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49화 (449/1,021)

#449.

“조금씩 다를 거야. 에플 인수가 확정되면 지분을 매각할 친구가 없진 않을 테니까. 많이 올랐잖아. 차익 실현이라도 봐야지. 나머지는 일단 지켜볼 거야.”

“그러면 다행이지만…….”

“아니, 좀 생각을 해 봐. 민혁이 그놈이 어디 보통 놈이야. 최근까지 인수한 기업을 잘 보면 대부분이 원천기술을 보유한 곳이야. 손해 보기를 그렇게 싫어하는 녀석이 생각도 없이 에플을 인수하겠나? 오히려 자네는 뭔가 알아야 하지 않아?”

“그거야…….”

얄미운 손자 최민혁의 얼굴을 떠올린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확실히 뭔가 강하게 손자가 어필한 것을 떠올렸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국내 대기업 인수만 해도 큰일인데,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까.’

* * *

최민혁의 에플 인수설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미국에서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에플 주가가 영향을 받은 것은 에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정황 때문이다.

에플 이사회의 혼란 역시 여기에 일조했다.

만약 스티븐이 이전과 같은 태도를 고수했다면 에플의 갈등은 더 오래갔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뀐 것은 스티븐의 태도 변화 때문이다.

스티븐은 토비 CEO와 아맬리오 이사를 자주 만나면서 지난 일을 잊겠다는 맹세를 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가진 회사를 에플에 헐값에 넘기겠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런 스티븐의 태도 변화를 에플 이사회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들은 스티븐이 직접 에플 본사를 찾아와서 에플이 가야 할 청사진을 소개하는 발표회를 갖고 나서야 스티븐의 진심을 알았다.

놀랍게도 편집광인 스티븐이 평범한 비즈니스맨처럼 행동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모든 일이 바뀌었다.

에플 이사회는 이미 에플을 매각할 기업이 없어진 마당에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정확히는 에플의 대주주들이 다들 에플 이사회에 질려 있었다. 스티븐에게는 투자하겠지만 에플에는 도저히 자금을 낼 마음이 없었다.

다만 그들도 파트타임 고문 자격 스티븐이 합류한 에플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제아무리 스티븐이라도 엉망진창인 에플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에플 대주주들은 그저 가능한 한 빨리 이 지옥의 늪인 에플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스티븐이 KM 전자와의 사이에서 브로커 역할을 하자 이 상황이 부드럽게 풀렸다.

다만 에플의 대주주들 역시 에플이 한국인 최민혁 실장에게 넘어간 이후에 생길 역풍을 고민했다. 차라리 에플이 이 상태로 망하면 오히려 동정을 살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의 하나인 에플을 한국인에게 넘겼다가 망하면 좋은 꼴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결국 스티븐을 브로커 삼아서 그에게 이번 에플 지분의 매각을 맡겼다.

“좋습니다.”

스티븐은 기꺼이 브로커 역할을 맡았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콜린맥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콜린맥이라면 기존의 NextOS에서 실패한 사업의 맹점을 메꿀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제품이 에플 브랜드로 시장에 나간다면, 틀림없이 자신은 부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잘될 거야.’

* * *

에플 인수설에 대한 논쟁 때문에 스티븐의 조용한 행보는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최민혁은 간간이 스티븐과의 전화 연락을 통해서 이를 지켜봤다.

다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에플 인수설에 대한 한국 언론의 뜨거운 선동 때문에 이 과열된 분위기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심지어 이를 막아야 한다고 정부 청사에 가서 시위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난감했다. 그들이 사기업의 행보를 막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상대는 미국의 상징 중에 하나인 에플이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일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긍정적인 태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무궁화 위성 사업을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한 핵심 인사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런데도 최민혁 실장은 놀랍게도 돈(?)만 챙기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그 덕분에 명예는 정보통신부가 제대로 먹었다. 오성 황태자 안재운도 수혜 대상자이기는 하지만 그건 오성 그룹에 한한 문제다.

정보통신부 입장에서는 최민혁 실장이 그저 재벌 3세 풋내기라서 미친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보다는 오히려 최민혁 실장이 뭔가 있기에 이번 일을 진행한다고 확신했다.

결국 정부는 최용욱 회장을 불러 조용히 경고(?)하는 차원에서 끝냈다. 그 와중에 최용욱 회장에게 의문의 팁을 듣기는 했다.

다만 이들조차 최민혁 실장이 에플을 완전히 부활시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다들 눈만 끔뻑이면서 지켜만 볼 뿐이다.

다만 이들도 여론이 걱정되기는 해서인지 최용욱 회장에게 계속 그 부분을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민혁아, 나도 솔직히 에플 인수에 대해서 널 믿기로 했다. 다만 내가 널 믿는 것은 이제까지 네가 한 실적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달라.”

“절 모르는 이들은 못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게 당연하지 않겠냐. 에플은 미국 정부조차 회생을 믿지 못하는 기업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신뢰를 심어줄 필요가 있어.”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의 설득에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광대가 될 생각이 없었다.

“작가는 글로 보여주면 되듯이 기업가는 실적으로 증명하면 됩니다.”

고지식한 손자의 반응에도 최용욱 회장은 이전처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일 때문에 정부 인사에게 경고도 들었다. 그러니 거기에 대한 뭔가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손자 최민혁에게 하지는 않았다.

“나도 안다. 그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번 에플 인수 때문에 불안한 사람이 많아. 그들의 걱정을 들어주는 것도 나쁜 것은 아냐.”

“흠.”

최민혁은 할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처음에는 아예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활동이 한편으로 노이즈마케팅이 된다는 점이었다.

‘하긴 KM 전자 홍보 측면에서 나쁜 일은 아냐.’

“…내부적으로 한번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이번 일은 부탁 좀 하자.”

* * *

미국 USA 투데이가 뽑은 세계 최고의 노트북 업체는 놀랍게도 에플이었다. 이것은 아직 에플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KM 전자의 에플 인수설은 쉽게 가라앉을 이슈가 아니었다.

KM 전자 홍보 팀은 당연히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들은 이번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KM 전자를 최고로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최민혁 실장의 호출을 받자 이용식 홍보 팀장은 드디어 우려하던 사태가 왔구나 싶어서 전희주 과장과 같이 실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두 사람을 보자 생각도 못 한 제안을 내놓았다.

“제가 직접 나서는 것이 회사 홍보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연히 됩니다!”

이용식 부장은 쾌재를 불렀다. 전희주 과장의 눈빛도 바뀌었다. 두 사람이 이번 사태에서 외면당한 것은 최민혁 실장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최민혁의 이미지를 대체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KBC 측에서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는데, 이거면 도움이 됩니까?”

“네? 공영방송에서 말입니까?”

“네. 그쪽에서 따로 방송 시간대를 편성했습니다. 패널도 이미 선정했는데, 그것만 검토하면 됩니다. 시간은 저녁 9시 뉴스 시간대입니다.”

“마, 맙소사, 그, 그게 정말입니까?”

“네.”

최민혁은 두 사람의 격렬한 반응에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저녁 9시 뉴스 시간대 방송 편성은 그저 하고 싶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돈을 많이 들인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가장 웃기는 일은 이 일이 최용욱 회장까지 동원해서 최민혁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부탁한 끝에 성사된 일이라는 점이다.

최민혁은 굳이 그런 내막까지 말하지 않았다.

이용식 부장은 목이 부러지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홍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회사 매출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방송을 잘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렇겠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최민혁은 순순히 최용욱 회장의 지시에 따를 생각은 없었다. 그가 요청받은 것은 일반 시민에게 에플 인수설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알리는 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론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에플을 인수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압력이 들어올 것은 불문가지다.

최민혁은 굳이 그런 일을 당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전 상황을 질질 끌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목소리를 낮추어서 은밀하게 속삭였다. 그의 계획이 나올수록 듣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전 절대로 당하고 말 생각이 없습니다.”

“…최 실장님 뜻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청자에 대한 신뢰를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일단 제가 말한 방식대로 한번 홍보를 진행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이용식 부장은 잠깐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최민혁 실장 성격을 떠올리고는 곧 포기하고 말았다. 전희주 과장 역시 불안한 얼굴이었다.

* * *

최민혁은 홍보 팀과 어느 정도 논쟁을 거쳐서 일단 최용욱 회장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더욱이 지분 협상이 막바지에 달하자 방송에 대한 부담을 떨쳐냈다.

그는 대신 에플 지분 인수 책임자로 오영근 사장을 임명하여 홍콩의 협상 자리에 보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시간에 맞추어서 KBC에서 마련한 시사 초대석에 참석하기로 했다.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은 최민혁 실장은 이런 상황이 마냥 우습기만 했다.

“방송 첫 출연이 이런 식이라니.”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눈치만 봤다. 그도 이번 방송 출연은 홍보 팀의 요청이라기보다는 외압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회장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여론이 너무 나빠져도 곤란합니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과연 홍보 한 번 나간 것으로 여론이 나아지겠습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언론사 때문인가요?”

“…네.”

그랬다.

한영 일보가 시작한 ‘에플 인수설’ 이야기를 다른 언론이 판을 키웠다. 결국 여러 메이저 방송사가 후속 보도를 이어가면서 한국 전체가 시끄러웠다.

다만 이런 상황이 가짜 뉴스에 의한 선동 따위는 아니었다. 아니, 그랬다면 오히려 이 뉴스도 희석되어서 없어졌을 것이다.

오히려 이 반대다.

에플의 몰락은 진실이었다.

미국 대기업조차 이제는 에플 인수를 포기한 시점이었고, 미국 정부도 이 사태에 크게 당황했다.

에플과 관련이 있는 이들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에 대해 흑기사로 나선 이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처음에는 하도 여론에서 떠들어서 이 일이 그냥 넘어가나 싶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지가 못했다.

KM 그룹조차 이제는 에플 인수설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최민혁은 물론 이런 외압 때문에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제는 KM 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에플 인수는 그 수단에 불과했다.

‘이 일이 성공하면 할아버지와 우리 첫째 큰아버지 사이의 관계도 크게 벌어질 거야. 그리고 최문경 부회장님은 조용히 자리만 지키지는 않겠지. 어떤 형태로든지 행동으로 옮길 테니까.’

그는 대기실로 들어온 방송국 직원을 보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오늘 KBC에서 마련한 시사 초대석은 갑자기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자리는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듯이 최민혁이 시사 초대석 패널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최민혁에 관한 내용이 줄줄이 나왔다.

그 정점은 역시 IFA 강연회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이자 최연소 강연이었다. 참가한 패널들도 이 내용에는 혀를 내둘렀다.

이는 당시 IFA 강연회에 참석한 이를 통해서 어렵게 구한 것이었다.

사회자는 시사평론가로 유명한 정명구 씨다. 그는 우선 손뼉을 치면서 앳된 최민혁 실장을 보며 탄사를 터뜨렸다.

[와아, 이렇게 보니 정말 놀랍습니다. 당시 저 일이 화제가 되었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최민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이보다 시계를 확인했다.

‘에플 인수 발표까지는 30분 남았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