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80화 (480/1,021)

#480.

“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어려움만 극복하면 문제가 된 부분은 알아서 다 털어내겠습니다.”

파르빈 팀장은 어원 사장의 말을 일축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은 삼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퀄컴 기업 경영에 대해 간단한 확인만 할 목적으로 온 것이고, 다른 이유가 있다면 퀄컴을 돕기 위함입니다.”

“네?”

어원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떨 정도로 크게 당황했다. 그는 SEC로부터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파르빈 팀장 역시 민망한 얼굴이었다. 그는 기업 감사 전에 사전 조사라는 명분으로 이 자리에 나왔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실로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는 다른 관할 기관에서는 이를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

차후 이 일을 언론에서 안다면 큰 문제로 비화할 소지가 있었다. 원론적으로 미국 정부는 미국 사기업에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도 연방법 조문을 떠올리면서 한마디 한마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원 사장도 그제야 대충 상황을 눈치채고 불안감을 떨쳤다. 아니 그는, 한편으로 의아한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기업금융국에서 하는 일치고는 선을 너무 많이 넘었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상대가 누구기에 SEC에서 이렇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겁니까?”

“혹시 최민혁 실장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어원 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 대학 시절의 동료를 떠올렸다. 그러다 뒤늦게야 요즘 핫한 주목을 받는 한국인을 기억해 냈다.

“초, 초민혁?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군요. 아, 한국어 발음인데, 가만, 한국이라면 혹시… 에플 대주주인 그 초민혁을 말하는 겁니까?”

“네, 그분 맞습니다. 정확히는 최민혁 기획실장님입니다. 그분이 퀄컴에 관심이 많은 눈치입니다.”

“흠.”

턱을 쓰다듬은 어원 사장은 그제야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우려를 완전히 떨쳐냈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그가 퀄컴에 관심을 보일 이유는 100가지라도 댈 수가 있다.

SEC가 중간에 끼어서 브로커 역할을 하게 할 만한 역량도 있었다.

‘지금 최민혁 실장이 가진 에플 지분 가치가 수십억 달러를 넘었으니. 정부에서 당연히 간섭해야겠지. 다만 기업 행위에 간섭할 수 없다는 연방법 때문에 골이 아프겠어.’

아마 2년 전에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한마디로 거절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아무도 CDMA 단말기를 만들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차선책으로 퀄컴 연구 팀이 CDMA 단말기 칩과 단말기를 MIT 내의 퀄컴 연구소 내에서 직접 제조하기로 했다.

심지어 CDMA 장비도 말이다.

제조 경험이 전혀 없는 퀄컴이 제대로 이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소니 등에서 기술 이전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CDMA 단말기를 완성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그나마 어원이 다른 나라를 돌면서 계속 CDMA 강점을 홍보하기는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설사 어렵게 CDMA 단말기를 만들어서 홍보해도 그때뿐이었다.

TDMA 진영의 압박 때문에 홍보 역시 전혀 먹히지 않았다.

때문에 어원 사장은 이번 SEC 제안을 오히려 고맙게 느꼈다.

다만 그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떠올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좋은 협상 상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본다면 단순 협상이 아니라 퀄컴 지분을 요구할 것 같은데, 얼마 정도를 요구한다고 합니까?”

“40% 정도입니다.”

“40%라…….”

40% 지분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설사 유명한 실리콘 벤처 캐피털도 20%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흥분한 어원은 순간 울컥해서 ‘개소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엿같은 현실이 그의 입에 자물쇠를 꾹 채웠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 TDMA 진영의 온갖 횡포에 결국 CDMA 원천기술이 사장될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SEC가 굳이 감사라는 명분으로 이렇게 나타난 것은 그런 퀄컴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어원 사장은 정말 많이 갈등했다. 아직은 누구 도움을 받지 않고도 상대를 잘만 설득하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상대는 최민혁 실장이다.

MP3를 시작으로 해서 다양한 원천기술을 보유한 혁신적인 회사를 이끄는 리더다.

심지어 모바일과 관련된 필수적인 기술을 다 확보하고 있다.

만약 그 기술을 퀄컴 단말기에 적용한다면 퀄컴은 비약할 수도 있었다.

‘세상에 역시 공짜는 없어. 이걸 고려해서 40%를 요구한 것이겠지.’

다만 40%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주주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어원 사장은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연합니다. 아, 그리고 새삼 말하는 것이지만 이번 일은 SEC가 관여한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퀄컴의 절박한 상황을 알기에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파르빈 팀장의 저자세에 어원 사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통신 사업에 외국인이 끼어들어도 괜찮은 겁니까?”

“최민혁 실장님은 미국인입니다.”

“그래요? 제가 듣기로는 금시초문이군요.”

“아, 곧 미국인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을 협박이라도 한 겁니까? 그 친구 성격을 봐서는 아무리 미국 정부 기관 요구라고 해도 호락호락 들은 친구가 아닌데, 괜한 문제를 만든 것 아닙니까?”

“절대 아닙니다. 제가 굳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아, 아, 알겠습니다.”

어원 사장은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를 챘다.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딱 봐도 SEC와 최민혁 실장 사이에 거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비한 건가? 하긴 SEC를 상대로 압력을 넣을 정도가 아니고서야 에플 인수는 불가능하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친구네.’

약간의 오해가 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파르빈 팀장은 그 점을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 * *

최민혁은 파르빈 팀장에게서 사전 조율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 장소는 물론 MIT 내의 퀄컴 연구소다.

그도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MIT’란 말에 주목했다.

당연히 이유가 있다.

퀄컴 지분을 인수한 후에 다음 단계가 바로 인공지능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초기 단계의 인공지능 분야를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음성 인식, 영상 인식과 같은 인공지능 분야는 아무리 내가 전문 지식을 안다고 해도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해.’

그는 자연스럽게 1회 차 기억을 조금씩 떠올렸다.

인생 1회 차에서 유학을 가려던 시기가 있었다.

그중에 가고 싶었던 대학이 MIT였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최민혁 자신은 MIT나 칼텍과 같은 미국 유명 공과 대학에 대한 낭만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그가 대리만족으로 원한 것은 MIT 출신의 인재였다.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의 수작으로 들어간 감옥에서 나온 후에 정신을 차려서 새로운 벤처를 설립할 때 경력에 문제가 좀 있는 MIT 출신 엔지니어를 뽑았다.

그가 바로 이세현 박사였다. 정확히는 MIT 박사 2년 차다.

강준석 팀장과는 경우가 좀 다르다.

이세현 박사는 MIT 대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결국 MIT에 대한 믿음 때문에 석사, 박사 2년 차까지 공부했다.

특히 석사 지도 교수가 노벨 과학상을 받은 실력자였다.

하지만 MIT 내의 내부 경쟁은 살인적이다.

그는 자신이 원한 연구 팀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한동안 방황도 했다.

처음에는 미국 직장을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 자신의 전공이 적용된 분야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공 지식을 살리지 못한 분야는 또 싫었다.

결국 경제적인 문제를 견디다 못해서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중견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다음에는 벤처에 발을 들였고, 이리저리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옮긴 회사가 바로 최민혁이 설립한 벤처 회사였다.

‘면접에서 본인이 직접 한 이야기이니까.’

어떻게 보면 당시 최민혁 실장이나 이세현 박사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세현 박사는 더 물러설 수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 이 벤처에 매달렸다.

이때서야 비로소 이세현 박사 진가가 드러났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이직한 한 친구가 기술을 다 빼돌린 것이다.

최민혁 처지에서는 실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는 후일에야 그 일도 최문경 부회장이 손을 썼다는 것을 알았다.

‘아,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네.’

문제는 이게 아니다.

당신 이세현 박사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매달린 회사가 어이없이 파산한 것에 절망했다. 그는 진심으로 최민혁 실장을 보스로 삼아서 마지막 사력을 다하려고 했는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살이었다.

최민혁은 이세현 박사의 일을 떠올리자 심란했다. 강준석 팀장도 기억나는 인물이었지만 이세현 박사만큼은 아니었다.

‘아니, 몇 사람 더 있나? 다들 잘 지내나 모르겠어. 흠, 지금은 어떨까? 이세현 박사는 경력을 떠나서 믿을 만한 사람이었어. 가만, 지금쯤이면 박사 학위를 밟을 때인가? 뭐 한 번 정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는 결국 김명준 과장에게 이세현 박사에 관한 조사를 맡겼다.

김명준 과장도 MIT 퀄컴 연구소 방문은 예정에 없던 일이라서 이번만큼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세현 박사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그냥 한 다리 건너서 소개받은 인재입니다. 한 번 이야기나 해보려고요. 이왕 미국에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만 그의 내심은 좀 달랐다. 그는 AI와 관련된 지식을 떠올려 보았다. 다행히 제법 이 분야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떠올릴 수 있었다.

‘뇌 공학 쪽을 연구했다고 그랬지? 그러다가 부전공으로 AI 쪽을 팠다고 했어.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만, 잘만 하면 지금부터라도 기반을 만들어 둘 수 있겠어.’

* * *

뇌공학은 뇌의 구조를 바탕으로 만든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바이오, 나노 기술과 같은 첨단 연구 분야를 기반으로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그럴듯한데, 막상 들여다보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미세 영역인 만큼 연구비도 많이 들고, 관련 연구를 맡기도 쉽지 않다.

이세현 박사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자기표현에 능숙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MIT 학부 과정은 그럭저럭 잘 버텼지만 석사 과정은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존경하는 노벨상 수상자인 지도교수는 이런 이세현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세현의 다른 동료가 지도교수와 더 잘 지냈다고 봐야 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석사 과정이 겉돌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일도 맡지 못했고 말이다.

어렵게 석사 과정은 통과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가 원한 연구실에는 가지 못했다.

이세현 박사는 결국 다른 연구실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거기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연구실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면서 박사 학위도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서 인종차별이었다.

이제 벌써 박사 2년 차.

그의 고민은 깊어갔다.

오늘도 마찬가지.

외부의 경외 어린 시선에도 MIT 연구실을 향하는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때 들린 익숙한 한국어.

“실례합니다.”

“아? 네?”

“전 최민혁이라고 하는데, 혹시 퀄컴 연구소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까요?”

넓고, 복잡한 MIT답게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학부생도 간혹 길을 헤맬 정도였으니까.

이세현 박사는 퀄컴 연구실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MIT가 처음인 최민혁은 정말 이세현 박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혹시 직접 안내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MIT는 처음이라서요.”

이세현 박사는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해서 한숨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동양인이 별로 없는 MIT에서 만난 한국인이 기껍기도 해서 흔쾌히 최민혁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이세현 박사의 리즈 시절을 보면서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 전형적인 공돌이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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