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75화 (475/1,021)

#475.

“…지금 에플 주식을 사들이자고?”

에이단 밀러는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고수했다. 하지만 최근에 얻은 정보 때문에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의 최악을 대비해야 했다.

스티븐이 이번 일로 초대박을 칠 확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에플 주가가 현재 2.7달러니 결코 낮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컴과 KMP-02이 성공한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집니다. 아무리 샐로먼 브러더스라고 해도 시장을 역행할 수는 없습니다.”

“…설마 샐로먼 브러더스 그 친구들 뒤통수라도 치자는 거야?”

에이단 밀러는 괄괄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이번 에플 이사회 문제 때문에 많은 분이 이사님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만약 더 나쁜 선택을 한다면 그들은 이사님에게서 손을 뗄 겁니다.”

마쿨라 이사는 에이단 밀러의 경고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 역시 최근 투자자들에게서 안 좋은 이야기를 계속 들은 것이다.

그 덕분에 다른 회사 CEO로 이직하는 것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줘야 했다.

만약 이번 에플 주가 폭등 찬스 기회를 간과한다면 이제는 은퇴를 생각해야 했다.

“끙, 어쩔 수 없지. 비상 대책도 사전에 준비해 놔.”

“네.”

마쿨라 이사는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보고서를 다시 읽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이 왜 한국의 재벌 3세를 걱정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빌어먹을.’

* * *

마쿨라 이사는 에플에 있을 때부터 미국 언론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쉽게 말해서 다양한 로비를 해왔다.

그 일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무리한 요구에도 미국 언론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에플은 최근 심각한 경영난 때문에 종업원을 마구잡이로 잘랐다!]

[직원을 자른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 요는 에플이 임직원들에게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에플의 인재는 이미 에플호를 떠나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유능한 인재가 에플호를 다시 찾겠나? 이는 에플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딱 에플의 몰락을 예견하는 기사였다.

그 덕분에 주목을 받은 이는 마쿨라 이사였다. 그는 미국 메이저 뉴스와 인터뷰를 통해서 스티븐의 막장 짓을 맹비난했다.

[스티븐은 자신이 마치 히틀러라도 된 것처럼 종업원을 마구잡이로 잘랐다!]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회의 도중에 해고당했다!]

[스티븐은 지금 도저히 CEO라고 하기 힘든 일을 벌이고 있다!]

[에플 손실액을 보라. 7,000만 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 중이다. 그런데 막상 이 적자 경영에 관한 책임을 임직원에게 돌려서 무려 전 임직원의 10%에 해당하는 1,800명을 감원했다!]

[에플이 다시 부활하는 데 필요한 것은 기존 임직원들을 자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고생한 임직원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에플 부활을 위한 첫걸음이다!]

마쿨라 이사의 에플 비난 인터뷰 기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에플의 주가다.

그런 상황에도 에플의 주가는 오히려 3달러를 돌파했다.

마쿨라 이사가 온갖 개연성 없는 소설을 써도 에플의 주가는 이상할 정도로 오르기만 했다.

마구잡이로 잘라낸 구조조정이 오히려 에플의 가치를 키운 것이었다.

에플 임직원들의 피를 바탕으로 10년 내 에플 주가 중 최고가를 찍은 것이었다.

최민혁은 자신이 흘린 정보가 에플 주가에도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그는 김명준 과장이 추가로 조사한 정보를 통해서 에플 주식을 매입한 이들 중에는 마쿨라 이사 쪽도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하는 짓만 보면 한국 작전 세력이랑 별반 다른 것이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언론 인터뷰 때는 에플을 그렇게 씹더니, 뒤에서는 에플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으니까요.”

“어떤 세력이 움직였는지는 파악했습니까?”

“이쪽저쪽 세력이 복잡하게 엮여 있습니다.”

“마쿨라 이사 능력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군요.”

“한때는 스티븐의 멘토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인맥을 구축한 사람입니다. 가볍게 생각할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스티븐을 끌어내린 이들 중의 하나니까.”

스티븐이 때마침 최민혁을 찾아왔다.

“유니버설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다른 메이저 음반사는 상황이 나쁘지 않습니다. 아마 그쪽은 협상해도 쉽게 결과를 도출해 내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유니버설은 모회사의 삽질 때문에 자금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최민혁은 최근 미국에 오기 전에 조사한 냅스트 관련 정보를 떠올렸다.

“하면 유니버설이 냅스트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좋네요. 다만 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겠습니다. 모든 일은 스티븐이 알아서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 * *

유니버설의 리처드 게리 부사장은 에플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는 솔직히 에플의 주가가 부러웠다. 고작 0.35달러에 불과하던 주가가 벌써 3달러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에플 주식을 사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관망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이런 에플이 아니라 냅스트였다.

“협상은 어때?”

진지한 리처드 게리 부사장의 모습에 토마스 무어 수석 매니저는 피식 웃었다.

“숀 폐닝 측 변호사는 물러설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바로 냅스트를 둘러싼 소송이다. KMP-01이 알음알음 미국에서 팔린 후에 냅스트를 둘러싼 소송이 본격화된 것이다.

다른 회사와는 달리 유니버설은 모회사의 묻지 마 투자 때문에 자금 압박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희생양으로 냅스트를 선택한 것이다.

“소니의 베타맥스 VCR 주장은 계속하는 거야? 판사 새끼가 그걸 들어주고?”

“아무래도 신기술 분야라서 쉽게 우리 쪽을 밀어주지 않습니다.”

MP3 공유라는 측면만 본다면 음원 공유는 불법이다. 문제는 이게 개인을 중심으로 공유된다면 조금 달라진다.

불법 복제의 매개체라고 강조를 해도 법적 문제에서는 명확하지 않았다.

판사들도 이 부분에는 갈팡질팡했다.

토마스 무어 수석 매니저도 이 문제만큼은 리처드 게리 부사장에게 질문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닐까요? CD 매출에 큰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5%가 줄었어.”

“네?”

“전년 대비 CD 매출이 5%가 줄었다고. 자네 말처럼 아직 MP3 음원 서비스가 심각한 상황이 아닌데도 이런 문제가 나타났어.”

“하지만 다른 음반 업체는 그저 우리 쪽을 지켜보기만 하지 않습니까?”

리처드 게리 부사장은 답답해서인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는 회의실에서 일어나서 주스를 마셨다. 그나마 좀 살 만했다.

그 역시 튀는 행동은 별로 하기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니버설의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다른 업체와 우린 사정이 다르잖아. 모회사인 비방디가 이쪽저쪽에 투자를 너무 많이 했어.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지면 당장 우리 쪽을 건드릴 거야.”

“그거야…….”

“회사에 자금 압박이 들어오면 자네 같은 경우는 갈 데가 많겠지. 하지만 아닌 임직원도 많아. 설마 불미스러운 일을 원하는 건가?”

“…아닙니다.”

“나도 무리한다는 것은 알아. 그래도 누군가는 나서야 해. MP3 파일을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 해!”

리처드 게리 부사장은 혀를 찼다. 그 역시 토마스 무어 수석 매니저를 압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자기들 편이 아니었다.

어떤 형태로든지 소송에서 이겨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야 했다.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해.’

“아, 그런데 숀 폐닝 그 친구가 냅스트를 자작해서 만들지는 않았다고 했지? 그 원소스 코드의 주인을 찾았나?”

“소스 코드 출처를 찾아봤는데, 미국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이라는 것까지 확인은 했는데, 누가 올렸는지 아직 모릅니다.”

당시 최민혁 실장은 홍수욱 대리와 오상현 과장에게 지시해서 프로그램 소스를 뿌렸다. 그런데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설사 CIA를 동원한다고 해도 프로그램 원소유권자를 밝히기가 어려웠다.

“아쉽네. 그 원주인이 있다면 그쪽의 라이센스를 사들여서라도 냅스트를 문 닫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제 생각에 저작권이 목적이었다면 이미 벌써 나섰을 것입니다.”

“그건 모르는 이야기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어.”

“하지만 의미가 있겠습니까? 냅스트의 변종이 벌써 수십 개가 생겨났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확인을 해보는 것이 낫잖아.”

리처드 게리 부사장이 한창 이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당사자가 자신이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에플의 스티븐이라고? 아니, 사전 약속도 없이 갑자기 왜 찾아온 거지? 흠, 들어오라고 하게.”

스티븐은 물론 비서를 통해서 사전에 리처드 게리 부사장이 자리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온 것이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 * *

리처드 게리 부사장은 갑작스러운 스티븐의 방문에 영문을 잘 몰랐다.

더욱이 스티븐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수행원을 주렁주렁 달고 왔다.

그들 중에는 동양인도 있었다.

“흠.”

처음에는 에플 CEO인 스티븐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눈에 익은 동양인도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자신이 아는 동양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지?’

다행이라면 토마스 무어 수석 매니저가 그를 알아보았다.

“…설마 최민혁 실장?”

최민혁 실장은 스티븐의 뒤에서 구경만 하려고 참석하려고 온 것이었는데,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나오자 머쓱한 표정을 한 채 앞으로 나섰다.

“이런, 절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맙소사, 진짜 최민혁 실장님이군요.”

“하하하.”

토마스 무어는 정말 놀랐다. 그는 다른 것이 아니라 MP3 원천기술과 MP3 플레이어 때문에 최민혁을 사전에 깊이 조사했었다.

그러니 최민혁 실장의 방문에 놀란 것이다.

리처드 게리 부사장은 토마스 무어의 말을 듣고서야 상대를 알아보았다.

“이런, 설마 에플 인수로 미국에서도 스타 기업인인 최민혁 실장님을 몰라봤다니, 죄송합니다.”

정확히는 에플 지분의 40%를 소유한 에플 대주주 중의 한 사람이다.

“천만에요.”

최민혁은 인사를 한 후에야 스티븐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 미팅에 참여한 유니버설의 다른 임직원들도 최민혁 실장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에플 인수는 그만큼 미국에서 뜨거운 이야기였다. 특히 스티븐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최민혁 실장의 모습은 미국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다.

정작 미국 정부조차 외면한 에플을 인수한 사람이 바로 한국인 최민혁 실장이었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예상보다 좋았다.

유니버설은 한국인이라고 색안경을 끼지도 않았고, 한국 기업이라고 차별하지도 않았다.

인생 1회 차를 살아 본 최민혁 실장 처지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땐 그들만의 라운드에 끼지 못해서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심란하군.’

미국이라는 장벽.

그들만의 리그에 끼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해봤는데도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나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상대가 알아서 저자세를 취했다.

아무래도 MP3 원천기술과 관련이 있기에 유니버설 쪽은 최민혁 실장을 더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다만 스티븐이 실제적인 협상에 들어가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앞으로 음원 시대는 CD와 같은 매체뿐이 아니라 MP3 파일과 같은 방식이 주류가 될 겁니다. 따라서 온라인 음원 서비스와 같은 방식이 대세가 될 겁니다.”

리처드 게리 부사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인터넷 온라인 음원 서비스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보안 문제부터 시작해서 불법 내려받기까지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이건 제가 수긍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 MP3 음원 시대가 열린다면 음원 시장은 기존 시장과는 달라진다.

이건 실로 큰 변화다.

과연 메이저 음반 업체가 이 흐름을 따라갈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바로 불법 복제 때문이다.

스티븐이 슬쩍 나섰다.

“만약 불법 복제에 대한 대안이 있어도 그렇습니까?”

“네?”

“유니버설 쪽에서 냅스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들었습니다. 파일 공유 서비스에 대한 대안을 우리 쪽에서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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