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92화 (392/1,021)

#392.

최문경 부회장은 여전히 아리송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제까지 갖은 트러블메이커 노릇을 한 최민혁 실장이 저런 행보를 보인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 저 정보를 우리 KM 그룹이 임직원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존경할까? 아니면 민혁이 무리한 약속을 지키려고 쇼한다고 생각할까?”

권재홍 비서실장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곧바로 대답했다.

“지금 저 액정으로는 TV에 절대 적용하기 힘듭니다. 결국, 최민혁 실장이 무리한 약속을 지키려다 오버한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아마 임직원도 이제는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렇지?”

“한번 방안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좋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잖아. 내가 아는 상식으로도 200㎳ 응답 특성 액정으로 절대로 TV를 만들 수는 없어.”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최민혁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쪽 움직임을 알고 성급하게 일을 진행시킨 것일 수도 있어.’

* * *

KM 그룹 비서실은 차세대 LCD 패널 관련 안건은 KM 그룹 홍보물을 통해서 널리 알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만 이 홍보물에는 LCD 패널의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LCD 응답 특성과 관련해서는 전문적인 안건을 추가했다.

그룹 임직원 반응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설마 최민혁 실장님은 이걸로 디지털 TV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디지털 TV에 대한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이미 KM 그룹 내에 꽤 알려졌다. KMP-01, K투스 역시 그런 흐름의 결과물이었다.

이 두 가지는 독보적인 성능으로 KM 그룹 임직원을 휘어잡았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IPS LCD 패널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새로운 기술 그 자체만으로 놀랍기는 했지만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설마 이 액정으로 아예 LCD 계열사를 따로 설립하는 건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이런 제품이 팔릴 리가 없어. 더욱이 LCD 계열사 하나 설립하는 데, 수천억이 들어가. 최 실장님이 생각이 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은 안 할 거야.]

[하지만 KM 전자 내에 쌓이는 현금만 수천억 넘잖아. 그 돈으로 이 분야에 투자하려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그럴듯한 이야기다.

계열사 하나가 대박치고, 신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경우다.

보통 이런 경우는 경영자의 독선 때문에 기업이 망하는 것이 비일비재다.

KM 그룹 임직원의 동요는 당연하다.

장승일 실장이 이 사실을 안 것은 이 홍보물이 이미 KM 그룹 내에 배포된 후에 KM 그룹 임직원의 동요를 안 이후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임직원처럼 최민혁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

구길모 차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LCD 액정 응답 속도를 10㎳, 아니 20㎳로 줄일 수가 있어?”

“제 말은 최 실장님께서는 거기에 대한 대안이 있지 않을까요?”

“대안이라.”

장승일 실장도 이번에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는 구길모 차장이 정리한 기획안을 꼼꼼히 읽은 후에 LCD 액정 응답 속도를 혁신적으로 줄이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왜 최민혁 실장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답은 박재광 과장이 찾아냈다. 그는 꽤 흥분한 얼굴로 기획 조정실로 들어섰다.

“시, 실장님, KM 전자가 액정 응답 속도를 25㎳로 줄였습니다!”

“……?”

장승일 실장은 황당한 얼굴로 기사 하나를 살폈다.

[KM 전자가 액정 응답 특성을 25㎳로 줄인 IPS LCD 패널을 개발하다!]

불과 이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온 기사는 황당했다.

실제로 이 기사를 취재한 기자 역시 기사 내용에서 쉽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기사는 절대로 오보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새로운 LCD 패널을 확인했습니다. 놀랍게도 200㎳ 응답 액정을 25㎳ 응답 액정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기간이 불과 이주일이 채 안 됩니다. 실로 믿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

* * *

장승일 실장은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서 KM 전자 기획실을 찾아갔다. 그는 어차피 최용욱 회장도 이번 일에 관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최민혁은 꽤 지친 얼굴이었다. 그 역시 단기에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무리한 것이다. 김호동 교수도 그렇지만 멜코사에도 압박을 계속했다. 필요하다면 투자를 대폭 늘렸다.

다행이라면 그 자신이 직접 나서서 치환기에 대한 힌트를 줬더니 일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주어지자 일의 진척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치환기에 대한 답이 없다면 하나씩 삽질하면서 2~3년은 족히 걸렸을 일정을 대폭 줄였다.

“아, 맞아요. 오늘 기사가 나간 것 같군요.”

“이, 이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최민혁은 오혜정 비서가 내놓은 홍삼차를 마시면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쉽지 않은 일이죠.”

“설명을 좀 부탁합니다.”

“딱히 제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멜코사가 이 일을 주도했고, 김호동 교수님이 빠르게 프로젝트를 진행한 거죠. 운도 좋았습니다. 한 치의 실수만 있어도 1년은 가볍게 걸리니까요.”

1년이 뭔가. 현실적으로 봐서는 최하가 3~4년은 걸릴 일이다. 실제로 6~7년, 아니 7~8년은 잡아야 하는 일이다.

그것도 LCD 관련 대기업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야 그 정도 기간이었다.

장승일 실장은 지쳐서 늘어진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실장님.”

하지만 최민혁도 이번 일 때문에 지치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가능하면 이번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장승일 실장과 동행한 기조실 직원을 힐끗 쳐다보았다.

“우리 조 팀장님이 고생 많이 했습니다.”

“…실장님.”

“정말이라니까요. 여기 보고서를 보세요. 이거 다 기획실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니까. 전 그걸 토대로 일을 진행한 겁니다.”

“…….”

장승일 실장은 기획안을 결국 확인했다. 확실히 조성돈 팀장이 올린 기획안이었다. 멜코사를 선택하고, 김호동 교수를 선정한 것은 기획 팀이 한 일이 맞기는 했다.

최민혁은 혀를 끌끌 찼다.

“제가 입만 열면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가서 물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KM 전자 기획 팀은 확실히 평소와는 좀 다른 분위기였다.

들뜬 분위기였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귀신에 홀린 얼굴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이성을 잃지 않는 박상기 차장조차 기획안을 다시 검토하는 중이었다.

배종대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와, 이거 우리가 한 거 맞아?”

임웅 대리가 툴툴거렸다.

“배 과장님이 아이디어를 제시했지 말입니다.”

“난 이런 아이디어는 아니었어.”

“정성근 대리가 이 자리에 있어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아 참, 어처구니가 없네.”

“…….”

장승일 실장은 가볍게 눈인사만 하면서 이들을 지나쳐서 조성돈 팀장 자리에 가서 앉았다.

조성돈 팀장은 그런 장승일 실장을 보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IPS LCD 때문입니까?”

“네. 최 실장님이 이번 기획안은 기획 팀에서 주도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요.”

조성돈 팀장은 씁쓸하게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옥상 휴게실로 갔다. 그는 자판기 커피를 대접하면서 혀를 찼다.

“으음, 이번 기획안은 우리가 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일을 지휘한 것은 최 실장님입니다.”

“그러면 기획 팀이 일을 주도한 것이 맞다는 겁니까? 아니면 아니라는 겁니까?”

“아무래도 의사결정을 내린 것은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솔직히 우리 기획 팀이 이 일을 주도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단적인 예로 액정 치환기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은 최 실장님입니다. 멜코사에서는 그 치환기를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랬다.

멜코사는 다양한 치환기를 이용해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최민혁은 딱 그중에 하나를 찍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미 있는 치환기로 대체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을 뿐이다.

다만 너무 일정을 막 쪼아서 LCD 액정 패널 자체는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걸 무시할 수가 없는 이유는 지금 새롭게 만들어지는 LCD 샘플 특성이 기존 TN 패널보다 월등했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답을 알지 않고서야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장승일 실장은 더 질문할 수가 없었다. 이미 기존에 있었던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 일을 진행한 사람이 기획팀, 멜코사, 김호동 교수의 연계라는 점이다.

‘최문경 부회장이 이번에 또 삽질한 건가?’

* * *

IPS LCD 관련 이슈는 K투스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이리저리 나오는 이야기가 달랐다. 거기에 기사도 변하면서 갈팡질팡했다.

최용욱 회장은 딱 정리한 결과를 받아보고 나서는 혀를 찼다.

“큰놈이 또 사고 친 거야?”

“아무래도 너무 서두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어. 액정 응답 특성을 이렇게 단기에 줄이다니.”

“조성돈 팀장 말로는 기획 팀에서 모든 기획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 가장 큰 안건을 주도했습니다.”

“그래. 불과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70억을 퍼부은 것은 좀 심했어.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장승일 실장이 정리한 보고서를 보면 지금 제작되고 있는 IPS 패널이 가지는 강점이 꽤 있었다.

더욱이 응답 특성 속도가 빠르게 줄어든 것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하면 액정 응답 속도를 10㎳ 이하로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적어도 6개월, 1년이라면 충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대기업이 만약 손을 댄다면 그 기간도 대폭 줄어들 겁니다.”

“그렇겠지. 그 치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최용욱 회장은 IPS 보고안을 다시 몇 번이나 꼼꼼하게 읽었다. 그는 뒤늦게야 최민혁이 그렇게 주장하던 디지털 시대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허, 이거 참. 정말 이건 믿을 수가 없구나.”

그는 힐끗 진동하는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오성 그룹 안건민 회장의 전화였다. 어제부터 벌써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만나자는 전화였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이번에 쉽게 안 회장을 만날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LCD 업체와의 협상인가. 그러면 이번에는 오성 전자를 밀어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LC 전자인가?”

“HY 전자도 협상 대상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대단하군.”

다만 그도 한 가지가 의아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그게 좀 이상하지만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다른 경쟁사에서 개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럴 수도 있어. 그러면 70억을 땅바닥에 퍼부은 것도 말이 되는 군.”

최용욱 회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도 이제는 솔직히 손자 최민혁을 밀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최민혁은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다만 그것은 최민혁 본인이 얻은 성과다. 따라서 최민혁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장남 최문경 부회장이 최민혁과 비교해서 능력이 떨어질 뿐이다.

‘문경이 그 녀석이 능력이 없는 것은 아냐. 다만 민혁이 이놈이 너무 뛰어날 뿐이다. 고민스럽네.’

* * *

이번 IPS LCD 기술을 접한 히타치 공작소는 난리가 났다.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병원에 입원했고, 니시무라 야스시 소장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전전긍긍했다.

위에 보고는 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자기 목숨도 간당간당했다.

아니,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시가 박사 밑에 있는 연구원을 호출했다.

“법무 팀을 통해서 소송을 한번 알아봐.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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