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54화 (454/1,021)

#454.

스티븐은 심드렁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지난 일은 다 잊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일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마쿨라 이사님이 한 실적에 관해서 책임을 묻는 겁니다.”

“…….”

마쿨라 이사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는 결국 참다 못해서 스티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스티븐, 이 개같은. 넌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당신이 한 일이 뭔데, 회사 내에 갈등이나 일으킨 주제에! 넌 이제까지 한 것도 없잖아?!”

“쌓인 앙금이 많으신가 봅니다.”

“아니, 이건 나만의 의견이 아니야. NextOS에 있던 경영진이 너 같은 새끼를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미친 정신병자라고 해!”

스티븐은 NextOS 경영진이란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과거에 십여 명의 경영진이 떠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우울증에 걸려서 폐인으로 살았다.

그 틈을 노린 이도 있었다.

바로 지금 에플의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이었다.

‘아프네.’

하지만 스티븐은 딱히 최민혁 실장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자기 나름대로 온 힘을 다했다. 뛰어난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한 것을 죄라고 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자신이 자기 사람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한 것이 더 큰 실책이었다.

마쿨라 이사는 스티븐의 약점을 가시로 찌르듯이 계속 공격하기 시작했다.

“네가 미친 짓 하는 바람에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잖아. 너 같은 놈이 지금 에플의 CEO가 된다면 회사는 당장 망하고 말 거야!”

“말씀 다 하신 겁니까?”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마쿨라 이사는 지난 일을 하나하나 꺼내서 스티븐을 공격했다.

하지만 스티븐은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틈이 생기자 마쿨라 이사에게 한마디만 했다.

“당신 해고야!(You're Fired!)"

“…스티븐, 네놈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제 뜻대로 될 겁니다!”

* * *

마쿨라 이사는 나름 지분을 가진 대주주를 찾아가서 항의했지만, 그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뜻밖에 에플 주가가 갑자기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젠장맞을!”

뒤늦은 후회였다.

차라리 스티븐의 눈치를 봤다면 버틸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었다.

실제로 에플 인수 계약 체결 직후에 꿈틀거리던 에플 주가가 갑자기 0.7달러까지 오르더니 그 기세를 몰아 1달러를 돌파해 버렸다.

지난 5년 동안 에플 평균 주가가 고작 0.4달러에 불과했으니, 에플 주가의 흐름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불과 얼마 전에 2달러를 통과했다가 폭락해서 37센트까지 떨어졌던 에플 주가의 흐름과는 아주 달라진 모양새였다.

이전의 주가는 단기 세력이 끼어들어서 만들어진 거품 주가였다면, 지금 에플의 주가는 그것과는 다른 모양새를 보였다.

덕분에 에플 주식에 관심을 기울이던 세력들은 움찔, 몸을 떨었다.

당장 에플의 주식을 사들이기에는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뒤늦게 마쿨라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사전에 스티븐을 조사했던 조성돈 팀장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돈키호테처럼 계속 사내에서 좌충우돌해서 말이 많습니다.”

그는 스티븐에 대한 번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조성돈 팀장에게 툴툴거렸다.

“에플의 매출 상황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매출 하락에는 임직원이 원인인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압니다. 하지만 손을 대야 할 임직원의 숫자가 너무 많아요. 따라서 이런 일에는 차라리 스티븐처럼 극단적인 대처도 나쁘지 않습니다.”

“…실장님은 늘 스티븐 편이군요.”

스티븐의 인생 1회 차를 아는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스티븐이 옆에서 보기에는 모난 행동을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쁜 선택을 하는 건 아닙니다. 차라리 저런 극단적인 태도가 지금의 에플에 맞습니다.”

“…에플 임직원들이 긴장해서 일을 제대로 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있지만 이보다는 내보낼 사람은 빨리 내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솔직히 저도 스티븐처럼 하고 싶을 정도이니까요.”

“설마 노조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최민혁은 악동같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히틀러처럼 설치는 것이 지금 우리 회사 상황에는 마냥 좋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차선으로 영향력을 길러 찍어 누르고는 있지만, 썩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닙니다.”

“흠.”

조성돈 팀장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는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는 새삼 최민혁의 나이가 이제 20대 초반(?)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하긴, 저렇게 인내한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지.’

“실장님 뜻이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스티븐에게 전화를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그건 좋네요.”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 조언을 받아서 스티븐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 들었습니다.]

최민혁의 연락을 받은 스티븐은 움찔, 몸을 떨었다. 대주주인 최민혁이 있는 한국 기업의 분위기는 미국 기업의 분위기와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괜한 문제를 만들어서.]

[무슨 문제 말입니까?]

[마쿨라 이사 문제도 있지만, 조직 개편에 따른 구조조정 말입니다. 사전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스티븐의 독재자 스타일 때문이다. 정확히는 일단 지르고 나서 뒤늦게야 주변 상황을 살피는 성격 때문이었다.

감정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엉망인 에플의 경영 상황을 보자 스티븐은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당장에라도 에플 임직원들을 불러 기관총으로 학살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스티븐과 비슷한 성격이다. 인생 2회 차이기에 자제하는 것뿐이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천만에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전화한 것이 아닙니다. 마쿨라 이사와 같은 이들을 다 잘라내는 건 물론, 방만한 조직 문제를 만든 이들을 마음대로 정리하라는 뜻에서 전화한 겁니다.]

[네?]

[노조 따위는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뜻밖의 지시에 스티븐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최민혁은 스티븐의 태도에서 자신이 전화 걸기를 잘했다고 확신했다.

[스티븐이 뭔가 큰 착각을 한 것 같은데, 미국 기업은 미국 기업 문화에 따르면 됩니다. 스티븐이 보기에 아니라고 생각한 이들은 다 정리하세요. 필요하다면 조직을 다 정리해도 무방합니다. 아니, 이왕이면 미국 언론을 통해서 ‘히틀러’ 이미지를 내세워도 됩니다. 그게 아마 스티븐 본인에게는 더 좋을 겁니다.]

[…….]

스티븐은 자기 생각보다 한술 더 뜨는 최민혁의 지시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지금 최민혁의 말은 자신이 히틀러처럼 악명을 떨쳐도 좋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굳이 불필요하게 직원과 면담할 필요가 없다.

자발적으로 알아서 나갈 테니 말이다.

[제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스티븐은 원하는 대로 칼자루를 휘두르세요. 그게 누가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최민혁은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다만 망가진 에플의 이미지에 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건 스티븐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방법을 말하는 겁니까?]

[인터뷰죠. 필요하다면 모든 미국 언론을 불러서 에플이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것을 호소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스티븐의 망가진 이미지를 다시 원복 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에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해두죠.]

[…콜린맥 때문이군요.]

[맞습니다. 에플의 이미지가 망가진 기간이 너무 깁니다. 아마 어지간한 미국인도 지금은 에플을 잘 믿지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서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스티븐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즉, 마케팅이나 판매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스티븐은 아차 했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한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에플의 상황을 보고 너무 감정에 치우쳐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이 하는 조언이 자신에게 귀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최민혁 실장을 달리 보게 되었다.

스티븐은 그간 KM 전자의 에플 인수 문제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정작 최민혁 실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된 느낌이었다.

‘…놀랍네.’

* * *

ABC 뉴스는 갑작스러운 스티븐의 연락에 의아하기만 했다.

그들은 스티븐이 얼마나 편집광적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마치 귀여운 강아지 같은 스티븐의 행보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스티븐의 인터뷰 제안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안 그래도 스티븐이 다시 에플로 돌아온 것은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직접 ABC 방송국을 찾아가서 인터뷰에 충실했다.

[…많은 제 지인이 저의 에플 복귀를 걱정 반 우려 반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홀로 에플을 경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응하는 ABC 사회자는 냉정한 눈으로 스티븐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그런 부분에서는 말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에플이 지금 당장 제대로 된 결과를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난 일은 교훈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저와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마케팅도 제대로 할 것입니다. 제조와 유통도 원칙에 맞추어서 처리할 겁니다. 이 모든 활동이 제대로 된다면 순이익은 따라올 겁니다.]

[경영의 정석대로 하겠다는 말씀이군요. 하면 이미 차세대 제품을 검토 중이란 이야기입니까?]

[차세대 제품에 대한 기본 뼈대는 이미 갖추어진 상태입니다. 빠르면 3개월, 늦어도 6개월 안에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그 새로운 제품이 뭔지 알 수가 있을까요?]

[그건 좀 더 기다려 주시면 알게 될 겁니다. 에플은 새로운 혁신을 통한 활동에 적극 나설 생각입니다.]

스티븐의 대답은 꽤 매력적이었다. 그는 과거처럼 신비주의로 나가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새로운 제품에 대한 스포도 조금씩 뿌렸다.

[우리 임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어떤 도움도 마다치 않고 있습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신제품을 계속 시장에 내놓을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겁니다!]

당당한 면도 있지만, 동정을 구하는 면모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에플에 실망한 이들도 다시 한번 스티븐의 인터뷰를 볼 정도였다.

스티븐의 이런 인터뷰에 대한 결과는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 * *

이전과는 사뭇 다른 스티븐의 갑작스러운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물론 비판도 있었다.

스티븐은 아침에 에플 본사 1층에서 본 임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사직 처리를 하기도 했고, 미국 언론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려 버렸다.

이런 정보를 접한 에플 임직원들은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다.

그 숫자가 많아질수록 스티븐에 대한 악명은 더 커졌다.

최용욱 회장 역시 스티븐과 에플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에플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대단해.”

특히 그가 감명을 받은 것은 스티븐의 행보였다. 에플 CEO로 귀환하기가 무섭게 내부 조직 정리를 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미국 언론을 마치 자기 부하처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는 에플에 대한 보고서를 든 채 강남역에서 고작 15분 거리에 있는 17층 삼정 빌딩 앞에서 내렸다.

수행원이 정신 사납게 움직였지만, 그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최두진 사장이었다. 그는 마치 회춘이라도 한 듯 안색이 좋아 보였다.

“…좋아 보이네.”

“자네 손자 민혁이 때문이야.”

“그 녀석 때문에 재미를 많이 봤나 봐.”

“어, 에플 주가가 많이 올랐잖아.”

“가만, 에플 주식을 얼마나 매입한 거야?”

“그건 비밀이야.”

“쯧, 이 친구가 정말. 가만, 설마 에플 주식 때문에 이 건물까지 팔 생각이야?”

“돈이 좀 부족해서 어쩔 수가 없어.”

“아니, 자네가 가진 현금 동원력만 해도 천억은 족히 넘잖아?”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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