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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41화 (441/1,021)

#441.

다만 그들 역시 한 가지 점만큼은 여전히 의혹을 떨치지 못했다.

“조 팀장님, 그런데 최 실장님 제안대로라면 정말 우리 KM 전자가 에플 지분을 사들이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

조용히 침묵만 한 채 커피를 홀짝이던 정성근 대리가 슬쩍 한마디 던졌다.

“전 그보다 ARN 지분 인수, 근거리 통신망, 켐코 사업부 인수, 와컴 지분 인수가 모두 이 일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었나 싶어요.”

딱 한마디였지만 이에 대한 기획 팀 표정은 다들 제각각이었다.

최민혁 실장의 갑작스러운 미국 행보는 앞뒤가 다 맞지 않았다.

이미 강준석 대리 보고서에도 나와 있었지만, 아직 긴가민가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 스티븐을 끼워 넣으면, 퍼즐이 하나둘씩 완전히 짜 맞춰지는 것이었다.

미국까지 같이 갔던 조성돈 팀장도 스티븐의 태도를 떠올리면서 탄식하고 말았다. 그는 평소와는 다른 최민혁의 행동을 떠올렸다.

“그래서 벨린 소프트 그 친구들 스카우트할 때 실장님이 조심한 것일까?”

배종대 과장이 버럭 소리쳤다.

“하면 최 실장님은 이미 에플 인수를 작정했다는 말입니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지난 일을 하나둘씩 떠올리고서야 스스로 수긍했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확실치 않은 일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넌지시 이 질문을 해봤지만, 답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만큼은 걱정이었다.

‘에플 인수는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 과연 이 콜린맥이 다른 모델처럼 좋은 성과가 나올까?’

그건 앞으로 기획 팀이 움직여서 파악해야 할 일이었다.

[자, 회의합시다!]

기획 팀은 힐끗, 시계가 저녁 8시를 넘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분간은 또 꼼짝없이 야근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 * *

스티븐은 한국에 올 때와는 달리 조용히 미국으로 떠났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한국 언론조차 스티븐이 떠나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에플 이사회는 스티븐이 돌아오자 한동안 시끄러웠다.

토비 CEO는 일단 말도 안 된다는 뜻을 내비쳤다.

“스티븐, 당신은 지금 우리 에플 사정을 모르기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겁니다. 이미 에플 매각은 잠정 결론이 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이미 에플 매각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IBM 측 지인에게 듣기로는 얘기가 다르다더군요. 그들이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이 문제를 걸고넘어졌습니다.”

어지간해서는 화를 잘 안 내는 토비 CEO는 충혈된 눈으로 스티븐을 째려봤다. 그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설마 당신이 중간에 방해한 겁니까?!”

스티븐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방해하고 말고의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에플이 구제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응을 보면…….”

“아직 IBM 내부에서 무조건 반대를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맬리오 이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건 스티븐의 이야기가 맞을 겁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 지금까지 만난 업체 중에 GE 역시 에플 인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토비 CEO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나마 보험으로 믿는 기업이 바로 GE였다. 그런데 설마 GE에서 사전에 포기할 줄은 몰랐다.

“G, GE도 말입니까?”

“정 그렇다면 차라리 매각 대금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자 아맬리오 이사가 버럭 화를 냈다.

“설마 20억 달러 이하로 제시할 겁니까. 그렇게 해도 GE 관계자는 제안을 거절할 겁니다!”

20억 달러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IT 기업 중의 하나인 에플의 가치로는 맞지 않았다.

과거에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실제로 최민혁의 인생 1회 차에서 토비 스핀들러 CEO가 20억 달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었다는 점이다.

그 스스로 에플을 경영할 수 없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에플 이사회 역시 위기감을 느껴서 이 제안에 결국 수긍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GE가 이런 에플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아맬리오 이사는 에플 매각 대금 말이 나오자 마음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다 내놓았다.

“어쩌면 에플 매각이 힘들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 에플이 살 길은 혁신입니다. 차라리 NextOS를 인수해서 그쪽 OS를 우리 에플에 이식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

토비 CEO는 황당한 눈으로 아맬리오 이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가 설마 스티븐을 옹호할지는 전혀 예상을 못 했다.

“…….”

스티븐 역시 아맬리오 이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자신을 옹호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스티븐은 묘한 기분에 휩싸여서 굳이 이들을 자극할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넌지시 NextOS가 보유한 OS가 에플의 황금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에플에서 새로운 OS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BeOS는 절대로 윈도우와 경쟁하기 힘든 OS입니다. 차라리 우리 OS가 보안이나 안정성 면에서 윈도우와 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사실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KMP-01에 탑재된 OS가 뿌리는 실상 우리 회사 핵심 인재가 고안한 겁니다. 그만큼 이식성이나 안전성 면에서 이미 인정을 받은 겁니다!”

“어?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스티븐은 굳이 숨길 일이 아니라서 최민혁 실장과 스카우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를 고백하는 그의 표정은 썩 좋지가 않았다.

이 일은 자신의 치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했다.

반면 토비 CEO는 이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설마 KM 전자의 무시무시한 성장 바탕이 스티븐이 어느 정도 준비하던 기술과 관련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맙소사 그걸 그냥 뒀다는 말입니까? 당장 소송을 해야 합니다!!”

스티븐은 착잡한 얼굴이었다. 그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지만 이미 상황이 많이 늦었다. 그나마 특허 수십 건을 건진 것이 다행이었다.

“그게 좀 애매한 상황입니다. 당시 기술이 특허까지 출원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제 개인적인 문제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NextOS 경영진과 스티븐 사이의 갈등은 실리콘 밸리 내부에 꽤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에플에서 쫓겨나기 전에 스티븐이 일으킨 문제가 NextOS 내에서도 그대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이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하, 설마 그러면 최민혁 실장이 그 틈을 노려서 스티븐의 뒤통수를 친 거였어? 그걸 기반으로 KMP-01 대박을 터뜨렸고?’

“…….”

스티븐은 어금니를 살짝 깨물었다. 그 역시 지난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황당한 것은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그 자신이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에플 이사회 역시 스티븐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에플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서로 대립과 갈등을 남발했었다.

그때도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던 토비 CEO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꼈다.

“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어떤 인간이기에 우리 에플을 상대로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

스티븐은 최민혁 실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동양인이 나이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하지만 최민혁은 어려도 너무 어렸다.

그런데 하는 행동만 보면 결코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아맬리오 이사 역시 의문을 쉽게 떨치지 못했지만, 결심을 굳혔다.

“지금 우리 에플을 위기에서 구해줄 사람은 스티븐 외에는 없습니다.”

토비 CEO는 한동안 침묵했다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에플 이사회가 스티븐,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압니다. 저도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제안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에플은 스스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두 사람 다 표정을 와락 구기고 말았다. 스티븐이 좋아서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최민혁 실장에게 이를 가는 사람이 스티븐이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물론 내심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콜린맥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우리 OS를 포팅한 최적의 하드웨어야. 특히 단가를 생각한다면 하드웨어 사업부를 매각한 것 이상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어!’

그거면 충분했다.

에플이 다시 살아날 총알로 부족하지 않았다.

스티븐은 때문에 피해자 코스프레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최민혁 실장이 싫지만 에플 회생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자신이 참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도 그런 점을 느껴서인지 한결 부드러운 시선으로 스티븐을 쳐다보았다.

* * *

토비 CEO나 아맬리오 이사 두 사람은 스티븐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그렇다고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에플 주가 총액이 고작 2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해도 작년 한 해 매출이 4억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의 KM 전자가 지분 인수를 제안할지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KM 전자와 벨린 투자, 두 회사가 가진 자금이면 에플 지분 전체를 인수하지는 못해도 대출을 받아서 무리하면 50%의 지분은 인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웃기는 사실은 지분 인수와 더블어서 KM 전자가 자신들이 보유한 원천 기술 일부를 내놓겠다고 한 점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특허료도 내놓아야 하고, 경영 간섭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에플 이사회 역시 물갈이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KM 전자에 에플의 지분을 내주는 건 썩 내키는 판단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에플 대주주다. 그들은 휴지 조각이 될 지분을 이대로 들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토비 CEO를 괴롭히고 있었다.

다른 대안이 있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에플 상황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에플 인수에 관심을 보인 IBM과 같은 대기업이 다들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러다가는 최악에 에플이 공중분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에플 이사회 내에서도 온갖 이상한 악성 루머가 빠르게 퍼졌다.

미국 언론에서도 에플 내부 갈등을 심층보도 하기 시작했다.

[GE가 에플 인수를 포기하다!]

스티븐의 행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최문경 부회장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권재홍 비서실장도 이번에는 그 어떤 대답도 하기 힘들었다. 그는 힐끗, 이 자리에 참석한 민상수 비서실 2팀장을 쳐다보았다.

민상수 팀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전전긍긍했다. 스티븐 관련 이슈는 이미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어서 국내 대기업 사이에 말들이 많았다.

어지간한 국내 대기업은 다들 스티븐을 한 번이라도 만나려고 했다.

꼭 스티븐과 비즈니스가 없다고 해도 형식적인 만남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로 여기에 비즈니스를 잘만 엮는다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스티븐이 KM 전자를 방문한 후에 그날 오후 비행기 편으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심지어 그 이후로 미국 언론에서는 계속 에플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중에 제일 황당한 이야기는 KM 전자의 에플 인수설이었다.

민상수 팀장은 도저히 분개한 최문경 부회장에게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권재홍 비서실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현재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은 에플 인수설입니다.”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에플이 KM 전자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솔직히 저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서실에서 올라온 자료를 취합해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너무 황당해서 화를 내지 않았다.

“권 실장, 자네 제대로 미친 거야? 미국 애들이 자국의 자존심인 에플을 KM 전자에게 넘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거야? 당장 미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

사실 평소라면 미국 정부가 에플 정도 되는 기업이 다른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걸 승인할 리가 없다. 정 안 되면 IBM과 같은 기업과 딜을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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