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53화 (453/1,021)

#453.

최민혁 실장과 마주하고 있는 패널이 멍하니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그 증거였다.

작정하고 편집한 화면은 정말 누가 봐도 최민혁 실장 영웅 만들기나 마찬가지였다.

배알이 꼴린 김현탁 본부장은 내심 이를 으드득 갈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지금 당장은 최민혁이 성공하기만을 바라야 했다.

‘씨발.’

* * *

최민혁은 에플 인수 이후에 국내 여론을 확인하면서 꽤 만족했다.

예상대로 시사 초대석 방송이 나간 이후에 자신을 믿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바로 콜린스 대박 신화에 연이은 KM 전자의 행보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여전히 KM 전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KM 전자는 KM 그룹 계열사 중에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사 초대석에서 밝혀진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KM 전자가 보유한 원천기술이었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KM 전자의 이력이 방송을 통해서 나간 것이다.

알 사람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다 알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방송에서 밝혀진 내용에 깜짝 놀랐다.

아직 최민혁 실장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시민들은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들도 가끔 뉴스에 나오는 KM 전자가 왜 그렇게 이슈가 된 것인지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에플 인수설이 마냥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KM 전자는 지금까지 기술 혁신을 통해서 끊임없이 성장했다.

그 덕분에 KM 전자 주가가 왜 30만 원을 돌파한 것인지도 알았다.

작전주라고 알았던 이들조차 KM 전자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뜬 것이었다.

최민혁은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가능하면 KM 전자에 부정적인 이들의 움직임을 계속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그중에는 역시 DL 그룹을 빼놓기 어려웠다.

김명준 과장은 이에 대한 보고를 했다.

“DL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 에플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까?”

조성돈 팀장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실장님의 의도를 모른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김명준 과장은 DL 그룹만을 꼭 찝어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오성 전자, LC 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 사령탑의 움직임을 하나씩 설명했다.

“오성 전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티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워낙에 움직이는 이들이 많아서 숨기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오성 전자 내에 있는 보안 팀 인맥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최민혁은 그런 사소한 점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에플 이사회를 통해서 콜린맥에 대한 정보를 조심스럽게 흘리세요.”

“네? 에, 에플 이사회 말입니까?”

최민혁은 깜짝 놀란 조성돈 팀장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에플도 따지고 보면, 이제 우리 계열사나 마찬가지예요.”

“아, 그렇기는 하지만…….”

작년 KM 전자 매출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올해 KM 전자 매출을 고려하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조성돈 팀장은 당연히 방법을 금방 떠올렸다. 강준석 대리에게 지시를 내리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하긴 벨린 소프트 인력이 스티븐 쪽과는 잘 아니까. 그쪽에만 정보를 흘려도 문제는 없겠지.’

“그런데 과연 이런 소문만으로…….”

“물론 입소문만으로는 곤란하겠죠. 이때는 아무래도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 최병연 소장에게 에플 파견 일정을 앞당기라고 말해주세요. 사장님에게는 제가 말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이미 콜린맥 개발과 관련해서 스티븐 쪽과 같이 진행하는 계획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일이었다.

‘하긴 콜린맥 개발 정보만 흘러나가도 사정이 달라지겠어.’

* * *

강준석 팀장은 생각보다는 치밀했다. 그는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보고를 받는 즉시 벨린 소프트 가용 인력을 죄다 모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콜린맥 개발과 관련해서 스티븐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떠들었다.

이 정보는 마치 외부에 흘려도 좋다는 점도 넌지시 알렸다.

그다음은 강준석 팀장의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실리콘 밸리에 ‘콜린맥’에 대한 입소문이 크게 번진 것이었다.

실리콘 밸리 벤처 투자자의 귀에 들어간 이 소문은 삽시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갔다.

물론 이 소문을 전적으로 믿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이가 그 유명한 스티븐이었다.

스티븐이 과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 일을 진행한다고 생각한 이는 없었다.

일단 스티븐 투자에 목말랐던 로스 페리가 제일 먼저 움직였다.

그러자 에플 주가가 갑자기 꿈틀하더니,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로스 페리와 인연이 있는 이들이 움직였다.

DL 그룹이 에플 주식을 매입하려고 구경하는 그 틈에 에플 주가가 갑자기 폭등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DL 그룹은 결국 일단 에플 주가의 흐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에플 주가에 관심을 가진 다른 한국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갑자기 에플 주가가 작전주처럼 움직이자 일단 관망세로 돌아선 것이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서 몰려와 있는 엔지니어 표정을 하나씩 살폈다.

최병연 소장을 비롯한 콜린맥 개발에 관련된 엔지니어가 모두 참석했다.

특히 최구만 과장은 피로에 절어서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그는 KMP-01, KMP-02 전원칩뿐만 아니라 콜린스, 콜린맥 전원 설계도 같이 해야 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비록 콜린스와 KMP-01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해도 콜린맥과 KMP-02은 아직 안정화 단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오영근 사장이 바로 이 점을 짚고 넘어갔다.

[자네들이 정말 자랑스럽네. 이번 에플 파견에서 무사히 성과를 이루었으면 좋겠어.]

그랬다.

에플 인수 합병과 동시에 진행된 일이 바로 콜린맥 기술자 파견이었다.

스티븐은 이미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는 팀과 환경을 다 세팅해 놓았다.

당장 에플 이사진 중에서 일부는 이사직을 그만둔 상태라서 그의 행보를 막을 사람이 없어지자 전향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스티븐이 비록 배신자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이 에플 이사회의 구조조정을 원했다고 둘러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형섭 부사장 역시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 역시 에플 인수와 관련해서 검토했고, 뒤늦게야 콜린맥과 관련된 일을 알았다.

차세대 맥이 콜린맥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꽤 놀라운 일이었다.

[최 소장, 수고해 주게.]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번 파견 팀의 책임자인 최병연 소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설마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지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이 마지막으로 나섰다.

[뭐, 제가 이 자리에서 더 이야기를 해봐야 잔소리만 될 것 같습니다. 에플 지분의 40%를 소유한 곳은 KM 전자와 벨린 투자입니다. 아마 실소유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

KM 전자 지분 중에 50.6%를 소유한 이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다.

결국 두 회사의 지분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는 없었다.

이제 에플의 실소유주는 최민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에플이 잘되면, 그만큼 KM 전자와 벨린 투자의 자산 가치가 올라간다.

KM 전자와 에플은 이제 남인 관계가 아니었다.

최민혁은 자기 말에 머리를 굴리던 이들의 표정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들 중에는 에플이 과연 성공할지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인 이도 있었다.

[스티븐은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여러분의 도움은 스티븐 성공을 더욱 키울 겁니다. 그 성과에 대한 보답은 반드시 받게 될 겁니다. 그러니 이번 일이 남의 회사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힘찬 음성이었다.

최민혁은 그들이 기획실을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오영근 사장은 여전히 걱정되는 얼굴이었다.

“최 실장, 이번 일이 정말 자네 예상대로 될까? 난 아무래도 걱정이야.”

“스티븐은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콜린맥이 정말 대박을 칠지는 염려가 돼.”

“물론 다른 OS를 채택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플의 맥 OS라면 콜린맥의 가치는 더 커질 겁니다.”

“하지만 윈도우95의 인기를 누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새로운 인터넷의 가능성을 잘 압니다. 아마 콜린맥 모델은 바로 이 인터넷이 기준이 될 겁니다.”

“윈도우95에서 끼워팔기로 문제가 된 인터넷 익스플로러 말인가?”

“네, 맞습니다. 스티븐이 고려하는 것은 심플한 인터넷 환경입니다. 차세대 맥은 바로 그 점을 최대한 이용할 겁니다. 콜린맥의 화질은 바로 스티븐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수준입니다.”

“인터넷이라…….”

오영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은 ‘인터넷’이란 말에 중얼거렸다. 아직은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인터넷 전쟁이라고 할 일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스티븐이 노린 것은 바로 그 틈새시장이었다.

‘그다음은 맥 OS를 대체한 넥스트지.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굳이 내가 하지 않더라도 스티븐이 알아서 할 거야.’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문형섭 부사장의 표정이 굳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인생 1회 차 지식이 없다면 두 사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콜린맥은 절대로 실패할 리가 없지. 그보다 더 뚱뚱한 모델로도 대박을 친 사람이 스티븐이니까.’

* * *

KM 전자의 에플 인수가 진행된 이후에 미국에서는 이를 둘러싼 잡음이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스티븐의 에플 귀환에 놀란 이들이 많았다.

그건 스티븐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에플 본사의 회장실에 들어가서는 한동안 상념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축하합니다.”

“고마워.”

스티븐은 회장 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이 기쁨을 누렸다.

그는 자발적으로 에플 이사회에서 물러난 이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마쿨라 이사가 그 경우다. 그는 창업 초기에 자신의 멘토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스컬리와 손을 잡고 자신을 끌어내렸다.

“스티븐, 축하하네.”

“그렇습니까?”

스티븐은 껄끄러운 얼굴을 한 채 긴장한 마쿨라 이사를 쳐다보았다. 정작 자발적으로 나간 이들은 눈치가 빨랐는데, 마쿨라 이사는 그렇지가 못했다.

그는 솔직히 마쿨라 이사와는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 맹세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다시 그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마쿨라 이사도 과거 스티븐에게 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민망한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난 일은 내가 다시 사과함세. 원래 난 스컬리를 좋아하지 않아…….”

“그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그,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PC 사업은 윈도우95 때문에 MS에게 계속 밀리는 국면이야. 따라서 윈도우95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항마가 필요해. 새로운 혁신적 사업부가 필요해!”

“그러면 지금까지는 뭘 하신 겁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메시지 패드 말입니다. 그 실패에도 우리 마쿨라 이사님이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메시지 패드 프로젝트의 열렬한 옹호자 중에 한 사람이 마쿨라 이사였다. 그는 물론 메시지 패드 부품 업체에서 꽤 많은 돈을 받아 챙겼다.

그 덕분에 메시지 패드는 개발 전 단계에서 말들이 많았다.

“솔직히 마쿨라 이사와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공적인 관계로 묻습니다. 지금 에플 매출이 이 모양이 된 것에는 마쿨라 이사님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압니다만.”

“…서, 설마 날 해고할 생각인가? 자네가 CEO라고 해도 오너는 아니야.”

“그거 다행이네요.”

마크 실러가 마쿨라 이사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서 보여준 것은 대주주(?) 위임장이다. 그 안에는 에플 이사회의 선임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에플 이사회를 거쳐야 할 일이지만 불행히도 스티븐을 미는 최민혁 실장이 가진 에플 지분은 무려 40%였다.

아맬리오 이사처럼 스티븐에게 붙은 이사 지분까지 합치면 50%는 가볍게 넘어간다. 그들이 마쿨라 이사 해임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마쿨라 이사는 이를 으드득 갈았다.

“스, 스티븐, 이건 아니야. 자네는 지난 일을 다 잊는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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