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60화 (460/1,021)

#460

더욱이 KM 전자와 에플의 주가 상승 역시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손을 쓰면 KM 전자와 에플의 주가가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풋내기라고 생각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던 최민혁 실장이 자신들에게 심각한 걸림돌이 된 것이었다.

‘어쩌면 계획을 변경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 * *

최문경 부회장은 돌아온 권재홍 비서실장 통해서 샐로먼 브러더스 증권의 분위기를 들었다.

“양놈 새끼는 믿을 수가 없다니까.”

“그자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그놈들은 언제나 다른 생각을 했어. 날 선택한 것은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만약 이용 가치가 없다면 토사구팽을 시키겠지.”

“하지만 다른 10대 대기업도 있지 않습니까.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아니야. 정확히는 만만해서 우리를 선택한 거야. 만만하면서도 중견 그룹으로 기술력도 탄탄하니까. KM 산업, KM 전자, KM 건설은 알짜 기업이야. 거기에 다른 계열사 역시 기술 중심 기업이고.”

실제로 KM 그룹은 탄탄한 기술과 인력을 보유한 회사였다.

선택을 통한 기술 노하우는 어떤 면에서는 오성 전자나 LC 전자보다 한 수 위였다.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콜린스였다. 이 콜린스를 마무리한 사람은 최민혁 실장이지만 실상 그 기술의 근간에는 KM 그룹의 장인정신이 담겨 있었다.

DL 그룹 김상구 회장이 굳이 정략결혼 상대로 KM 그룹을 선택한 이유다.

실제로 최민혁 실장이 주목을 받기 전까지는 그들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자신이 심은 씨앗이 발아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최민혁 실장이 두각을 드러내면서 다 무너진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나름 이런 상황을 짐작하기는 했지만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카 최민혁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바뀐 후에 샐로먼 브러더스의 행보에서 이상한 점을 찾았다.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지금은 기다려야지.”

“네?”

최문경 부회장은 씩 웃으면서 의자에 등을 지그시 기댔다.

“생각을 해봐. 우리 KM 그룹 분위기 말이야. 더욱이 민혁이 그놈이 에플을 인수하면서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 과연 샐로먼 브러더스 놈들이 이걸 두고만 볼까?”

“설마 샐로먼 그자들이 최민혁 실장을 무너뜨리기를 기대하는 겁니까?”

“그렇지. 이이제이라고 하잖아.”

히죽 웃는 최문경 부회장은 곧 한 가지 사실을 다시 떠올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당시 최민혁이 그냥 에플 인수를 밀어붙였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고민을 잠깐 하는 그사이에 에플 주가가 2달러를 돌파했다. 아 물론 에플 주가는 2달러에서 쉽게 더 오르지는 않았다.

10년 동안 누적되어 쌓인 에플 매물이 마구잡이로 쏟아진 덕분에 1.5달러까지 조정을 거쳤다. 심지어 1.2달러까지 추락하면서 이번 에플 주가는 반짝 반등세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에플 주가는 스티븐의 언론 인터뷰 때문에 뚝심을 발휘했다.

물론 그 와중에 스티븐 입을 통해서 흘러나온 차세대 제품 ‘아이컴’이 에플 주가에 영향을 주어서 가까스로 1.7달러까지 올랐다.

아니, 에플 주가는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더니 2.5달러까지 올랐다.

단기에 에플 주가가 너무 오르면서 마치 작전주와 같은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덕분에 에플 주식을 사들이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솔직히 샐로먼 브러더스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그게 더 궁금했다.

“데니스 그 친구가 특별한 이야기는 더 없었어?”

“에플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평소와는 달리 매우 놀랐다.

“정말이야? 에플은 미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인데도 그런 소리를 해?”

“미국을 대표하는 썩은 기업 중의 하나가 에플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입니다.”

“그게 데니스 샐로먼 이사 혼자 생각이냐? 아니면 샐로먼 브러더스의 생각이야?”

권재홍 비서실장은 차마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한 이야기를 최문경 부회장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듣는다면 최문경 부회장이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샐로먼 브러더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

샐로먼 브러더스는 자산 규모로만 놓고 보면 세계 최대의 증권 그룹이다. 국내 증시에 대한 영업 확대의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가 연합 SB다.

이 연합 SB에 참여한 기업은 KM 산업을 비롯한 한국 중견 기업들이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 기업과 손을 잡게 된 데에는 다분히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봐야 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샐로먼 브러더스의 행보를 깊이 고민했다.

연합 SB 증권이 탄생한 배경에는 자신과 샐로먼 브러더스의 거래가 있기 때문이었다.

“…샐로먼 이놈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샐로먼 브러더스의 덩치를 잘 아는 권재홍 비서실장의 생각은 달랐다.

“제가 듣기로 KM 전자에도 일부 지분 투자를 한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 차익 실현을 했는데, 그 때문에 KM 전자 주가가 27만 원대까지 하락했습니다.”

“설마 KM 전자에서 손을 뗀 거야?”

“네. 그건 에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기로 급등했을 때 대부분의 에플 주식을 정리한 곳이 샐로먼 브러더스입니다. 물론 그 물량이 다가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흠.”

최문경 부회장은 샐로먼 브러더스를 믿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KM 전자, 에플 지분을 일부 정리한 것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데니스 이사 그 친구는 에플의 부활을 믿지 않는 거야?”

“제가 만나서 이야기해 본 바로는 에플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였습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한국 다른 대기업에 관심이 많은 눈치였습니다.”

“그건 좀 이상하네.”

최문경 부회장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샐로먼 브러더스의 제안을 받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전략 기획실 조사로는 한국 기업들의 성장세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 투자 은행이 미국 정부 때문에 일본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그 대안으로 한국 대기업을 대상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건 사실이었다. 미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한 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 거셌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중국을 키워서 일본에 대한 대항마로 삼을 생각마저 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뭔가 찜찜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부분을 더 파지는 못했다.

당장 직면한 조카 최민혁 실장의 행보가 문제였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석연치 않은 행보는 결국 에플 성장과도 관련이 있었다.

“에플이 정말 부활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샐로먼 브러더스와 같은 미국 대형 증권사에서도 에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는 잠깐 고민했다. 아니, 에플 주가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0.3달러에 불과했던 에플 주가는 최민혁의 에플 인수 후에 무려 2.5달러까지 치솟았다.

‘하, 아쉽네.’

개인적으로야 들어가고 싶지만, 불행히도 자금이 별로 없었다.

이리저리 대출을 받아서 KD LCD에 투자한 돈이 뼈아팠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연합 SB 쪽과 계속 채널을 열어두고 살펴. 그쪽에서 먼저 움직이지 않아도 손을 쓸 수 있도록.”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솔직히 전 샐로먼 쪽은 썩 내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어. 다른 것을 떠나서 민혁이 그놈이 에플 인수를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니까.”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샐로먼 브러더스의 행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들을 밀어준 세력이었다.

이제 와서 그들과 손을 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미국 시장 진출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들과의 연계를 포기할 수는 없어.’

* * *

최문경 부회장과 연합 SB 사이의 관계는 겉으로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어디까지나 증권회사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준 과장은 이미 이 관계를 의심한 지 오래였고, 계속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덕분에 최문경 부회장과 데니스 샐로먼 사이의 미묘한 유착 관계를 찾았다.

그는 딱히 증거가 없어서 최민혁 실장에게는 소극적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아차 싶었다.

KM 그룹과 손을 잡고 연합 SB를 설립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왜 간과한 걸까?’

최민혁은 문득 자신이 샐로먼 브러더스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고 자책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금이 고작 300~500억 정도 되는 푼돈으로는 영향을 끼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연합 SB가 하나의 창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외국인 투자자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국내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그래서 더 진지해졌다.

“샐로먼 브러더스라…….”

연합 SB의 대주주 중에 한 회사였다. 세계 최대 증권회사 중의 하나라서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내 인생 1회 차에서 사라지는 회사지.’

최민혁 역시 연합 SB의 대주주인 샐로먼 브러더스가 KM 그룹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다만 딱 거기까지다. 거기서 더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에플 인수 이후에 최문경 부회장 쪽과 자주 만난다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설마 첫째 큰아버지 배후가 샐로먼 브러더스는 아니겠지?’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샐로먼 브러더스와 KM 그룹의 덩치는 비교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괜찮을 수도 있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본 체력이 탄탄한 사냥개일 테니까. 하긴 이들이라면 우리 첫째 큰아버지에게 미국 사업의 기반을 만들어줄 수도 있어.’

김명준 과장은 자신의 말에 갑자기 심각해진 최민혁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벨린 투자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KM 전자와 에플의 주가 하락에 샐로먼 브러더스가 관여했습니다. 심지어 대량의 공매도까지 한 세력이 이들입니다.”

“그래요?”

최민혁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주식 시장에서 차익을 실현하는 것은 투자자 마음이다. 그도 이런 것까지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KM 전자 주가가 32만 원에서 27만 원까지 폭락한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주식을 그냥 장내 시장에 수만 주씩 한 번에 던져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물량이 한 번에 나왔는지 코스피가 불과 십 분 단위로 -1%씩 휘청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KM 전자의 주가가 버틴 것은 그만큼 이 회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높다는 증거였다.

그렇다고 이 일이 좋은 것은 또 아니었다.

최민혁은 이를 뽀드득 갈았다. 그냥 덮어두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는 굳이 과거처럼 참을 이유가 없었다.

일단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기보다는 시작은 가볍게 잽으로 가기로 했다.

“연합 SB를 한번 흔들어보죠.”

“네?”

김명준 과장은 요식적인 보고를 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지시를 받자 당황했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를 자극하는 일이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는 인생 1회 차 기억을 떠올리면서 곰곰이 고민해 봤다. 그리고 마침 이 시기에 딱 맞는 괜찮은 이슈 한 가지를 떠올렸다.

‘연합 SB 설립에 기여한 윤종수 지사장은 교체되었군.’

윤종수 지사장은 능력이 제법이 있는 이였다. 불행히도 최문경 부회장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연합 SB 설립 이후에 회사를 떠난 것이었다.

“연합 SB의 박석기 사장은 우리 첫째 큰아버지 비자금과 긴밀한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KM 그룹의 고문으로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하면 박석기 사장은 비자금의 흐름을 잘 알고 있겠군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KM 그룹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겁니다.”

“감수해야죠.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우리 첫째 큰아버지의 행보니까. 전 우리 부회장님이 언제까지 무거운 엉덩이로 계속 눈치만 보고 있을지 그게 더 궁금합니다. 이번 기회에 인내력 테스트를 해봅시다!”

하지만 최민혁은 실상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준비운동을 한다는 기분으로 인생 1회 차의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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