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77화 (477/1,021)

#477.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에플 브랜드가 망가진 것은 오래되었습니다. 오죽하면 GE조차 에플 인수를 포기했겠습니까. 에플은 이미 가망이 없는 절망적인 환자입니다.]

이게 유니버설 이사회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평소 냉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리처드 게리 부사장의 태도 변화에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애초에 스티븐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쪽 시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리처드 부사장은 유니버설 이사진에게 직접 에플 차세대 제품을 보여 주기로 했다.

이 제안에는 유니버설 이사진도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우리 의견이 바뀌는 것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스티븐이라고 해도 당장 에플 내부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다시 호출받은 강준석 팀장은 이 자리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여러분이 지금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제품에 불과합니다. K투스 업그레이드는 이미 진행 중이고, 그것은 이것과는 또 다릅니다!]

다소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점은 지울 수가 없었다.

아직 구현되지도 않는 기능을 넣어서 아예 소설을 쓴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티븐이 강준석 팀장을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굳이 아이컴이 아니라고 해도 KMP-02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이 이 KMP-02를 가지는 순간부터 MP3 파일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팽창할 겁니다.]

[…….]

유니버설 이사진은 에플 차세대 제품에 꽤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그들은 KMP-02에 들어간 원천기술 하나하나를 확인할 때마다 탄식했다.

과반수의 유니버설 이사진은 스티븐에 대한 태도를 달리했다. 그들은 오히려 열정적으로 스티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뭐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에게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설마 KM 전자가 소유한 원천기술이 다 여기에 적용되었다는 말입니까?”

“KMP-01이 그 제품이고, KMP-02는 거기서 한 단계 더 격이 상승한 모델입니다. 당장 여기에 사용된 LCD는 IPS 타입으로 터치 밀림 현상이 없습니다.”

심지어 IPS-LCD는 놀랍게도 컬러 타입이었다.

그 안에 사용된 OS 역시 기존의 모바일 기기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유니버설 이사진은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다만 여전히 에플에 부정적인 유니버설 이사진 몇 사람이 나서서 스티븐을 비난했다.

[아니, 그러면 불법 다운로드를 용인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스티븐은 눈을 부라렸다. 그는 여전히 강한 어조로 그들을 타박했다.

[시장이 바뀌고 있습니다. 고객이 새로운 서비스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가 아닌 일부만이라도 그 시장을 얻을 수 있다면, MP3로 말미암은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기존 CD와 같은 클래식한 음반 유통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유니버설 이사진 역시 이 복잡한 문제에 심각하게 번민했다.

그런데 이전과는 상황이 또 달랐다.

바로 최민혁이 뿌려놓은 씨앗인 냅스트 때문이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냅스트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본격적인 소송이 벌어지면서 냅스트 사용자는 오히려 더 급격히 늘어났다.

사실 유니버설 이사진도 이 문제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 자신들이 벌집을 건드렸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다.

정작 다른 메이저 음반사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소송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스티븐은 유니버설이 이번 소송 늪에 빠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먼저 이 온라인 음원 시장을 공략한다면 유니버설의 가치는 더 올라갈 겁니다. 이것은 다른 메이저 음반사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강준석 팀장은 MP3 원천기술에 대한 양념을 슬쩍 쳤다.

[우리 KM 전자는 이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몇 년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KMP-02는 그 과정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두 사람의 콤비는 뜻밖에 궁합이 잘 맞았다.

진지한 스티븐 덕분에 강준석 팀장의 프레젠테이션은 꽤 매력적이었다.

유니버설 이사회도 눈앞에 있는 물건을 보자 이전처럼 반대하는 주장을 고집하기 힘들었다.

다만 여전히 반대하는 이사도 있었다. 결국, 합의를 거쳐서 유니버설의 음원 일부만을 KMP-02에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이는 유니버설이 가진 전체 음원의 30%에 불과했다.

스티븐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첫 협상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했다.

[좋습니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겠습니다. 하지만 제품이 출시된 이후에 얻는 수익을 본다면 여러분 태도는 달라질 겁니다. 그건 새로운 기술 변화에 따른 시장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첫 단추로는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 * *

뒤늦게 소식을 들은 최민혁의 처지에서는 절로 환호가 나오는 일이었다.

‘이게 사실 후일 알려질 일이지만 기념비적인 일이지. 스티븐도 아직은 이번 계약의 본질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늘 그렇지만 처음이 어려운 일이다.

KMP-02 출시 이후에 유니버설의 매출은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다만 최민혁은 굳이 이런 미래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이번 스티븐의 협상 타결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역시 스티븐입니다.”

스티븐은 그답지 않게 툴툴거렸다.

“최 실장님이 만들어놓은 판을 최대한 이용했을 뿐입니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달라요. 보수적인 음반 업체 성격상 이번 협상에 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최민혁이 계속 우려하던 부분이었다.

만약 최민혁 자신이 나섰다면 유니버설과 협상이 잘 풀렸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유니버설이 가지는 자부심 때문이다.

최민혁은 설사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해도 성격상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스티븐이 나선 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앞으로도 스티븐이 알아서 잘할 거야. 뭐 에플이 쑥쑥 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가에 반영될 것이고, 그 지분 가치 변화는 다시 KM 전자 주가에도 영향을 줄 테니 말이야.’

최민혁 자신은 스티븐과 에플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쪽쪽 빨기만 하면 될 일이다.

스티븐은 물론 최민혁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냅스트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냅스트가 MP3 음원 온라인 시장의 토대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냅스트가 없었다면 유니버설은 절대로 이번 협상에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가요?”

“유니버설 측 변호사는 따로 정보원을 구해서 냅스트의 원저작권자를 찾는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들이 최초 냅스트 설계자를 찾았다면 이번 협상은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겁니다.”

“설마요?”

“아닙니다. 이유야 어쨌든 냅스트의 초기 코드를 설계한 사람이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엔지니어입니다!”

스티븐은 뜻밖에도 냅스트의 기술자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민혁은 계속 냅스트 이야기가 나오자 가슴이 뜨끔했다.

굳이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잊어야 할 일이다.

“…제가 알기로 인터넷에 그냥 공개된 것으로 압니다만?”

스티븐은 피식 웃었다.

“냅스트 저작권자는 명확하게 자신의 권리를 이거다라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부분은 파고들 여지가 많습니다. 유니버설이라면 설사 백만 달러, 아니, 천만 달러를 지급하고서라도 저작권을 샀을 겁니다. 단순히 냅스트 때문이 아니라 다른 메이저 음반사를 견제할 용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최민혁은 냅스트에 대한 언급은 더 하지 않았다. 그는 스티븐이 냅스트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솔직히 입이 근질근질했다.

그래도 냅스트 원소스 출처에 관한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 유니버설 이사진 분위기는 어때요? 그쪽 대주주라면 이제 에플 주식에도 관심이 있을 텐데, 이번 시제품을 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스티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왜 갑자기 에플 본사에 나타나서 이렇게 간섭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안 것이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말을 하려고 했는데, 혹시 유니버설 이사회를 통해서 에플의 차세대 제품을 알릴 목적이었습니까?”

최민혁은 그제야 악동같이 씩 웃었다.

“어느 정도 고려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스티븐은 굳이 이 부분에 대해서 최민혁을 질타하지 않았다. 이미 KMP-02은 어느 정도 시제품 개발이 끝났고, 양산성 검토에 착수한 상황이다.

시간상으로 본다면 지금 이 시기에 KMP-02에 대해서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최민혁은 굳이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반샐로먼 브러더스 세력이라면 KMP-02와 아이컴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요?”

“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도 정보가 흘러갈 겁니다.”

최민혁은 IMF이라는 거대한 계획을 떠올리면서 확신했다.

“그쪽 샐로먼 브러더스의 대응은 상관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물러나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쉽게 물러나지 못할 겁니다.”

“네?”

이 말에는 스티븐조차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 * *

스티븐은 굳이 최민혁 실장이 왜 시제품 정보를 흘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얼마 있지 않아서 그 이유 중의 하나를 추론할 수 있었다.

바로 사교 모임 초청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설마 이것을 예상하신 겁니까?”

“아뇨. 꼭 이런 모임 초청을 예상한 건 아니었습니다. 뭐, 그래도 직접 따로 만나는 것도 한 방법이니까.”

최민혁은 비밀 사교 모임 초청장을 살피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는 에플 주식에 관심을 많이 이들이 결국 자신에게 연락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꼭 그게 아니어도 반샐로먼 브러더스 측 파벌들이 관심을 둘 일이니까.’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에플 주식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최민혁이 원한 것은 이들의 관심을 이용해서 에플 주식 수급 상황에 변화를 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굳이 에플과 최민혁 실장을 죽이는 방식으로 이익을 볼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게 더 쉬운 방식이다.

실제로 샐로먼 브러더스조차 초기에 KM 전자를 이용해서 최대한 짭짤한 이익을 봤었으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은 이 모임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가끔 자금이 급할 때는 이 모임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는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호, 스티븐도 잘 아세요?”

“월가의 카파 베타 피와 비슷한 연례 행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주로 실리콘 밸리 쪽의 인물들이 참석하는데, 현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비롯해서 꽤 잘나가는 이들이 나오는 모임입니다. 이번에는 에플 이사회 쪽도 나올 테니, 안면을 터놓는 것이 좋습니다.”

카파 베타 피는 월가 스타 기업인과 뉴욕 시장을 비롯한 소위 말해서 뉴욕의 권력자가 모이는 비밀 사교 모임이다.

미국 사회 1% 모임이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모임이기도 하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긴 카파 베타 피 모임이 알려지는 것은 10년 정도 후이니까. 아마 이와 비슷한 모임인 것 같구나.’

스티븐은 눈치를 보다가 한 가지를 더 말해주었다.

“최민혁 실장님을 따로 만나고 싶어 하는 이가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아마 이번 에플 인수와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최민혁은 스티븐 말의 뉘앙스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누굽니까?”

“미국 연방 증권 거래 위원회 쪽에서 나온 것으로 들었습니다.”

최민혁도 예상을 못 한 이가 등장하자 어이가 없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SEC가 나서다니. 이거 혹시 저만 따로 차별하는 건가요?”

스티븐은 곧 손을 흔들었다.

“아마 그런 문제였다면 에플 인수 자체가 어려웠을 겁니다. SEC도 에플 인수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것일 겁니다.”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 일인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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