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44화 (444/1,021)

#444.

다만 생각 외로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에플 인수를 통한 이익은 천문학적이었다.

‘GE의 밥 라이트 회장마저 토비 CEO의 20억 달러 제안을 거절한 것을 후회했으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내 인생 1회 차 흐름을 따라가게 하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는 곰곰이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스티븐이 쥐고 있는 모바일 특허를 다시 사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스티븐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판을 만들어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메이저 음반사와 협상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설사 내가 가능하다고 해도 얻는 이익은 크지 않을 거야. 그런데 스티븐이라면 최대한 이익을 뽑을 수도 있어.’

약간의 손해를 봐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얻는 이익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자신의 행보다.

세계 무대에 나설 때는 최용욱 회장의 도움을 얻기 어려웠다.

‘스티븐이라면 최고의 탱커가 될 거야. 싫든 좋든 에플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사력을 다할 테니까. 난 스티븐 등에 빨대를 꼽아놓고, 재미를 보면 되지.’

결심을 굳힌 최민혁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에플 인수 말입니다.”

“난 반대다!”

단호한 최용욱 회장.

최민혁은 난감한 얼굴을 한 장승일 전략 기획실 실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장 실장님은 어때요?”

“전…….”

어지간하면 장승일 실장 의견을 존중하는 최용욱 회장이 단호하게 끼어들었다.

“나도 PC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하지만 에플의 전 CEO인 스컬리가 병신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을 알겠다. 그 덕분에 윈도우95가 탄생한 거나 마찬가지야. 윈도우95의 인기를 본다면 에플 파워북은 전혀 가능성이 없어!”

사실이었다.

지금의 에플은 정말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인내를 가지고 장승일 실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장 실장님도 우리 회장님 의견에 공감하세요?”

“그게 좀…….”

장승일 실장도 따가운 최용욱 회장 시선에 부담을 느꼈다. 그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슬쩍 책임을 최민혁에게 떠넘겼다.

“KM 전자 때도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안 된다고 할 때 무너져 가는 KM 전자를 다시 일으킨 분이 최 실장님입니다. 전 최 실장님이 뭔가 확실한 대안을 가지고 계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도 평소와는 달랐다.

“나도 민혁이 네 녀석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냐. 하지만 사업은 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도 있는 법이다. 아니다 싶으면 물러설 용기도 필요해. 언제까지 네가 계속 대박 행진을 이어갈 수는 없는 거다!”

팔짱을 한 최민혁은 순순히 최용욱 회장의 비판을 인정했다.

“압니다. 계속 대박 아이템을 성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에플이라면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게 또 무슨 소리냐?”

“이번에는 제가 다시 한번 숙제를 드리죠. 할아버지가 한번 답을 찾아보세요.”

이 말을 끝으로 최민혁은 다시 회장실을 나가 버렸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대학 교수가 대학생에게 과제를 주듯이 행동했다.

“…….”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의 행동에 별다른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 * *

최용욱 회장의 복귀와 최민혁의 KM 그룹 본사 방문에 대해서는 KM 그룹 내에서도 말이 많이 나왔다.

이 이슈 때문에 최용욱 회장의 전경련 하계 세미나 주관 행사에 대한 이슈가 묻혀 버렸다.

그나마 언론에서는 연일 최용욱 회장이 전경련 하계 세미나에서 다른 10대 대기업 회장을 제치고 발표에 나선 점을 주목했지만, 실상 KM 그룹 내부에서는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위기였다.

KM 그룹은 오직 최민혁 실장의 에플 인수설에만 주목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최용욱 회장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한 것이다.

에플 인수설의 리스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보다 못해서 최용욱 회장을 직접 찾아가서 소리쳤다.

“아버지, 또 민혁이 그놈의 술수에 놀아난 겁니까?!”

평소라면 최용욱 회장이 그냥 두지 않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또 무슨 소리냐?”

“민혁이 그놈을 불러 이야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당해야 정신을 차리실 겁니까. 그놈 말은 전부 사기라니까요!”

최민혁의 이야기가 달콤한 사탕발림이라는 이야기다.

최문경 부회장은 마치 최민혁을 세상 최고의 사기꾼인 양 묘사했다.

최용욱 회장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KM 전자 주가가 30만 원을 넘긴 것도 사기란 말이야?”

“그거야 작전 세력이 몰렸기에 잠깐 일어난 일입니다. 그놈과 이야기를 하지 마세요. 에플이 망해가는 회사란 것은 미국 사람이 다 압니다!”

최용욱 회장은 침을 튀겨가면서 자신을 몰아붙이는 장남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혁과 이야기를 해본 바로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질투와 위기감에 사로잡힌 장남은 아예 그런 점을 살피지 않았다.

착잡했다.

이게 아니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KM 그룹 내에 부패가 씻겨 나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장남은 시기심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망가지는 중이었다.

‘아니야. 이놈이 그렇게 호락호락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KM 산업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실제로 KM 산업의 매출은 눈부시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늘어났다.

국내 최초로 256LEAD 양산에 나선 것이 그 증거였다.

올해 KM 산업의 공정 현대화에 따라 생산 능력이 월 700만 개로 급증했다. 올 연말까지는 무려 800만 개를 넘어설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최문경 부회장이 KM 산업에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사실 평소라면 최용욱 회장도 장남의 성과에 대해서 칭찬하고 격려했을 것이다.

‘답답하구나.’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은 정작 자신이 한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남의 잿밥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에플 인수설은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문경아, 네가 요즘 잘하는 것 안다.”

“제가 그런 칭찬을 듣자고 아버지에게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어.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혁이 그 녀석도 에플 인수설의 위험성을 잘 알아.”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금까지 민혁이 그놈이 한 짓을 본다면 아버지에게 적당한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뒤로는 따로 계약할 겁니다!”

“이놈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아뇨. 전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둘 사이의 의견 차이가 생각보다 너무 심했다.

최용욱 회장은 이 덕분에 최문경 부회장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최민혁이 내준 숙제를 더 깊숙이 살폈다. 특히 장승일 실장이 올린 에플 관련 자료를 계속해서 살피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맞아, 스티븐이야. 그 친구가 없기에 에플은 무너지기 시작했어.’

* * *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이 KM 그룹 본사에 오라 가라 하는 지시를 굳이 어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느긋하게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는 KM 그룹 본사에 있을 때면 최용욱 회장과 만나서 거리를 좁힌 소식이 최문경 부회장의 귀에 들어가도록 손을 썼다.

그 방법은 꽤 효과가 좋았다.

아무리 최용욱 회장이 장남을 생각해도 둘 사이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면서 틈이 벌어졌다.

‘좋구나.’

이건 정말 매력적인 플랜이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던 최용욱 회장이 드디어 최문경 부회장을 의구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최민혁은 덕분에 휴가라도 나온 사람처럼 느긋했다. 그는 이 틈을 이용해서 KM 그룹 계열사의 사장들과 관계를 좁힐 수 있었다.

그중에는 KM 인스트루먼트의 김환진 사장도 있었다.

이 회사는 의료 기기 사업부를 비롯한 잡다한 사업부를 매각한 후에 수익성을 최대로 올린 회사다.

그러니 김환진 사장의 콧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김환진 사장도 최민혁을 앞에 두자 호랑이 앞에 고양이 흉내를 냈다.

최민혁은 이미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계열사 사장들의 현황을 전해 들었기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김환진 사장 같은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는 그들을 일일이 접하면서 귀찮다는 것을 느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살가운 척 틈을 보여서 이들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붙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어쩌면 이게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것이야.’

바로 최문경 부회장 옆에 붙는 이들을 압박한 것.

그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의 세력은 시간이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최민혁은 IMF가 왔을 때 이들을 일거에 다 정리할 계획을 염두에 뒀다.

그리고 예상보다 빨리 최용욱 회장이 자신을 호출했다.

“스티븐이다,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스티븐이 맞지?”

“맞습니다.”

최민혁은 신기한 눈으로 최용욱 회장을 쳐다보았다. 최문경 부회장이 계속 최용욱 회장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사내에 자자했다.

그는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최용욱 회장의 집중력에 내심 감탄해서 자신이 계획한 한 가지 밑그림을 말해주었다.

“전 스티븐을 다시 에플로 귀환시킬 생각입니다. 스티븐이 다시 선장이 된다면 에플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바뀔 겁니다.”

“정말로 에플의 창업자인 그 스티븐을 말하는 게 맞는 거냐?”

“네.”

“…….”

최용욱 회장은 ‘스티븐’이라는 모범 답안을 찾기는 했지만 그다음 이어진 최민혁의 답변에는 너무 놀라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티븐이 난데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가 손자 최민혁과 따로 만났으니까.

‘아니지. 스티븐이 민혁이 저 녀석을 만나기 위해서 한국에 왔잖아. 설마 에플 인수설 때문에 두 사람이 협의했다는 건가?’

스티븐이 선장이 된 에플을 떠올리자 그 자신이 예측하던 그림과는 또 달랐다.

스티븐의 신화는 그도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차고에서 시작해서 에플을 창업한 이가 스티븐이다.

그가 만약 다시 에플에서 시작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그 배후에 손자 최민혁이 있다면 말이다.

“…너, 설마 따로 준비해 둔 것이 있느냐?”

그는 ‘에플 인수설’은 원래 전혀 고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 실장님 말처럼 제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에플 인수설과 같은 일을 밀어붙이겠습니까?”

‘쯧, 결국 이렇게 되는군.’

“하, 하지만…….”

최민혁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확신했다.

“섭섭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절 지켜보고도 할아버지는 저에 대해서 모르십니까?”

입술을 쿡 깨문 최용욱 회장이 반박했다.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거, 그게 대체 무엇이냐?”

“보안 때문에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야, 이놈아!!!”

버럭 고함치는 최용욱 회장.

하지만 최민혁도 변명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지금 이틀에 한 번 꼴로 우리 부회장님이 계속 회장님을 찾아가서 설득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과연 할아버지가 제 제안을 듣고 제 첫째 큰아버지에게 비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하아.”

최용욱 회장은 이마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손자의 지적을 무시하지 못했다. 어쩌면 장남에게 화가 나서 말할 수도 있었다.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손자 최민혁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고 있었을 법한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던 장승일 실장은 최용욱 회장의 시선에 슬쩍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최용욱 회장은 에플 인수 건에 ‘스티븐’, ‘손자 최민혁’이라는 변수를 넣어서 다시 계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실상 최민혁이 뭘 준비하는지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최민혁이 이제까지 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ARN 지분 인수, 켐코 사업부 인수, 근거리 통신망 기술 개발, K투스, 와컴 지분 인수.

그 과정 하나하나가 복잡해서 당시에는 영문을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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