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52화 (452/1,021)

#452.

자신이 만약을 위해서 꼼꼼히 나선 덕분에 사전에 생길 문제도 전부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최민혁 실장 덕분이었다.

‘도대체 최민혁 이 새끼는 왜 우리에게도 기회를 준 것일까? 정말 최문경 부회장이 돈이 없어서 우리가 이 기회를 잡은 걸까?’

김현탁 본부장은 이 VA 패널 사업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김희찬 부사장이나 김상구 회장이 그래서 이 일을 자신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이게 소위 말하는 전화위복일까?’

그는 박태정 부장의 안내를 받아서 공장 설비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도 상념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신경 쓰이는 것은 주변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다.

살인 교사죄로 구속된 덕분에 그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김현탁 본부장은 내심 이를 으드득 갈았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최민혁 실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KD LCD 공장 내부 사찰을 끝내고 나서 공장 대지 확보와 관련된 인허가 문제로 안산 시장을 만났다.

지역 활성화와 일자리가 걸려 있는 문제라서 시장 반응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조용히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일을 좋게 풀어갔다.

그런데 박태정 부장이 갑자기 들어오더니 김현탁 본부장의 귀에 뭔가 속삭였다.

김현탁 본부장은 시장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한쪽 구석에 놓인 TV 채널을 켰다.

화면에 나온 것은 ‘뉴스 속보’였다.

[KM 전자, 에플을 전격 인수하다!]

“……?”

김현탁 본부장은 영문을 몰라서 한동안 TV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화면에 나온 이는 최민혁 실장이 아니라 오영근 사장과 토비 에플 CEO로, 그들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질문하는 장면이 연달아 이어졌다.

플래시가 얼마나 터졌는지 두 사람이 있는 곳이 대낮처럼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화면이 곧 바뀌었는데, 이번에 나온 것은 바로 최민혁 실장이 시사 초대석에 나와서 에플 인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세상을 늘 변합니다. 기업은 이런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축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지 못한 기업은 결국 이 변화에서 도태되고 맙니다. 스티븐은 그런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 주에 하나입니다. 스티븐이 선장이 된 에플은 새로운 변화를 또다시 이루게 될 겁니다. 우리 KM 전자는 이런 스티븐을 기꺼이 도와서 새로운 혁신의 주역 중의 하나로 발돋움할 겁니다!]

“…미친 새끼가 결국 사고를 쳤구나!”

김현탁 본부장은 화면을 가득 채운 최민혁의 얼굴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도 설마 하던 일이 정말 일어나자 정신이 반쯤 나갔다.

물론 핸드폰 진동 소리가 그의 정신을 다시 깨웠다.

아버지 김희찬 부사장이었다.

“시장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회사에 일이 생겨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이미 급한 일은 다 끝났으니, 추후 실무진을 통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시장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최민혁 실장과 에플 인수에 대한 뉴스 속보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주 내내 한국을 시끄럽게 만든 뉴스가 바로 KM 전자의 에플 인수설이었기 때문이다.

* * *

김현탁 본부장은 숨을 헐떡이면서 DL 그룹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회장실 안에는 의외로 김상구 회장, 김희찬 부사장, 김용만 전무를 포함해서 모두 다섯 명이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최명섭 기획실장과 최만기 비서실장이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TV였다.

메이저 방송 뉴스에는 온통 에플 인수와 관련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뉴스에서 내보낸 화면은 시사 초대석에 나온 최민혁 실장의 발언이었다.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입니다. 저와 스티븐은 인류의 시대적인 번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업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그야말로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내심 크게 감탄한 김상구 회장은 힐끗, 김현탁 본부장을 차갑게 쳐다본 후에 입을 열었다.

“뭐 하다가 이제 온 거냐?!”

얼음처럼 차가운 말에 김현탁 본부장은 바로 허리를 숙였다.

“아, KD LCD 생산 설비 때문에 잠깐 공장을 살폈습니다.”

“정확히 어떤 설비 말이야?”

“VA 패널은 기존 IPS 패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LCD 생산 설비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전에 생긴 문제와 후일 생길 문제를 검토했습니다.”

쭉 이어서 나온 이야기는 VA 패널과 관련된 전문적인 이야기였다.

김현탁 본부장은 LCD는 전혀 몰랐던 것치고는 꽤 상세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씁쓸하게 내심 웃고 말았다.

‘최 실장 이 새끼가 만든 함정을 파악하려고 한 일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과거에는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를 이렇게 파지 않았다.

전문가를 기용하면 되니까.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만들어 둔 함정이 있을까, 그것을 찾다 보니 어느덧 VA LCD 패널 전문가가 된 것이었다.

그는 덕분에 IPS LCD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고,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했다.

그러니 그의 말은 LCD 전문가 못지않을 정도였다.

그 내용이 꽤 만족스러운지 김상구 회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탁 본부장은 평소처럼 차가운 아버지 김희찬 부사장의 얼굴을 살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도 지금 이 갑작스러운 호출이 최민혁 실장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정신 나간 새끼.’

새삼 최민혁 실장만 생각하면 치가 절려 떨렸다.

하지만 그는 곧 따가운 세 사람의 시선을 받았다.

김상구 회장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에플 인수설 말이다. 네 생각은 어떠냐?”

역시나 예상했던 이야기다.

“네? 제 생각이라뇨?”

김현탁 본부장도 김상구 회장은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김상구 회장은 힐끗 둘째 김용만 전무를 쳐다보았다.

기가 팍 죽어 있는 김용만 전무는 몸을 움찔 떨더니, 정작 김현탁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최민혁 실장과 가장 많이 부딪친 사람은 현탁입니다.”

“네? 그게 무슨…….”

김현탁 본부장은 그제야 자신이 구속되어서 감방에 간 일을 떠올렸다.

김상구 회장이 혀를 찼다. 최훈열 전무 사태 이후에 갑자기 소심해진 아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넌 DL 그룹 차남이란 놈이 고작 최용욱 회장 손자가 무서운 거냐?!”

“…그건 아닙니다. 다만 민혁 그놈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최훈열 전무가 지금도 감옥에 가 있는 것도 그놈 짓입니다.”

“그건 확실한 거냐? 내가 알기로 최훈열 전무 그놈이 헛짓하다가 감방에 간 것 아냐. 민혁 그놈이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

최민혁과 최훈열 전무의 이야기는 여전히 말이 많았다. 최민혁이 최훈열 전무에 대해 작업을 쳤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김상구 회장의 성격상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은 그 일을 믿지 않았다.

김용만 전무는 혀를 찼다. 답답한 아버지가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는 힐끗, 눈알을 도르르 굴리는 김현탁 본부장을 쳐다봤다.

“야, 현탁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지금 뉴스가 저 난리인데, 최민혁 그놈을 얕잡아 볼 수 있겠냐? 너도 최민혁 그놈 때문에 감방에 간 것이 사실이잖아?!”

미친 듯이 쏟아지는 질문.

김현탁 본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새삼 살인 교사죄가 떠올랐다. 이것 때문에 감방에도 가 있어야 했다. 다행히 ‘협의 없음’으로 끝난 일이지만 아직도 자신이 살인 교사범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었다.

새삼 등골이 싸했다.

이성적으로 최민혁 실장을 개새끼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작은아버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KD LCD 사업부의 원천이 되는 기술이 VA 패널입니다. 그런데 이 기술의 소유권자가 최민혁 실장입니다.”

김상구 회장이 바로 나서서 김용만 전무에게 소리쳤다.

“용만아, 입 다물거라.”

“네? 네.”

“계속해 봐.”

“지금까지 최민혁의 행보를 잘 보면, 위험을 안고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는 일에는 반드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에플 인수설도 그럴 거로 생각합니다.”

김상구 회장은 물끄러미 손자를 쳐다보았다. 자식과는 조금 다른 견해였다. 아니, 그 어떤 언론에서도 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답이 무엇이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최용욱 회장과 알고 지내는 회장님은 알고 계실 겁니다. 최소한 최용욱 회장에게는 최민혁 실장이 말을 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들은 적이 없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고 해도 최용욱 회장 눈치는 볼 테니까.”

“흠.”

김상구 회장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는 최용욱 회장과 만날 때면 늘 이번 에플 인수설과 관련된 질문을 했었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이 딱히 확답을 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전처럼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확실히 뭔가 있어.’

김상구 회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손자 김현탁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괄괄한 성격 탓에 흠이 많았지만 지금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감방에 한번 갔다 오더니, 이제야 정신을 제법 차린 것 같았다.

그는 힐끗 한쪽에 조용히 서 있는 장남 김희찬 부사장을 쳐다보았다.

김희찬 부사장은 의외로 아들 말을 꽤 믿었다.

“현탁이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이상 에플을 인수할 리가 없습니다.”

“그 답을 모르지 않느냐.”

이번에는 김희찬 부사장이 김현탁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현탁아, 네 생각은 어떠냐?”

김현탁 본부장은 뜨거운 두 사람의 신뢰 어린 시선에 혀를 찼다. 설마 최민혁과 있었던 일 때문에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신뢰를 받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물론 유럽에서 금융 경험을 쌓았다고 해도 그 자신에 대한 평가는 차가웠다.

아직은 제대로 된 실적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DL 그룹 실세인 회장과 자신의 부친이 자신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그래서 최민혁 실장이 정말 싫었지만, 최민혁 실장을 인정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저도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을 조사해 봤지만,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 봤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에플 인수설에 대한 대안책으로 최악의 경우 다음의 대비를 준비하는 겁니다.”

실로 흥미로운 이야기.

회장실 안에 모인 이들은 다들 김현탁 본부장의 입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확히 어떤 방법을 말하는 거냐?”

“에플 주식 매입입니다.”

“에플 주식이라…….”

김상구 회장도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몰랐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DL 그룹도 뜨거운 맛을 크게 봤다.

그 일을 최민혁 실장이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이제는 최민혁 실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최용욱 회장의 표정이 그 증거였다. 그렇다면 확실히 차악으로 이익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희찬아, 에플 지분은 얼마까지 인수할 수 있겠냐?”

“2~3억 달러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좋다. 우선 KM 전자와 에플의 동향을 자세히 살펴. 그리고 스티븐 움직임도 면밀하게 지켜봐서 에플 지분을 조금씩 사들이거라. 과연 최용욱 회장이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알겠습니다.”

“…….”

김현탁 본부장은 무려 3억 달러어치 에플 지분 인수라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설마 자기 이야기를 저렇게 믿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괜히 불안해서 한마디 더 할까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미 두 사람은 자신의 말을 듣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만, 만약 에플이 파산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런저런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 떠오른 이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아니, 최민혁 실장 생각이 아니라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최민혁의 얼굴이었다.

[디지털 세상을 열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은 인류 발전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KM 전자는 이 목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로 고상한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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