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56화 (456/1,021)

#456.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다가 이미 준비되었다는 멘트를 한 건 최구만 과장이 나름 자신을 피력하기 위한 모습이었다. 그는 덕분에 에플 엔지니어의 따가운 눈총을 받자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옆에 동행한 이들 중에 영어에 자신이 있는 이의 통역이 끝나자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그들은 뒤늦게야 한국에서 온 엔지니어가 만만한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에 목숨을 걸고 있는 스티븐은 깜짝 놀랐다. 그는 몇 가지 확인을 거친 후에 바로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다시 수정해 주기 바랍니다.”

아니, 그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당장 회의를 중단하고, 나머지 인원을 다 내보냈다.

그러고선 당황하고 있는 조나단을 불렀다.

“당신, 이쪽으로 와봐. 이름이 뭔가?”

“디, 디자인 팀의 조, 조나단입니다.”

“조나단 폴?”

“아, 네.”

조나단 폴은 괜히 나선 것이 아닌가 싶어서 완전히 얼었다. 그는 당장 눈앞에서 자기 파트 책임자를 잘라 버린 스티븐의 폭력에 식은땀마저 흘렸다.

하지만 스티븐은 미친놈이 아니다. 그가 광인처럼 설친 것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80%의 에플 임직원은 쓰레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외가 나온 셈이다.

스티븐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조나단은 그가 가지고 있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친구였다. 다만 그는 아직 젊은 친구였다. 메시지 패드 실패를 이 친구 탓으로 돌리기에는 곤란했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다가는 자기가 원한 프로젝트를 기간 안에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나단, 내가 굳이 자세한 것을 언급하지 않아도 지금 에플 임직원들에게 문제가 많다는 것은 알지?”

“…네.”

조나단 폴은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지금 에플이 얼마나 썩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변명거리는 많았다.

자신이 책임자였다면 그런 쓰레기 디자인을 출시하지 않았을 테니까.

문제는 에플 윗선은 총체적으로 썩어 있어서 어떻게 손을 쓸 대안이 없었다.

스티븐은 순수한 조나단 폴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최소한 그는 엔지니어다웠다. 영업맨도 아니고, 마케터도 아니었다.

“자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이번에 성공한다면 과거, 자네의 과실을 묻지 않을 거야. 오히려 자네 인생을 바꿀 기회가 될 테지.”

“네?!”

그는 깜짝 놀랐다. 폭군 스티븐이 이런 제안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스티븐은 여전히 감정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이번 제품 디자인에 자네 목숨을 걸어봐.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최선을 다해. 그게 자네 인생에 두 번째 기회를 줄 거야.”

‘아니, 우리 에플에도 분기점이 되겠지’란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

조나단은 딱히 스티븐의 말을 강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티븐이 오늘 회의에 들어와서 미친놈처럼 설쳤지만, 꼭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다.

실상 히틀러 코스프레에 당한 대상들은 대다수가 사내에서 말이 많던 이들이었다.

거기다 더욱 스티븐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자기 눈앞에 있는 에플 시제품이 진짜 기존의 물건과는 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메꾸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해, 해보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성공하게 하겠습니다!”

“좋아. 돈 따위는 신경 쓰지 마. 우리 대주주는 돈이 정말 많은 부자니까. 기술도 고민하지 마. 여기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자네를 도울 테니까!”

최구만 과장을 비롯한 실무진 몇 사람은 몸을 움찔 떨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스티븐 CEO의 옆에 있으면서 그의 참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미친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신기한 점이 있다면 스티븐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파고 들어가는 능력은 절대로 무시하기 힘들었다.

최병연 소장조차 스티븐의 카리스마에 휘둘려서 묵묵히 그의 지시를 따랐다. 다만 그는 스티븐에게서 한 사람의 향기를 절실히 느꼈다.

‘딱 우리 최 실장님 열화판 같아.’

그래서 그는 스티븐의 저돌적인 모습이 딱히 부담스럽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힘찬 함성.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최병연 소장을 비롯한 KM 전자 엔지니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들도 여기 와서 스티븐과 일해보기 전까지는 스티븐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런데 불과 이 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에 히틀러 저리 가라 할 사람이 스티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최민혁 실장의 열화판이라고 해도 일에 대한 집착은 최민혁 실장보다 오히려 더 심했다.

미국에 와서 누릴 수 있는 미국에 대한 로망 따위는 전혀 체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이 왜 스티븐은 성공할 것이라고 입에 달고 살았는지 어렴풋하게 이해했다. 스티븐 말대로 임직원들이 따르면 절대로 실패할 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까지 임직원을 갈아서 으깨 버리는 이가 바로 스티븐이기 때문이다.

다들 새삼 미국에 왔으니 당분간 최민혁 실장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던 게 떠올랐다.

‘하, 젠장맞을.’

* * *

최구만 과장은 과거 KM 고압 변성기, KM 편향 코일을 직접 설계할 정도로 파워 부분에서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다.

아니, 이제는 세계적인 전문가였다.

심지어 최병연 소장은 최구만 과장 같은 전문가를 진두지휘한 이였다.

콜린맥은 최병연 사단이 과거부터 꾸준히 해온 결과물에 불과했다.

따라서 일체형 콜린맥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 최병연 사단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병연 사단은 조나단이 원하는 디자인을 충분히 따를 정도로 문제가 된 부분을 사전에 잘 찾아냈다. 정확히는 과거 삽질했던 부분을 적절하게 잘 수정했다.

여기에 스티븐이 데려온 NextOS의 OS팀 역시 이 프로젝트에 합류되었다. 그들을 맥 전용 OS 개발에 투입한 것이다.

콜린맥을 사용한 이 새로운 제품은 OS, 하드웨어 자체가 기존 모델과는 완전히 달라진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이 모델은 최민혁 인생 1회 차와는 좀 달라진 모델이기도 했다.

최병연 소장은 최민혁 실장에게서 어지간하면 스티븐에게 모든 일을 맡기라고 했지만 특이한 점이 있으면 보고하라는 지시에 충실했다.

[정말 스티븐이 콜린스 디자인과 동일한 방식을 채택했다는 말입니까?]

[네. 스티븐이 콜린스에 대해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번 콜린맥 24인치를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쪽 에플 디자인 담당자도 콜린스를 발전시킨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최민혁은 새로이 받은 디자인을 보면서 당황했다. 그가 아는 인생 1회 차의 그 모델이 아니라, 좀 더 후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하긴 콜린맥을 보면 스티븐의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괜찮겠습니까? 이런 형태의 디자인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제법 있을 텐데요?]

[다행히 콜린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몇 가지 추가한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소형 파워 서플라이입니다.]

이 새로운 KM 파워 서플라이는 좀 더 얇은 콜린스 설계를 위해서 진행된 결과물이었다.

마치 KM 고압 변성기와 KM 편향 코일을 설계한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이것 역시 최민혁으로서는 미처 간과한 부분이었다.

[…최 소장님이 고생 많았습니다. 전 콜린스 관련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딱히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명색이 연구소 소장인데, 경영진이 미처 간과한 부분을 메꾸어야지요. 다만 이번 일은 콜린스 사업부 매각과 관련이 있어서 제대로 보고를 못 드렸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 소장님 권한에 속합니다.]

연구소 내에는 각 직급별로 보면,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는 자금 규모가 있다. 그리고 연구소 소장은 그 범위가 꽤 넓었다.

고작 KM 파워 서플라이 자금 정도는 최병연 소장이 알아서 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최병연 소장은 이번 일에 고개를 숙였다.

[사전에 이야기를 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생각은 좀 달랐다.

[이 정도 일은 최 소장님이 지금처럼 알아서 진행해 주세요. 제가 콜린스와 같은 계열 쪽은 전혀 몰라서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이번 일 역시 스티븐을 일단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이번 일의 디자인 책임자가 조나단 폴이란 말에 혀를 내둘렀다. 그가 혹시나 싶어서 디자인 쪽을 잘 살펴보라고 스티븐에게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설마 조나단 폴을 책임자로 만들 줄이야. 정말 놀랍구나.’

그가 아는 인생 1회 차의 방향과 정확히 똑같았다.

혹시나 이번 일이 틀어지면 직접 손을 쓸까도 생각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최민혁 자신이 에플에 너무 많이 관여해서 혹시라도 미래가 바뀔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어. 최근의 에플 주가 급등락은 원래 없었던 일이니까.’

특히 얼마 전에 에플 주가가 갑자기 2달러로 폭등했다가 0.3달러로 폭락한 일은 의아한 일이었다. 한국 코스피도 아닌 나스닥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 * *

무려 7년을 앞당긴 이 혁신적인 모델은 최민혁도 전혀 예상 못 한 물건이었다.

이 새로운 모델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티븐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려졌다. 그러니 다들 에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스티븐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콜린맥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 최병연 사단이 바로 KM 전자의 핵심 연구진이라는 것도 슬그머니 알려졌다.

1.8달러를 돌파한 에플 주가가 용오름처럼 꿈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혁신적인 제품 ‘아이컴’에 대한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기 때문이다.

기존 컴퓨터 모니터 두께의 25%에 불과한 이 새로운 제품은 특히 에플 매니아층에는 큰 즐거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 에플 매니아는 이 새로운 아이컴에 대해 다양한 소식을 퍼뜨렸다.

결국 무려 1.8달러나 올랐던 에플 주가가 단숨에 2달러를 돌파하더니, 2.1 달러에 가볍게 안착했다.

김현탁 본부장은 에플 주가가 2.1 달러에 도달하자 크게 당황했다. 0.3 달러에 불과했던 주가가 무려 7배나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 경험이 있어서 에플 주식을 일단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에플 주식을 사려면 지금이 막차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역시 반응 속도가 느린 DL 그룹 분위기다.

특히 김희찬 부사장은 냉정했다.

“이번 에플 주가 흐름은 이전의 에플 주가와는 많이 다르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넌 유럽에 있을 때 도대체 뭘 배운 거냐? 나스닥의 에플 주가가 한국 작전주처럼 움직인다는 것이 말이 되냐?”

“하, 하지만 그건 이전 일입니다. 다시 에플 주가가 원복 되었지 않습니까?”

“그게 더 이상하다는 거다!”

작전주의 흐름을 보면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시작점에서 주가를 끌어올려서 관심을 끈다. 그다음에는 개미의 탐욕을 부추긴다.

황당한 일이지만 에플의 주가가 그랬다.

그래서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에플 대주주가 이 일과 연관되어 있어야 했다.

김희찬 부사장은 DL 그룹 전략 기획실을 총동원해서 이 부분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는 최명섭 기획실장에게 받은 분석 보고서를 보여주었다.

[이번 에플의 주가 흐름을 주도한 세력에 에플 대주주가 최소한 두 명 이상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게 문제다. 이 세력이 최민혁 실장에게 지분을 넘긴 이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정말입니까?”

“그래. 우리 계획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에플 주가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이들 세력을 잘 보면 최민혁 실장의 에플 인수를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다.”

“하면 확인이 끝날 때까지 에플 주식을 지켜봐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게 정석이다. 회장님도 허락하신 일이다.”

“하.”

김현탁 본부장은 혀를 찼다. 결국, 자신이 내놓은 견해를 김희찬 부사장이 절묘하게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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