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을지는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최 실장이 저렇게 기자회견장에서 자신 있게 주장했는데, 아무런 대안이 없지는 않을 거야.’
회의실 뒤쪽에 있던 박재광 과장은 뒤늦게 전화를 받았는데, 곧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구길모 차장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받은 핸드폰 문자를 보여주었다.
“저기, 아무래도 이걸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두 사람 눈은 동그랗게 변했다.
박재광 과장이 눈치껏 TV 채널을 돌리자 나온 뉴스에 두 사람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맙소사.”
* * *
최민혁 실장의 기자회견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다만 이미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쇼킹한 일은 아니었다.
퀄컴 인수는 에플 인수와는 이야기가 다른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최문경 부회장은 퀄컴 인수 사건을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과 CDMA 서비스 사업자 간의 갈등 구조를 만들 생각이라서 더 기자회견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역시 기자회견 중에 최민혁이 오큘러스 프로젝트의 진실을 폭로한 사실에 매우 놀랐다. 최민혁이 입을 쿡 다물고 있어서 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심지어 ETRI 내에서도 오큘러스 프로젝트가 민감한 사안이라서 입을 다물었다.
정부는 자신의 공적으로 치장하려고 언론의 입에 자물쇠를 물렸다.
뒤늦게 오성 그룹이 나서서 안재운 황태자 우상화에 써먹었던 내용이다.
이후에는 결국 아는 이들조차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기자회견장에 폭탄을 던진 것이었다.
“저놈이 왜 저래?”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최민혁 실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는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설마 CDMA 기술 쪽으로 주제를 돌릴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동통신 서비스에는 절대로 끼어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할 목적인 것 같습니다.”
“그걸 과연 다른 놈들이 믿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기자회견 뉴스를 지켜보는 KM 그룹 비서실 팀장급들의 태도는 아리송했다. 그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최민혁 실장이 과연 CDMA 기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민상수 비서실 2팀 부장은 난감한 얼굴로 최민혁 실장의 관련 자료를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CDMA 관련된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힐끗, 옆에 앉은 구명진 3팀 부장을 쳐다보았다.
“구 부장님, 저게 무슨 뜻일까요?”
마음씨 좋은 성격 탓에 비서실에서 인기가 많은 구명진 부장은 다른 실무진의 시선뿐만 아니라 최문경 부회장의 시선도 받았다.
심지어 몇몇 중역 역시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을 쳐다보았다.
부담을 느낀 구명진 팀장은 일단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를 본다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주장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니 허풍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자기 입맛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이 짜증스러워서 화를 냈다.
“구 팀장, 넌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알고 최민혁을 옹호하는 거야?!”
“그, 그게…….”
구명진 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민상수 부장을 째려봤다. 하지만 민상수 부장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솔직히 그가 원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구명진 부장을 다행히 살려준 것은 뜻밖에도 안으로 들어온 비서였다. 그녀는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귓속말로 뭐라 속삭였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다급하게 TV 채널을 돌렸다.
거기에 나온 것은 다름 아닌 KM 전자의 주가였다.
KM 전자의 주가는 외국계 세력이 깽판을 치면서 최근 2주간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였다. 결국, 이 때문에 KM 전자의 주가 흐름에 끼어든 세력은 생각보다는 더 많았다.
심지어 작전 세력 5~6곳도 끼어들어서 분탕질했다.
샀다 팔기를 계속 반복한 것이다.
그러니 KM 전자 주가가 춤을 췄다.
어제,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워낙에 분탕질을 친 덕분에 수급이 좋지가 않아서 25만 원 중반대까지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