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34화 (434/1,021)

#434.

스티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장에는 스컬리가 했던 주장도 녹아 있었던 것이다.

스티븐은 여러 가지 시련을 거치면서 앞으로 이뤄야 할 비전이 생겼다. 그는 물론 단순한 미래만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월마트 롭스 월트 사장을 만나서 이야기해 본 바로는 우리가 손을 잡아야 할 KM 전자는 기술력은 좋지만, 영업적인 면에서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 시장 판로에 대한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KM 전자는 애초에 한국의 내수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였고, 한국에 모든 판매 기반이 다 있었다.

유럽 시장을 공략할 때도 이런 문제 때문에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다.

이에 따른 장점이라면 보수적인 경영으로 불필요한 지출이 없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KM 전자 내부에는 막대한 현금이 쌓이는 중이다.

실제로 최민혁이 원한 그림이었다.

스티븐은 오히려 이런 최민혁 실장의 능력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줬다.

“최민혁 실장은 굳이 욕심을 안 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이러니 회사의 순이익은 시간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반이 쌓이게 되면 굳이 자기 자리에 집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냅스트가 그 경우입니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하면 KM 전자는 지금부터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맬리오 이사 역시 경영 관리 전문가답게 스티븐의 주장을 금방 깨달았다. 그는 그래서 더 KM 전자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KM 전자라면 굳이 우리와 손을 잡을 이유가 있습니까?”

스티븐은 최근 IBM, 인텔의 견제와 압박을 떠올리면서 쓰게 웃고 말았다.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사 발전된 기술이 있다고 해도 미국 고객층을 뚫어야 하는데, 이에는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아프리카에서 제조한 물건을 한국 내수 시장에 파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소비자층은 이런 제품에 고개를 갸웃한다.

미국인이 KM 전자 제품에 대해서 가지는 시선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예 외면하니, 마케팅이 통할 리가 없다.

중요한 건 바로 신뢰다.

아직 미국 소비자층은 KM 전자 브랜드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오성 전자나 LC 전자가 오랜 시간 미국에 계속 투자를 해서 인지도를 쌓은 것과는 달리 KM 전자에게는 아직 그런 역량이 없었다.

“더욱이 KMP-01에 들어갈 음원 콘텐츠가 문제입니다. 과연 글로벌 음반 업체에서 KM 전자와 제대로 협상하려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반대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틈을 이용한다면 우리 에플 역시 이 사업에 끼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과연 최민혁 실장이 쉽게 그걸 용인할까요?”

“일단 우리 NextOS는 에플에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필요하다면 NextOS의 지분을 에플에 매각하겠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에플이 NextOS의 지분을 인수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스티븐이 에플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돌게 되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티븐을 보고 에플에 다시 투자할 이는 있기 때문이다.

“흠.”

두 사람은 흥미로운 눈으로 스티븐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설마 스티븐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지는 상상도 못 했다.

스티븐은 속으로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차세대 파워북과 차세대 KMP-01를 결합해서 틈을 만들면 우리가 KM 전자의 비즈니스에 파고들 틈은 많습니다. 그 힘이 에플을 다시 살릴 수 있을 겁니다!”

“…….”

두 사람은 어느덧 스티븐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KM 전자로서는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대상이 에플이라면 어떨까요? 분명 거절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맬리오 이사는 그제야 스티븐 말의 의미를 깨닫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에플 지분을 KM 전자에 넘기자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어차피 두 분은 에플 매각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혹시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오히려 KM 전자는 우리와 손을 잡으면 서로 윈윈이 될 수밖에 없는 상대입니다.”

“…….”

토비 CEO와 아맬리오 이사 둘 다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하지만 그들은 뒤늦게 KM 전자가 가진 기술을 떠올리곤 스티븐의 주장을 섣불리 반박하지 못했다.

“KM 전자의 도움을 얻는다면 NextOS의 OS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겁니다. 특히 차세대 파워북에 그 기술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MP3 플레이어는 별개로 K투스와 같은 근거리 통신 기술 말입니다. 차세대 파워북과 다음 버전의 MP3 플레이어의 시너지 역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건 와컴의 상황이 증명합니다.”

“와컴이라…….”

실상 스티븐이 말하는 내용은 최민혁의 인생 1회 차에서 에플이 그대로 시도한 것이다. 일종의 융합 산업인데, 그 파괴력은 생각보다 컸다.

다만 이 시점에서 그런 미래를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스티븐조차 스컬리와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 싸웠으니까.

실상 메시지 패드가 실패한 것이 그 증거였다.

시기적으로 너무 앞선 기술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보인 행보는 메시지 패드 때와는 많이 달랐다.

MP3 콘텐츠에 선택과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최민혁 실장의 결과물을 토대로 스티븐의 매력적인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아니, 실패할 확률이 낮았다.

‘어쩌면 인텔이나 IBM보다 KM 전자가 더 나은 지분 매각 상대일지도 모르겠어.’

사실 1년 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다. 아마 두 사람은 스티븐보고 미친놈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다만 그 상대가 한국 대기업 중에 첫손으로 꼽히는 오성 전자나 HY 전자가 아니라는 점이 조금 걸렸다. 심지어 LC 전자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도 아니었다.

작년 한 해에 매출 3,000억이 고작인 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에 에플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려야 할 상황이었으니.

‘하, 어쩌다가 에플이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착잡했지만 스티븐의 말에 반박하지도,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못했다.

그냥 자존심 때문에 입만 꾹 다물었다.

두 사람은 혹시 스티븐이 다른 꿍꿍이가 있을까 고민했다.

‘KM 전자를 이용해서 에플 이사회에 압력을 넣을 생각인가?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두 사람은 뒤늦게 스티븐의 속내를 짐작했지만 쉬이 반박하지 못했다.

그럴 정도로 두 사람이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역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에플 이사회를 압박하기 위해서 KM 전자를 내세웠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 KM 전자를 이용해서 지금의 에플 이사회를 쳐내는 것이 최선이야. 그러면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내가 에플 이사회의 권력만 잡으면 굳이 KM 전자와 같이 갈 이유는 없으니까.’

세 사람은 한동안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 세 사람은 각자 에플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토비 CEO는 에플을 잘 매각하는 게 목표였고, 아맬리오 이사는 토비의 뒤를 이어서 에플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스티븐은 다시 에플로 돌아가서 이사회에 복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 * *

스티븐은 회사로 돌아와서 한동안 두 사람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동안 그의 심사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마크 실러 수석 부장은 그런 스티븐을 위로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은 생각보다는 잘 풀려갈 겁니다.”

NextOS 내의 내부 갈등 이후에 많은 경영진이 그만뒀다.

스티븐이 도저히 상황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스카우트한 이가 바로 마크 실러였다. 마케팅 전문가로 IT 분야에 경험이 많은 마크 실러는 그에게는 꽤 괜찮은 대화 상태였다.

“잘 모르겠네. 후유, 내가 너무 고집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상황에 부닥치지 않았을 텐데…….”

“전 이 위기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기반을 얻었지 않습니까?”

스티븐은 묘한 마크 실러 수석 부장의 설득에 피식 웃고 말았다.

늘 입가에 미소를 달고 사는 마크 실러는 꽤 긍정적인 인물이었다.

스티븐 자신이 아무리 미친놈처럼 날뛰어도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크 실러의 의견은 틀리지 않았다.

토비와 아맬리오 두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잘 부탁합니다.]

“마크 수석,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게, 그리고 KM 전자와 협상 요청도 하고.”

“알겠습니다.”

* * *

박광민 사원은 스티븐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이 상황을 잘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회사가 스티븐과 직접 관련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건 다른 기획 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는 스티븐 측에서 직접 연락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NextOS의 마크 실러 수석이라고요? 하, 요즘 장난 전화는 국제적으로 노는군요.]

딱 전화를 끊어버렸다.

배종대 과장이 이를 봤다.

“누구 전화냐?”

“스티븐의 대리인이라고 장난 전화를 해서 그냥 끊었습니다.”

“장난 전화 확실해?”

“아니, 스티븐이 우리 회사에 전화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하긴.”

배종대 과장도 순순히 이를 인정했다. 자신들이 스티븐을 조사하기는 하지만 그건 단순한 조사에 불과하지 그들이 스티븐에게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니었다.

에플 창업자인 스티븐이 비록 지금은 에플에서 쫓겨났지만, 그렇다고 그의 명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배종대 과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이 전화를 대신 받았다.

[KM 전자 기획 팀의 배종대 과장입니다.]

[아, 제발 전화 끊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전 NextOS의 마케팅 책임자인 마크 실러입니다. KM 전자와 협상할 일이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진짜 NextOS 임직원입니까?]

[아니, 제가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업무 미팅 일정을 잡기 위해서 전화를 건 것뿐입니다.]

[그렇습니까?]

태연한 대답과는 달리 배종대 과장도 깜짝 놀랐다. 그는 눈이 동그랗게 변해 있는 박광민 사원을 타박할 정신이 없었다.

전화 소리를 들은 다른 임직원조차 배종대 과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 미팅은 우리 회사 대표이사인 스티븐이 동석할 예정 입니다. 이게 우리가 사전에 전화를 건 이유입니다.]

[비즈니스 방문이란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NextOS와 우리가 서로 관련이 없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까?]

[이번에 와컴의 지분까지 인수했으니, KM 전자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짐작한 바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번에 미팅을 요청하는 이유는 KMP-01의 차세대 기종 때문입니다.]

배종대 과장은 상대 추측에 깜짝 놀라서 슬쩍 한번 찔러봤다.

[…그건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그쪽의 도움을 청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KM 전자는 콜린스나 KMP-01의 미국 내 판매에 대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압니다. 이를 우리 쪽에서 적극 도와주겠습니다.]

[글쎄요. 우리가 굳이 NextOS 브랜드를 이용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에플 브랜드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사장님이 전전 에플 CEO인 탓에 에플과 중재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이 점은 에플 이사회를 통해서 확인을 받았습니다.]

[설마 스티븐이 에플과 KM 전자 사이를 중재하겠다는 말입니까?]

[내용이 좀 틀리지만 거의 정확합니다.]

[……!]

배종대 과장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 일은 전화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일정을 한번 조율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종대 과장은 전화를 끊고 나서 굳이 팀원들을 불러 모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주변에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이들이 다 몰려와 있었다.

조성돈 팀장은 평소처럼 입을 열었다.

[회의합시다!]

다들 당연한 반응이라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혀를 내둘렀다.

“맙소사 이게 사실이야? 정말 우리가 에플과 손을 잡는 거야?”

“믿을 수가 없네!”

대다수 기획 팀은 이번 일을 확신하지 못했다.

‘정말 스티븐을 만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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