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35화 (435/1,021)

#435.

에플 창업자인 스티븐의 행보는 전설과도 같아서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이야기의 공통점은 과연 스티븐이 얼마나 놀라운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스티븐 덕분에 개인 PC 시장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기획 팀의 분위기가 사뭇 들뜰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성돈 팀장은 이런 팀 분위기를 무시한 채 스티븐이 굳이 KM 전자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획 팀 역시 스티븐 이야기에 들뜨기는 했지만 자기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스티븐 관련 미팅 보고서를 보고도 무덤덤했다. 그는 마크 듀켄을 통해서 얻은 정보도 있지만, 인생 1회 차 지식으로 지금 스티븐이 처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픽사의 성공이 스티븐 부활의 날개의 변곡점이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스티븐도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을 거야.’

물론 아직은 아니다.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다만 스티븐 역시 어느 정도 짐작한 바가 있을 거다.

그렇게 본다면 시점이 애매했다.

그만큼 스티븐 똥줄이 탄다는 이야기다.

‘NextOS에서 세 사람을 스카우트한 건 때문이겠지. 그들이 쓴 선행 기술을 알아봤다면 당연한 반응이야.’

최민혁은 애초에 자신이 한 일 때문에 스티븐의 미래가 많이 바뀐 것을 잘 알았다. 가능하면 스티븐의 앞날에 변화가 최소한이 되도록 노력했지만, 상황이 이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스티븐 역시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냅스트가 원래의 흐름을 타고 있으니까. 스티븐이 이 변화를 놓칠 이유가 없어.’

오히려 이를 오해한 조성돈 팀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최민혁의 눈치를 봤다.

“…실장님, 이번 일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압니다. 스티븐과의 미팅인데, 가벼운 일이 아니죠. 더욱이 에플과도 관련이 있으니, 그게 문제입니다.”

“스티븐이 아무래도 우리 KMP-02에 숟가락을 올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굳이 그쪽과 협상을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최민혁은 이전과는 태도가 사뭇 달라진 조성돈 팀장의 말에 피식 웃었다.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에플이 망해간다고 해도 에플 브랜드가 가지는 힘은 여전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소위 말해서 팬덤이라고 합니다. 에플을 지지하는 소비자층은 일반 소비자와는 달리 능동적인 참여자로 그 역할을 다합니다. 이들의 행동은 기업 브랜드 가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팬덤이라…….”

조성돈 팀장은 처음에는 최민혁 말을 선뜻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다만 KM 전자의 TV를 좋아하는 고객층을 떠올리자 아차 싶었다.

최민혁은 그 모습에 쓰게 웃었다.

“아직 우리 KM 전자는 해외에 소비자층이 그렇게 두텁지 않습니다. 우리 물건만 가지고 소비자에게 어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입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네. 무시하기 힘듭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쌓은 것이 아니니까.”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에게 소위 말하는 에플빠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주었다. 굳이 조성돈 팀장을 이해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걸 이해시키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에플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힘은 분명 무시하기 어렵다.

‘좋은 물건만 있다면 에플의 부활은 불가능이 아니지. 얼마든지 지갑을 열어서 에플 물건을 사줄 충성스러운 고객층이 있으니까.’

“하면 우리가 스티븐과 손을 잡아서 에플과 협상을 한다면, 그 소비자층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그리고 아무래도 반감이 좀 적을 겁니다. 한국이 만든 제품과 스티븐의 에플이 만든 제품은 보는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하지만…….”

“아, 다만 이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티븐은 아무래도 미국 내에 인맥이 두텁습니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투자할 사람은 많습니다. 그 힘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로스 페리가 있다. 그는 지금도 스티븐이 원하면 자금을 얼마든지 내주고도 남을 사람이다. 실제로 그렇게 했고 말이다.

“하지만 스티븐은 바보가 아닙니다. 누구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움직일 생각 따위는 없는 이니까. 그런 사람이 움직였다면 생각한 바가 있겠지요. 그걸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

조성돈 팀장은 기획 팀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최민혁의 의견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도대체 왜 보고서를 썼는지 자괴감마저 느꼈다.

하지만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이상 조성돈 팀장이 만든 보고서가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렇게 훈련을 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기획 팀의 노고는 저도 인정합니다만 그렇다고 단순히 노력을 위한 노력이 되면 곤란합니다. 정확한 사실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니까.”

“하지만…….”

“아, 아직은 모른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죠. 좋네요. 그 의지를 높이 봐서 일단 스티븐과 에플을 다시 재조사해 보세요. 이번에는 에플 지분의 인수 가치에 관해서 확인해 보시고요.”

“네? 서, 설마 에플의 지분을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양손을 쫙 펼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IBM이 하는 일을 우리 KM 전자가 못 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더욱이 지금은 기회가 좋아요. 에플 이사회도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옆집 개 꼬리라도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손을 내민다면 거절하기 힘들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새삼 최민혁을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역시 뒤늦게야 지금이 아니면 에플 지분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망해가는 에플이 아니라면 확실히 에플 지분을 얻기 어려워. 하지만 그건 에플의 정상화와는 좀 다른…….’

하지만 그는 뒤늦게야 KMP-02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KM 전자의 입장만 봤다. 그런데 에플 지분 인수 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KMP-02를 에플 상호를 달고 팔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복잡한 유통 문제나 미국 소비자의 차별 따위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조성돈 팀장은 히죽히죽 웃고 있는 최민혁 얼굴을 보고서야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 * *

KM 전자 기획 팀은 최근까지 정신이 없이 바빴지만, 오늘은 그때보다 더 심했다.

다들 주말에도 나와서 퇴근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에플의 기업 가치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기획 팀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회계 팀이나 법무 팀 역시 이 일에 나서야 했다. 그들은 기획 팀 자문 때문에 끌려와서 집에도 못 가는 이 상황이 괴롭기만 했다.

덕분에 에플의 가치 평가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배종대 과장은 그 결과물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에플 지분 가치가 고작 24억 달러에 불과하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박상기 차장 역시 혀를 내둘렀다.

“에플 주식의 가치가 똥 취급 받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 메시지 패드 실패가 타격이 컸을 거야. 그 일에 전 에플 CEO인 스컬리가 모든 것을 다 꼬라박았을 테니까.”

“왜 실패를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요?”

“스컬리도 나름 스티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생각해. 메시지 패드를 통해서 스티븐의 아성을 넘을 거라고 집착했겠지.”

“거기에 윈도우95로 인한 타격도 문제군요.”

“스컬리도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느냐고 의심했을 거야. MS는 계약서상의 맹점을 이용해서 계속 업그레이드만 했을 테니까.”

배종대 과장도 그렇지만 기획 팀원 역시 다들 스티븐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지난 일을 다시 들춰보며 각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다만 정성근 대리는 슬쩍 다른 말을 꺼냈다.

“하면 정말 에플 지분을 인수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실장님은 그렇게 염두에 두신 것 같아. 이번 스티븐과의 만남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테니까.”

배종대 과장이 다시 슬쩍 끼어들었다.

“하면 최 실장님은 스티븐을 다시 에플로 귀환시킬 생각입니까?”

“글쎄.”

조성돈 팀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배성대 과장은 이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하, 설마 최 실장님은 스티븐을 바지 사장으로 만들 생각인 겁니까? 정말 그렇다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일이 이런 식으로 풀려가다니.”

“…….”

기획 팀원은 다들 배종대 과장의 독백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에플 지분을 인수한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가서 스카우트에 참여했던 이들은 당시 최민혁이 왜 유독 몸을 사리나 싶었는데, 그때 일이 지금을 대비한 포석이 아니었겠느냐고 생각했다.

‘이건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잖아. 설마 이런 상황을 다 짐작한 것일까?’

* * *

스티븐의 제안 덕분에 KM 전자 기획 팀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기자들은 기회를 노렸다.

그들 중에는 범용구 기자도 있었는데, 지난 기자 회견 때문에 다른 언론사에서 왕따를 당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기자가 기자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대신 최민혁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KM 전자 내부에 예상치 못한 일이 진행된다고 확신했다.

그 근거가 와컴의 지분 인수다.

시간이 지나자 와컴 이야기가 쑥 들어간 것과는 별개로 그는 와컴을 계속 조사했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지켜봤다.

이번에는 최민혁 실장과 연결된 최문경 부회장, 오성 전자, LC 전자 역시 빼놓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다 조사했다.

그중에는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계열사도 포함했다.

특히 다들 잊고 있는 ARN, 벨린 글라스 역시 빼놓지 않았다.

범용구 기자는 그 덕분에 최민혁 실장과 연결 고리가 있는 한영 일보 파트 쪽의 다른 기자를 스토커처럼 열심히 괴롭혔다.

처음에는 다들 범용구 기자 욕을 했는데,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커피 잘 먹겠습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잘 좀 도와주십시오.”

그런 이들 중에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 곳도 있었다. 주로 출입국 관리소를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확인하는 파트 쪽이다.

“야, 범 기자님, 저에게 한턱 쏘셔야겠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최광수 기자는 요즘 범용구 기자 때문에 재미를 단단히 봐서인지 그의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뜻밖의 소식이 있었다.

“스티븐이 한국에 온다네요.”

“스티븐이라니? 무슨 스티븐… 설마 에플 창업자인 스티븐을 말하는 겁니까?”

스티븐과 최민혁 실장의 연결 고리는 바로 벨린 소프트였다. 이 회사에 스카우트된 세 사람이 스티븐이 CEO로 있는 NextOS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한영 일보에서 어렵게 파악한 정보였는데, 당시에는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범용구 기자가 계속 닦달하면서 이 부분이 드러난 것이었다.

“네, 그 스티븐 맞습니다. 저도 설마 했는데, 범 기자님이 계속 KM 전자와 관련된 이들을 지켜보라고 언질 주신 덕분에 알았습니다. 스티븐이 한국에 올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지, 진짜야?”

“네, 내일 오후 세 시에 도착입니다. 그런데 정말 스티븐이 한국에 오는 이유가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 때문입니까?”

“아, 그거야…….”

범용구 기자도 선뜻 스티븐의 방문이 최민혁 실장 때문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스티븐의 방한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한국을 찾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스티븐의 방한이 최민혁 실장의 또 다른 수작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스티븐의 방한을 최민혁 실장과 엮여서 터뜨리면 그만이다.

‘재수가 좋으면, 뭔가 드러날 수도 있어.’

오보는 중요하지 않았다.

범용구 기자는 쾌재를 내지르면서 최경진 편집장실을 찾았다.

“스티븐이 정말 KM 전자 때문에 한국에 왔다고 생각해?”

그는 냉큼 거짓말했다.

“확실합니다. KM 전자가 ARN 지분을 인수했지 않습니까.”

“정확히는 벨린 투자가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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