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70화 (470/1,021)

#470.

“콜린스가 있잖아.”

“콜린스 매출은 최근 다시 반등하나 싶었는데, 요즘 주춤해. 아무래도 KM 전자의 상표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정확히는 초기 콜린스 판매량과 비교할 때 지금 판매량이 적다는 이야기다.

“그러냐?”

“어. 솔직히 그렇잖아. KM 전자가 잘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성 전자나 LC 전자와 같은 상표 인지도는 약하잖아.”

“글쎄, 에플을 인수한 KM 전자를 아직도 얕잡아 보기는 좀 그렇지 않아?”

“그건 인정해. 그런데 에플도 썩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에플 주가가 3달러 최고점을 돌파할 수가 있는 거야?”

“거품이잖아. 솔직히 KM 전자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너무 많이 올랐어.”

“하긴.”

김홍수 역시 이찬형 부사장 이야기에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이제 KM 전자 주식을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었다.

‘설마 27만 원 대에서 더 오를 수가 있을까?’

실상 KM 전자 주가가 더 올라도 문제였다. 지금도 KM 전자 주가가 요동을 치는데, 30만 원을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 * *

갑작스러운 종합주가지수 폭락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다.

당연히 이 일이 터졌을 때, 증시안정기금에서는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이들이 사들인 종목 중에는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KM 전자 주식이었다.

이번 일을 책임진 데니스 샐로먼 이사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증시안정기금이 KM 전자를 천억 원 가까이 사들였다고?”

데니비드 싱어 수석 매니저 역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주로 23~25만 원대에서 대량으로 주식을 매집하고 있습니다.”

“하, 미친 것 아냐?”

“증시안정기금 운용은 내년에 공식 해체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재정경제원은 KM 전자의 주가 이상 현상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 중입니다.”

“설마 우리를 걸고넘어지는 건가?”

“…네.”

샐로먼 브러더스는 이번에 노골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세워서 KM 전자 주가를 흔들지 않았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조용히 작업했다.

다만 워낙에 금액이 큰 만큼 티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최근 KM 전자 주식에 대량으로 공매도를 건 것은 너무 눈에 뜨이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굳이 KM 전자가 직접 로비를 하지 않아도 재정경제원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는 경기 연착륙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고육지책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이 시기에 KM 전자 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정부에서 원치 않았다.

하물며 그걸 조장하는 세력이 외국계인 샐로먼 브러더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이 꼭 증시안정기금 때문인 것은 아니었다.

“25만 원대에서 대량으로 매수세를 주도한 세력은 그외에 기관들 역시 빼놓기 힘듭니다. 특히 오성 증권과 LC 증권이 이를 주도했는데, 다른 대기업 역시 빠지지 않았습니다.”

“설마 그 인간들이 최민혁 실장 쪽으로 노선을 갈아탄 건가?”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당장 그것부터 알아봐!”

“…알겠습니다.”

* * *

한병수 부장은 김영광 실장과 만나서 앞으로의 최민혁 실장의 행보와 관련해서 다양한 협의를 했다.

그중에는 오락가락한 이야기도 많았다.

김영광 실장은 깊은 우려를 보였다.

“이래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병수 부장은 자기보다 직급은 높지만 자신의 로열패밀리라는 위치 때문에 저자세를 보이는 김영광 기획실장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IPS LCD 생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최민혁 실장 눈 밖에 벗어난 행동을 하면 최민혁 실장이 당장 계약을 취소할 겁니다!”

두 회사 간의 공급 계약서에는 첨부 항목이 들어가 있었다.

[*만약 두 회사 중에 한 회사가 악의적으로 상대 측에 손해를 입힐 때에 이 계약은 무효다!]

가는 글씨가 아니라, 굵은 활자체로 큼직하게 계약서를 장식한 이 문구 밑에는 조목조목 구체적인 예를 다 들어놓았다.

세부 사항은 생각보다 내용도 많고 디테일했다.

대표적인 부분이 손실과 관련된 부분이다. 특히 계약 무효에 따른 손실은 보상할 의무가 없다는 정을 명시했다.

즉 LC 전자가 제품 납품 중에 계약이 쫑 나면 재고 손실을 스스로 떠안아야 했다.

한병수 부장은 계약서를 흔들면서 버럭 소리쳤다.

“이런 계약서를 보고도 지금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런데 이번 계약은 LC 전자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IPS-LCD 관련 특허 때문이다.

특허와 관련된 제약이 너무 많아서 LC 전자도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처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최민혁은 이 계약서와 관련해서 다양한 당근도 제시했다.

그중에는 수익성과 관련해서 일부 특허료를 줄여주겠다는 항목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불공정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임명진 차장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기획 2팀만이 아니라 1팀 역시 같이 불려 나와서 다들 입을 다물었다.

무려 300만 대, 정확히는 오성 전자와 나누어서 150만 대 계약이다.

하지만 이건 초도 물량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바뀔 수가 있다.

한병수 부장이 그걸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생각을 해보세요. 저라면 에플을 통해서 미국 시장에도 팔 겁니다. 그걸 확신하기에 300만 대라는 초도 물량을 정한 겁니다. 하면 추가적으로 얼마나 팔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기회를 놓쳐야 합니까?!”

“…….”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중소기업도 하지 않는다는 갑질 계약서에 다들 입을 쿡 다물었다.

이런 시기에 LC 전자를 찾아온 것은 역시 데이비드 싱어였다.

“우리 쪽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설마 우리 뒤통수를 치려는 겁니까?”

한병수 부장이 냉큼 받아쳤다.

“데이비드 당신도 이미 뉴스를 봤을 것 아닙니까. KM 전자와의 계약 때문에 일방적으로 당신을 밀어주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그러면 KM 전자 주식은 왜 매입한 겁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룹 차원에서 무조건 우리 쪽 의견만 들을 수는 없습니다.”

“설마 KM 전자의 주가가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건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답답하군요. 설마 앞으로 우리 쪽의 투자를 받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겁니까?”

샐로먼 브러더스의 투자를 안 받겠다니.

큰일 날 소리다.

이건 한병수 부장의 권한을 넘어선 일이다.

“…….”

한병수 부장은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가 없었다. 상황에 따라서 두 기업의 상황이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싱어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 역시 LC 전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그렇게 KM 전자의 성공을 자신하는 겁니까?”

“…….”

역시나 대답 없는 한병수 부장. 그런데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다들 병풍처럼 침묵했다.

‘하.’

한병수 부장 역시 자신의 행동이 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비즈니스에는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군도 없었다.

그는 데이비드 싱어가 떠나자 임명진 차장에게 지시했다.

“최 실장에게 알려.”

“네? 데이비드 싱어의 방문 말입니까?”

“그래. 괜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오해를 받는 것보다는 나아. 설마 계약위반으로 LCD 공급 취소하고 싶지는 않겠지?”

“아, 아닙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이왕이면 보고서식으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서 샐로먼 브러더스 반응을 전달해. 그래야 생색이라도 낼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최민혁 실장은 갑자기 LC 전자 기획실이 보내온 보고서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보고서 안에는 뜻밖에도 최근 샐로먼 브러더스 행보, 정부의 대응, 거기에 기관 투자자들의 반응이 세세하게 잘 나와 있었다.

아무래 KM 전자 기획실보다 우월한 정보 능력을 갖춘 덕분이었다.

“…얘들이 미쳤나?”

조성돈 팀장도 보고서 내용을 다시 살피면서 툴툴거렸다.

“…아무래도 IPS-LCD 공급 계약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 그 계약서 말입니까. 하지만 LC 전자가 굳이 이럴 필요는 없는데, 누가 보면 윈윈를 추구하는 좋은 대기업인 줄 알겠네요.”

“…….”

조성돈 팀장은 힐끗 최민혁 실장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자신이 보기에는 윈윈이 아니라 겁을 집어먹고 알아서 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알아요.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겠죠. LCD 공급 계약이 끝나면 얼마든지 뒤통수를 치고도 남을 인간들이니까.”

실제로 샐로먼 브러더스와 같이 손을 잡자는 동맹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LC 전자가 보인 행동은 박쥐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최민혁은 굳이 LC 전자의 신뢰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이는군요.”

“아마 이것 외에 다른 곳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특히 미국 쪽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최민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은 KM 전자의 주가 흔들기에 집중할 겁니다. 에플은 건드릴 건수가 별로 없어요. 이미 5년 동안 주가가 그걸 증명합니다.”

5년 내내 에플 주가는 평균 0.35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이미 시달릴 만큼 시달린 에플이기에 이슈로 흔들어서 더 주가를 하락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단기로 3달러로 폭등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하면…….”

“일단 샐로먼 브러더스의 동선을 계속 지켜보면서 이곳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 * *

사실 오성 그룹이나 LC 그룹이 최민혁 실장과 공동 노선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내부 정보를 알고 있으니,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확신했을 뿐이다.

다만 샐로먼 브러더스도 최민혁 실장이 내놓을 아이템과 그 시기를 짐작하진 못했다.

그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었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사람의 도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어지간해서는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하, 웃기는 놈들이네.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을 그렇게 맹비난하는 놈들이 갑자기 이런 식으로 태도를 바꾸다니.”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 가 있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 오성 전자는 KM 전자와 2.7인치 LCD 300만 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거, 정말이야?”

“네. 사실인 것은 확인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2.7인치 LCD를 사용한다는 거지?”

“그건 지금 확인 중입니다.”

불행히도 샐로먼 브러더스 측은 KM 전자 측에 박아 놓은 채널이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오성 전자나 LC 전자 쪽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IPS LCD를 공급해야 하는 오성 전자나 LC 전자는 어느 정도 정보를 알 텐데도 이를 외부에 절대 알리지 않았다.

그들 처지에서는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 정보를 흘릴 수가 없었다.

손실 때문이다.

지금은 차라리 KM 전자가 대박을 치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했다.

이들이 샐로먼 브러더스와 마치 동맹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박쥐도 아니고, 믿을 수가 없는 놈들이네.”

데이비드 싱어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은 데이비드 싱어를 타박하지 않았다. 이미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고 끊임없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이 설마 탐욕스러운 한국 대기업조차 손을 떼는 일로 이어질지를 몰랐을 뿐이다.

“다른 대안은 없어?”

“일단 미국에 가 있는 최민혁 실장을 계속 확인 중입니다. 필요하다면 에플 쪽의 퇴사 인력을 이용해 보겠습니다.”

“그래. 자네도 이번 일의 중요성을 잘 알 거야. 실패해서는 곤란해.”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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