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01화 (401/1,021)

#401.

“아뇨. 전 평생 있을 겁니다.”

“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회사가 널 평생 먹여 살려줄 것 같아? 그 어떤 대기업도 그러지는 못해. 결국, 회사를 떠나서 앞일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해!”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필요에 따라서 재교육을 해줍니다.”

“아니, 세상에 그런 데가 어디 있어?”

“우리 회사가 그렇습니다. 회사를 배신만 하지 않으면 어지간한 실수는 다 넘어갑니다. 어, 그건 모르셨습니까?”

“…그게 정말이야?”

우영민 부장은 내킨 김에 KM 전자와 관련사의 사내 복지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초창기와는 달리 최근에는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럼요. KM 전자 내에도 상시 보직 이동이 있어요. 특히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만족도가 높은 걸로 압니다.”

“…….”

황광수 차장은 넋을 잃은 채 우영민 부장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도 알음알음 KM 전자의 황당한 복지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KM 전자 사내 복지 제도가 상시화된 것까지는 몰랐다.

KM 전자 내부 분위기는 이미 많이 바뀌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은 임직원에게 새로운 보직을 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본사에서 공장 쪽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KM 그룹 구조조정 관련 시위도 힘을 잃었다.

사실 노조가 원한 것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KM 전자였다.

이런 문제는 KM 전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KM 그룹 장승일 실장이 노조를 만나서 협상을 진행했고, 5년에 걸쳐서 장기적으로 이 사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약정했습니다. 물론 KM 전자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KM 전자처럼 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니까요.”

“…진짜 놀랍네.”

“KM 전자는 정말 많이 변했지만, KM 그룹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이 일은 최용욱 회장님이 직접 손을 쓴 것이라서 더 변화 속도가 가팔라질 겁니다.”

“그것도 최민혁 실장이 주도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 최용욱 회장님이 최 실장님이 한 제도를 보고 도입한 것입니다. 최문경 부회장님의 반발이 있었지만, 현실에 맞는 제도로 조금씩 바뀌는 중입니다. KM 그룹 내부 분위기도 이전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그렇구나.”

황광수 차장은 씁쓸한 얼굴은 한 채 홀로 술잔을 들이켰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지인이 연락을 피한 이유를 알았다.

만약 KM 그룹 분위기가 우영민 부장 말대로라면 자신의 연락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는 당시 최문경 부회장 때문에 KM 그룹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KM 그룹과 오성 전자를 비교하면 오성 전자에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차라리 KM 그룹에 남을 것을 하고 아쉬워했다.

‘이 모든 일이 최민혁 실장 때문에 생긴 변화겠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걸까. 단 한 사람이 KM 그룹의 전체 체질을 바꾸고 있잖아?’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우영민 부장도 눈치는 있었다.

“오늘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황광수 차장은 오늘따라 술맛이 쓰기만 했다.

“잘 알면서 그래.”

“IPS LCD 때문입니까?”

“그래. 특히 LC 전자와 합작 회사를 설립한다는 소리가 파다해. 설마 IPS LCD 기술을 LC 전자가 독점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글쎄요.”

우영민 부장도 딱히 이번 안건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황광수 차장 말을 듣고서야 눈살을 찌푸렸다.

‘LC 전자가 IPS LCD 기술을 독점하는 것이 좋지는 않을 거야.’

합작 회사 설립 과정에서는 LC 전자가 저자세를 취하겠지만, 어느 정도 규모의 성장을 한 이후에는 그런 태도를 고수할 리가 없다.

합작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 LC 전자가 KM 전자를 압박할 방법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바로 토사구팽이다.

‘물론 최 실장님이 LC 전자에 당할 리가 없겠지만, 굳이 LC 전자라는 호랑이를 키워줄 이유는 없지.’

황광수 차장은 우영민 부장 눈치를 보면서 LC 전자가 중견 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한 여러 가지 경우 예를 들었다.

“LC 전자를 너무 믿지는 마. 겉으로는 인화단결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외부적으로 보면 온갖 흉악한 짓을 저지르니까.”

“LC 전자가 중견기업을 상대로 한 패악질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당장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황광수 차장의 LC 전자에 대한 평가는 사상 최악의 기업이 바로 LC 전자란 거다.

정작 오성 전자가 중견 기업을 상대로 한 횡포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우영민 부장은 내로남불을 주장하는 황광수 차장 모습이 애절하기만 했다. KM 그룹에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듣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한번 최 실장님에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 정말 그래 주겠나?!”

“아뇨. 황 차장님 의견이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LC 전자가 기술을 독점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황광수 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하는 제안이 아니라 우영민 부장이 하는 일이다. 얼마든지 최민혁 실장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부, 부탁해.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내가 할 수 있는 뭐든지 다 하겠어.”

“아뇨. 과거에 형이 도와준 것도 있는데, 이번에는 제가 도와야죠.”

“그, 그래. 고, 고마워.”

우영민 부장은 황광수 차장의 태도에 새삼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는 황광수 차장이 개인적인 사유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윗선의 지시를 받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아니, 그걸 알고도 왔다. 오성 전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 회사가 많이 컸어. 그나저나 최 실장님이 이번 일을 어떻게 결정할지 모르겠어. KM 그룹 내에서 최문경 부회장을 둘러싸고, 이상한 소문도 돌던데…….’

* * *

최문경 부회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오성 전자를 통해서 조카 최민혁 동선을 파악한 후에 크게 당황했다. 일단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결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오성 전자도 잘 모르는 커닝의 상황에 대한 내막을 아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는 이 상황에 분노했다. 이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동안에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결국 고민을 한 끝에 떠올린 대안은 한 가지였다.

“그 IPS LCD 말이야. 꼭 LC 전자나 오성 전자만 하란 법은 없잖아?”

권재홍 비서실장은 영문을 몰랐다.

“그건 그렇지만 오성 전자나 LC 전자는 이미 기반이 충분히 있습니다. 공장을 확충하는 식으로 사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KM 그룹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 겁니다.”

“그 엄청난 비용 말인데, 우리 KM 그룹이 충분히 확보할 수 있잖아?”

“…차입금 말입니까?”

“그래. 그 차입금!”

“하지만 그건 회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회장님이 결코 그 일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내 생각은 달라. 아버지의 꿈인 반도체는 결국 무산되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어. 그 차선책이 IPS LCD 사업이라면 굳이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어차피 비용은 비슷하게 들어가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우리 KM 그룹은 이전과는 체질이 달라졌어. 이제는 미래의 캐시 카우를 키워야 할 상황이야. LCD라면 나쁜 선택은 아니잖아. 그리고 설마 민혁이 그놈이 반대하겠어? 아마 그러지 못할 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권재홍 비서실장은 크게 당황했다. 만약 최용욱 회장 마음만 돌릴 수 있다면 최민혁 실장이 최용욱 회장의 지시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봤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KM 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용욱 회장의 든든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물론 이런 계획의 맹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하자고,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사내에 계속 소문을 내는 거야. IPS LCD 기술의 강점은 이미 뉴스에서 하도 떠들어서 직원도 잘 알 거야. 그런데 이들이 이번 일을 반대할까?”

“하긴 오성 전자나 LC 전자에 외주를 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장에 걸리는 일만 해도 너무 많아서…….”

“아, 이 친구가 정말 답답하네. 내가 언제 당장 이 일을 진행하라고 했어. 사내에 적당히 입소문을 내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다가는 자기 목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최문경 부회장은 자신은 빠져나가고,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 * *

최민혁은 우영민 부장을 통해서 오성 전자의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오성 전자가 왜 저러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제까지 권태성 실장에게 한 짓이 있으니까.

‘내가 좀 못 할 짓을 많이 한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수단을 쓰다니. 그냥 미팅 잡고 이야기하면 되지 않나?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었나? 설마 우영민 부장을 직접 찾아갔을지는 몰랐어.’

사실 최민혁은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성 전자 나름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도 고민하기는 했다.

‘커닝 일은 안 풀려서 골치인데, LCD 역시 말썽을 일으키네. 확실히 IPS LCD 특허를 LC 전자 하나에 몰아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결국 LC 전자와 오성 전자 두 회사에 같이 기회를 줘야 할까.’

그게 좋을 것 같았다.

최민혁 자신이 원하는 것은 소형 IPS LCD를 가능한 빨리 양산하는 것이다. LC 전자와 오성 전자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 와중에 기술 특허 사용료를 즐기면서 말이다.

조성돈 팀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KM 그룹이 LCD 계열사를 설립하지 않는다면 굳이 한 회사가 독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뭐가 말인가요?”

“KM 그룹 내에서 도는 소문으로 차라리 KM 그룹이 새로운 LCD 계열사를 설립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허, 그게 말이 되나요? 아니, 돈은 있고요?”

“그 의견을 낸 사람이 최용욱 회장님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대규모 차입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민혁도 이제야 KM 그룹이 안정된 것을 알았기에 버럭 화를 냈다.

“…차입금이라뇨?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입니까?!”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화가 잔뜩 난 표정을 보자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배후에 최문경 부회장이 있다는 설이 있는데…….”

“노조 문제는 어떻게 했습니다.”

“그게 잘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결국 최민혁 실장님 덕분입니다.”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KM 그룹 구조조정이 노조 방해 때문에 잠깐 주춤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이 상황도 달라졌다.

노조를 위한 시스템 몇 가지 도입이 이야기되면서부터다.

더욱이 이게 말뿐만이 아니라 KM 전자가 직접 실행해서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노조도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밑에 임직원이 최민혁 실장을 열렬히 지지하면서 노조 파업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바로 이런 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하였다.

“하, 기가 막혀서!”

최민혁이 황당하게 생각한 부분은 이제 KM 그룹이 체질 개선을 마무리한 시점이다. 그런데 그사이를 참지 못해서 또 새로운 투자를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소문이라고 해도 이런 이야기가 사내에 도는데, 할아버지가 조용할 리가 없잖아. 할아버지도 정말 바뀌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계속 말했다.

“그런데 이번 계열사 설립은 다른 계열사와는 좀 다릅니다. 실장님이 고안한 IPS LCD 특허도 있으니,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최민혁은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절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그런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할아버지는 아닐 거고, 도대체 어떤 새끼가 그 짓을 한 거죠? 설마 그 잘나신 우리 첫째 큰아버지 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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