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
정명구는 혼자 달랑 이 자리에 나온 최민혁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는 사회자답게 이번 토론회에 나온 이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고, 그들의 대응을 바라봤다.
시작부터 공격적인 반응이 뒤를 이었다.
[KM 전자의 행보에 우선 박수를 보냅니다.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빠르게 발전하는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기술 독점이 심한 나머지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MP3 플레이어입니다.]
MP3 플레이어 원천기술에 대한 불만은 처음에는 크게 없었다. 하지만 KMP-01 누적 판매 대수가 무려 80만 대를 넘어가면서 말이 나왔다.
다른 기업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싶어도 KM 전자의 허락이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MP3라는 신사업을 KM 전자 혼자 독식한 것이었다.
관련 기업이 불만을 느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물론 질문을 하는 서울대 안시영 교수는 주로 대기업 쪽의 로비를 받은 인물이었다.
최민혁은 굳이 자세한 것을 묻지 않아도 안시영 교수의 속내를 읽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어차피 밝힐 내용이었다.
[그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MP3 특허에 대한 특허료를 산정하는 중입니다. MP3 특허풀에 대한 일정한 비용을 내면, 어떤 기업이라도 MP3를 만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KM 전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소극적이라기보다는 신중하다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설마 한 기업이 피땀 흘려서 만든 기술을 공짜로 풀라는 뜻입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우리 KM 전자는 디지털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임직원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과실 중의 하나가 MP3 관련 원천기술입니다. 결국 MP3 원천기술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우리 기업의 과실입니다!]
강하게 어필하고 있지만 최민혁은 그 어디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면서도 조용했다.
안시영 교수는 시작부터 최민혁의 토크에 말려서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했다.
최민혁은 마치 이 토크쇼를 위해서 몇 개월을 준비한 사람처럼 단호했다.
그 강한 압박에 안시영 교수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는 오늘 시사 초대석 담당 PD인 이상준을 쳐다보았다.
이상준 PD 역시 크게 당황했다. 그는 이번 초대석을 통해서 최민혁을 압박하려 했지만, 그 의도가 시작부터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안시영 저 병신이 도대체 뭐 하는 거야?!’
* * *
이상준 PD는 갑작스럽게 배정된 시사 초대석 프로그램에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맡은 시사 프로그램은 시사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매끄럽게 방송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으로 한 사람을 압박해야 한다니,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상대가 최민혁 실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국장님, 최민혁 실장은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손정수 국장은 이상준 PD의 반발을 그냥 찍어 눌렀다.
“이 PD, 자네는 이 일이 내 독단으로 이루어지는 일 같아?”
“네?”
“아니, 내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이런 일을 지시하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이 일이 2~3년 차도 아닌 친구가 왜 이러는 거야. 내 말이 그렇게 어려워? 최민혁 실장을 싫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그런데 최민혁 실장 성깔이 보통 아닌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야. 자네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겠어?!”
‘썩을.’
이상준 PD도 바보는 아니었다. 최근 뉴스 진행을 하면서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찍히긴 했었다. 그렇다고 이런 일을 자신이 맡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사전에 패널들과 조율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이미 손정수 국장이 패널들과는 따로 만나서 협의를 끝낸 상황이었다.
그는 패널들이 마치 뉴스처럼 자연스럽게 최민혁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도록 연출하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자칫 최민혁 실장이 앙심이 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잖아.’
문제는 더 있었다.
“새, 생방송으로 말입니까? 만약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문제가 안 생기도록 하는 일이 자네 일이잖아. 이번 일만 잘 끝내. 그러면 다음 개편 때 자네에게 고정 프로 하나 맡길 테니까!”
“…….”
‘국장 이 미친 새끼가 돌았나.’
그로서는 국장실을 나서면서 국장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 *
이상준 PD가 손정수 국장을 통해서 받은 압박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시사 초대석은 생각보다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최민혁이 시사 초대석을 위해서 사전에 준비해 둔 진행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서 계속 한 가지 이야기만 주야장천 했던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따라서 이에 따른 변화가 생겨날 겁니다. 이는 국외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에플은 어떻게 보면 그런 흐름에서 비켜나 있습니다.]
안시영 교수는 뜻밖에 신뢰감 있는 톤으로 계속 최민혁을 괴롭혔다.
[하지만 그런 추상적인 면만 보고 가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당장 에플의 몰락은 연간 매출액 지표가 보여줍니다. 아무리 미래도 좋고, 기술이 좋아도 에플 인수는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양손을 펼친 채 조용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기업 성장은 승마와 같은 단기 경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포석으로 길게 봐야 할 겁니다. KM 전자 역시 이런 변화에 따른다면 많은 변화가 생겨날 겁니다.]
안시영 교수는 발끈했다.
[저도 KM 전자의 독보적인 성장을 지켜보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과거 KM 전자 주식을 사들였는데, 이익을 좀 봤습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최근 KM 전자의 행보입니다. 아직 회사가 안정을 찾아가는 중인데, 지금 행보는 너무 무리합니다.]
[저희 KM 전자는 전혀 무리한 도전을 한 적이 없습니다. 가야 할 길을 가는 것뿐입니다.]
[물론 MP3 원천기술이나 K투스와 같은 기술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에플 인수는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막말로 이번에는 KM 전자가 배탈이 날 수도 있습니다. 최악에 수술까지 해야 할 지경이 될지도 모릅니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는 패널들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한 시청자들의 얼굴도 하나씩 살폈다. 심지어 촬영에 여념이 없는 방송국 임직원도 살폈다.
그중에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지시를 내리는 이상준 PD도 있었다.
[아, 에플 인수 문제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가 봅니다.]
최민혁은 패널이 아니라 방송 카메라 중앙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마치 대한민국 전 국민을 상대로 이야기하듯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에플의 이야기에 앞서서 지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로터스의 성공 덕분에 IBM이 대박을 쳤고, 탁상출판 혁명을 통해서 에플이 한 단계 격을 상승시켰습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난 겁니다.]
[하지만 그건 지난 일 아닙니까?]
[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에플과 관련된 겁니다. 아마 에플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혁신을 이룩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 에플이 그 자리에 안주했으니, 에플의 몰락은 당연했습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점점 격화되었다.
이를 본 정명구 사회자가 끼어들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런 패널의 분위기를 무시했다.
[지금의 에플 몰락은 그 자리에 안주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에플이 다시 정신을 차린다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안시영 교수가 황당한 듯 피식 웃었다.
[최 실장님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건지 기업경영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에플의 정책을 바꾼다고 지금 에플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합니까?]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만 전문경영인을 투입한다면 상황이 좀 다를 겁니다. 뚜렷한 신념이 있는 이라면 에플을 다시 혁신의 레이스 위에 올려둘 수 있습니다.]
[지금 에플 사장인 토비 CEO가 바로 그렇게 사장이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 에플 상황을 보십시오.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습니다.]
최민혁은 목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흥분한 패널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거야 사장을 잘못 뽑았으니까요.]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토비 CEO도 에플 내에서 난다 긴다 하는 마케팅 전문가입니다. 그런 그도 에플을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안시영 교수의 태도가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최민혁은 이미 패널의 태도에서 이들 배후에 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런 9시 시사 초대석 방송이 그냥 공짜로 이루어질 리는 없을 테니까.
‘내가 목표겠지?’
그들은 점점 인신공격의 수위를 높여갔다.
선을 넘은 것이다.
뒤늦게야 최민혁은 이들 배후에 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인가. 어째 조용하다 싶었어. 설마하니 시사 초대석을 통해서 날 바보로 만들고 싶었나 보군.’
실제로 안시영 교수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네 사람 역시 최민혁을 어떻게 해서라도 깎아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들 패널이 설치는 것만 봐도 자신을 싫어하는 이권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심지어 이들이 미국 언론에도 영향을 줬다. 그들조차 최민혁 실장의 에플 인수를 미친 짓으로 봤다.
덕분에 에플 주가는 또다시 바닥을 뚫을 기세로 내려앉았다.
다만 생방송으로 진행된 토론회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정명구 사회자도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는데, 방송 PD가 급하게 든 팻말을 보자 내심 깜짝 놀랐다.
[KM 전자가 에플을 인수했다고 지금 발표했습니다!]
[……!!]
생방송 중에 들어온 이 소식에 패널들 역시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들이 지금 최민혁을 힘을 합쳐서 공격하는 것도 에플 인수를 막으려는 속셈에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미 인수가 끝났다면 지금 하는 행동 자체가 헛짓이었다.
최민혁은 뉴스 속보로 지금쯤 나가고 있을 내용을 떠올리면서 씩 웃었다.
그는 애초에 토론 따위를 생각하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에플 인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위함이다.
그걸 못 받아들여도 상관이 없다.
어차피 말로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에플이 어려워진 것은 역시 최고경영자의 역량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스티븐이 다시 에플호의 선장이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정명구 사회자는 크게 당황했지만, PD의 팻말로 신호를 보내자 금방 안정을 찾았다. 그는 흥분한 패널 대신에 자신이 나섰다.
[지금 속보로 KM 전자가 에플을 인수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최민혁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긋했다.
[아, 생각보다는 빨리 계약이 체결되었나 봅니다. 혹시 기자회견장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정명구 사회자는 크게 당황했다. 이 사회 초대석이 무슨 뉴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당 PD는 이미 인터뷰 내용을 받았는지 곧 신호를 보냈다.
그다음에 나온 것은 바로 KBC 홍콩 특파원이 찍은 것이었다.
* * *
홍콩 리걸 호텔 리셉션 행사에서 오영근 사장이 토비 CEO와 손을 잡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아맬리오 이사도 있었는데, 복잡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스티븐이었다.
그는 원래 파트타임 고문 자격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상황이 달라졌다.
토비 CEO가 자신의 사임을 알리면서 그 후임자로 스티븐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다음 에플 CEO는 바로 스티븐입니다!]
지분 매각과 관련된 발표 현장에서 나온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현장에 갑자기 연락받고 나온 기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특히 미국 쪽 방송국 기자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넋을 잃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발표 그대로입니다. 에플 이사회는 지금 에플의 상황이 위기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에플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티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기자회견장은 마치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웠다. 몇몇 기자는 다시 확인한 후에 본사로 연락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토비 CEO는 썩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스티븐이 전향적으로 나서면서 자신은 결국 에플호에서 하차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