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85화 (485/1,021)

#485.

둘은 그대로 MIT로 향했다.

데이비드 싱어는 물론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CDMA, 퀄컴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자신이 아는 바로 CDMA의 미래는 암울했지만, 이전처럼 소극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검토한 자료는 즉각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 넘겼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자료를 받아서 꼼꼼하게 CDMA에 대한 부분을 살폈다.

‘이상하네.’

그런데 아무리 봐도 CDMA의 미래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유럽은 TDMA가 완전히 시장을 장악한 상황이었고, 미국에도 그 영향을 넓히는 중이었다.

다만 한 가지 특이점은 있었다.

미국 정부가 TDMA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TDMA가 미국 시장마저 독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대안이 바로 퀄컴이다.

퀄컴의 CDMA 방식을 미국 통신 표준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퀄컴을 이용해서 TDMA를 견제한 것이다.

이게 된다면 매년 수십억 달러의 로열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비공식적으로 들은 이야기로는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를 압박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그렇게 일방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그만한 대가를 내놓았으니까.

“…현재 한국 상황은 어때?”

“정보 통신부가 주도해서 25개 핵심 기술 과제 중의 하나로 선택했습니다. 당장 전자부품 연구소, 과학 기술원, 서울대가 각자 연구 아이템을 분담했습니다. 특히 ETRI는 오큘러스 시스템을 고안한 오현종 박사 연구 팀이 합류하면서 속도가 붙었습니다.”

“투자 비용은?”

“정보 통신부가 당장 움직인 자금은 대략 300억 정도 됩니다.”

“고작 그 돈으로 성과가 나올까?”

“하지만 신세기 통신이 CDMA 이동전화 교환기, 기지국 1차 물량 공급 우선 협상 업체로 오성 전자를 선정한 상황입니다. ETRI 연구 팀의 개발 속도가 빨라진다면 더 속도가 붙을 겁니다.”

그랬다.

단순히 ETRI만이 CDMA 쪽에 끼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성 전자 역시 신세기 통신과 손을 잡았다.

“심지어 LC 전자는 CDMA 반도체 개발을 위해서 실리콘 밸리에 따로 연구 법인을 설립했고, 400만 달러를 퍼부어서 이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이런 떠도는 말이나 홍보를 믿지 않았다.

“가능은 하겠어?”

“저희 미국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 정부에서 밀어주는 것이 CDMA입니다. 따라서 TDMA에 대응만 할 수 있다면 미국 시장을 노릴 수 있습니다!”

“흠.”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불안하기는 하지만 꼭 CDMA 사업이 안 된다고 하기 힘들었다.

“…TDMA 측에서 미국 정부에 로비를 엄청나게 하겠어.”

“네, 제가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2억 달러가 넘습니다.”

“하면 최민혁 실장이 CDMA 쪽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이야기는 이 CDMA 사업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소리잖아?”

“전 그렇게 봅니다. 만약 정말 최민혁 실장의 의도가 성공한다면…….”

지금은 CDMA 시장이 TDMA 시장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다만 미국, 한국이 중심이 된다면 당장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 역시 CDMA를 선택할 확률이 높았다.

그건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시장이 커진다면 퀄컴의 가치는 폭등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최민혁이 이 퀄컴의 대주주가 된다면, 에플 인수에 못지않은 악몽이 될 것이다.

아무리 샐로먼 브러더스가 세계적인 투자 은행이라고 해도 대박 난 퀄컴 지분을 인수한 최민혁 실장과 싸워서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볼 것이다.

“…안 좋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그제야 안색을 잔뜩 찌푸리고 말았다.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CDMA 관련 연구를 하고 있지만 그건 미국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아직 결과가 썩 좋지가 않았다.

그러니 다들 CDMA 사업을 색안경을 낀 채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샐러먼 브러더스 내에 실리콘 밸리 투자 책임자 중의 한 사람인 킬리언 시몬스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큐 150이 넘는 천재인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인데, 그의 반대 성향인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좋아했다.

[오, 잘나신 우리 데니스 이사님이 갑자기 왜 전화를 걸었을까?]

[혹시 CDMA 관련 투자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갑자기 웬 CDMA?]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냥 이야기만 해봐!]

[일단 CDMA 핵심 칩이나 장비 위주로 투자를 진행하고는 있어. 다행이라면 한국과 같은 나라는 정부 주도로 CDMA에 자금을 투자하고 있어서 꼭 부정적인 것은 아냐.]

[가만, 그러면 한국은 최소한 CDMA 시스템을 적용할 거란 말이야?]

[신세기 통신이 주도한 1차 장비 공급 업체에 오성 전자와 HY 전자가 우선 협상 업체로 선정되었으니까. 일단 내년 시범 서비스는 확실히 진행된다고 봐야지.]

[그러면 한국은 완전히 CDMA를 선택한 건가?]

[그렇다고 봐야지. 이미 AT&T나 모토로라와 같은 업체에서도 입찰 제안서를 받았으니까.]

실제로 CDMA 시범 서비스는 내년 초 진행 예상으로 이미 서울, 충청권이 그 시작으로 선정돼 있었다.

신세기 통신은 이미 사업에 총 1조가 넘는 돈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무시하기 힘드네.]

[걱정하지 마. 아직은 시간이 충분하니까. 시범 서비스 일정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실질적인 서비스는 내년 하반기가 되어야 할 거야.]

실제로 시범 서비스와 상용화 서비스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당장 한국 통신만 해도 TDMA와 CDMA의 일정을 나누었다.

[혹시 한국 정부는 CDMA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 거야?]

[알기는 알아도 자세한 것은 모를 거야. 일단 CDMA 시범 서비스가 진행되어야 평가를 할 수가 있으니까.]

[대답 고마워.]

[천만에.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내가 알기로 자네는 SB 연합 때문에 한국에 가 있는 걸로 아는데, 뜬금없는 CDMA 이야기를 왜 꺼내?]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순간 최민혁 실장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와락 구긴 채 전화를 끊고 이미 기다리고 있는 차량에 탑승했다.

운전석을 잡은 데이비드 싱어는 계속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눈치를 봤다.

“최민혁 실장은 CDMA 시장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걸까요?”

“글쎄.”

그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빠졌다. 예상을 벗어난 최민혁 실장의 행보 때문이다. 이미 공매도 때문에 된통 당한 상황이다.

만약 이 시기에 최민혁 실장이 퀄컴 지분까지 얻고, 퀄컴의 CDMA 서비스가 대박을 친다면, 최악의 상황이 된다.

‘…설마 그렇게는 안 되겠지. 아니, 된다고 해도 당장은 아니야. 시범 서비스 전에는 다양한 문제가 생겨날 테니까.’

하지만 그는 불안했다. CDMA 관련 업체와 진행 상황을 정리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미 어느 정도 무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일단 최민혁 실장이 퀄컴과 손을 잡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해!’

마음이 급한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데이비드 싱어에게 버럭 소리쳤다.

“좀 빨리 가!!”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차량 속도는 더 느려졌다. 공항 근처에 차량이 너무 많이 몰린 탓이었다.

데이비드 싱어는 참사 속에서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던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흥분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진짜 보통 사람은 아냐. 최문경 부회장이 왜 그렇게 최민혁 실장 이야기만 하면 흥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 것 같네.’

* * *

최민혁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느긋하게 호텔에서 지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원 제이콥 사장을 방목하는 가축처럼 방치만 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설립한 보안 회사 직원들을 이용해서 그들의 동선을 확인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와 데이비드 싱어가 MIT 입구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몰랐지만, 소속이 샐로먼 브러더스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설마 벌써 움직일 줄은 몰랐네요.”

김명준 과장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어떻게 할까요?”

“설마 납치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필요하다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무덤덤한 말에 최민혁 실장이 오히려 깜짝 놀랐다.

“진담입니까?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일이 잘못되지 않게 하면 됩니다. 호텔에서 조용히 지내게 한 후에 다시 풀어주면 문제도 없습니다.”

“각오가 대단합니다.”

김명준 과장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성공 스토리를 옆에서 다 봤던 사람이다. 이제는 필요하다면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었다.

“이번 일에는 수십억 달러의 이익이 걸려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아마 그건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설마 그쪽의 감시가 붙은 겁니까?”

“아, 그쪽은 아닙니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 쪽에서 사람을 붙인 것 같습니다. 오성 전자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 쪽 인물도 있는데, 그쪽은 그냥 관망하는 것 같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혀를 찼다. 그는 김명준 과장 때문에 안전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일이 극단적으로 흐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명준 과장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인생 1회 차를 통해서 이미 검증이 된 사람이 바로 김명준 과장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굳어 있는 김명준 과장에게 말했다.

“지금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장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을 테니까. 더욱이 아무리 샐로먼 브러더스라도 어원 제이콥 사장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가 백지 수표를 내민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인드가 바로 한국 기업 마인드죠. 그래서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하지 못한 겁니다. 어원 제이콥 사장 같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자금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도와줄 아이템이니까.”

“하면 실장님이 내건 제안이 바로 그것이란 말입니까?”

최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원 제이콥 사장은 제 제안을 믿지 않습니다. 이보다는 오큘러스 시스템을 더 믿을 겁니다. K투스도 좋은 예이고, KMP-01은 그에게 확신을 줄 겁니다. 생각이 있다면 이 KMP-01 가치를 잘 알아볼 테니까.”

“…….”

김명준 과장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호텔 창가로 보이는 MIT 전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제 MIT에서 한창 공부할 나이였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그는 혀를 차면서 툴툴거렸다.

“굳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샐로먼 브러더스라면 없던 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인간들이니까. 그래서 그들도 조심할 겁니다. 어원 제이콥 사장을 어떻게 해서라도 설득하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그보다는 우리 첫째 큰아버지의 행보에 더 신경 쓰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에게 연락해 두겠습니다.”

“그래요. 지금은 기다려야 할 타이밍입니다. 괜히 어원 제이콥 사장을 건드려서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

침착한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김명준 과장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도 이곳에서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보고서야 CDMA에 관심을 기울였다.

국내 뉴스를 살펴보면서 생각보다 이 사업 규모가 크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그 큰 사업을 앞에 두고 최민혁 실장이 보인 태도는 놀라웠다.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MIT 입구에 도착해서야 어원 제이콥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이상했다.

투자에 별반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 당장은 일이 있어서 미팅이 곤란합니다. 내일 아침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냉랭한 어원 제이콥 사장의 반응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가 기억하는 어원 제이콥 사장의 태도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젠장맞을. 최민혁 실장 짓이구나.’

이대로는 곤란했다.

일단 무리수를 두더라도 이쪽저쪽에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이곳이 아니어도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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