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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91화 (491/1,021)

#491.

“혹시 모르니까. 한번 확인을 해봐. 최민혁 실장님에게 연락해도 좋고, 아니면 미국에 가 있는 다른 사람도 있잖아.”

“…알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최민혁 실장님이 퀄컴 인수를 본격적으로 알아보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어려울 텐데, 이해할 수가 없구나. 만약 그렇다면 왜 사전에 기획 팀이나 홍보 팀에 언급하지 않은 것일까?’

* * *

최민혁은 물론 퀄컴 인수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티븐과의 업무 협조를 끝낸 후에 SEC를 만나면서 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에 불과했다.

물론 그때도 사전에 KM 전자 기획 팀 쪽에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문제는 퀄컴 인수가 될지 안 될지 당시의 최민혁으로서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어원 제이콥 사장이 당장 퀄컴 지분을 매각할 생각이었다면 후보자는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퀄컴을 도와서 TDMA와 싸울 만한 이는 없었다.

따라서 최민혁은 퀄컴 인수가 끝난 시점에 한국 내의 이동통신 사업과 얽힐 수도 있다는 것을 비행기 내에서 고민했다.

그 역시 쓸데없이 한국 대기업과 이번 일로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적은 차고 넘치니까. 당장 샐로먼 브러더스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야.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첫째 큰아버지 수가 제법이었어.’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의 밀고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최용욱 회장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당황했을지 떠올렸다.

‘그게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겠지?’

최문경 부회장의 의도는 잘 알았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그는 최용욱 회장의 신뢰를 또 잃을 것이 분명했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이제 이 일을 마무리만 하면 깔끔했다.

아니, 전체 계획만 놓고 본다면 나쁘지 않은 프롤로그였다.

이번 일로 결국 한국 언론이 이번 일을 이슈화할 테니까.

‘설사 KM 전자와 관계가 없어도 이동통신 사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KM 주가를 흔들어놓을 거야. 그거면 샐로먼 브러더스를 계속 괴롭히고도 남지.’

최민혁은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이번 일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일뿐이다.

다행히 방법이 있었다.

“아, 벨린 투자 자금만을 통해서 퀄컴 지분 인수를 했구나.”

그런데 벨린 투자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개인 회사였다.

따라서 퀄컴 인수는 최민혁 자신의 독단적인 일로 몰고 갈 수가 있었다.

옆에서 조용히 최민혁의 눈치만 보던 김명준 과장은 최민혁의 독백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걸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안 믿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퀄컴 관련 일은 KM 전자와 무관하게 처리하면 되니까.”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까? 어원 사장이 원하는 기술을 보면, 당장 필요한 것이 ARN, K투스에 심지어 와컴 펜까지 생각하던데요?”

“아, 그거 말입니까.”

최민혁은 관련 기술이 종합된 ‘스마트폰’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어원 제이콥 사장이 뭔가를 알고서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스티븐조차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못 했으니까.

‘아니야, 어쩌면 스티븐도 이제 서서히 염두에 둘지도 몰라. 당장 퀄컴의 원천기술을 확보했으니까.’

김명준 과장도 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민혁 실장 옆에서 있으면서 그간 많은 것을 배웠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어원 제이콥 사장은 꽤 집요한 사람이라서 실장님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게 지분 매각을 한 이유일 테니까요. 그때는 언론에 뭐라고 하실 생각입니까?”

“기술 자문을 했다고 하면 됩니다.”

“네?”

최민혁은 자신이 말하고선 꽤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스스로 자기합리화 했다.

“컨설팅해서 돈 버는 회사들 많지 않습니까. 매켄지 같은 회사도 있습니다. 저라고 해서 못 할 것이 없죠. 오큘러스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경우이니까. 아, ETRI 자문도 그런 식으로 처리하죠.”

김명준 과장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일 중에는 그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 많았으니까.

그는 때문에 상식 범위 내의 질문을 했다.

“하면 정말 퀄컴과는 모르는 사이라고 몰고 갈 겁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안 그러면 한국 10대 대기업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죠. 제가 아니라고 해도 끝없이 의심할 테지만, 제겐 그걸 다 받아주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김명준 과장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늘 가져왔던 의문이었다. 이번 일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또 다른 일이 생긴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간단한 정보는 말해주기로 했다.

“이번 KM 전자의 주식 사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거야 외국계 증권 회사가 공매도한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공매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들어와 있는 자금이 너무 많았죠. 그것도 단기에 들어온 달러 규모가 엄청났죠. 만약 그 달러가 사전에 준비된 돈이 아니었다면 그런 식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요?”

“그거야…….”

김명준 과장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공매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공매도를 가장해서 들어와 있는 달러 규모가 문제였다.

이번 외국계 투자 회사의 행보는 비정상적이었다.

최민혁은 굳어 있는 김명준 과장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테스트일 겁니다.”

“…테스트라 하시면 정확히 뭘 알아봤다는 말입니까?”

최민혁도 인생 1회 차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보면 미래가 변화하면서 생긴 나비효과다.

“한국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검사해 봤을 겁니다. 뭐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좀 다를 겁니다. 아마 이번 일을 통해서 확인했을 테니까. 특히 한국 금융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았을 겁니다.”

“……?”

김명준 과장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 최민혁 실장이 뭘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스튜어디스가 내미는 주스 한 잔을 마신 후에 툴툴거렸다.

“사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몰라요. 다만 이번 일을 주도한 샐로먼 브러더스는 단순한 목적으로 한국에 자금을 들여온 것이 아닐 겁니다.”

그는 주스 잔을 내려놓은 후에 자신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 곳곳을 손가락을 지적했다.

“이 노트북 화면을 잘 보면, 화면 곳곳에 문제가 제법 있죠. 빛샘이란 현상입니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습니다. 밝기를 더 낮추면 더 나옵니다. 취약점이 점점 늘어나죠.”

실제로 노트북 화면 밝기가 낮아지면서 화면 모서리 곳곳에 빛샘이 생겨났다.

최민혁은 그 점을 하나씩 표시하면서 가장 넓게 빛샘이 드러난 점을 손가락으로 딱 찍었다.

“이렇게 드러난 포인트를 하나씩 기억한 후에 틈이 생기면 바로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러면 화면이 크게 흔들리게 될 때, 나머지 빛샘도 같이 공격하는 거죠. 무리 사냥처럼 말이죠.”

“…설마 외국계 투자 회사가 우리 KM 전자가 아니라 한국 증시를 공격한다는 말입니까?”

그는 의혹에 가득찬 김명준 과장의 눈빛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한 채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제가 거꾸로 묻죠. 김명준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샐로먼 브러더스 같은 세계적인 투자 회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 KM 전자를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

김명준 과장은 바위처럼 굳은 얼굴을 한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그제야 왜 최민혁이 벨린 투자를 이용해서 무리하게 퀄컴 지분을 인수했는지 알 것 같았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맞아요. 퀄컴은 미래를 보면 꾸준한 로열티 수익이 가능하지만, 단기로 본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과 관련이 있으니 KM 전자 주가를 보호할 땔감으로는 꽤 매력적인 회사입니다.”

“특히 원천기술과 관련된 부분은 부각하기에는 좋겠군요.”

“그런 셈이죠. 그게 다 돈이니까. 한 번씩 퀄컴을 닭튀김처럼 튀길 때마다 KM 전자는 수혜를 입게 될 겁니다. KM 전자의 영업이익에 변화가 없어도 말이죠.”

“그건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최민혁은 씩 웃었다.

“퀄컴만이라면 그렇죠. 하지만 거기에 에플을 더하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아…….”

김명준 과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계획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그도 최민혁 실장의 진정한 속내까지는 알지 못했다.

바로 스마트폰의 대두다. 이제는 최민혁 실장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스마트폰의 출시를 앞당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민혁도 한국에 돌아가서는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이번 퀄컴 인수와 관련이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게 골치였다.

‘퀄컴과 같은 큰 회사 지분을 내 자산만을 이용해서 독단적으로 인수했으니, 기획 팀도 날 타박하겠어.’

* * *

KM 전자 기획 팀은 어수선했다.

홍보 팀에서 걸려온 전화 때문이다.

배종대 과장도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했다.

“정신이 나갔어. 도대체 홍보 팀이 왜 이런 쓸데없는 찌라시에 놀아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정성근 대리가 이 전화를 듣고는 바로 끼어들었다.

“그거야 모르는 일 아닐까요?”

“야, 정 대리, 기획 팀 업무 보고에는 퀄컴 인수와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잖아. 아니, 설마 내가 모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라도 한 거야?”

“최민혁 실장님이 지금 미국에 가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곳에서 퀄컴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면 모를 수도 있죠. 계획된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최근 외국계 증권 회사 농락으로 우리 회사 주가가 급등과 폭락을 거듭했잖아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퀄컴 인수를 생각했을 수도 있죠?”

“……?”

배종대 과장은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퀄컴 인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에플 인수는 더 황당하기만 했다.

거기에 이에 따른 KM 전자의 주가 파동은 더 논란의 소지가 컸다.

27만 원짜리 주가가 요동을 치는 것은 한국 증시 종목으로는 KM 전자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작전주도 울고 갈 종목이 바로 KM 전자였다.

더욱이 정성근 대리는 이 안건에 대해서 오히려 가능성이 높다고 피력했다.

“최민혁 실장님이 미국에 갈 때면 늘 일이 생겼습니다. 이번 일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요. 미국에 단순히 에플 때문에 간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샐로먼 브러더스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했을 겁니다.”

“…….”

샐로먼 브러더스 이야기가 나오자 모니터 화면에 빠진 채 열심히 일하던 조성돈 팀장은 가자미눈을 한 채로 아무런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그 역시 에플 본사에 있으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봤기 때문이다.

KM 전자는 이제 과거의 KM 전자가 아니었다.

과거의 KM 전자였다면 퀄컴 인수와 같은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의 KM 전자라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역시 문제는 최민혁 실장이 설사 그런 일을 고려했다면 왜 기획 팀에 사전에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성근 대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날카롭게 찍었다.

“우리 회사가 퀄컴 지분을 인수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통신 회사는 미국 정부가 따로 관리하는 것으로 압니다. 더욱이 설사 어떻게 퀄컴 지분을 인수했다고 가정해도 문제입니다. 다른 대기업이 난리가 났겠죠. 언론도 그 정보를 알았을 수도 있고!”

그는 평소와 다르게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냉소적인 어조로 시원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배종대 과장이 어이가 없어서 정성근 대리 목을 비틀었다.

“야, 정 대리, 너 왜 그래? 이상해서 내가 적응이 안 되잖아!”

“아, 좀!”

두 사람의 티격태격에도 다른 팀원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정성근 대리의 말이 생각보다 소름 끼칠 정도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흠.”

조성돈 팀장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중에, 때마침 몰려온 홍보 팀원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용식 부장이 제일 앞에 있었다. 그는 가벼운 인사와 더불어서 퀄컴 인수에 대한 것을 물었다.

“정말 사실입니까?”

그는 숨을 쉬지 못해서 컥컥거리는 정성근 대리의 얼굴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최 실장님에게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미 비행기에 탑승한 상황.

“…이렇게 하죠. 최병연 소장님이라면 들은 것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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