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
“최구만 과장이 고생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최구만 과장은 콜린스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이와 관련된 기술을 계속해서 검토했다. 다른 이들이 다 떠난 자리를 혼자 메꾼 것이다.
그 기술이 이번에 콜린맥에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수고했습니다.”
최민혁은 진심으로 파견 직원들을 격려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기대한 것보다 더한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최병연 소장은 푸념을 털어놓았다.
“스티븐 밑에 있으면 이 정도 결과는 당연히 나옵니다.”
그도 슬며시 웃고 말았다.
“그렇게 지독해요?”
“말도 마십시오. 스티븐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도 성공할 사람입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스티븐의 악명이야 인생 1회 차에서 이미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런 스티븐의 면모를 파견 직원들이 배우기를 원했다.
그 결과는 꽤 나쁘지 않았다.
푸념을 늘어놓은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이 살아 있었다.
더욱이 매사에 소극적이기만 하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이번 일을 통해서 더 넓어진 시야를 얻은 것 같았다.
‘앞으로의 일에 큰 도움이 되겠어.’
미국 실리콘 밸리의 삶.
절대 나쁘지 않았다.
최병연 소장은 이보다 최민혁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KM 전자 주가 폭락 때문에 오신 겁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이컴은 에플에서 출시를 해야… 아, 출시 일정을 서두를 생각이군요.”
“당장에 제품을 출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품 완성도가 더 중요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우리 KM 전자와 에플의 저력을 알기만 하면 되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일테면 보여주기식이어도 괜찮습니다. 스티븐과 만나서 이런 부분을 강조할 테니, 신경을 써주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여론 몰이도 할 겁니다. 어차피 경쟁사가 안다고 우리 기술을 모방할 수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기획 팀에서 만든 기획안을 나누어 줬다.
최병연 소장을 비롯한 다른 임직원은 조성돈 팀장이 내미는 서류를 읽으면서 다들 고민에 빠졌다. 뒤늦게야 최민혁이 미국을 방문할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걸로 대비할 수가 있을까. KM 전자 주가 폭락에는 큰 세력이 엮여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던데…….’
최민혁은 걱정이 가득한 이들 모습에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이왕이면 앞으로 있을 일정을 한영 일보를 비롯한 한국 언론사에 흘릴 겁니다. 뭔가 큰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기에 따른 모습을 보여주세요. 필요하다면 언론사와 인터뷰를 해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 * *
한영 일보는 다른 언론사와는 달리 KM 전자로 재미를 단단히 봤다. 그래서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타이밍이 좋지가 않았다.
범용구 기자 역시 그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도 미국에서 온 연락을 받자 다급하게 최경진 편집장을 찾아갔다.
“최 실장이 미국에 가 있다고?”
“네, 에플 본사를 방문해서 뭔가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인력을 대거 끌고 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뭔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
“아닙니다. 분명히 뭔가 있다고 했습니다.”
범용구 기자가 내놓은 한영 일보 특파원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몇몇 언론사와 인터뷰 내용이었다.
주로 최병연 소장이 답변했지만 최구만 과장을 비롯한 엔지니어도 있었다.
[이번 차세대 제품은 기존 제품을 넘어서는 색다른 물건입니다.]
최경진 편집장도 진지하게 기사를 한창 읽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인터뷰 자체는 꽤 형식을 갖추었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그게 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내용이 없잖아?!”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요는 최민혁 실장과 스티븐 CEO가 만났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최 실장이 인정한 거야?”
“KM 전자 홍보 팀에 알아본 바로는 최민혁 실장도 이번 일은 기사화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최경진 편집장은 딱히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최민혁 실장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당장 K투스 3.0만 해도 꽤 이슈가 되는 소재였다.
그는 뒤늦게 회의실에 들어온 최광수 기자를 쳐다보았다.
“핸즈프리는 어떻게 되었어?”
“그건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설마 자동차 업체가 그 중요성을 모르고 있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최 기자 자네도 차량 안에서 핸드폰과 K투스가 연동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최광수 기자도 머리를 긁적였다. 그 역시 지난 K투스 3.0 학술 대회에서 시제품이 핸즈프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핸드폰 업체는 딱히 K투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아니, 그러면 핸드폰 업체가 그 자리에서 K투스 3.0에 대한 집착을 보이겠어? 최 실장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아는데?”
“최민혁 실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인간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행동을 했겠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그렇게 당하고도 상황을 모르겠어?”
“설마 최 실장이 의도적으로 핸즈프리는 덮어버렸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잖아. 핸드폰 업체가 K투스를 채용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수량만 놓고 볼 때, 특허료가 엄청날 테니까.”
실상 핸드폰 제조업체가 K투스를 채용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만약 모바일 업체가 죄다 손을 잡고, K투스를 배제해 버리면 상관이 없다.
그런데 K투스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정말 문제였다.
그러니 자동차 대기업만이 아니라 핸드폰 업체도 난리가 난 것이다.
최경진 편집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꿍꿍이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별것 아닌 이슈를 키우면서 정작 중요한 일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이게 진짜 문제야. 문제는 최 실장 이 인간이 정작 이런 문제까지는 제대로 언급하지를 않아. 업체 역시 알면서도 전전긍긍한다는 것이 심각하잖아.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
지금 중요한 것은 KM 전자의 주가 폭등과 폭락세였다.
‘핸즈프리 같은 문제도 있는데, 과연 KM 전자 주가가 무너질까?’
* * *
샐로먼 브러더스의 한국 증시 개입은 단순하게 진행된 일이 아니다. 이들은 장기적인 일정을 기준으로 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표가 바로 종합주가지수다.
그건 과거 주가 폭락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대형 사건 때마다 주가 하락률이 심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1차 석유 파동 때이다. 이때는 무려 10% 가까이 떨어졌다.
걸프전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데, 15% 가까운 주가 하락을 보여주었다.
국내 이벤트로 꼽는 것은 역시 몇 년 전의 금융실명제였다.
이때 역시 15% 가까이 하락했다.
그런데 이번 종합주가지수 폭락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큰 이벤트가 없는데, 일주일 연속 16%라는 최악의 폭락장을 연출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그 정점을 이루었다.
오전 장에 장 시작과 동시에 무려 -6%가 빠졌는데, 그 원인이 된 종목이 바로 KM 전자였다.
무려 -12%까지 폭락했다.
K투스 3.0 이후에 반등을 하나 싶었는데, 종합주가지수가 나빠진 틈을 이용해서 KM 전자 매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
한때는 KM 전자 종목을 무려 30만 주나 보유하다가 팔고, 다시 6만 원에 사들였던 주주 김홍수는 멍하니 주식 현황판을 쳐다보았다.
대림 전자 이찬형 부사장 역시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청심환을 삼켰다. 그 역시 김홍수의 주식 대박에 혹해서 KM 전자 주식을 10만 원에 꽤 매입했기 때문이었다.
“팔까?”
“…….”
“난 살 떨려서 못 보겠다.”
주식 매매가 다른 종목과는 많이 달랐다.
KM 전자에 원한이 있는 이가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주식을 패대기쳤다.
하지만 김홍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힐끗 증권 회사에 나와 있는 다른 이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흥분한 기색이었다.
“아니, 저게 말이 돼? 왜 KM 전자 주가가 갑자기 -12%나 떨어지는 거야? KM 전자가 망하는 회사도 아니잖아!”
“자네 아직도 몰라? 세력이 이번에 KM 전자를 노린다고 소문이 파다해.”
“그, 그게 정말이야?”
“그나마 오성 전자를 비롯한 대형 기관 세력이 손을 뗐다는 소리가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는 다른가 봐.”
“도대체 그놈들이 왜 그러는 거야?”
“말로 차익 실현이라고 하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나 보지.”
“설마 KM 전자의 경영권을 노리는 거야?”
“벨린 투자 같은 우호 지분을 포함하면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이 50% 이상을 들고 있어서 당장은 어려워. 그런데 KM 전자 주가가 계속 저 모양이면 문제가 되겠지.”
특히 주가가 지속해서 불안하면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 상황을 완전히 믿는 이는 없었다.
다들 불안한 시선으로 주식 현황판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김홍수는 긴장 때문에 식은땀을 닦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외국인 투자자가 KM 전자 주식을 패대기치는 와중에 기관 역시 차익 매물을 마구잡이로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평소와는 달리 매물을 받아주는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비록 오성 전자나 LC 전자가 샐로먼 브러더스 동맹에서는 빠졌지만 그렇다고 최민혁 실장을 완전히 밀어주지는 않았다.
그러니 침몰하는 배처럼 KM 전자 주가가 폭락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후에 장이 시작되자 한영 일보에서 기사 하나를 내놓았다.
[최민혁 실장, 에플의 스티븐을 만나다!]
그리고 다른 언론사 역시 한영 일보 기사를 열심히 짜깁기해서 후속기사를 내보냈다.
이들은 취재도 하지 않고, 과거 최민혁 실장과 스티븐이 만난 사진을 재탕했다.
하지만 이 기사가 나온 시점이 미묘했다.
특히 K투스 3.0이 나온 후에 KM 전자 주가가 요동을 치는 시점이었다.
뒤늦게야 눈치를 보는 세력이 끼어들었다.
-13%까지 추락한 주가가 단숨에 -6%까지 반등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온 후속 기사.
[최민혁 실장은 이미 KM 전자 기술진 30명을 에플에 파견했다. 이들은 이미 에플 엔지니어와 손을 잡고 K투스 3.0을 적용한 차세대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이 기사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오성 전자와 LC 전자와 KM 전자 간에 LCD 2.7인치 대규모 계약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6%까지 반등한 주가는 단숨에 0%로 돌아선 후에 +3%를 거쳐서 +7%까지 올라섰다.
설마 저기서 더 오를까 싶었지만, KM 전자 주가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결국 +10%를 넘어서더니, +13%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놀라운 것은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7%를 찍으면서 폭등한 것이었다.
일주일 내내 폭락을 거듭하던 종합주가지수의 반등은 꽤 의미가 있었다.
“…….”
이찬형 대림 전자 부사장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으면서 툴툴거렸다.
“홍수야, 주식이 원래 이런 거야?”
“…….”
김홍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KM 전자의 하루 변동 폭은 실로 드라마틱했다. -13 ~ +13%를 오간 이 놀라운 주가 변동 폭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1,000원짜리 작전주 못지않을 정도로 놀라운 주가 변동이었다.
무려 27만 원짜리 종목 주식이 보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홍수야!”
“아, 좀!”
“얀마, 너 지금 돈 벌었다고 시위하는 거냐?”
“나도 모르니까. 그냥 닥쳐라. 차라리 KM 전자와 거래하는 대림 전자 부사장인 네가 더 잘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 쪽도 확실하지 않아. KMP-01은 우리 쪽에서 납품하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