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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42화 (442/1,021)

#442.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KM 전자가 가진 원천 기술과 에플의 브랜드 가치가 결합한다면 시너지를 충분히 낼 수가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특히 에플이란 기업은 매출은 계속 줄고 있지만 에플이 가진 브랜드 고유 가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혁신적인 제품만 있다면 에플의 부활은 어렵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KM 전자는 그만한 역량이 있습니다.”

“하.”

최문경 부회장은 가슴이 너무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정말 KM 전자가, 아니, 최민혁 실장이 에플 인수에 성공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다.

당장 최용욱 회장조차 최문경 부회장의 처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막을 수는 없는 거야?”

“그게 미국 쪽 일이라서. 더욱이 여기엔 에플 이사회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얽혀 있습니다. 차라리 현실적인 대안이라면 에플 지분을 우리도 같이 사들이는 겁니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돈은 있어? 권 실장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아서 자금을 마련할래?”

“…….”

최문경 부회장은 맥 빠진 어조로 툴툴거렸다.

“그나마 있던 자금도 KD LCD 설립에 다 퍼부었잖아. 나 정말 동전 한 푼도 없어.”

그는 DL 그룹에서 자금을 빌린 것 외에 심지어 그 자신이 가진 부동산까지 담보로 걸어 대출을 받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진짜 자신의 손에 현금이 없었다. 그는 결국 고민한 끝에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아, 맞아. 현실적으로 보면 에플은 망해 가는 회사잖아. 이런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말도 안 되지. 가만, 이렇게 하지. 장승일 실장을 불러봐. 그 친구가 과연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그제야 안도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한 지시는 실제론 장승일 실장이 아니라 최용욱 회장을 노린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하긴 회장님이라면 이런 황당한 일은 무조건 막으실 테니.’

* * *

장승일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에게 KM 전자의 에플 인수설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당연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미 파악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자칫 심각한 상황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에플의 매출은 매년 10%씩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적자도 계속 쌓이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IBM, GE 같은 기업도 에플 인수에서 손을 떼는 모양새였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고 해도 이런 일은 최용욱 회장이 사전에 알아야 할 일이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최용욱 회장을 찾아가서 이 문제를 보고했다.

“에플 인수라…….”

최용욱 회장도 이미 스티븐의 내한 정보는 물론이고, 다른 경로를 통해 이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그는 딱히 장승일 실장을 탓하지 않았다. 그 역시 영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장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솔직히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만 봐서는 무리수를 둔 선택입니다.”

“자네도 에플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나?”

“다른 것을 떠나서 주가가 증명합니다. 20억 달러면 에플 지분을 다 인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올 정도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좀 과장된 이야기라고 해도 에플의 상황이 안 좋은 건 사실이지. 하지만 민혁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에플 지분을 인수할 생각은 아닐 거야. 어쩌면 기회일 수 있잖아. 지금 에플 주가는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으니까.”

장승일 실장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에플을 부활시킬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막말로 KM 전자가 가진 원천 기술을 이용해서 힘을 실어준다고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용욱 회장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이 문제를 다름 아닌 한국 대기업 회장들에게서 들었었다.

왜 그리 남의 일에 관심들이 많은지, 전경련 모임과 같은 자리에 가면 전부 자신을 씹어댔다.

특히 스티븐이 얽힌 이후에는 더 상황이 심각해졌다.

“민혁이는 뭐래?”

“아직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그놈이 연락한다고 해서 제대로 답을 해줄 녀석은 아니니까.”

장승일 실장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과거 일을 보면 최민혁 실장님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당장 대표적인 예가 30만 원을 돌파한 KM 전자의 주가입니다.”

“아, KM 전자 주가. 30만 원을 넘었지.”

최용욱 회장도 어제 KM 전자 주가가 결국 30만 원을 돌파한 사실을 떠올렸다. 바로 KMP-01 차기작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고작 1,500원에 불과했던 주가가 결국 30만 원을 돌파한 것이었다.

무려 200배를 뛰어넘었다.

한국 증시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주가 폭등이었다.

“…설마, 장 실장 자네는 에플 주가가 KM 전자처럼 폭등할 것으로 생각하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 실장님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을 밀어붙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KM 전자가 진행한 일을 보면 확실합니다.”

“나도 그걸 모르지 않아. 하지만 사업이 뜻대로 풀리는 경우는 잘 없어. 지금까지 민혁이가 잘한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 대박을 이어간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거야…….”

최용욱 회장도 지금까지 손자 최민혁을 지지했지만 에플 인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에플은 이미 맛이 간 기업이었다.

아무리 자금을 더 투자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민혁이 그 녀석을 불러 자초지종을 묻기 전에 에플에 대해서 한번 철저하게 조사를 해 봐.”

“…알겠습니다.”

* * *

최용욱 회장은 자신의 6번째 저서인 ‘일본의 근원은 한국이다!’ 출판 기념회에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자신의 결혼 60주년을 기념한 기념 행사였다.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의 동창은 죄다 참석했다.

심지어 한국 10대 대기업에서도 친지나 지인이 나타났다.

“회장님, 결혼 60주년 축하합니다!”

“자네가 올 줄은 몰랐어.”

“당연히 와야 할 자리입니다. 원래라면 아버님이 참석해야 할 자리인데, 유럽에 출장을 가 계셔서 제가 이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알겠네.”

넉살 좋은 얼굴을 한 한병수 부장은 정중하게 웃었다.

그는 LC 전자 한병문 회장의 손자로, 지금은 LC 전자 기획실에 있었다.

비록 부장이기는 하지만 LC 전자의 실세로 소문이 자자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이사로 진급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다.

IPS LCD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니, 한병문 회장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

그리고 오늘은 아버지 한봉준 상무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한병수 부장의 대리 참석에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그가 LC 그룹 내에서 주목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대기업 3세와는 달리 그다지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오성 그룹 황태자 안재운 역시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나타나자 시선이 한층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번 출판 행사에 참석한 기자는 특종에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늙은이 행사에 자네 같은 젊은 친구가 와줘서 고마워.”

“아버님이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안 회장님이 바쁜 사실은 세상 누가 모르겠나. 걱정하지 말게나.”

최용욱 회장은 비록 손자 나이의 안재운이지만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오성 그룹 황태자를 그 누구도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재운이 그냥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몇 가지 꼭 확인을 부탁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설마 스티븐 이야기인가?”

“네. 최민혁 실장의 에플 인수설 이야기가 너무 구체적이어서 말입니다.”

“흠.”

최용욱 회장은 눈을 찡그렸다. KM 전자의 에플 인수설은 정말 말이 많은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놀라던 이들조차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는 처참하게 망가져 있는 에플에 경악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지하실을 계속 확인하는 에플의 주가가 그 증거였다.

웃기는 사실은 최민혁 실장의 에플 인수설 이야기가 나오자 에플의 주가가 무려 200%나 껑충 뛰어올랐던 것이었다.

더 어이가 없는 사실은 이게 루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150% 가까이 에플 주가가 폭락했다는 점이다.

에플 주가는 현재 최민혁 실장의 반응에 따라서 춤을 추는 중이었다.

그러니 에플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들은 다들 여기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오성 그룹 안건민 회장이 에플 인수설에 끼어들 여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에 무심할 수는 없었다.

이게 한편으로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은 지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 다 루머일세. 그러니 안 회장에게 분명하게 말하게.”

“…알겠습니다.”

안재운도 단호한 최용욱 회장의 태도에 더 질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이어지는 인사마다 꼭 ‘스티븐’, ‘에플 인수설’, ‘손자 최민혁 실장’ 이야기를 지겹게 들어야 했다.

여기엔 단순히 10대 대기업 관련자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언론사를 포함해서 뜻밖에도 정치인마저 의구심을 드러냈다.

“정말 헛소문 맞습니다. 에플은 당장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입니다. 아무리 과거 명성이 대단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결국 노구에도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회장님, 오늘 출판 기념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혹시 최민혁 실장과…….”

“…….”

최용욱 회장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한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단순히 외부 인사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장남 최문경 부회장이 지친 최용욱 회장을 마지막으로 괴롭혔다.

“아버지, 전 정말 우리 그룹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민혁이가 이제까지 잘해온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에플은 아닙니다. 아무리 헐값에 시장에 나왔다고 해도 에플 지분 일부를 인수하려면 적어도 10억 달러 이상은 필요합니다. 아니, 그 자금을 망해가는 회사에 투자하는 게 말이 됩니까?”

“…알았다.”

지친 최용욱 회장은 이제 아주 기가 질린 얼굴이었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요. 아버지는 아직 상황을 잘 모르시는 눈치입니다. 에플은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오죽하면 GE가 20억 달러에 지분을 다 넘기겠다는 토비 CEO의 제안을 거절했겠습니까?”

“글쎄, 그건 확인되지 않은 정보다.”

“아뇨. 확인된 사실입니다. 제가 미국 쪽에 라인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쪽을 통해서 이미 몇 차례 확인된 사안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혁이가 에플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적도 없어!”

“아니, 민혁이 성격을 잘 알면서 그런 말씀을 합니까? 에플 인수 대금을 다 지급하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알릴 놈이 그놈입니다. 설마 그걸 보고만 있을 겁니까?!”

지난 일을 꺼내서 걸고넘어지는 최문경 부회장의 행동은 보통 때와는 많이 달랐다. 아무래도 이번이 최민혁을 공격할 최적의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은 그런 장남의 모습에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결혼 60주년 행사에서 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 에플 인수는 정말 미친 짓입니다. 그건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합니다!”

“…내가 확인해 보마.”

최용욱 회장도 이번에는 최문경 부회장의 지적을 무시하지 않았다.

‘허, 이거야 원.’

* * *

윈도우95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역시 MS사다. 이 회사는 윈도우95 판매량을 대략 4천만 대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윈도우95는 지금까지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미국 국무부에서 조사를 받아왔다.

MS 처지에서는 꽤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기업은 역시 IBM과 에플이다.

GUI 기능 덕분에 독보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에플 입장에서는 큰 타격인 셈이다.

안 그래도 에플 매출이 계속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윈도우95 판매고가 가파르게 올라갈수록 에플 매출은 반비례 곡선을 그릴 것이다.

에플이 IBM, 모토로라와 손을 잡은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에플 주가가 바닥을 찢어버리고 있는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에플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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