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90화 (490/1,021)

#490.

최민혁의 예측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퀄컴 지분 인수와 관련된 일을 최용욱 회장에게 폭로한 후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이 일을 잘만 활용한다면 최민혁 실장과 한국 이동통신 사업자 간에 대립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직접 한영일보와 한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에 이 사실을 슬그머니 흘렸다. 조카 최민혁이 한국 이동통신 사업에 끼어들 것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최경진 편집장을 통해 긴급하게 열린 회의에 참석한 한영일보 최광수 기자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혀를 내둘렀다.

“정말 퀄컴 지분을 인수한 것 맞습니까?”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어.”

“사실 그 부분부터 확인해야 할 겁니다. 당장 CDMA 기술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바도 없으니까요.”

CDMA와 관련된 기술에 대한 국제 학술회의의 분위기는 아직 명확하게 정해진 바가 없었다.

CDMA에 대한 기조가 정해진다면 그건 CDMA 통신 시범 서비스가 열린 후다.

CDMA 기술, 무선통신 기술, CDMA 시스템, CDMA 이동전화, 무선망 설계와 같은 학술회의가 진행되려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야 했다.

최경진 편집장도 최광수 기자가 경제 전문가로서 첨단 기술에 대해서 해박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덜렁대는 면이 있지만, 이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그를 믿었다.

“일단 이게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 퀄컴 지분 인수가 사실이라면 기가 막힌 일입니다. 결국, 고생은 한국 이동통신 사업자 쪽에서 하고, 이익은 최민혁 실장이 다 챙기는 것이니까.”

최경진 편집장은 긴급회의에 뒤늦게 참석해서 분위기를 파악하던 이들이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CDMA 사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얼마나 수익이 큰지 구체적으로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이익이 클까?”

범용구 기자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고개만 갸웃했다. 사실 이동통신 사업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이게 얼마나 큰 이익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인 최광수 기자는 좀 달랐다. 그는 회의실 앞으로 나온 후에 글로벌 이동통신 사업과 관련된 역학 관계를 일일이 그렸다. 그다음에 하나씩 설명한 후에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을 일일이 지적했다.

[현재 퀄컴은 ETRI와 손을 잡고, CDMA 기지국, 교환기 등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정부에서 주도한 일입니다. 만약 이 일이 성과를 거둔다면 CDMA 사업은 규모를 더 키울 겁니다.]

[특히 내년 상반기에 CDMA 시범 사업이 성공한다면, 사용자가 급증하겠군.]

[그렇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통신 서비스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결국, 퀄컴이 벌어들이는 로열티 수익은 이용 통신 사용자 숫자에 비례합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수십억 달러를 넘을 겁니다. 그 이익 중에 40%를 최민혁 실장이 먹는 셈입니다!]

최경진 편집장은 머릿속으로 주판을 두들기면서 혀를 찼다.

[신세기 통신이 오성 전자와 HY 전자에게서 장비를 공급받은 후에 피똥 싸면서 망을 깔아서 돈을 벌어도 결국 최민혁 실장에게 고스란히 상납해야겠군.]

[바로 그것입니다!]

[…….]

최경진 편집장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어서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러다 최광수 기자의 설명을 다 듣고서야 혀를 내둘렀다.

[…가만, 그 이야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CDMA를 선택한 다른 나라에도 적용된다는 소리잖아?]

[당연합니다. 사실은 그쪽이 진짜입니다. 물론 CDMA 서비스가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입니다. 즉, 지금 ETRI에서 진행할 ETRI 장비 개발이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맙소사.]

어느 정도 방향성이 나오자 의견을 내미는 이들이 속출했다.

최민혁이 의도한 바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물론 과장은 좀 있었다.

아직 퀄컴 CDMA의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것과는 달랐다.

TDMA 진영과의 경쟁에서 얼마나 기술 우위를 보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최광수 기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확보한 원천기술을 하나둘씩 말했다.

[특히 ARN과 같은 저전력 CPU 기술은 당장 CDMA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핸드폰 사업의 발전이 더 빨라질 겁니다. 그런데 아시죠? 이 ARN 지분 역시 최민혁 실장이 이미 확보한 것을!]

[하, 기가 막히는구나.]

최경진 편집장은 최민혁 실장의 퀄컴 인수가 꽤 중요한 뉴스가 된다고 확신했다. 에플 인수와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에플은 당장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좋아. 이번 퀄컴 뉴스에 한번 매달리자고, 다만 이전처럼 또 헛짓거리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빌미를 주지는 마. 그래, 우선 KM 전자 홍보 팀에 문의를 해봐. 퀄컴 인수가 사실인지 확인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일어나는 기자들을 본 최경진 편집장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번에는 정식 절차를 밟아. 괜히 최민혁 실장에게 꼬투리 잡혀서 이번 아이템을 똥통에 빠뜨리지 마. 늦어도 원칙대로만 해!”

“넵!”

* * *

홍보 팀은 회사 이미지를 담당하는 부서로 자칫하면 구설에 오르기 쉽다.

단적인 예로 비자금 이슈가 나오는 대운 그룹이 있다.

대운 그룹 홍보 팀이 나서서 비자금 파문을 최대한 줄인 덕분에 위기 상황을 그대로 피해 갔다. 물론 아직 비자금 사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건 KM 전자 홍보 팀 역시 다르지 않다.

이들 역시 지난 시사 초대석 방송에서 최민혁 실장이 한 일방적인 이야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다만 이후에 에플 주가가 폭등하면서 위기를 잘 극복했다.

그래도 대운 전자 홍보 팀과 비교하면 KM 전자 홍보 팀은 양반이다.

대응해야 할 문제의 대다수가 최민혁 실장의 놀라운 행보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KM 전자에 입사한 이정훈 대리가 그 경우다. 그는 LC 전자 마케팅 팀에 있을 때와는 다른 특이한 경험에 혀를 내둘렀다.

LC 전자 홍보 팀이 얼마나 일이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랄까.

KM 전자 홍보 팀은 일이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리스크가 큰 일이 없었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 실장에 대한 행보를 조사하면서 습관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한영일보 범용구 기자였다. 집요한 성격 탓에 LC 전자에 있을 때도 몇 번 만난 경험이 있는 기자였다.

[오랜만입니다.]

범용구 기자는 제법 기억력이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가 LC 전자에서 이직했다는 것을 듣고는 혀를 찼다.

[가만, 이정훈 대리님? LC 전자에서 KM 전자로 이직한 겁니까?]

[여기 결원이 생겨서요. 뭐, 신문에도 나왔다고 하니, 어쩌면 아실지 모르겠네요.]

[아, 김민석 과장 후임입니까?]

[아세요?]

[들은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최민혁 실장 비서인 오혜정 비서를 건드렸다고 하더군요. 제정신이 아닌 분이죠.]

[…그게 사실입니까?]

[아마도요.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건 것은 아닙니다. 다름이 아니라 KM 전자가 퀄컴을 인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확인 차원에서 전화했습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퀄컴이 지금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미국 이동통신 원천기술을 가진 회사인데, 우리 KM 전자가 무슨 수로 인수를 한다는 말입니까?]

범용구 기자는 굳이 최문경 부회장 라인을 통해서 얻은 정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의아한 점이 있었지만 그런가 보다 싶었다. 최문경 부회장과 최민혁 실장의 대립이 본격화된 이후에 둘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서 얻은 정보입니다. 혹시 지금 하신 말이 KM 전자를 대표해서 하는 말이 맞습니까?]

[설마 기사로 내보낼 이야기입니까?]

[네, 그러니 확실하게 답변을 해주세요. 참, 이 전화는 녹음 중입니다.]

[잠, 잠깐만요. 아, 제가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많이는 못 기다립니다!]

이정훈 대리는 영문을 몰라서 우선 기존 자료를 하나씩 살폈다. 퀄컴 지분 인수를 하려면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일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KM 그룹과 관련된 사업 내용을 일일이 다 확인했다.

홍보 팀이나 마케팅 실무진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도 했다.

[이동통신 사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TRS지오텍 사업 지분 매각 후에는 아예 그룹 차원에서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상하네.’

이정훈 대리는 퇴사한 김민석 과장과는 좀 달랐다. 그는 일일이 검토를 한 후에 전희주 과장에게 이 안건을 보고했다.

전희주 과장은 안 그래도 KM 전자의 주가 혼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녀는 뜬금없는 이정훈 대리의 보고에 어이가 없었다.

“이봐, 이 대리,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우리 회사가 이동통신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퀄컴 지분을 사들여서 어디에 쓸 수 있어? 아니, 애초에 신세기 통신 지분을 인수하는 것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데, 퀄컴 인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더욱이 설사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퀄컴이 우리 회사에 지분을 넘길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이정훈 대리는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범용구 기자가 언급한 내용을 하나씩 말했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다만 한영일보 소식통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한번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 정말 답답하네. 저도 이 대리가 새로 입사해서 열심히 한다는 건 알겠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잖아요.”

말은 이렇게 해도 전희주 과장은 이정훈 대리가 집요하게 매달리자 기획 팀 배종대 과장에게 우선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 봤다.

배종대 과장은 당연히 퀄컴에 대해서 몰랐다. 최민혁 실장도 SEC와 협상을 하지 않았다면 퀄컴을 인수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국에 간 이유 자체가 아이컴과 KMP-02 론칭 때문이었다.

[웬? 퀄컴 지분 인수? 그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그렇죠? 그러면 한영일보가 찌라시를 들고 찔러봤다는 이야기죠?]

[가만, 한영 일보 측에서 문의한 겁니까?]

[네, 제가 알기로 기획 팀에서 최근 퀄컴과 관련해서 누군가 만났다는 소리를…….]

[한영일보 그 자식들 믿지 마세요. 일전에도 가짜 뉴스를 찍어 내서 우리 기획 팀과 한바탕했으니까. 우리 기획 팀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

전희주 과장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한동안 수화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배종대 과장의 반응이 딱히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따가운 이정훈 대리의 시선에 어쩔 수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용식 홍보 팀장에게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다행히 출장을 갔다가 막 돌아온 이용식 홍보 팀장을 발견했다.

“이 팀장님, 혹시 퀄컴 지분 인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에도 이용식 부장은 전희주 과장을 타박하지 않았다. 지난 시사 초대석 사건 이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바로 KM 전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삽질을 떠올리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다른 부서에서 들은 소식을 하나둘씩 검사했다. 다행히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만약의 경우라면 최민혁 실장이 지금 미국에 가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글쎄. 내 상식으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잖아. 더욱이 최 실장님이 지금 미국의 에플 본사 쿠퍼티노에 출장까지 가 있으니까.”

“아, 맞다. 최 실장님이 지금 미국에 가 있었죠. 하면 설마…….”

이용식 부장이 냉큼 타박했다.

“전 과장, 헛소리 말고.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낸 거야? 설마 언론사에서 확인 차원 삼아 연락이라도 해온 거냐?”

“한영일보 쪽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 대리가 확인했고, 제가 기획 팀에 문의를 해봤습니다.”

이용식 부장은 ‘한영일보’란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언론사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전화할 리가 없었다.

‘정보가 있다는 이야기잖아?’

과거 같으면 그냥 덮을 일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최근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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