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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45화 (445/1,021)

#445.

그런데 이제 에플의 인수 문제까지 이어지자 그림이 좀 달라졌다.

개개의 사건이 실상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하나의 거대한 청사진이었다.

그로서도 전혀 상상도 못 한 계획이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혹.

바로 손자 최민혁의 답답할 정도로 느린 대응책.

그것까지 하나로 합쳐 보면, 의외로 뭔가 그림이 나왔다.

최용욱 회장은 아직 그 그림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뒤늦게야 자신만만한 손자 최민혁의 태도에 탄식하고 말았다.

“…너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었구나.”

“글쎄요.”

최민혁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허허허.”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탄식하고 말았다. 뒤늦게야 손자 최민혁에게 질려 버린 것이다. 지금 일도 어쩌면, 뭔가 다른 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한평생 KM 그룹을 일구어 온 최용욱 회장조차 도저히 손자 최민혁의 내심을 읽을 수가 없었다.

“…성공을 확신하는구나?”

최민혁은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스티븐이라면 당연히 성공할 사람입니다.”

“스티븐이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제가 밀어준다면 그 대단한 스티븐은 아주 제대로 사고를 칠 겁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최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할아버지 덕분에 국내 일을 잘 풀어갔습니다. 그 흔한 외부 간섭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점을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마 할아버지가 안 계셨다면 일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외부 외압이다.

특히 정치권으로부터 실드를 쳐준 사람이 바로 최용욱 회장이었다.

그 외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최민혁은 굳이 그걸 알 필요가 없었다.

손자 손에 똥물을 묻힐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 최용욱 회장이 알아서 처리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그런 상황을 최대한 이용했다.

“이 자리를 빌려서 할아버지께 다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누워서 절 받기냐?!”

그는 최용욱 회장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좋았습니다. 나라별로 콜린스 매출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개척해야 할 시장이 국내가 아니라 해외로 그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월마트가 대표적입니다. 로비스트가 필요하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 대안이 스티븐이라는 말이냐?”

“네. 자신이 키운 기업에서 쫓겨난 스티븐. 그가 다시 자신의 고향인 에플로 돌아가 위기에 처한 에플을 살린다면 멋진 성공 스토리가 될 겁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건…….”

“아무리 미국이란 나라가 아시아권을 차별한다고 해도 성공 스토리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특히 영웅의 동료가 된다면 말입니다.”

‘명예는 스티븐이 손에 쥐겠지만, 이익은 제가 다 먹을 겁니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

최용욱 회장은 기가 막혀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아는 사실이다.

유럽과 미국 시장은 국내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여러 가지 인종적인 장벽이 있다.

그 난관을 뚫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당장 오성 그룹이나 LC 전자만 해도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다른 한국 대기업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막대한 로비를 해서야 겨우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지금도 변방의 나라 기업이란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KM 그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최용욱 회장이 오죽하면 한국 시장만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공략했겠는가.

비록 내수 기업이라는 오명을 들었지만, 지금까지 KM 그룹은 꾸준히 잘 성장했다.

최용욱 회장은 왜 손자 최민혁이 월마트와의 거래를 그렇게 질질 끌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아직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도 손자 최민혁이 뭔가 하려고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다만 한 가지가 문제였다.

“…성공할 수 있겠냐?”

“…실패할 자신이 없습니다.”

최용욱 회장도 어이가 없어서 주춤했다. 그는 곰곰이 다시 생각했다. 손자 최민혁이 저렇게 나오는 데는 또 다른 비밀 무기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냐?”

“아, 우리 첫째 큰아버지를 적당히 눌러주세요. 아, 셋째 큰아버지도 있군요. 그분 역시 그냥 조용히 있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KD LCD를 비롯한 KM 그룹에 집중해 주세요.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내실에 더 집중하세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뭐, 할아버지가 현금이 있다면 제가 굳이 그룹 규모를 키우는 것을 말리지 않겠습니다.”

“넌…….”

“네. 전 돈 많습니다. 이번 에플 인수도 현금으로 할 겁니다. 솔직히 투자에 실패해도 일부 원금 손실만 있을 겁니다.”

그랬다.

KM 전자와 벨린 투자에 있는 현금만으로도 에플 지분 인수는 가능했다.

당장 인수 가능한 에플 지분 수치는 대략 30~40% 분량으로 꽤 많이 후려치면 8억 달러를 넘지 않았다. 실제로 토비 CEO가 인수 대상자를 만나서 제안한 금액이 있기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알겠다.”

최민혁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두 사람을 잠깐 쳐다보았다. 잘하면 KM 그룹 전략 기획실을 이용해서 ‘자신이 에플 인수설에 관심이 있다’는 정보를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 기획실에서도 정보가 조금씩 샌다는 것까지 확인했으니. 그렇다면…….’

“정 그렇게 불안하면 전략 기획실을 총동원해서 한번 조사를 해보세요. 사람 일은 모르는 법입니다. 최악의 상황에 에플을 인수한 KM 전자가 흔들리면, KM 그룹도 타격을 받을 테니까요.”

“…그건 확인해 보마.”

최용욱 회장은 자신의 장남에게 휘둘려서 손자 최민혁을 이렇게 호출한 것을 떠올렸다. 머리가 복잡하기만 했다.

‘도대체 이놈이 뭘 준비하기에 저렇게 자신하는 것일까? 아, 하긴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있으니. 그것과 다 연결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손자 최민혁이 회장실을 떠나는 모습을 본 후에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에플 지분을 우리도 인수할 수 있겠어?”

“네? 그건 좀 힘듭니다. KD LCD 설립 때문에 자금이 너무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런가? 후유, 그렇지. KD LCD가 있었어. 그래도 모르니까. 민혁이 말처럼 에플에 대해서 인력을 더 보강해서 철저하게 조사해 봐. 특히 스티븐과 관련된 정보는 빼놓지 마. 비록 KM 전자가 민혁이 녀석이 오너이기는 하지만 계열사라는 사실은 변치 않아. KM 그룹 차원에서 에플을 인수하는 거잖아. 그 기준으로 놓고, 조사를 진행해 봐!”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도 이번 지시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스티븐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최민혁 실장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스티븐을 믿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최용욱 회장 역시 KM 전자 주식 때 한 번 뜨거운 맛을 본 경험이 있는지라 마음을 달리 먹었다. 만약 에플 주식이 정말 KM 전자처럼 대박을 친다면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자금을 더 써야 할까? 아니,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어.’

* * *

최민혁의 예측대로 KM 그룹 전략 기획실은 갑자기 들이닥친 ‘에플 인수설’, ‘스티븐’ 이슈 때문에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웠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이 사실이 정말일까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기존에 하던 KM 산업을 비롯한 계열사 처리를 배제한 채 이 일에만 매달려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KD LCD 설립에 들어간 돈이 최문경 부회장과 최용욱 회장의 자금만 합쳐서 무려 5억 달러가 넘는 것을 고려하면 황당한 일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구길모 차장조차 이 사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전 농담으로 들었습니다. 아니, 우리 회사가 에플을 인수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에플을 인수하는 겁니까?”

장승일 실장은 피식 웃었다.

“지금은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 그리고 최민혁 실장님이 나서서 하는 일이야.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에플 적자가 얼마인지 조금만 조사하면 다 나오는 일입니다. 기업의 신이라도 에플을 다시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하잖아.”

구길모 차장은 울상을 지었다. 이때 까딱 잘못하면 KM 그룹이 큰 타격을 받는다. 그 경우엔 또다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건 조사로 끝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최 실장님이 자네가 고민한 문제를 모를 거로 생각하나?”

“그건 아니지만…….”

‘최민혁 실장’의 이름이 나오자 심각해진 ‘에플 인수설’에 불안을 표출하려던 천경구 과장, 박재광 과장, 이수연 대리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들 역시 KM 전자 주가 신화를 이룬 최민혁 실장을 모를 수가 없었다.

벌써 30만 원을 돌파한 KM 전자 주가는 놀랍게도 내려가지를 않았다.

지난주에 경기 하방과 수출 저조에 따른 소식에 코스피가 무려 15%나 하락했음에도 KM 전자 주가는 여전히 30만 원대를 지켰기 때문이다.

KM 전자 주가는 30만 원도 높지 않다는 분위기를 계속 보여주었다.

황당한 것은 이 가격이 너무 높아서 개미는 아예 달라붙지를 못하는 중이다.

천경구 과장조차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실장님, 아무리 최 실장님이 대단하다고 해도 에플을 살릴 방법이 있습니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일에 관한 타당성 조사이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기업 인수합병이 없던 일도 아니잖아. 간단하게 생각해. 그리고 이 안건은 회장님이 직접 나선 일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케팅 팀을 비롯한 몇몇 부서에서 차출된 인원들이 나타났다. 그들 역시 사전에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정말 최민혁 실장님이 에플을 인수하는 겁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아니, 가능하다고 해도 말려야 하는 일 아닙니까. 에플 상황이 나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에플 주가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하지만 장승일 실장은 별다른 대꾸 없이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지금부터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에플 인수에 따른 리스크 관리야. 어떻게 하면 에플을 다시 살릴 수 있는지 그 대안을 찾는 거야. 필요하다면 스티븐에 관한 조사를 병행하면 돼.”

“……!”

당연히 너무 놀란 이들은 아무런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천경구 과장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장 실장이 미친 건가?’

* * *

지금까지 ‘에플 인수설’은 어디까지나 설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최민혁 실장이 에플을 인수할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미국 기업은 다 포기한 곳이 바로 에플이었다.

누가 봐도 에플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 KM 그룹 전략 회의실에서 ‘에플 인수’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천경구 과장은 다음 날 바로 임권수 부장에게 연락을 해 그와 만났다.

임권수 부장은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탓인지 소주잔을 들이켜다가 사레가 들려 콜록콜록 기침을 토하고 말았다.

“코, 콜록, 농담이지?”

“지, 진짭니다. 정말 장승일 실장이 에플 인수와 관련된 본격적인 검토를 지시 내렸습니다. 그게 최 회장님의 지시 사항입니다.”

“미친!”

“저도 환장하겠습니다. 전략 기획실뿐만 아니라 비서실도 발칵 뒤집혔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얼마나 열받았는지 기획 팀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갔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최용욱 회장이 그 자리에 없어서 큰일은 터지지 않았다.

황당해진 임권수 부장은 도저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장승일 실장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경구 과장은 마치 타이타닉호의 탑승객인 양 불안에 떨었다.

“전 걱정돼서 미칠 것 같습니다. 만약 KM 전자가 에플을 정말 인수했다가 휘청하기라도 한다면 당장 구조조정부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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