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11화 (411/1,021)

#411.

권태성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LCD 패널 시장 장래가 밝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따라서 특허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이야. 특히 원천 특허를 가진 최민혁 실장이라면 그 카드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할 거네.”

“그 말씀은…….”

하지만 그도 김현탁 본부장이 눈치챈 상황을 못 읽은 것은 아니다. 최민혁 실장의 행동을 보면 상리에 맞지 않은 부분이 꽤 있다.

아무리 오성 그룹이라고 해도 IPS LCD 핵심 기술을 챙긴 것부터가 이상했다.

‘설마 특허를 믿고 의도적으로 IPS LCD 핵심 기술을 흘린 것은 아니겠지?’

확실한 부분은 아니다. 그래서 그 역시 애매한 부분을 말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도 의심스럽지. 최민혁 실장이 굳이 자신은 LCD 산업에 끼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LCD 산업을 부추기고 있으니까.”

“결국 최 실장은 LCD 특허 로열티를 노린다는 말씀이군요. 특허 대리전 양상도 같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입니까?”

권태성 기획실장은 도저히 지금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워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정말 최민혁 실장과 엮인 일이 걱정스러웠다.

“맞아. 불행한 사실은 우리가 그걸 알아도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라는 점이야. 우리가 이 도박판에 합류하지 않으면 LC 전자가 다 쓸어갈 테니까.”

“외통수란 말씀이군요.”

“그래. 외통수지.”

권태성 비서실장은 지금 자기 앞에 놓인 KM 전자의 핵심 보안 기술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성 전자 나름 LCD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서 노력하고는 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판을 딱딱 만든 것처럼 원했던 것이 나오고 있다.

이걸 단순히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이전 사건처럼 도저히 흑막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떻게 해서라도 KM 전자를 일단 따라붙는 것이 중요하니까.”

“너무 섣부르게 나서는 것이 아닐까요?”

“어쩔 수 없어. 우린 오성 전자는 KM 전자와 처한 상황이 달라. 디스플레이 계열사 매출이 얼마인지는 자네도 잘 알았잖아?”

“그렇군요.”

임권수 부장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야 이 복잡한 상황이 정말 엿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천 기술은 최민혁 실장이 다 들고 있었다. 그런데 검증은 자신들이 해야 할 상황입니다.

심지어 제품을 만들고 나면, 특허료는 또 따로 내야 한다.

거기에 최민혁 실장 비위까지 맞춰줘야 할 상황이다.

오성 전자는 막말로 최민혁 실장 손바닥 위에 놀고 있는 손오공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으니, 일단 특허 팀을 총동원해서 LCD 패널 기술 관련 특허도 출원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은 자신의 그린 기획대로 LC 전자와 오성 전자 내부가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한 후에 밝게 웃고 말았다.

두 회사가 LCD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 덕분에 IPS LCD 역시 빠르게 시장에 출현할 것으로 생각했다.

DL 그룹은 덤이다.

‘김현탁 본부장이 유연하게 움직여. 확실히 재능이 있는 친구야. 뭐, 그래 봐야 아직은 풋내기 티를 못 벗어났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아직 미비한 계획을 점검하는 것이다.

더불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조성돈 팀장을 호출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점검했다.

“일단 판을 벌여놓았으니, 우리 주인공이 숨겨둔 판돈을 챙겨올 때까지 기다리죠. 대신 그동안에 벌여 놓은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커닝 쪽 사업권 인수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커닝 내부 갈등이 심해서 아직 접근을 못 하는 상황입니다.”

최민혁은 자신이 기대한 것과는 따로 노는 커닝 사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켐코 사업부를 인수해야 하나 갈등했다.

“그렇게 갈등이 커졌습니까?”

“원래는 커닝 내부 갈등이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생긴 이후에는 달랐습니다. 마치 악마에게 현혹이라도 당한 것처럼 서로 물러서지 않을 채 치열하게 싸우는 중입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새삼 최훈열 전무, 최문경 부회장, 자신 사이의 갈등을 떠올렸다. 이들 세 사람의 갈등도 커닝 내부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은 애초에 KM 그룹 따위에는 관심 자체가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면서 지금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역시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나 봅니다.”

“그러게요.”

조성돈 팀장 역시 커닝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아는 바로 최민혁은 커닝 내부에 큰 간섭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몇 번 접촉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태는 점점 커져서 대규모 눈사태로 바뀌고 말았다.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피식 웃었다.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에게 연락해 보세요. 아마 그쪽에서 접근한다면 좀 더 상황이 편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우영민 부장에게는 우리 입장은 켐코 사업부를 굳이 인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피력하라고 하세요. 최악엔 켐코 사업부 인수를 포기하라고 하세요. 아마 연기력에 제법 있는 우영민 부장이라면 잘할 겁니다.”

“…네.”

* * *

우영민 부장은 한때 자산운용 책임자였다고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이 당시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영민 부장의 연기력이 사기꾼 뺨칠 정도로 놀라웠다.

결국 피해를 입은 투자자가 사기 협의로 우영민 부장을 고소했을 정도다.

우영민 부장은 때문에 최민혁 실장에게 켐코 사업부 인수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자 고민에 빠졌다. 그는 사기를 쳐도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그는 실상 이번 일을 그만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부장이지만 얼마든지 이사로 진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벨린 투자 이사회를 차지하는 이들은 바지 이사에 불과했다.

그들은 아무런 실권도 없고, 그저 회사에 이름만 올려뒀다.

‘신기한 점은 실장님은 굳이 추가로 인원을 보충할 생각이 없다는 거야. 내 능력을 그만큼 높이 평가하거나, 다른 생각이 있어. 아직은 시기가 되지 않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정작 벨린 투자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최민혁 지시를 받은 우영민 부장 그 자신이다.

결국 우영민 부장은 벨린 투자 대표 이사가 가지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최민혁 실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영민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무조건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때문 커닝 이사회 관련된 사안부터 시작해서 다시 원점에서 자료를 살폈다.

경호원 겸 비서 역할을 문영식 과장은 미국행까지 우영민 부장을 동행했는데, 이번 일은 영 신통치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이번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네요.”

“내 생각은 달라. 지금은 최 실장님이 협상할 때와는 다르니까.”

“무슨 말입니까?”

“커닝의 데니스 워드 부사장이 제법 머리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번 일 때문에 커닝 이사회가 막장을 달리잖아. 그도 지금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느낄 거야.”

“설마 지금은 데니스 워드 부사장도 켐코 사업부 매각을 찬성한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러고 싶지는 않겠지. 그런데 모건 하우튼 이사는 굳이 이사회 내부 혼란은 원치 않을 거야. 결국 제프리 하우튼 이사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

“그러면 데니스 워드 부사장도 커닝 내부 안정을 위해서 켐코 사업부 매각을 결사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에이, 세상 너무 쉽게 사신다. 그렇게 쉽게 될 일이면 왜 최민혁 실장님이 나설 때는 상황이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습니까?”

“최민혁 실장님이 나섰기 때문일 거야. 데니스 워드 부사장은 켐코 사업부가 돈이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겠지.”

문영식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우영민 부장 옆에 있으면서 단숨에 과장까지 진급했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떡고물을 또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영민 부장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문 과장 역할이 중요해. 이번 만남은 하기 싫지만, 지시를 받고 억지로 나온 임직원 역할을 보여줘야 해.”

문영식 과장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그래도 과거 망원 렌즈로 검찰청 내부를 찍는 것과 비교해 보면 차라리 나았다.

다만 자신의 본업인 경호원 업무와는 동떨어진 일을 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낄 뿐이다.

“우 부장님은 회사 지시 때문에 억지로 나온 투자자 입장입니까?”

우영민 부장은 문영식 과장과 어깨동무를 한 채 히죽 웃었다.

“그렇지. 역할극에 충실한 것이 좋아. 이왕이면 한 번에 가자고. 이번 일만 성공하면 아마 최 실장님이 확실한 보상을 줄 거야.”

“…까짓것 알겠습니다!”

* * *

경호원 직무로 회사에 들어온 문영식 과장은 평소에 푼수 같은 우영민 부장 옆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번 제프리 하우튼 이사와의 만남에서 그때 배운 것을 잘 써먹었다.

흔히 말하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역할을 맡은 단역 배우 역할이다.

문영식 과장은 우영민 부장만큼 아니어도 끼가 제법 있었다.

따라서 표정 연기는 제법 괜찮았다.

여기에 라면 수프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이 아닌 우영민 부장이다.

그는 시계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하는 투자자(?) 역할을 제대로 했다.

자신이 만든 이사회 혼란 때문에 최근 아버지에게 압박을 받는 제프리 하우튼 이사 안색은 평소와는 달리 초조했다.

그 역시 자기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무리수를 둬서 재미를 봤지만 분노한 에이모리 하우튼 부회장 압박 때문에 몸을 숙였다.

하지만 이미 이사회 내부 갈등은 그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비록 그 자신이 이사회 내부 대립을 폭발시켰지만, 그 이후 상황은 그가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훌쩍 벗어났다.

커닝 이사회 내부의 알력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차에 최민혁 실장을 대리해서 나타난 우영민 부장은 켐코 사업부 인수에 대해서는 난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최 실장이 인제 와서 켐코 사업부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말입니까?!”

우영민 부장은 최민혁 실장이 처한 처지를 좀 과장하면서 교묘하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최 실장님은 이번 일에 부담을 꽤 가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켐코 사업은 미래를 위한 투자지, 당장 이익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커닝 이사회 혼자서 설레발을 치고 있었다.

그런 느낌으로 문영식 과장이 옆에서 단역 역할을 적절하게 보여주었는데,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그는 경호원이 아니라 투자 회사의 수석 연구원 연기에 몰입했다.

그 표정이 얼마나 현실감이 있는지 제프리 하우튼 이사의 시선을 계속 끌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세상 물정 모르는 연구원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제프리 하우튼 이사를 계속 자극했다.

우영민 부장은 이런 문영식 과장 연기를 뛰어넘는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 것이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해서 그렇지만 이번 일은 우리 최 실장님이 실수하신 겁니다. 최근 KM 전자 내에서 영향력이 커지면서 아무래도 욕심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제프리 하우튼 이사는 분노했다.

“아니, 이제 와서 켐코 사업부 인수를 포기한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당신들 지금 커닝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겁니까?!!”

“저런 뭔가 오해를 하셨군요. 적절한 가격이라면 켐코 사업부를 인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LCD 패널 사업이 시작되면 새로운 특수 유리에 관한 병행 연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뭐 당장은 돈이 안 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제프리 하우튼 이사 역시 최근 KM 전자의 행보를 유심히 살폈고, IPS LCD 기술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따라서 이번 사업권 인수가 그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면 앞뒤 이야기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최민혁 실장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생각해 보면 그 이익이 얼마가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제프리 하우튼 이사는 가용한 모든 연구원과 심지어 자신과 안면이 있는 미국 대학에도 자문했는데,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그중에는 소위 말하는 세계적인 석학도 있었다.

[지금의 켐코 사업은 돈이 안 됩니다!]

결국 제프리 하우튼 이사는 일을 복잡하게 만든 데니스 워드 부사장을 탓했다.

‘빌어먹을 데니스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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